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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사람을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한다는 믿음에 나는 변함이 없다. 책을 통해 간접경험을 쌓기도 하고 지식의 층위를 넓히는 계기가 되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으며 평등한 소통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칼 세이건은 인간이 창조한 모든 것들 중 전체를 아우르는 것을 책이라고 했다. 하나의 글쓰기가 모여 견해가 되고 견해는 사실로 바뀌는 순환작업의 다른 모습이 바로 책이다. 책의 소중함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진리는 결코 허언이 아니다. 그래서 21세기를 살아가는 오늘날에도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에 의해 설립된 알렉산드리아도서관에서도 현재를 연결해 주는 변함없는 커넥터는 책이다.
책에 대한 즐거움은 읽는 자의 몫이다. 책은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의 경험칙에 따라 상호소통하며 그려가는 지극히 개인적인 작업이다. 그러므로 그 파장은 다르게 나타나는 것이 지극히 정상이다. 이러한 즐거움을 누구보다 잘 소화해 내는 사람을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파란여우 윤미화를 꼽는다. 그녀가 책의 렌즈를 통해 조망한 세상은 허접한 글귀와는 차원이 다르다. 장르를 불문하고 넘나드는 그녀의 책 가이드를 받다 보면 절로 동화되어 몰입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그녀가 구부다 보는 세상은 유쾌, 상쾌, 통쾌하다. 올레!
책을 야금야금 갉아 먹던 이런 그녀가 책을 냈다. 거침없이 편리함을 던져 버리고 소로우의 삶을 동경하며 과감히 염소농장지기가된 그녀가 책을 밀어서 써 냈다. 그녀의 책 이야기는 푹 고와 삭힌 홍어처럼 탁 쏘는 맛이 일품이다. 허투로 읽어 내던 개념의 중추를 지속적으로 자극하고 경락해 주며 시원하게 긁어 주는 손맛이 김훈선생의 스트레이트로 뻗어 나가는 연필심공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5년 동안 천권의 책을 섭렵해 냈던 너른 지식의 바탕이 기저에 온전히 깔려 있기에 무엇을 보아도 전체를 장악하는 깊이의 원형이 대단함을 감출 수없다.
이 책 <깐깐한 독서본능>은 말 그대로 서평을 모은 책이다. 한낱 독자에 불과한 이가 써 낸 서평이 무엇이 그리 대단하겠는가하고 의구심을 갖는다면 그것은 편견에 불과하다. 텍스트를 생산해 내고 조합하는 것은 작가의 영역이겠으나 그 이후의 너머를 보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무한 상상이 가능한 열린 공간이라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은 기술의 발달과도 무관하지 않다. 인터넷이라는 가상의 공간은 소통의 매개를 글쓰기로 돌려 세운 것도 그 이유겠다. 글쓰기는 이제 생활이다. 문자를 날리고 지식을 검색하고 트위터를 하는 세상. 이것이야말로 21세가 만든 텍스트의 해빙시대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 책이 여느 서평과 다른 주된 이유는 무엇을 어떻게 볼 것인가로 회귀한다는 것이다. 넘쳐나는 텍스트의 홍수로 몸살을 앓고 있는 시대에 책을 취사선택하고 수용하는 것 또한 어렵고도 난해한 문제다. 그러하기에 누군가의 도움의 손길은 더 없이 고맙다. 아울러 그녀는 전문가가 아닌 전문가다. 비평이나 서평을 업으로 삼고 있지 않기에 가차 없이 칼칼한 비판을 던지고 호통을 질러 던질 수 있는 것은 생활인의 모습,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금방이라도 손에 잡힐 듯 한 거리에 서 있는 정도의 거리감이 일종의 연대의식을 발동하게 만든다는 단순하고도 일차적인 이유다.
그래서 이 책은 성큼성큼 읽는 것보다 서서히 녹여서 읽어 내는 것이 좋다. 이 책을 읽어 내다보면 그녀가 주구장창 읊조리는 '고구마 줄기 법칙'이 숱하게 나온다. 한국문학, 외국문학,고전ㆍ해석, 인문사회, 인물평전, 환경생태, 문화예술, 역사기행, 만화아동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독서편력은 올라운드 플레이어다. 서평계의 두 개의 심장을 단 산소탱크 박지성이다. 이 속에는 오늘날 그녀를 세운 모든 것이 보태거나 모자람 없이 담겨 있다. 독서력의 원천이 된 장정일 작가에서부터 인식의 패러다임을 바꾼 조지 오웰, 직선의 미학이 살아 움직이는 김훈 작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가들이 그녀와 함께 춤을 춘다.
그녀는 전 방위의 독서를 통해 사회의 부조리에 분개하고 모순을 날카롭게 솎아 내는 분별력과 통찰력을 장착했다. 누구나 책의 길을 통해 득템할 수 있는 흔해 빠진 아이템은 아니라 할지라도 습관을 바꾼다는 것은 현실을 움직이는 동인이기에 불가능은 없다. 이러한 사고의 확장은 책을 통해서 가능한 일이다. 오늘도 그녀는 책을 통해 움직인다. 상상과 현실을 바지런히 왕복하면서 세상 돌아가는 소식에 귀를 쫑긋 세운다. 독서의 완성은 계속 움직이고 나아가는 것이라는 그녀의 칼칼한 글감은 어김없이 가동된다. 깐깐한 독서의 향연에 목마른 자라면 일독하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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