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스 베네딕트 - 인류학의 휴머니스트
마거릿 미드 지음, 이종인 옮김 / 연암서가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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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스 베네딕트를 이야기 할 때 <국화와 칼>을 빼놓곤 이야기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물론 <문화의 패턴> 역시 그녀의 역작임에 틀림없지만 상대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국화와 칼> 만큼의 영향력에는 미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그만큼 한권의 책이 주었던 인상은 강렬했다. 2차대전 직후 씌여진 <국화와 칼>은 군국주의를 앞세운 일본과 그 문화에 대한 연구로 평화를 상징하는 국화와 전쟁을 상징하는 칼을 통해 일본인의 이중성을 날카롭게 해부하여 그녀의 이름을 널리 알린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작 루스 베네딕트는 일본에 단 한번도 가보질 않았으며 그녀의 연구방식 역시 문화인류학이라는 학문적 방법론에 근거한 원격문화연구라는 생소한 접근방식이기도 했지만 주위의 우려와 여러가지 난제를 딛고 마침내 미국 인류학계의 대표적인 학자로 자신의 이름을 남기게 된다.

이 책 <루스 베네딕트>는 그녀의 제자이며 또한 학문적 동료이기도 했던 마거릿 미드가 쓴 루스 베네딕트의 전기이다. 하지만 이 책을 미국 문화인류학에 지대한 공헌을 했던 한 학자의 단순한 전기라고 하기엔 다소 이채로운 구성을 지니고 있다. '인류학의 휴머니스트'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은 1974년 루스 베네딕트의 사후 26년이 지나고 나서 출간된 작품이라고 한다. 이미 1959년 베네딕트의 일대기를 <연구중인 인류학자 : 루스 베네딕트의 저술>이름으로 출간한 바 있는 마가릿 미드는 베네딕트의 생애를 보다 간결하게 정리하고 베네딕트의 생애와 저술에 관해 자신이 전하고 싶은 핵심 사항을 묶어 다시 한번 출간하게 된다. 즉 1974년판 베네딕트의 전기는 미드 자신이 쓴 서문과 연대기 형식으로 서술된 베네딕트의 일대기 그리고 베네딕트의 연구논문 7편이 실려 있지만 이 책에는 이후 새로운 사실들이 추가되면서 베네딕트를 연구하던 두명의 교수가 이 책을 미드가 간행하게 된 배경과 함께 보다 포괄적인 접근이 가능하게 하는 설명의 추천사 두 편을 싣고 있다.

루스 베네딕트의 아버지는 장래가 촉망되던 외과의사였지만 그녀가 겨우 세살때 사망하고 그녀는 어머니와 갓 태어난 여동생과 함께 외가인 시골의 농장에서 성장하게 된다. 이후 그녀의 어머니는 생활을 위해 교편을 잡고 뉴욕으로 이주하게 되면서 그녀의 뉴욕생활이 시작된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그녀의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베네딕트는 교사로서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다. 그리고 스탠리 풀턴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에 이르게 된다. 당시 대부분의 여성들이 그랬던 것처럼 베네딕트 역시 여성으로서의 한계를 곳곳에서 경험하게 된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싶었고 전통적인 여성관의 굴레를 깨뜨리기 위해 사색하던 그녀에게 아주 위험한 수술을 거치지 않으면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은 절망으로 다가온다.

공부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려던 베네딕트에게 우연히 접한 인류학은 아주 흥미로운 학문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그녀는 그 학문이 자신의 인생을 바칠만한 열정의 대상임을 깨닫게 된다. 결국 그녀는 34세가 되던 1921년 미국 인류학의 창시자라 일컬어지는 프란츠 보아스가 재직중인 컬럼비아 대학원에 입학에 드디어 인류학에 입문하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당시 학부 학생이던 15세 연하인 이 책의 저자 마거릿 미드를 만나게 된다. 이후 책에는 베네딕트가 미드에게 보낸 많은 편지들로 채워져 있다. 당시 교수사회에서 여성이라는 신분이 얼마나 견디기 힘든 사실이었는지 또한 직접 현지 답사를 통해 현지인들과의 마찰이나 저항에 부딪히는 어려움들을 토로하기도 한다. 결국 그녀는 현지탐사보다는 도서관에서 접하는 정보력과 취재를 통한 연구방식으로 <문화의 패턴>을 출간해 낸다. 당시 그녀의 관심사는 제도화된 문화의 특성이 문화속의 개인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에 관한 것이었다. 그것은 아마도 그녀 자신이 어려운 유년시절과 결코 행복하다 할 수 없는 결혼생활을 이어나가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그녀의 입장과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었을까라고 미드는 해석하기도 한다. 2차대전이 절정에 이를 무렵 베네딕트는 전쟁공보청에 들어가게 되고 전시 미국과 관련이 있는 나라들의 문화를 연구하는 임무를 맡게 된다. 성공적인 루마니아 문화연구는 그녀에게 원격문화 연구방법이라는 자신만의 룰모델을 개발해내게끔 하고 그것은 일본문화 연구로 이어진다. 전쟁 당시였기에 쓸만한 자료가 부족했지만 그녀는 다양한 문학적 자료와 함께 일본의 영화들을 보면서 일본문화에 접근해가기 시작했고 마침내 그녀 최고의 역작 <국화와 칼>을 탄생시킨다. 전쟁이 끝나고 그녀는 미국 인류학협회 최초의 여성회장이 되고 컬럼비아 대학에서도 정교수에 임명된다. 그리고 당시 인류가 반복적으로 직면하는 문제에 대해 연구하여 국제적 이해를 도모하고 국제간 의사소통을 보다 자유롭게 하기 위해 추진된 대규모 프로젝트 '현대문화연구'의 책임자가 되지만 그것을 완성하지 못한채 그녀는 죽음을 맞이한다. 

 일대기 이후 실린 7편의 논문들은 그녀의 연구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줄 것이라는 판단하에 미드가 첨부한 것들이다. 물론 베네딕트의 학문적 업적과 그녀의 연구 결과들은 후대의 학자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 전기문을 쓴 미드가 사망한 이후 여러가지 새로운 사실들이 밝혀지기 시작한다. 미드는 베네딕트의 일대기를 집필하면서 그녀의 연구성과에 대해 많은 부분들을 할애하고 있지만 정작 베네딕트의 개인사에 대해서는 대부분 간단한 언급이나 함구로 일관하고 있다. 또한 베네딕트의 외모에 대해 자주 언급하며 그녀에 외모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이기도 한다. 물론 개인의 사생활에 대해서까지 우리가 알 필요는 없을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그녀의 학문적 성과를 이뤄내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면 얘기는 분명 달라질 수 있다. 베네딕트에게는 여성으로 느끼는 학문적 소외감 뿐만 아니라 자신의 성 정체성은 극복하기 힘든 사실이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엔 금기시되던 그것을 극복하고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녀는 학문적으로 더욱 성공할 수 있게 되었음을 책 후반부에 추가된 두 교수의 추천사를 통해 우리는 알 수 있게 된다.

 받아들이기 힘든 어려움을 학문을 통해서 극복했고 또한 시대를 앞서간 페미니스트로서의 루스 베네딕트의 삶은 신념에 찬 그녀의 성과이며 업적이기도 하다. 인류학이라는 당시로서는 다소 생소한 학문 분야에서 획기적인 역할을 담당했으며, 지식인으로 성장해서는 당시의 두터운 교수사회의 성차별을 극복해 낸 위대한 학자였던 그녀는 분명 성공한 개인임에는 틀림없다. 미드 역시 이 전기를 집필하는데 있어 그러한 부분을 강조하여 포커스를 맞추는데 심혈을 기울였던 것으로 보인다.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20세기 인류학에 있어 누구보다도 강한 영향력을 남겼던 그녀의 소망은 시대를 초월한 진정한 자유인이 되고 싶었던 것 아니었을까.

 "인생의 문제점은 해답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너무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에 가서 나는 나이고 그들 중 어떤 사람도 될 수 없기 때문에 그 누구도 나의 완벽한 해답이 되어주지는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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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로드 : 젊은 예술학도 6명의 가슴 뜨거운 세계 여행기
천성훈 지음 / 넥서스BOOKS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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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을 사랑하고 스스로 광대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는 여섯명의 젊은이들이 태평양을 건너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발을 내딛는다. 20Kg이 훌쩍넘는 산더미같은 배낭을 짊어진 그들은 낯선 이국에서 영락없이 집을 나온 부랑자의 모습처럼 비춰진다. 준비해 온것이 너무도 많았지만 새로운 도전에 대한 설레임과 두려움은 그들을 감싸고 돈다. 이윽고 꽹과리의 첫울림과 함께 신명나는 놀이판이 시작되고 그들의 혼과 열정을 담은 즉석공연은 그저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을 그들의 관객으로 끌어들인다. 웃음, 땀방울, 흥겨움 뒤에 남은 5달러짜리 지폐 하나와 10센트 동전 다섯개 이제부터 본토비의 세계로 향하는 Art-Road는 시작된 것이다.

 

본토비(Born to Be)는 여섯명의 젊은 예술가들이 의기투합하여 한국을 알리고 진정한 예술의 세계를 직접 몸으로 체험하기 위해 결성된 해외 공연 프로젝트팀의 이름이다. 본토비란 글자 그대로 '무엇무엇으로 태어나다' 혹은 '무엇무엇이 되고 싶다'라는 영문 뜻 이외에도 성경의 창세기에 나와있는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내가 지시할 땅으로 가라.'라는 구절에서 그 이름을 따온 여러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 책 <ART ROAD>는 본토비의 기나긴 그들의 에술에의 여정을 그들의 손으로 직접 기록하고 직접 찍은 사진을 첨부해 엮은 세게 여행기이다.

 

20대 후반의 천성훈을 팀장으로 네명의 남자와 두명의 여자가 각자 한국에서의 일을 과감히 버리고 이 본토비 프로젝트에 참여한다. 1년여간의 합숙을 통해 많은 공연 연습과 팀웍을 다진 그들은 단돈 2000달러를 들고 무모하다 싶을 이 기나긴 여행을 시작한다. 그들은 1년 4개월간 30여개국을 여행하면서 177회의 공연횟수를 기록하게 된다. 천성훈은 이 책 <ART ROAD>를 통해 단순히 많은 공연을 했고 낯선 나라에 한국을 알린 것보다 무사히 그 험난하고 기나긴 여정을 그들이 함께 해냈다는데 만족하고 감사하다고 이야기 한다. 애초부터 무리한 계획이기도 했거니와 여행 도중 생기는 여러가지 악재와 힘든 여건을 극복하고 해낸 성과이기에 더욱 그러할 것이다.

 

"우리 여행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세계에 흩어져 있는 예술을 찾는 것이다. 그러나 그 예술이 무엇인지 그것을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정답은 모른다."
여행은 시작됐다. 광활한 로키산맥을 넘어 작은 마을 산타페에서 그들은 공연을 하면서 마을 사람들과 하나가 된다. 그리고 서서히 예술이란 그리 특별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다. 그저 예술이란 형이상학적이고 고차원적인 그러면서도 남들이 할수 없는 무언가라고 생각했지만 그들이 여행속에서 발견한 예술은 그저 너와 내가 할 수 있는 것, 삶속에서 편하게 즐길 수 있는 무엇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예술에의 길이기에 그들은 그들이 걷고 있는 길이 중요하고 더욱 확신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 그들 자신은 남녀가 오랜 기간 함께 여행을 해내기에 그안에서 생겨나는 유대감을 넘어 사랑으로 발전하는 것들 때문에 멤버 전체가 고통을 받기도 한다. 그것은 곧 본토비의 끝을 의미한다고 그들은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러번의 고비를 넘어가면서도 그들은 끝까지 그길을 함께 걸어 나온다. 천팀장은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도 끝내 자신의 여정을 버리지 못한다. 그만큼 강한 의지는 그들을 또한 하나로 묶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결코 당신이 소중하지가 않아서가 아닙니다. 당신이 내게 가장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세계 유수의 축제에서 그들이 당당히 한국에서 온 본토비임을 알리고 세계의 이곳저곳에서 한국을 잊어가고 있는 한인들에게 그들은 삶의 청량제가 된다. 비록 네덜란드에서는 노숙을 해야했고 폴란드에서는 차에서 잠을 자야 했지만 계속되는 그들의 열정은 무엇으로 막을 수가 없다. 그들이 아트로드를 포기하지 않는 것은 언젠가 그들이 만든 길이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는 예술의 길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기 때문에. 그들의 소망은 어쩌면 그리 크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저 그 길을 걸으며 본토비의 이름을 떠올리고 세상 전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예술 분야에서 만큼은 아주 작게 나마 세상을 변화시킨 이름이 되었으면 한다고... 

 

꿈을 향해 도전하는 젊음의 미래는 아름답게만 보인다. 어쩌면 이미 익숙해진 현실에 매여 좀 더 커다란 앞날을 바라보지 못하고 좁아진 시야만을 쫓는 현대인들에게는 그래서 그들이 더욱 부러움의 대상으로 느껴지지 않을까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렇게 여행은 인생의 축소판이며 한 인간이 질적으로 성장하는 계기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들은 여행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또한 경험했을 것이다. 그들이 체험했던 기나긴 예술로 향하는 삶에의 기록 그것이 바로 ART ROAD이다.

 

"애초 아트로드의 '완성'을 꿈꾸고 이 여행을 시작한 건 아니다... 길이 되기 위함이란 결코 쉽게 얻어지는 것도 그냥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어딘지 모를 '길'의 첫 발자국만 새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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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인열전 - 파격과 열정이 살아 숨쉬는 조선의 뒷골목 히스토리
이수광 지음 / 바우하우스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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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쉽게 만나는 TV속의 사극이나 시중의 많은 역사 서적들에서 우리는 과거와 자주 만난다. 그렇지만 그 대상은 아무래도 권력의 핵심인 왕과 그 주변을 둘러싼 이야기들이 대다수이기만 하다. 권력을 향한 피도 눈물도 없는 사투 그리고 궁중내에서 벌어지는 여인들의 암투는 어쩌면 우리에겐 너무나도 익숙한 소재가 되어 버렸는지도 모른다. 물론 역사책에 이름을 남기고 당대를 좌지우지했던 것이 그들이긴 하겠지만 지나간 역사속에는 그들 말고도 평범한 수 많은 사람들이 살아갔으며 또한 그들 역시도 당당히 자신의 시대에 주인공이었을 것이다. 그들을 아는 것은 어쩌면 그 시대를 조망할 수 있는 척도이기도 하다. 그것은 민중이 만들어내고 주도하는 문화가 사실은 시대를 대변하는 코드라는 것을 현대의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 아닐까.

역사는 겉으로 드러난 사실에 주목하지만 그에 반해 다양한 민중들의 삶은 그만큼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이 책 <잡인열전>은 역사책에 제대로 기록조차 되어있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아 놓은 책이다. 조선은 철저한 신분사회 체제를 고수했고 그것은 다시말해 모든 권력이나 문화 역시도 그 신분체제의 정점에 자리한 소수의 양반관료 중심으로 흘러갈 수 밖엔 없는 구조였음을 일컫는다. 그렇기에 대다수의 평민이나 천민들은 시대의 그 존재조차도 미미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평범한 사람들 가운데 분명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은 각자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나 제일이란 이름으로 남아있다. 당대에 그들은 천하제일의 난봉꾼이기도 했고, 노름꾼이기도 했지만 그들의 삶을 들여다 봄으로써 오늘의 우리는 조선사회의 절대 다수를 차지했던 평범한 민중들의 삶을 를 좀 더 이해 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책 속에는 소개된 수 많은 잡인들을 오늘날의 시각으로 바라본다면 인기절정의 연예인도 있을 것이고, 뉴스의 초점이 되는 인물들도 허다할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사회였기에 조선이나 오늘의 우리 사회나 그다지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다. 박막동 처럼 납조각을 은조각으로 속여 사기를 치는 것이나, 검계들이 유흥가를 토대로 하여 오늘날의 조직 폭력배처럼 행동하는 것들을 보면 더욱 그러할지도 모른다. 글자 한자 모르던 까막눈 장승업이나 천하 제일의 필공 김원탁은 오늘날의 우리에겐 장인의 정신이 깃든 거장일수 있으며, 최고의 구변쟁이 김인복이나 익살꾼 정수동은 지금의 김제동이나 김구라와 같은 스타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들이 있었기에 그저 하루하루 살아갈 것만을 걱정하던 민초들의 삶에 조금이라도 웃음을 주진 않았을까.

다양한 역사서적을 통해 역사를 대중에게 좀 더 친근한 소재로 끌어올린 저자 이수광은 그러한 기록들을 정사가 아닌 다양한 책들에서 찾아내 우리에게 전해 준다. 책 속의 잡인들은 이제 더 이상 잡인이란 이름이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어쩌면 그들은 시대를 대변하던 뒷골목 문화의 선두주자였을 것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그들의 뒷골목 난장 한판을 살펴봄으로써 조선 사회를 좀 더 투명하게 볼 수 있는 작업이라 표현한다. 저자의 말처럼 잡초같이 이름없는 삶을 살아간 그들의 행적을 통해 불과 얼마전 이땅을 살아갔던 선조들의 삶을 좀 더 이해 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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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도쿄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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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날의 꿈과 추억을 떠올릴 때마다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생기는 것은 누구에게나 그 시절이 어느때 보다도 아름다웠고 행복한 순간으로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시절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고 해보겠다는 열정이 있었으며 또한 젊음이라는 최고의 무기가 있었기에 거칠 것이 없어만 보였다. 세상에 대한 두려움도 무언가 옥죄는 듯한 답답함도 그저 모두 헤쳐나가기만 하면 될 것처럼 보일뿐 나를 붙잡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왜냐하면 그것이 젊음의 특권이니까...

 

번역되어 출간되는 책마다 많은 이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오쿠다 히데오의 신작 <스무살, 도쿄>는 작가의 전작들과는 조금은 다른 분위를 지닌듯 하다. <공중그네>에서 <인더풀>과 <면장선거>로 이어지면서 수많은 팬을 낳았던 엽기의사 이라부와는 달리 <스무살, 도쿄>의 주인공 다무라 히사오는 웬지 평범해 보이기까지 한다. 오쿠다 히데오의 히트 캐릭터 이라부가 특유의 무덤덤함을 내세워 현실에 대한 대한 냉소와 그에 따른 허무한 폭소를 자아내게 했다면, 히사오는 모두가 한번쯤은 겪었을 만한 젊은 날의 기억을 통해 책을 읽는 독자들까지도 자신의 지나간 시절을 그리워하게 만드는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것만 같다.

 

"한눈에 반하는 건 사랑이 아냐. 발작이지."
삼시 세끼 밥보다 록음악이 더 좋은 히사오는 사실은 음악평론가가 되고 싶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음악평론가가 되는지도 몰랐고 또한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 조차도 없다. 다만 고향인 나고야의 집을 떠나고 싶었고 그것이 도쿄라면 더욱 좋다고 생각해 볼 뿐이었다. 자신의 희망대로 집을 떠나 도쿄에 왔지만 아무 할일이 없다. 1년간의 재수끝에 대학에 합격하지만 여전히 뚜렷한 목적의식이나 앞날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도 없다. 스쳐 지나가는 순간의 선택으로 전공을 선택하기도 하고 연극부라는 서클 역시도 별 이유없이 가입하고 만다. 하지만 좋아하는 선배 나호코만큼은 늘 관심의 대상이다. 그러나 눈길 한번 주지않는 선배와는 달리 술에 취하면 망나니가 되어버리는 입학동기 고야마 에리는 늘 히사오의 주변을 맴돈다. 별 생각없이 했던 뚱뚱하다라는 한마디로 에리는 상처를 받고 그런 그녀를 달래기 위해 히사오는 하루종일 그녀를 찾아다니다가 결국 그녀와 키스를 하게 되고 그렇게 첫사랑의 기억을 가슴에 담는다.

 

다시 1년이 지났다. 히사오는 대학을 중퇴하고 '신광사'라는 작은 광고대행사의 카피라이터로 일하게 된다. 경험도 없고 나이도 이제 겨우 스물한 살이지만 세명의 부하직원을 거느리고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일상속에서 살아간다. 점심도 제대로 챙겨먹을 수 없는 고달픈 일상속에서 히사오는 문득 존 레넌의 '이매진'을 듣는다. 가는 곳마다 존 레넌의 이야기 뿐이다. 일을 마치고 회사로 돌아오면서 문득 히사오는 존 레넌의 죽음을 실감한다. 하지만 음악을 좋아했던 그였지만 히사오의 현실은 그것 조차도 돌아올 겨를이 없는 나날일 뿐이다.

 

 

작품은 모두 여섯개의 장이 나열되어 있다. 1978년 재수를 준비하기위해 도쿄에 올라온 첫날, 79년 대학 신입생 시절 첫키스를 하던 날, 80년 대학을 중퇴하여 갓 입사여 정신없이 보내던 나날, 어느 정도 일에 자신감을 갖기 시작하는 81년의 어느 날, 회사에서 나와 독립하고 요코와 맞선을 보았던 85년, 서른을 눈앞에 둔 89년의 어느날까지 모두 여섯해의 하루하루가 모아져 한권의 소설로 이루어지고 있다. 작품속에 나열된 날들은 히사오의 기억에도 특별한 나날들의 연속이지만 오쿠다 히데오는 그날들을 일본 사회의 트렌드를 상징하는 날들로 묶어내는 조합을 가한다. 오랫동안 사랑을 받았던 아이돌 스타가 은퇴공연을 하기도 하고, 전설적 야구스타가 많은 비난속에서 데뷔하는 날이기도 하며, 세기의 스타인 비틀즈의 존 레넌이 암살당하는 날이기도 하다. 작가는 그러한 조합들이 인위적으로 엮어놓았지만 소설속에서 그 흐름들은 너무나 자연스럽다는 것을 우리는 깨닫게 된다. 소설속의 히사오처럼 우리들 누구에게나 그러한 날들이 몇 번씩은 있을 테니까...
    
작품의 마지막 에피소드인 1989년 11월 10일은 독일이 통일되고 자유로운 왕래가 허용되기 시작한 날이기도 하다. 그것은 오랜동안 지속되었던 동서냉전의 마지막을 의미하기도 했다. 그렇게 한 체제의 종말을 고하는 것은 또한 한 시대가 막을 내리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한 과정들을 지켜보며 히사오와 친구들은 자신들 역시 이십대가 끝나고 서른이 됨을 직감한다. 누군가 새로운 시작이라고도 하지만 누군가는 '청춘은 끝나고 인생은 시작된다.'라고도 한다. 그렇게 히사오는 서른이 된 자신을 발견한다.

주인공 히사오의 나이는 공교롭게도 작가 오쿠다 히데오와 같다. 그렇기에 작가 자신이 느끼고 체험했던 시대상이 고스란히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히사오가 서른의 관점에서 스무살을 돌아보건 아니면 지금 현재의 관점에서 지난 날을 돌아보건 간에 애틋하고 지나간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만큼은 아마도 모든이의 공감을 얻어내기에 충분해 보이기만 한다. 소설을 읽는 내내 나 역시도 지난 스무살 시절을 가끔 떠올리곤 했다. 스무살의 나도 거침없이 달렸었지만 서른살엔 하나의 시대가 막을 내리는듯한 느낌을 받았던 것 같기에...       

 

문득 도쿄로 떠나는 히사오에게 어머니가 들려주던 말이 생각난다.
"너는 남한테 고개 숙이는 일에는 소질도 없고, 그냥 네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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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육과 육식 - 사육동물과 인간의 불편한 동거
리처드 W. 불리엣 지음, 임옥희 옮김 / 알마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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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나라가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수입개방으로 인한 광우병공포로 혼란스럽다. 광우병공포가 인터넷과 언론이 만들어낸 괴담이라 할 지라도 그에 대처하는 정부의 계속되는 무책임한 태도의 연속은 국민들을 거리로 내몰고 있는 형국이다. 이번 사태가 어떻게 마무리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이 혼란스러운 정국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지나친 육식문화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보다 근본적으로 인간과 동물에 관한 관계에 대해 새롭게 정리해 볼 기회를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미국 컬럼비아 대학의 역사학자 리처드 불리엣 교수는 <사육과 육식>을 통해 인간과 동물의 역사적인 관계를 고찰한다. 저자는 인간과 동물 사이의 기나긴 역사를 '사육'이라는 개념을 통해 풀어 나간다.
"사육하는(domestic)'이라는 단어는 문자적으로나 비유적으로나, 훨씬 이전에 사용되던 '길들이기(tame)'이라는 단어에 특수성을 부여했다. 길들임은 사육동물의 한 특성을 정의하는 것이었다. 즉 사육이라는 말이 동물과 인간이 함께 산다는 생각에 뿌리를 두고 있으므로, 길들임은 특정한 종의 특징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함축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자신이 명명한 사육의 역사를 전기사육시대(predomesticity), 사육시대(domesticity), 후기사육시대(postdomesticity)로 구분한다. 저자는 전기사육시대는 인간과 동물 사이의 경계가 모호했기에 동물과 신과 인간이 서로 교감했고 그에 따라 이종(異種)간의 결합 또한 나타나 동물의 얼굴을 한 신이 나타나기도 하고 동물에게서 신성이 나타나기도 하는 시기였기에, 인간이 느끼는 동물이란 사냥의 대상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숭배의 대상이기도 했다고 이야기 한다. 이어지는 사육시대란 가축과 대다수 가족 구성원이 날마다 접촉하면서 살아가는 시대를 이야기한다. 동물은 이제 철저히 인간에게 경제적이며 물질적인 것들을 제공하는 복종의 대상으로 바뀐다. 또한 그 시기는 동물이 늘 인간의 곁에 있기에 그들의 교미, 출산, 죽음 같은 생명 현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라 이야기 한다. 즉 피와 섹스 그리고 죽음이라는 지금의 현실에서 쉽게 드러낼 수 없는 것들이 그리 시기에는 어려서부터 직접 보고 느낄수 있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었기에 그들을 도살해서 먹는 것 역시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을 것이라고 저자는 이야기 한다. 그러나 후기사육시대에 접어들면서 인간은 그러한 동물들과의 단절을 시도하기 시작한다. 인간의 삶에 있어 사육동물은 생명체가 아닌 인간의 이해관계에 따라 마음대로 처할 수 있는 상품의 하나로 전락해 버린다. 이제 후기사육시대의 인간이 동물을 바라보는 관점에서는 더 이상 신비로움을 느끼기는 어렵다. 완성된 제품으로 생산되는 가공육이나 기타 유제품 들을 우리의 식탁과 일상에서 만날 뿐이다. 그렇게 인간과 동물과의 관계는 한쪽이 일방적으로 다른 한쪽에게 상품을 제공하는 존재로 고착되어 버린 것이다.

 

인간의 오랜 역사를 놓고 볼 때 동물이 차지하는 비중을 절대 간과할 수는 없다. 인간은 그들의 고기를 먹고 그들의 가죽으로 추위를 막아내면서 오늘날의 인류문명을 건설해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인간이 동물을 사육하게 된 계기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견해가 있다. 그중 대다수의 의견이 재배식물종의 출현과 함께 인간은 농경과 정착생활을 하기 시작했고, 또한 그 경작을 위해 인간은 의도적으로 동물을 길들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의 생각은 다르다. 그저 식량의 생산증대를 위해 동물을 사육했다는 추론은 무리가 있음을 비판한다. 그는 현재의 사육동물들이 처음부터 농경과 그에 의해 생산되는 곡물과 유제품의 운반수단을 위해 사육되기 시작했던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그 증명을 위해 보이는 쥐와 여우에 대한 실험 결과 등을 통해 결국 동물들이 자연선택이나 인간의 선택교배에 의해 의도적으로 사육되지 않았을 거라는 점을 증명해 보이기도 한다.
      
어쩌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피, 폭력, 섹스라는 원초적인 형상이 언급된 도입부이기도 하다. 현대인들은 유혈이 낭자하는 폭력물이나 강도 높은 포르노물에 열광한다. 피와 섹스가 난무하는 자극적인 장면들은 그 어떤 매개보다도 인간들을 환상에 빠뜨려 버린다. 하지만 그 결과는 때로 청소년의 성범죄나 사회의 일탈을 한번에 무너뜨리는 있을수 없는 행위들이 되어 우리앞에 나타나기도 한다. 저자는 이를 이 시대의 정서적 모순이라며 "가축이 시야에서 사라지면서 현실이 환상으로 대체됐기 때문에 나오는 관념적 부조화 현상”이라고 주장한다. 즉, 산업이 발전하고 동물이 제공하는 모든 것을 그저 서비스의 하나로 알게 되면서 인간이 그들을 도축한다는 사실을 잊어버렸기 때문에 우리의 현실에서 더 이상 피와 섹스는 없어졌고 인간은 다른 형태로 인간은 그 욕망을 분출하게 된다는 것이다.
“후기 사육시대의 유산인 상상의 영역에서는 상징적으로 격하된 짐승 무리를 산업상품으로 변질시켜 버림으로써 창조적인 심성에 어떤 것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을 남겨놓지 않았다. ... 동물이 신과 교감하고 반인반수가 존경받던 시대, 동물을 죽이는 것이 경외감과 죄의식이 들도록 만들었던 시대의 마법을 재발견하려면 진정한 상상력이 필요할 것이다.”

 

저자는 채식주의자, 동물해방운동, 반려동물 등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과 동물의 미래를 이야기하려 한다. 육류섭취에 반대해 나타난 채식주의로 부터 시작해 동물의 권리와 고통에 생각하는 동물해방운동은 인간에게서 윤리적 불안을 해소해보려는 노력의 일환이라 설명한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저자가 이야기하려는 근본적인 것은 후기사육시대를 거쳐오면서 인간들의 삶이 동물과 격리되면서 어떠한 사회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지 또한 우리가 현재 부딪히고 있는 현대사회의 성과 폭력이 그러한 상황들과 어떠한 인과관계를 갖고 있는지일 것이다.

 

저자는 끝으로 본인의 동물에 대한 접근에서 해법을 찾지만 그 답은 엉뚱하게도 일본이다. 저자는 일본이 오랫동안 육식을 하지 않고 해산물을 주로 선호해 왔으며 불교, 신도, 유교사상의 영향 때문에 동물과 인간에 대해 서양의 그것과는 다소 다른 태도를 갖고 있다고 이야기하면서 다마구치 같은 가상 애완동물과 로봇 애완동물을 통해 생명력을 가진 영혼의 개념이 서구의 애완 전통에서 보다 훨씬 뚜렷하게 드러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미야자키 하야오의 '원령공주'와 무라카미 하루키의 '양을 둘러싼 모험'을 예로 들어 인간과 동물의 경계를 가로지르거나 아니면 그 경계선에 걸치고 있거나 간에 오늘날 일본문화가 그런 것에 열려 있다라고 이야기 한다. 적어도 이 부분 만큼은 어째 그동안 추구해왔던 저자의 논리가 다소 한켠으로 새어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뿐이다. 언제나 회식자리에 빠질수 없고,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데 무엇보다 커다란 역할을 해줄 수 있는 고기를 제공하는 사육동물들에 대한 원론적인 이야기들은 읽는 내내 흥미로울 수 밖엔 없었다.

"오늘날 우리는 동물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리고 몇십년 후 우리의 후손들은 동물을 인간의 사회적 제의나 경제적인 프로세스로 이용하는 것을 넘어서 어떤 의미를 부여하게 될 것인가. 지구의 동물군은 우리가 그 일부를 구성하고 있는 과거이자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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