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은 뭐랄까... 눈길을 주지 말았어야 할 책이었다. 일본 소설을 읽고픈 마음에, 일본의 저명한 문학상을 받았기에 별다른 주저없이 고른 책이었는데 결국은 실수였다. 독자들을 불편하게 만들겠다는 저자의 목적은 달성했는지 모르겠지만 책을 덮기 전까지 던져버리고 싶은 욕망이 든 게 한 두 번이 아니다. 저자가 묘사한 배경과 상황들은 내가 받아들이 힘든 수준이었다. 변태, 엽기, 폭력이 버무러진 내용은 나 같은 이에게는 맞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성스럽고 비폭력적인 것은 선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수용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 소설은 19금이었다. 선택은 독자들의 몫이겠지만 나는 그다지 권하고 싶지 않다. 쩝... 시간낭비!
가볍게 읽기 시작해 가슴에 뜨거운 무언가를 남긴 책! 부조리한 현실에 눈 감지 말고 사회 정의를 위해 분노하라! 그리고 이를 고치기 위해 사회 문제에 적극 참여하라. 에셀의 가르침을 요약하자만 이렇지 않을까 싶다. 90대 노익장이라고 표현하면 저자에게 누가 될지 모르겠지만 이 나이 든 청년에게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사회현안에 무관심하고 눈 돌려온 것이 현실의 우리였다. 내가 바쁘고 여유가 없기에 남에게 무관심해진 것이다. 그 결과는 지금 오늘의 우리 모습 아닐까? 우리는 87년 민주항쟁 이후로 민주화의 길을 걸어왔지만 수구권력층은 이 길을 거슬러 가려 하고 했다. 그리하여 우리 사회는 다시금 운동화 끈을 매고 거리로 나서야 했다. 그들 탓을 했지만 무관심했던 우리 탓이기도 했다. 이에 저자는 분노하고 (우리식으로 말해) 촛불을 들라고 하지만 나는 짱돌을 들고 싶다. 그리고 저편에 던지고 싶다. 얇은 책 한 권이 사람을 들끓게 한다. ㅎㅎ
기존의 정조에 대한 평가와 상당히 많이 다른 주장이다. 여기에 흔히 말하는 ‘정조대왕‘이라는 표현도 어울리지 못할 것 같다. 그렇다면 정조 년간에 일어난 사회, 문화적 변화는 정조와 별 관련이 없는 건가? 책을 읽으며 넘쳐나는 궁금증을 주체치 못하겠다. 300쪽을 넘겨 읽은 시점에서 궁금함을 미리 정리해두지 않았을 후회한다. 바보 같으니라구!!!! 교과서에 있는 정조는 여전히 개혁군주로 굳건하다. 아무래도 그 위상은 쉽게 변할 것 같진 않다. 그래도 그에 대한 이런 새로운 평가와 주장이 있다는 것은 그에 대해 연구할 것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정조는 연구자들에게 매력적인 인물이 아닌가 싶다. 연구할 주제가 많으니 말이다.
정조는 지적인 면에서 18세기의 어떤 성리학자보다 탁월했다. 하지만 이념적 성향은 진보적이라 볼 수 없다. 정조는 새로운 이념을 추구하지도 않았고, 정치 제도의 근본적인 혁신을 꽤한 적도 없었다. 일부 역사가들은 그를 개혁군주로 높이 평가하지만, 그것은 과장된 것이다. 그의 개혁은 기존의 성리학적 가치관을 수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백승종, <정조와 불량선비 강이천>, 푸른역사, 2011, 346쪽에서
정당한 권위는 합리적이어야 한다. 부도덕하고 정통성이 부족한 권위일수록 권위를 얻기 위해 무력을 사용한다. 합리적 행위에 앞서 말이다. 이는 현대 한국사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철들어서야 <어린왕자>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처음 읽었다.
"정당한 권위는 합리적이어야 하느니라. 만약 네가 너의 백성에게 바다로 뛰어들라고 하면 그들은 혁명을 일으킬 것이다. 내가 복종을 강요할 수 있는 것은 내 명령이 사리에 맞기 때문이니라."- <어린왕자>에서 인용
어제도 들른 알라딘 중고서점. 아이들의 읽지 않는 책들을 처분하기 위해 가긴 했지만 내심 보석을 발견하고픈 마음을 가득 안고서 간 그곳. 유레카!! 그간 비싸서 사지 못하던 책을 발견했다. 김한규 교수의 <요동사>. 아싸! 얼른 손에 들고 놓지 않았다. 이런 맛을 자주 즐길 수는 없지만 그래도 나는 이 끈을 놓지 못한다. 연휴 끝나면 또 가봐야겠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