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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궁의 노래 - 잊혀진 여걸 강빈 이야기
김용상 지음 / 순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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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몇 달 전에... 소현세자의 이야기를 담은 <<소현>>을 읽었다. 그리고 이젠, 소현세자빈의 이야기. 병자호란에서 너무나 비굴한 패배 끝에 청국으로 끌려가 온갖 고생을 하고 8년만에 조선에 돌아온 지 얼마되지 않아 죽음에 이른 소현세자의 이야기를 다른 시각으로 읽는 재미는 크다. 

저자는 소현세자빈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는 듯하다. 자신의 주인공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지금까지 우리가 "여걸"이라고 일컫는 대열에 소현세자빈이 전혀 뒤지지 않음을 작가의 말에서 피력하고 있다. 하지만 나로서는... 이 작가의 말을 괜히 읽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편집상 뒤쪽에 있었다면 오히려 소설을 객관적으로 읽을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전에 읽었던 소설에서는 세자빈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이 없다시피 했기 때문에 <<별궁의 노래>>에 등장하는 소현세자빈이 참으로 낯설다. 

"순종적이고 수동적인 것을 미덕으로 여겨온 조선 여인상에서 벗어나 있으니 그럴 만합니다. "...48p

세자빈은 자기 스스로 다른 여인네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저 바깥일에 간섭하지 않고 조용히 내조만을 바라는 궁중 여인들의 예법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다. 한 발 더 일찍 정세를 읽고 바른 길로 세자를 인도하고 싶어했고, 어려움에 처한 심양관을 구하고자 직접 농사와 무역에 참여하여 사람을 부릴 줄도 알았다.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배우고 그것을 응용하여 적용할 줄도 알았다. 그러니 그녀가 모든 이들에게 얼마나 눈엣가시였을지...

소설을 읽다보니 안그래도 두껍고 길어 자칫 헤이해지기 쉬운 집중력을 흐트려뜨리는 것들을 발견하게 된다. 이야기가 물 흐르듯 흐르다말고 어딘가로 튄다고 느껴지는 것. 누군가를 설명하기 위해 전체 줄거리에서 빠져나와 뒤로, 혹은 옆으로... 새나가다보니 내가 지금 어디를 읽고 있나...하는 생각이 종종 들었다. 그런가하면 당시의 역사를 자세히 모르는 사람들을 위한 역사적 배경이 부족하다. 때문에 내가 이 책을 읽기 전에 같은 시대의 책을 읽지 않았다면... 이 책의 반이나 이해할 수 있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워낙 소현세자와 임금 간의 갈등이 크다보니 책은 쉬이 넘어가는 편이다. 하지만 내게는 "작가의 말"에서 읽은 저자의 세자빈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 무의식 속에 자리잡고 있어 이 또한 저자의 편애가 아닌가..싶었다. 분명 세자빈은 그당신의 여인들과는 달랐다. 또, 소현세자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억울한 누명이었다. 하지만 그렇다하더라도 그 좋고 명민한 머리로 세자빈은 마음을 추스리고 다른 방법을 찾았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분명 세자빈은 아버지와 아들과의 관계를 조 소용처럼은 아니더라도 악화시키는 데 일조를 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러니 누가 옳고 그러냐...를 따지고 싶다면 그 모든 결론은 이 책을 읽는 각자 독자의 몫이 아닐까. 

분명 세자빈은 불행을 기회로 만들 줄 아는 똑똑하고 생활력 있는 여인이었다. 또 비록 볼모였다 하더라도 청나라에서 많은 것을 보고 배운 소현세자가 다음 임금이 되었다면.. 우리의 역사는 많이 바뀌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이 책을 쓰면서 자신의 역사관을 세자빈을 통해 밝히고자 한 것 같다. 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이 책을 읽는 독자는... 왠지 이 책이 객관적이 아닌, 무척이나 주관적인 책으로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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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이 통곡하는 한
야엘 아쌍 지음, 권지현 옮김 / 반디출판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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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을 향하여"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민족을 위해, 조국을 위해 이 한 몸 바쳐 순교자가 되겠다고 맹세하는, 많은 팔레스타인 아이들의 모습을 그린 영화이다. 하지만 그런 맹세 후에... 목적지를 찾아가며 두 청년은 조금씩 자신의 소중한 목숨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그렇게 자신이 하려는 일에 대해 그 의의와 의미를 다신 한 번 되새겨본다. 이 일이 과연 옳은 것인가. 이 방법밖에 없을까. 그 아이들의 내적 갈등이 참으로 섬세하게 그려져서 큰 임팩트가 없었어도 감동받았던... 그런 영화였다. 

아주 오래전부터 이어진 이 지역의 싸움은... 그 지역에서 살고 있으며 직접 몸으로 전쟁을 겪고 있는 그들조차도 제대로 전쟁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없고 그저 눈앞에서 벌어진 상황에 대한 분노만을 상대방에게 표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뉴스에서 이지역의 참상이 보도되었다. 이제는 누가 옳고 그른지 밝힐 수가 없다. 서로가 서로에게 너무나 많은 상처를 주었다. 

<<땅이 통곡하는 한>>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에서 살아가는 이들과 다른 지역에서 살아가고 있는 유대인과 팔레스타인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싸움이 그 지역을 넘어 다른 지역에서도 이들 민족간의 싸움이 되었고 유대인들은 점점 더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소설 속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유대인 사미와 아랍인인 카말은 둘도 없는 친구다. 프랑스에 사는 이들의 우정은 어떤 한 사건을 계기로 위기를 맞는다. 사미가 팔레스타인 여러 명에게 보이콧을 당한 것. 그 사건을 계기로 사미는 더이상 유대인으로서 다른 나라에서 살 수 없음을, 자신의 나라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깨닫게 된다. 그리고 예루살렘으로 떠나는 사미와 사미의 그런 행동을 이해할 수 없는 카말. 

그리고 또다른 청소년들이 있다. 팔레스타인인으로 아버지는 이스라엘 사람의 회사에서 일하시고 자신은 풍족하게 자랐지만 이스라엘 사람의 회사를 돕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고 부끄러워하는 인티사르. 이들 가족은 자신들의 지역에서 배신자로 낙인 찍히고, 그것을 참을 수 없는 인티사르는 조금씩 자신만의 생각을 쌓아간다.

그리고 또 한 팔레스타인 소녀. 신장 투석을 위해 매일같이 이스라엘의 병원으로 향한다. 그녀는 자신의 고통을 줄여주려 애쓰는 이사라엘 사람들의 착한 심성을 잘 알고 있다. 

이들 네 명의 청소년들은 어디서 어떻게 어떤 식으로 만나게 될까. 모두들 전쟁을 지긋지긋해 한다. 이들에게 폭격은 이미 일상화가 되어 있다. 모두 방법은 다르지만 목적은 같다. 이제 더이상의 전쟁은 안된다는 것. 평화가 아주 절실하다는 사실을.

"우리를 점령한 그들이 적일 수밖에 없지. 하지만 적이 아니라면 그 누구와 평화를 만들겠니? 폭력이 평활르 가져오진 않는단다."...95p

책의 뒷편에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을, 양쪽 모두를 이해할 수 있도록 그들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이들이 죽었는가. 지칠대로 지쳐버린 많은 이들이 평화를 원하는데도 일부의 극단적인 사람들은 아직도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 마치 그 폭력이 평화를 가져다줄 것처럼. 그래서 아무런 죄도 없는 아이들과 시민들이 얼마나 많이 죽었는가. 

"여기서 멈추지 않는 한, 땅이 통곡하는 한, 아이들은 죽어나갈 것이다."...143p

이제 멈출 때가 되었다. 그들 스스로의 노력이, 어쩌면 이들의 전쟁을 간과하고 혹은 부추겨왔을 국제 사회의 노력이, 우리 모두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할 때이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충분히 함께 노력하고 함께 살아갈 수 있음을 보여주어야 할 때가 아닐까. 그렇지 않으면... 더이상의 미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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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이것은 누구나의 삶>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다만 이것은 누구나의 삶 - 특별하지 않은 청춘들의, 하지만 특별한 이야기
박근영 지음, 하덕현 사진 / 나무수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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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때는 예술인의 범주에 속해 있었다. 하지만 그때 내가 느꼈던 것은... 그들과의 괴리감. 그들은 무언가 나와는 다른 삶을 살아온 듯했고, 생각도 달랐고, 생활 패턴도 달랐다. "바른 생활"을 선호하며 융통성 없이 성실하고 책임감 강한, 너무나 수동적인 나로서는 그들과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 범주로부터 벗어났다. 그들을 동경하지만 그들과 잘 어울릴 수는 없었다. 

"자신의 욕망에 속아도 보고 꺾여도 본 자들, 한 번쯤 삶에 굴절되어도 보았으나 연민이란 거울방에 갇히지 않고 희망 없이 희망을 꿈꾸며 나아가는 사람들을 일컬어 나는 '동무'라고 부른다. 이 인터뷰는 그런 '동무'들을 찾아가는 여정이기도 했다. 한 걸음 한 걸음 그들이 지나왔을 길을 따라가다 보면 그 속에서 자신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여는 글에서)

저자가 의도했던 것 같지는 않지만 이 책에서 인터뷰 된 11명의 주인공들은 모두... 예술인이다. 포토그래퍼, 패션 디자이너, 연극배우, 화가, 영화 감독에서 만화가, 뮤지션, 건축가와 시인까지... 처음엔 몰랐다. 그저 우연히 작가의 주변엔 그런 사람들이 많은가보다,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천천히 읽어나가는 와중에 든 생각은, 작가는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그런 사람들에게 관심을 보이다보니 당연히 자신과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을 인터뷰하게 된 것은 아닐까...싶었다. 

이들의 이야기는 왠지 치열하다. 자신이 원하고 얻고자 하는 것을 위해 그들은 앞만 보며 내달렸다. 그저 주위에서 바라는대로 아니면 그 자리에 안주하는 편안한 삶을 원하는 나와는 역시나 다르다. 여유있는 어린 시절이었건, 어려운 시절이었건 그들은 고민과 역경을 안은 채 자신들만의 꿈을 향했다. 분노나 갈등이 그들에겐 전혀 낯설지 않다. 

"의지대로 살아보고 싶다는 말, 한동안 그 말이 입안에 맴돌았다. 정작 삶은 자신의 의지를 비껴가는 일이 다반사다. 내 의지와 어긋나는 일들을 겪으며 때로 아파하고 좌절하면서 조금씩 성장하는 것이 아닐까."...26p

한 인터뷰마다 그 사람만의 "공간"을 소개하고 있다. 그 공간은 걸으며 위로받았던 곳일 수도 있고, 감성이나 영감을 일깨우거나 용기를 주기도 하는 곳이다. 내게 그러한 공간이 얼마나 있을까, 생각해본다. 하루의 대부분을 앉아 책을 읽는 우리집 빨간 소파, 친구들과 함께했던 "아저씨네", 얼마 전 여행에서 발견한 "명옥헌원림", 나 혼자 책 읽고 싶을 때 가는 집 앞 M도날드...ㅋㅋㅋ 누구에게나 그러한 공간이 있다. 

나와 많이 다르다고 느꼈던 그들의 삶이... 조금씩 비슷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도 나도 지금껏 최선을 다해 살아왔기 때문이다. 어떠한 결과를 내야 좋은 삶을 살았다거나 괜찮은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리라. 각자의 환경에서 각자가 만족하는 삶을 살고 있다면... 그것이 행복이 아닐까. 때문에 "다만 이것은 누구나의 삶"이라 말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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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남자친구의 전 여자친구, 코끼리의 등>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내 남자친구의 전 여자친구
니나 슈미트 지음, 서유리 옮김 / 레드박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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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분들이 이 책을 읽을 리도 없지만 만약 읽는다고 해도 그녀를 이해하기란 하늘의 별따기가 아닐까...생각해봤다. 게다가 사랑스럽다니... 아무리 본능적 욕구가 강렬하다 하여도 집까지 갈 용기가 없어 청소함의 양동이에 오줌을 누고 떡실신이 될 정도까지 술을 마신 후에 바로 그 양동이에 오바이트 하는 여자라면, "뭐, 이런 여자가 다있어?"라는 말이 저절로 나오지 않을까? 그런데 난 이런 그녀가... 왜 그렇게도 사랑스럽고 귀여운 건지~.ㅋㅋㅋ

충분히 엽기적이라고 불릴만한 그녀는 34살의 노처녀. 현재 2년째 사귄 남자친구와 동거 중이다. 처음에 불타올랐던 아름답고 현란한 사랑의 불빛은 점점 사그라들고 이제는 사랑의 메세지 대신 필요 물품 사오라는 문자로 바뀐 것에 한숨을 쉬는... 아주 평범한 우리의 모습이다.

"우리 관계는 앞으로 계속 이런 식으로 흘러갈까? 이러다 얼마 후에는 서로 한마디도 하지 않고 무시하며 사는 건 아닐까? 다른 사람을 찾기 귀찮으니 그냥 그렇게, 어쩔 수 없이 함께 살게 되는 건 아닐까? 아니면 너무 늙고 못생겨서 다른 사람을 찾을 가망이 없어 그냥 살거나?"...31p

어느정도 연애나 결혼 생활이 안정되고 나면 그 편안함이 주는 일상이 때로는 관계의 단절로 생각되기도 할 때가 있다. '이대로 괜찮을까?'라는 불안. 결혼 생활 중이라면 그 자체로서 위안을 받을 수도 있겠으나 연애 기간 중이라면 이보다 더한 불안은 없을 것이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의 전 여자친구가 이웃으로 이사를 온다. 더할 수 없는 불안감. 그녀는 이 불안감에서 비롯된 그들의 관계를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 된다. '과연 그와 결혼까지 할 수 있을까? 우리가 가정을 이룰 수 있을까? 루카스가 나를 떠나버리면 어떡하나...'

안토니아의 생각들은 적나라하다. 우리가 연애를 하며 느끼는 그 모든 생각(거의 대부분이 불안감)들을 그녀는 엄청난 실수를 해대며 직접 몸으로 부딪힌다. 내 남자친구를 지키기 위해. 아직은 너무나 사랑하는 그를 내 곁에 붙잡아두기 위해. 하지만 여자로서의 마지막 자존심까지는 버리고 싶지 않은 그녀의 솔직한 행동들이 아마도 내겐 그렇게나 귀엽게 보이는 것이리라. 

"루카스와 내가 다시 만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나도 잘 모르겠다. 내가 좋아하는 멜로드라마에서는 모두 껴안고 해피엔드인데, 현실은 그게 아닐까 봐 두렵다. 우리의 관계를 회복하려면 정말 노력을 많이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325p

현실이란 그런 것이 아니었던가. 한 사람의 노력만으로는 관계를 이어갈 수 없는 것. 또 "사랑"이라는 이름만으로도 행복할 수만은 없는 것.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는만큼 조금씩 희생하고 배려하며 노력하는만큼 그 관계는 깊어지고 오래 지속될 것이다. 

독일 소설이 원래 이렇게 재미있는 것이었던가. 읽는 동안 군데군데 나오는 안토니아의 어이없는 행동에 피식~ 키킥..하고 웃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었다. "여성"으로서 느끼는 공통 감정에 공감하기 때문에 재미있었고, 다른 문화권이 주는 야릇한 "다름"으로 인해 재미는 배가되었다. 아주 오랫만에 읽는 로맨틱 코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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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남자친구의 전 여자친구, 코끼리의 등>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코끼리의 등
아키모토 야스시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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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MBC 스페셜 <사랑>을 보면서 울고, 또 울었던 기억이 난다. 대부분이 암으로 고통받고 있었고 몇몇은 방송 중에 세상을 떠났고, 몇몇은 죽음을 앞두고 있었다. 그들 곁에는 그들을 사랑하는 배우자 혹은 부모님 혹은 아이들이 있었다. 떠나는 자와 떠나보내야 하는 자. 

그리고 다시 몇 년 후. 바로 2010년 5월 초에 <5년간의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그 후의 이야기가 방송되었다. 그 중... 내가 가장 안타깝게 생각했던 사연은... 홀로 남은 정창원씨의 사연이었다. 자신의 아픔을 모두 감싸주던 유일한 이의 죽음 뒤에... 그래도 그녀를 추억하며 굳건하게 살아갈 것 같았던 그는.. 몇 년만에 거의 폐인이 되어 있었다. 산 사람은 살게 마련이라고 하던데... 무엇이 그를 그렇게까지 망가지게 만들었을까. 

내가 만약 암 선고를 받고 남은 기간은 6개월 뿐...이라는 말을 들었다면,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선택의 길은 여러가지가 있다. 6개월이라고 했다 하더라도 삶의 끈을 놓지않고 마지막 순간까지 투병하는 것. 아니면 남은 이들과의 이별을 위해 하나씩 자신의 주변을 정리하는 것. 그것도 아니라면 죽기 전에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고 마음의 짐을 덜어내거나 남겨진 이들을 위해 최대한 노력하거나.

<<코끼리의 등>>은 암 선고를 받고 6개월 남은 시간동안 진정한 자신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한 평범한 샐러리맨 가장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과연 그는 평범한가. 그가 마지막 6개월을 살아가는 동안 내가 느낀 것은 전혀 평범한 샐러리맨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도대체 평범한 샐러리맨이 어떻게 부인 외의 다른 애인이 있고, 25년 전의 딱 한 번의 실수로 태어난 딸이 있겠는가. 앞만 보고 일만 열심히 하며 달려온 그에게 6개월은 그동안 자신의 안에 묻어두고 살았던 과거의 감정들에 충실해지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행동들이 내게는 왜 이기적으로만 보이는지...

"인간은 죽기 직전에 자신의 인생을 주마등처럼 되돌아본다고 한다. 아니, 주마등이 아니라 더 느긋하게 되돌아보자. 남은 6개월을 아낌없이 투자해서 내 인생에 관련된 사람을 만나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이별을 고하자. 그것이 남은 6개월을 후회 없이 보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49p

"죽음"이라는 것이 그를 이기적으로 만들었을까. 이제 더이상의 삶은 없으니 이정도쯤은 괜찮겠지..라는 생각이 드는 걸까. 사실 나 자신이 죽음을 앞두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다. 실제로 누군가 죽음을 앞두고 있으니 자신을 용서해달라고 하면... 당연히 용서해주고 싶지 않겠는가 말이다. 

"코끼리는 자신의 죽음을 알아차렸을 때, 무리를 떠나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간다고 한다. 자신의 죽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기 때문일까? 아니면 세상의 미련을 끊고 싶기 때문일까?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할 수 없다. 고독의 소용돌이 속에서 혼자 모습을 감출 수는 없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배웅을 받고 싶다. 그 사람은 행복하게 살았다고 박수를 받고 싶다...."...384p

떠나는 자와 떠나보내는 자와의 관계를 아주 잘 그려냈다고 생각한다. 어떤 이별이 가장 옳은 것인지는 모르겠다. 서로가 서로에게 미련이 남지 않아야겠지.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고 떠나는 입장에서 어떻게 미련이 남지 않을 수가 있을까. 그렇다고 하더라도 남는 자들은 남는 자들의 몫으로 열심히~, 꿋꿋하게 살아주었으면 좋겠다. 또 내가 남는 자라면 그렇게 열심히 살아내겠다. 그것이 서로가 서로에게 주는 사랑에 대한 보답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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