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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라크슈미입니다 ㅣ 청소년문학 보물창고 9
패트리샤 맥코믹 지음, 최지현 옮김 / 보물창고 / 2010년 9월
평점 :
절판
기침이 심한 푸슈파의 아들, 데이비드 베컴 소년 하리슈가 가르쳐 준 첫 문장,
"내 이름은 라크슈미입니다."
"나는 네팔에서 왔습니다."
"나는 열세 살입니다."
를 배우며 소녀는 데이비드 베컴이 신의 이름같다고 했다.
거울에 비친 송장같은 자신의 얼굴을 보며 소녀는 거울 속 늙은 여자에게 말을 건넸다.
"내 이름은 라크슈미입니다. 나는 네팔에서 왔습니다. 나는 열세 살입니다."
그러나 이 책의 마지막 구절은 다음과 같이 끝나고 있었다.
"내 이름은 라크슈미입니다. 나는 네팔에서 왔습니다. 나는 열네 살입니다."
그렇게 소녀는 자신의 이름과 국적(돌아갈 집이 있는 나라)과 나이를 절망적인 독백이 아니라 자유를, 세상을 향한 외침으로 부르짖고 있었다. 그 외침 속에 소녀의 기나긴 절망의 냄새와 불안한 떨림이 함께 느껴지는 듯하다.
그나마의 소박한 가정의 행복을 상징하는 듯한 '양철지붕'을 향한 소녀의 간절함으로 이야기는 시작되고 있었다. 궁색한 살림에 보탬이 되고픈 소녀의 도시행을 딱 잘라 거절하는 아마가 그래도 믿음직스러웠다. 아마도 딸을 키우는 공감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새아버지를 향한 아마의 생각이나 초경이 시작된 라크슈미에게 운명이라며 일러주는 대목에서는 적지 않은 실망을 느꼈다. (물론, 아마의 개인적인 생각이 아니라 전통적인 관습을 따르는 것이겠지만)
소녀의 꿈은 절친이었던 지타처럼 도시로 나가 부잣집 마님의 가정부가 되어, 있으나마나한 새아버지라도 있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는 아마의 고생을 덜어주고픈 것이 고작이었다.
소녀는 예사롭지 않게 자신이 기르는 오이들에게 재치있는 이름도 붙여주고, 자기가 사람인 줄 아는 아기 염소 탈리에게 공부도 가르쳐 준다.
그래서였을까... 새아버지가 노름으로 끝없는 빚을 지고 마침내는 소녀를 도시의 가정부로 보내게 되었다는 아마의 이야기를 읽을 때까지만 해도 소녀의 소박한 꿈을 이루는 따스한 이야기가 펼쳐지리라 기대했다. 간간이 눈물을 찍어내는 고생이 있겠지만 소녀가 가난한 아마와 어린 동생을 위해 '양철지붕'을 얹어주리라는.....
그러나, 그것은 너무나 순진한 기대에 지나지 않았다. 바자이 시타의 가게에서 새아버지와 노란 드레스를 입은 낯선 여자와 '아이의 값'을 흥정하는 광경이 불길하게 다가왔다.
'아직 하지도 않은 일에 대해서 엄청난 돈이 치러지는' 광경을 보며 이해할 수 없었지만, 소녀는 그때까지도(아니 결국엔 자신이 속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까지) 아마를 자랑스럽게 하고, 내년 축제 때는 돌아오리라는 순진한 기대를 품는다.
낯선 여자를 따라 평소 꿈꾸던 도시로 향하던 소녀의 불안한 마음을 그나마 달래주던 '제비 꼬리 모양의 웅장한 산꼭대기'마저도 시야에서 사라지고 상상과는 전혀 다른 도시에 도착한 소녀, 라크슈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여태껏 한 번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끔찍한 악몽, 바로 그것이었다.
열세 살 소녀, 라크슈미에게 도시는, 세상은 더이상 소박한 행복을 꿈꾸는 미래가 아니었다. 다만, 가난하고 힘없고 무지하다는(순박한 촌년) 이유로 인간으로서 누려야할 최소한의 권리는커녕 짐승에게조차도 할 수없는 일을 버젓이 강요하는 뭄타즈가 있을 뿐이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저항을 해보지만 결국엔 뭄타즈의 간교한 계략으로 한낱 성 노예가 된 라크슈미가 마지막에 이방인의 도움의 손길을 끝까지 외면하지 않고 달려가는 라크슈미가 얼마나 다행인지.....
철저한 이해(利害)가 세상의 이치인듯 살아가는 곳(도시?)과는 다른 세상(제비 꼬리 모양의 웅장한 산꼭대기가 있는)에서 단지 가난때문에 고통받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공존하는 세상이다. 어린 라크슈미처럼....
가난한 그들이 바란 것은 엄청난 돈도 아니고 그저 당장의 배고픔과 가난을 조금이나마 해결할 수 있는 약간의 물질이었을 것이다. 라큐슈미의 양철지붕처럼....
그럼에도 힘없고 순박한(무지한) 그들을 한낱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는 도구로, 게다가 잔인한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는 인간들이 함께 살고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치를 떨게 한다.
단지 소박한 '양철지붕'을 위해 막연하게 도시를 꿈꾸다 짐승같은 인간들이 쳐놓은 덫에 걸려 신음하는 어린 생명들의 울부짖음이 지금도 세상 어딘가에서 계속되고 있다니... 과연 그 죄값을 어떻게 치르려고 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