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자친구의 전 여자친구, 코끼리의 등>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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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의 등
아키모토 야스시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몇 년 전... MBC 스페셜 <사랑>을 보면서 울고, 또 울었던 기억이 난다. 대부분이 암으로 고통받고 있었고 몇몇은 방송 중에 세상을 떠났고, 몇몇은 죽음을 앞두고 있었다. 그들 곁에는 그들을 사랑하는 배우자 혹은 부모님 혹은 아이들이 있었다. 떠나는 자와 떠나보내야 하는 자.
그리고 다시 몇 년 후. 바로 2010년 5월 초에 <5년간의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그 후의 이야기가 방송되었다. 그 중... 내가 가장 안타깝게 생각했던 사연은... 홀로 남은 정창원씨의 사연이었다. 자신의 아픔을 모두 감싸주던 유일한 이의 죽음 뒤에... 그래도 그녀를 추억하며 굳건하게 살아갈 것 같았던 그는.. 몇 년만에 거의 폐인이 되어 있었다. 산 사람은 살게 마련이라고 하던데... 무엇이 그를 그렇게까지 망가지게 만들었을까.
내가 만약 암 선고를 받고 남은 기간은 6개월 뿐...이라는 말을 들었다면,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선택의 길은 여러가지가 있다. 6개월이라고 했다 하더라도 삶의 끈을 놓지않고 마지막 순간까지 투병하는 것. 아니면 남은 이들과의 이별을 위해 하나씩 자신의 주변을 정리하는 것. 그것도 아니라면 죽기 전에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고 마음의 짐을 덜어내거나 남겨진 이들을 위해 최대한 노력하거나.
<<코끼리의 등>>은 암 선고를 받고 6개월 남은 시간동안 진정한 자신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한 평범한 샐러리맨 가장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과연 그는 평범한가. 그가 마지막 6개월을 살아가는 동안 내가 느낀 것은 전혀 평범한 샐러리맨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도대체 평범한 샐러리맨이 어떻게 부인 외의 다른 애인이 있고, 25년 전의 딱 한 번의 실수로 태어난 딸이 있겠는가. 앞만 보고 일만 열심히 하며 달려온 그에게 6개월은 그동안 자신의 안에 묻어두고 살았던 과거의 감정들에 충실해지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행동들이 내게는 왜 이기적으로만 보이는지...
"인간은 죽기 직전에 자신의 인생을 주마등처럼 되돌아본다고 한다. 아니, 주마등이 아니라 더 느긋하게 되돌아보자. 남은 6개월을 아낌없이 투자해서 내 인생에 관련된 사람을 만나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이별을 고하자. 그것이 남은 6개월을 후회 없이 보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49p
"죽음"이라는 것이 그를 이기적으로 만들었을까. 이제 더이상의 삶은 없으니 이정도쯤은 괜찮겠지..라는 생각이 드는 걸까. 사실 나 자신이 죽음을 앞두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다. 실제로 누군가 죽음을 앞두고 있으니 자신을 용서해달라고 하면... 당연히 용서해주고 싶지 않겠는가 말이다.
"코끼리는 자신의 죽음을 알아차렸을 때, 무리를 떠나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간다고 한다. 자신의 죽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기 때문일까? 아니면 세상의 미련을 끊고 싶기 때문일까?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할 수 없다. 고독의 소용돌이 속에서 혼자 모습을 감출 수는 없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배웅을 받고 싶다. 그 사람은 행복하게 살았다고 박수를 받고 싶다...."...384p
떠나는 자와 떠나보내는 자와의 관계를 아주 잘 그려냈다고 생각한다. 어떤 이별이 가장 옳은 것인지는 모르겠다. 서로가 서로에게 미련이 남지 않아야겠지.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고 떠나는 입장에서 어떻게 미련이 남지 않을 수가 있을까. 그렇다고 하더라도 남는 자들은 남는 자들의 몫으로 열심히~, 꿋꿋하게 살아주었으면 좋겠다. 또 내가 남는 자라면 그렇게 열심히 살아내겠다. 그것이 서로가 서로에게 주는 사랑에 대한 보답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