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육과 육식 - 사육동물과 인간의 불편한 동거
리처드 W. 불리엣 지음, 임옥희 옮김 / 알마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온 나라가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수입개방으로 인한 광우병공포로 혼란스럽다. 광우병공포가 인터넷과 언론이 만들어낸 괴담이라 할 지라도 그에 대처하는 정부의 계속되는 무책임한 태도의 연속은 국민들을 거리로 내몰고 있는 형국이다. 이번 사태가 어떻게 마무리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이 혼란스러운 정국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지나친 육식문화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보다 근본적으로 인간과 동물에 관한 관계에 대해 새롭게 정리해 볼 기회를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미국 컬럼비아 대학의 역사학자 리처드 불리엣 교수는 <사육과 육식>을 통해 인간과 동물의 역사적인 관계를 고찰한다. 저자는 인간과 동물 사이의 기나긴 역사를 '사육'이라는 개념을 통해 풀어 나간다.
"사육하는(domestic)'이라는 단어는 문자적으로나 비유적으로나, 훨씬 이전에 사용되던 '길들이기(tame)'이라는 단어에 특수성을 부여했다. 길들임은 사육동물의 한 특성을 정의하는 것이었다. 즉 사육이라는 말이 동물과 인간이 함께 산다는 생각에 뿌리를 두고 있으므로, 길들임은 특정한 종의 특징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함축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자신이 명명한 사육의 역사를 전기사육시대(predomesticity), 사육시대(domesticity), 후기사육시대(postdomesticity)로 구분한다. 저자는 전기사육시대는 인간과 동물 사이의 경계가 모호했기에 동물과 신과 인간이 서로 교감했고 그에 따라 이종(異種)간의 결합 또한 나타나 동물의 얼굴을 한 신이 나타나기도 하고 동물에게서 신성이 나타나기도 하는 시기였기에, 인간이 느끼는 동물이란 사냥의 대상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숭배의 대상이기도 했다고 이야기 한다. 이어지는 사육시대란 가축과 대다수 가족 구성원이 날마다 접촉하면서 살아가는 시대를 이야기한다. 동물은 이제 철저히 인간에게 경제적이며 물질적인 것들을 제공하는 복종의 대상으로 바뀐다. 또한 그 시기는 동물이 늘 인간의 곁에 있기에 그들의 교미, 출산, 죽음 같은 생명 현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라 이야기 한다. 즉 피와 섹스 그리고 죽음이라는 지금의 현실에서 쉽게 드러낼 수 없는 것들이 그리 시기에는 어려서부터 직접 보고 느낄수 있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었기에 그들을 도살해서 먹는 것 역시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을 것이라고 저자는 이야기 한다. 그러나 후기사육시대에 접어들면서 인간은 그러한 동물들과의 단절을 시도하기 시작한다. 인간의 삶에 있어 사육동물은 생명체가 아닌 인간의 이해관계에 따라 마음대로 처할 수 있는 상품의 하나로 전락해 버린다. 이제 후기사육시대의 인간이 동물을 바라보는 관점에서는 더 이상 신비로움을 느끼기는 어렵다. 완성된 제품으로 생산되는 가공육이나 기타 유제품 들을 우리의 식탁과 일상에서 만날 뿐이다. 그렇게 인간과 동물과의 관계는 한쪽이 일방적으로 다른 한쪽에게 상품을 제공하는 존재로 고착되어 버린 것이다.
인간의 오랜 역사를 놓고 볼 때 동물이 차지하는 비중을 절대 간과할 수는 없다. 인간은 그들의 고기를 먹고 그들의 가죽으로 추위를 막아내면서 오늘날의 인류문명을 건설해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인간이 동물을 사육하게 된 계기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견해가 있다. 그중 대다수의 의견이 재배식물종의 출현과 함께 인간은 농경과 정착생활을 하기 시작했고, 또한 그 경작을 위해 인간은 의도적으로 동물을 길들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의 생각은 다르다. 그저 식량의 생산증대를 위해 동물을 사육했다는 추론은 무리가 있음을 비판한다. 그는 현재의 사육동물들이 처음부터 농경과 그에 의해 생산되는 곡물과 유제품의 운반수단을 위해 사육되기 시작했던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그 증명을 위해 보이는 쥐와 여우에 대한 실험 결과 등을 통해 결국 동물들이 자연선택이나 인간의 선택교배에 의해 의도적으로 사육되지 않았을 거라는 점을 증명해 보이기도 한다.
어쩌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피, 폭력, 섹스라는 원초적인 형상이 언급된 도입부이기도 하다. 현대인들은 유혈이 낭자하는 폭력물이나 강도 높은 포르노물에 열광한다. 피와 섹스가 난무하는 자극적인 장면들은 그 어떤 매개보다도 인간들을 환상에 빠뜨려 버린다. 하지만 그 결과는 때로 청소년의 성범죄나 사회의 일탈을 한번에 무너뜨리는 있을수 없는 행위들이 되어 우리앞에 나타나기도 한다. 저자는 이를 이 시대의 정서적 모순이라며 "가축이 시야에서 사라지면서 현실이 환상으로 대체됐기 때문에 나오는 관념적 부조화 현상”이라고 주장한다. 즉, 산업이 발전하고 동물이 제공하는 모든 것을 그저 서비스의 하나로 알게 되면서 인간이 그들을 도축한다는 사실을 잊어버렸기 때문에 우리의 현실에서 더 이상 피와 섹스는 없어졌고 인간은 다른 형태로 인간은 그 욕망을 분출하게 된다는 것이다.
“후기 사육시대의 유산인 상상의 영역에서는 상징적으로 격하된 짐승 무리를 산업상품으로 변질시켜 버림으로써 창조적인 심성에 어떤 것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을 남겨놓지 않았다. ... 동물이 신과 교감하고 반인반수가 존경받던 시대, 동물을 죽이는 것이 경외감과 죄의식이 들도록 만들었던 시대의 마법을 재발견하려면 진정한 상상력이 필요할 것이다.”
저자는 채식주의자, 동물해방운동, 반려동물 등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과 동물의 미래를 이야기하려 한다. 육류섭취에 반대해 나타난 채식주의로 부터 시작해 동물의 권리와 고통에 생각하는 동물해방운동은 인간에게서 윤리적 불안을 해소해보려는 노력의 일환이라 설명한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저자가 이야기하려는 근본적인 것은 후기사육시대를 거쳐오면서 인간들의 삶이 동물과 격리되면서 어떠한 사회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지 또한 우리가 현재 부딪히고 있는 현대사회의 성과 폭력이 그러한 상황들과 어떠한 인과관계를 갖고 있는지일 것이다.
저자는 끝으로 본인의 동물에 대한 접근에서 해법을 찾지만 그 답은 엉뚱하게도 일본이다. 저자는 일본이 오랫동안 육식을 하지 않고 해산물을 주로 선호해 왔으며 불교, 신도, 유교사상의 영향 때문에 동물과 인간에 대해 서양의 그것과는 다소 다른 태도를 갖고 있다고 이야기하면서 다마구치 같은 가상 애완동물과 로봇 애완동물을 통해 생명력을 가진 영혼의 개념이 서구의 애완 전통에서 보다 훨씬 뚜렷하게 드러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미야자키 하야오의 '원령공주'와 무라카미 하루키의 '양을 둘러싼 모험'을 예로 들어 인간과 동물의 경계를 가로지르거나 아니면 그 경계선에 걸치고 있거나 간에 오늘날 일본문화가 그런 것에 열려 있다라고 이야기 한다. 적어도 이 부분 만큼은 어째 그동안 추구해왔던 저자의 논리가 다소 한켠으로 새어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뿐이다. 언제나 회식자리에 빠질수 없고,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데 무엇보다 커다란 역할을 해줄 수 있는 고기를 제공하는 사육동물들에 대한 원론적인 이야기들은 읽는 내내 흥미로울 수 밖엔 없었다.
"오늘날 우리는 동물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리고 몇십년 후 우리의 후손들은 동물을 인간의 사회적 제의나 경제적인 프로세스로 이용하는 것을 넘어서 어떤 의미를 부여하게 될 것인가. 지구의 동물군은 우리가 그 일부를 구성하고 있는 과거이자 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