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여자
오정희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오정희 작가의 글은 생활인의 냄새가 물씬 묻어난다. 세월의 더께에 묻혀 깎이고 다듬어진 삶의 질감의 모습을 고스란히 내보여준다. 여자로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관념과 단상을 예의 부드러운 시선으로 보듬었다. 이 책 또한 전작 <돼지꿈>에 이은 단편 옴니버스 식 우화 모음집이다. 그래서 이즘이면 토설하듯 뱉어내는 작가의 글이 반갑기도 하고 살가움마저 생긴다.




여자의 존재와 정체성을 일상의 모습으로 담아낸다는 것은 오정희 작가의 특유의 붓놀림이다. 그러하기에 오정희 작가의 글은 누구나 공감하고 편안함이 주는 글맛이 강점이다. 무엇보다 한 편 한 편 낯설지 않은 익숙함이 사변으로 치닫는 무거움의 두께를 걷어냈다는 데 있다. 어느 곳, 어느 때에나 일어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우리네 일상의 이야기이기에 그 속에 담긴 감동이 더욱 진한 여운을 남기는지 모른다.




짧은 글담 속에 담긴 패턴은 오욕칠정이 빚어 낸 희로애락이다. 중년으로 접어 든 여인들을 통해 삶의 본질과 현실에 비친 존재 사이의 괴리감을 적절하게 조명하는 이야기가 주류다. 활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쏜살같이 내달린 시간의 흐름에 어느 새 변해 버린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바라본다면 얼마나 어색하겠는가. 어찌 보면 이것이 인생이라고 조용히 마침표를 찍는 글이 선명하게 각인되는 느낌마저 기운다. 




인간은 누구나 인생의 고저장단을 홀로 넘는다.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자문하는 물음의 기저는 정체성의 경계를 되묻게 된다. 이 땅에서 여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수많은 것을 요구받고 척척 해내기를 응당 강요받는다. 관념이라는 보편적 가치는 피할 수 없는 무거움이다. 때가 되면 단계별로 올라서듯 일정한 패턴을 그려나가기를 은연중에 요구하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경계를 벗어난다는 것은 사회적 시선을 감내하기로 약속한 무언의 강요다.




따라서 여자라는 신분의 정체성은 시시각각 변한다. 자신이기보다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며느리로 살아감에 신분적 타성에 젖고 내면의 자신은 오롯이 억압당하는 게 대개다. 밍크코트가 로망이라는 어느 시어머니의 바람이 며느리에게 곱지 않게 보이는 것은 상대성이다. 또한 순수했던 시절 펜팔친구의 우연한 만남에 설레었으나 보험외판원으로 변한 현실에서 조우하는 씁쓸함은 철 늦은 사랑노래다.




그래도 모든 질문에 대한 대답은 사랑이라는 작가의 여유로움처럼 허무만 똬리를 틀고 있지는 않는다. 사랑이라는 말랑말랑한 물질이 있기에 분위기에 취하고 흥에 겨워지는 것도 잠시의 이탈이 만들어주는 신선함이다. 나라는 존재감이 그곳에 있기에 흔들림 없는 안정감을 분출해 내는 것도 이와 같은 의미다. 결국은 소녀적 감성이 여자를 채운 내피인지 모른다. 날선 세상에 구르고 닳아도 여자는 여자라는 뜻이다.




제 아무리 여자팔자는 뒤웅박 팔자라고 눙쳐도 금세 현실로 돌아서는 그네들의 모습은 모성이 주는 넉넉함이다. 여자는 관심을 기울여주고 이해해주고 존중해 주길 바란다. 파도처럼 오르내리는 감정의 불규칙성 속에서도 여자는 지속적인 사랑과 관심을 원한다. 비록 삶의 무게로 어느 새 시들어 버렸다 할지라도 꿈꾸는 사랑은 변하지 않는 법이다. 일상은 서릿발처럼 차가워도 마음은 청춘이기에 여자는 오늘도 아름다움을 꿈꾼다.




짧지만 강한 임팩트를 주는 글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다시 강조하지만 가을이기에 주는 감성적 변화도 물론 한 몫 하겠거니와 무시하지 못할 이 책의 재미는 더 없는 공감이다. 가난에 치이고 생활에 억눌려도 삶의 화두는 사람 사는 곳에서부터 나오기에 여자의 시각을 통찰하기에 더 없이 좋은 글이다. 한적한 오후 감미로운 커피와 함께 곁들여 본다면 더 없이 만족스러운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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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9-11-04 1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가 참 좋아요.


穀雨(곡우) 2009-11-05 08:4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