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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해도 괜찮아 - 영화보다 재미있는 인권 이야기
김두식 지음 / 창비 / 2010년 7월
평점 :
불편은 옹색하고 투박스럽다. 또한 불편은 익숙해지면 무기력해진다. 우리 사회에서 불편의 자리는 지천으로 널렸다. 그런데도 불편을 받아들이는 태도는 매우 상대적이다. 불편에 대한 시선이 불협화음을 퍼트리는 불잉걸처럼 홧홧한 뜨거움이기도 하지만 무섭도록 시리고 차갑기도 하다. 이러한 불편의 이중성은 사회문화적 현상과 밀접하다. 불편을 조장하고 당위성을 부여하는 내밀한 속내는 권위, 계급, 신분, 지배의 메커니즘을 구성하는 부속물과 같다. 불편이 곧 차이라는 등가공식이 성립하는 것도 틀린 말이 아니다. 그 속에서 우리는 엄청난 괴리감을 발견하곤 한다. 관계로부터 오는 차이의 존재적 필연성을 의식하되 엄연한 경계는 구분짓겠다는 논리다. 시쳇말로 키 작은 남자는 루저라는 편중된 논리처럼 바꿀 수 없는 차이 또한 불편의 범주로 내몬다.
이러한 불편의 이중성에 대해 나는 가식과 허위가 조장한 비뚤어진 관계망이라고 본다. 나를 둘러싼 모든 관계의 근원적인 차이를 고려할 때 불편의 개념은 지배와 피지배, 즉 종속관계에서 기인한다. 이 책 <불편해도 괜찮아>의 김두식 교수의 생각의 거름망도 엇비슷하다. 누구나 알고는 있지만 뭔가 다른 요소들이 개입되면 어김없이 되돌아오는 용수철처럼 불편의 완고함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실제 우리 사회의 곳곳에 스민 갈등과 알력의 문제 또한 불편을 예고하는 전주에 다름 아니다. 김두식 교수가 불편의 패러다임을 비추는 도구로 우리 사회를 가장 밀접하게 투영하는 영화를 소재로 다루며 이 책을 이끌어 가는 방법도 실상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 동안 익숙해져 묻혀 버린 색다른 시선의 세상을 탐색하고 활로를 찾아 드려다 보는 일은 언제나 흥미롭기까지 하다.
기실 이 책에서도 언급이 되지만 영화에 대한 일차적인 정보는 미디어가 생산해 내는 정보를 바탕으로 한다. 그러다 보면 제작자의 방향성과 배급자의 실리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병합되어 왜곡되는 정보를 재상산해 내게 된다. 영화를 고르고 선택하는 권리는 소비자에게 있지만 여론의 조장, 정보의 독점성, 제작자의 상업성에 비추어 볼 때 우리는 상당한 정보의 어그러짐에 노출되어 있다. 이러한 사실은 이 책의 기본 얼개가 된 영화를 통한 인권의 실상을 드려다 보는 도구로서의 그것과 같은 맥락이다. 소위 검열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문제다. 단지 김두식 교수가 통념의 잣대를 버리고 색다른 시각의 틀을 부여하는 시도와 노력이 읽는 이에게 더 큰 공감대를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이다.
김두식 교수가 이 책을 통해 공감대를 발화시키는 힘의 원천은 말로 꺼내기에는 불편하고 오염될 것 같은 미적거림의 경계에서 오는 과감한 용기와 도전이 아닐까 한다. 인권의 사각지대를 헤아리고 우리 사회에 소외된 삶을 보듬는 사회 통합적인 의식의 무장은 때론 좌파나 이념의 희생양으로 지목될 것을 감수해야 한다. 그것은 나만 아니면 된다는 식의 논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인간의 심리는 집단의식에 의해 쉽게 고무되고 휩쓸리는 취약점을 가지고 있다. 나 또한 그러한 심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김두식 교수가 이 책에서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금세 이해된다. 영화 "밀양"은 기독교에 대한 불편한 진실을 포장하고 왜곡하는 과정을 사실적인 묘사와 미장센이 돋보이는 유명짜한 영화다. 인물 한명 한명이 마치 어느 곳에서나 흔히 대할 수 있는 종교인의 행동을 고스란히 답습하고 주인공으로 분한 전도연의 신들린 연기가 완벽하게 일치하여 짜임새있게 돌아 가는 잘 만들어진 영화다.
그런데도 인권의 왜곡문제는 이곳에도 예외일수는 없다. 이 영화가 광주학살사건을 소재로 영화화한 것이라는 것을 차치하더라도 이 책에서는 불편의 존재를 인정하는 비현실적인 시선에 머문다. 기독교의 교리와 인권을 유린당한 이해관계는 합리적인 시선을 요구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으며 되려 무리인지 모른다. 그러므로 '눈에는 눈, 이에는 이'와 같은 이치와 대동소이하다는 것은 기정 화된 사실로 이해된다. 이와 같이 인간적인 권리를 포기하게 하고 굴복시키는 차이를 생산해 내는 우리의 고착된 시선을 향해 이 책은 진중한 물음을 던진다. 이미 타성의 틀에 구겨져 불편의 범주에 포섭되지 않는 불편의 불인식 내지는 비현실성에 대해 김두식 교수는 끊임없이 고민하고 통찰한 흔적과 마주친다.
이렇듯 왜곡된 시선의 향방을 김두식 교수는 우리 사회의 전 방위적인 공간에서 찾았다. 그는 '지랄 총량의 법칙'이라는 우스갯소리를 통해 편안한 어조의 높임체로 유쾌하게 포문을 연다. 사춘기를 통과하는 아이들의 질풍노도의 시기에 대해 살가운 묘사로 점화하여 제도권 교육의 인권차별에 대한 문제를 예리한 시선의 칼날로 어둡고 음습한 문제의 치부를 곧잘 드러내 보인다. 책은 교육문제, 성소수자차별문제, 여성폭력문제, 장애인인권문제, 노동자문제, 종교와 양심의 자유문제, 검열과 표현의 자유문제, 인종차별의 문제를 대중성 짙은 영화 혹은 실험영화나 드라마를 연계해서 여태껏 인식하지 못했던 가려진 문제의 진실에 대해 인도한다. 끝으로 인권의 종착역, 제노사이드(대량학살)의 문제를 밀도 있게 다룬다.
인권의 문제를 이해하는 방법에는 인식의 전환 또한 중요하겠으나 행동의 문제가 우선이다. 이성적인 사고와 길들여진 관습의 타성과의 간극이 멀고 높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이다. 양극화문제에 대해 미디어의 웅변적인 호소도 실제는 부러움이 유발하는 욕망에 뒤쳐지고 만다. 물질만능주의의 세상에서 인권의 문제를 해결하기란 어렵고 또 어렵다. 그러므로 인권을 대하는 상대성에 대해 태도가 변해야 한다. 기존의 문제를 푸는 해결책으로 다양하고 개성있는 목소리들을 하나의 틀에 가두어 일원화시키려는 획일성이 문제였는지 모른다. 보수적이든 진보적이든 인권의 보장을 위한 핵심은 자유와 책임의 조율이 관건이다. 자유가 지나치면 방종이 되고 책임이 지나치면 구속이 된다. 그러므로 이 책에 소개된 인권이야기는 마른 땅에 단비처럼 달게 느껴지며 부끄럽게 만든다. 김두식 교수의 인권감수성에 대한 올바른 시선이 행동의 중심을 곧추 세워 줄 다양한 채널이 될 것이기에 더 반갑게 다가오는지 모르겠다. 인권은 누구에게나 공평해야 한다는 명제를 떠올린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