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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게 - 제144회 나오키상 수상작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탄생과 더불어 모든 것은 성장한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는 헤르만 헤세의 명징한 사유처럼 고통은 성장의 다른 이름이다. 웃자라 버린 마음은 현실에 동요하고 저항할수록 감각은 더욱 시려지고 커지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성장은 분절되고 쪼개어진 낯선 감각의 실체를 찾아가는 과정인지 모른다. 막연함에서 오는 감각의 통점痛點은, 곧 성장통의 내부적 저항이 아닐까? 치열하게 발효된 감정의 분화를 따라 때론 아프기도, 때론 무섭기도, 때론 즐겁기도 하는 희열 속을 유영하는 히치 하이커가 될 테니.
<달과 게>는 추리소설을 표방한 완벽한 성장소설이다. 마치오 슈스케가 쓴 이 책은 내적성장의 변이를 겪는 주인공들의 심리를 탐색하고 추적하는 과정의 전개를 세밀한 농담으로 그려낸 흡입력이 탁월한 이야기다. 미묘하게 펼쳐지는 감정의 연결고리를 따라 노련하게 조여 오는 완급의 조련은 이 책의 백미다. 세 아이를 둘러싼 반전과 반전의 대구를 통해 인간의 이중성과 선과 악의 대립과 갈등의 정황을 절묘하게 포개고 융합한다.
소설의 운명이 통속적인 대중의 공감을 이끌어 내기 위한 작업이라면 저자가 소환해 낸 역량의 터전인 이야기는 그 껍질이 견고하고 단단하기 이를 때 없다. 그것은 이 작품의 전체를 지배하는 풍격과 내면의 심리변화가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써 추출된 공감의 물질은 감정이입을 도모하고 동일시된 내적자아를 끄집어내는 고리가 된다. 저자가 퍼즐처럼 구성한 비현실적인 바람내지는 기원의 사유를 통해 착시효과를 일으키듯 공명의 물결은 바람처럼 커지고 흡수된다. 이러한 전이에 대한 공감은 누구나 그 곳을 통과했거나 힘겨운 고독의 시간을 끌어안는 과정을 겪었음과 부합한다.

[사진출처 : 일본문학번역가 민경욱님의 네이버블로그]
이처럼 소설이 주는 가치를 보다 완벽하게 구현해 내기 위해서는 있을 법한 이야기를 다루는 것이 적합하거나 안전하다. 그 속에 구전된 허구의 이야기가 양념처럼 스며들어 갈등의 전조를 일으키는 키메이커 역할을 한다면 든든한 지지대를 형성할 것이다. 나아가 인물간의 내적인 변화의 과정을 심리적인 관점에 결부하여 관찰한다면 작가의 기록은 창작의 행위를 넘어 새로운 세상의 건설,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운 이상향의 창조의 신기원에 미치게 된다. 그것은 곧 익숙하기에 거부감의 낯섦이 없다. 때문에 <달과 게>는 밀착된 탐사를 통한 탄탄한 짜임새를 구성하는 보기 드문 수작이다.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사춘기에 접어든 신이치, 하루야, 나루미의 미묘하게 얽히고설킨 내면의 심리변화와 의식세계를 보여주는 과정은 진지하고도 매혹적이다.
이야기는 기성세대, 어른들에 의해 인위로 만들어 낸 이해할 수 없는 굴곡진 삶의 현실이 어떠한 안전판도 없이 고스란히 내적 충격을 견뎌내야 하는 아이들의 공통분모가 그들을 끌어당기는 견인차가 되며 개별화된 트라우마로 작용한다. 신이치는 아버지를 암으로 잃은 슬픔을, 하루야는 사업실패로 인해 돌변한 아버지에 의한 폭력의 아픔을, 나루미는 사고로 인해 엄마를 잃은 상실의 고통을 통해 그들만의 세상을 연대하고 공유한다. 연대된 아픔은 확대 재생산되고 세상을 향한 도전이 되지만 이렇게 기반 되어 형성된 아픔의 연대는 논리가 취약한 아이들의 눈높이에서는 비현실의 강화된 모습, 즉 초자연적인 힘에 기대 자신을 합리화하는 수단에 불과하다. 아이들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으며 극복하거나 제압할 수 없는 나약한 본성의 출현이며 현실에 부딪힌 성장의 장벽이다.
실제 신이치의 엄마와 나루미의 아빠의 사이가 미묘한 관계를 발전해 나가는 과정에서 소외된 신이치와 나루미의 표출방법은 사뭇 다르다. 공유할 수 없는 대상을 빼앗긴다는 감정의 자극은 저자의 표현처럼 낚시 바늘에 손끝을 찔려 뽑아내는 날카로운 단말마의 고통이다. 그래서 신이치는 하루야의 소외된 현실에 공감하고 나루미를 포섭함으로써 동조된 구조를 형성하게 된다. 그들에게 발생된 사건의 개별화는 이 책을 움직이는 구동점이자 동력으로 작동한다. 취약한 자아를 자극하는 내밀한 감정의 변화를 통해 성숙하고 한 걸음 성장의 발판으로 나아가는 아이의 내면세계를 투영한다. 이 과정에서 저자의 흐름에 대한 속도감은 상황을 지배하고 몰입하게 만드는 심리적 프리즘에 조리개를 맞추어 숨 가쁘게 구동한다. 이러한 서정적 감정선의 자극과 표현은 마치오 슈스케가 얼마나 탄탄한 스토리라인을 구성하고 있는지를 여과 없이 보여준다. 마치오 슈스케의 프리즘을 통해 아이들은 누구나의 삶 속, 보편성의 틈입으로 침투하게 되며 그로 인해 야기된 긴장의 순간을 적시에 붙드는 마력을 발산한다. 이것은 마치 거장 무라카미 하루키가 펼쳐 내는 공성진과는 또 다른 세밀한 지배적 관찰이 빚은 황홀한 오케스트라와 같은 변주다. 저자는 신이치의 눈을 통해 질투, 연민, 공포, 당혹, 애증, 복수, 번민의 감정들이 제 각각 뻗어나가 모여들어 화음을 이루어 내는 심포니의 향연을 만끽하는 것과 같다.
향연의 순간은 ‘달’과 ‘게’라는 이원적인 상징물을 통해 은유된 핍진성을 되살리며 감각점을 고무시킨다. 상징성은 필시 관습적 소재에 기반을 둔 관념적 대상을 통해 현실과 자연스럽게 매개하는 구실을 한다. 아이들이 게를 채취하고 그 게를 그들만의 공간으로 이동시켜 사육하는 과정을 통해 다시 게 껍질을 방화하여 소실시킴으로써 억눌린 소망을 기원하는 원초적 토테미즘의 의지를 엿보게 되며, 내재된 복선의 암시는 갈등을 견인하는 구심점이 된다. 신이치와 하루야의 관계, 하루야와 나루미의 관계, 신이치와 나루미의 관계. 그 삼각의 관계를 통해 아이들은 내적 자아를 표출하는 치밀한 얼개의 형태를 공고화하게 된다.
이러한 관계의 파노라마는 전편에 걸쳐 은유적 설정을 통한 비유를 통해 펼쳐진다. 신이치의 마음을 추적하며 따라가는 일련의 현상을 물결처럼 펼쳐지는 상황의 긴박감은 박진감 넘친다. 주변인물인 할아버지 요조의 갈등상황이 대물림 되는 현장을 목격하고 그 충격을 더욱 증폭시켜 발화하는 기폭제가 된 어머니와의 나루미 아버지와의 은밀한 관계는 박탈감을 심어 주기에 충분하다. 따라서 작가의 인물에 대한 장악은 거침없다. 위력적인 지배의 흔적이 곧 필력의 힘이리라. 또한 군더더기를 제거하고 모티브를 추동하는 근원적인 요소라는 사실이다. 감정의 순간에 대한 기록은 휘발성이 강해 저장시켜 재생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마치 작가의 역량을 구분 짓는 바로미터에 다름 아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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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작가 미치오 슈스케의 <달과 게>는 단락적인 사건을 통해 아이의 내면이 변화하고 낯선 감각의 세계로 흘러가는 모습을 한 톨의 거부감 없이 보여준다. 인간의 잔혹성이라는 성마른 물질이 부화하는 과정을 그 누구보다 완벽하게 구현했다. 또한 달과 게가 암시하는 알고리즘의 상승된 관계를 통해 인간의 모든 행위가 인과율의 법칙에 지배를 받아 순회하듯 일정한 틀 속에서 윤회함을 상기시킨다. “모든 일에는 반드시 이유라는 것이 있다. 세상일 전부에 분명히 이유가 있어. 결국은 자기한테 되돌아오는 법이야. “(p.189)
작가의 이 작품이 호소력을 갖는 이유는 심리적 완성도에만 머물지 않는다. 현대 사회가 안고 있는 기능적, 형태적 결손가정에 대한 문제를 사건의 본질 속 깊숙이 침투시켜 놓았기 때문이다. 가족의 기능적 해체에 따른 구성원의 갈등은 사회문제를 야기하는 일차적인 모습이다. 지지기반이 연약한 청소년의 자존감은 애정결핍과 집착의 형태를 일으킨다. 실제 신이치가 어머니의 사생활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 또한 타자에 의해 형성된 상황을 수용하지 못하는 경계에서 발생하는 일련의 행위이다.
따라서 민감한 사회적 문제를 소재로 허구의 세계와 적절하게 버무려 공감의 큰 틀을 만들어 내는 작가의 노련함이 예사롭지 않다. 경험이 밑거름이 되었든 치밀한 계산에 의해 완성되었든지 간에 진실함은 작품을 더욱 빛내는 요체다. 이렇듯 이 책은 불편하고 어둡게 그려질 낯선 시간의 기록을 진실함을 터전삼아 각자의 또 다른 세상으로 이끈다. 결국 그것은 모든 것은 되돌아온다는 믿음의 기록이자 내적 자아를 탐구하는 자신을 향한 외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