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스 베네딕트 - 인류학의 휴머니스트
마거릿 미드 지음, 이종인 옮김 / 연암서가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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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스 베네딕트를 이야기 할 때 <국화와 칼>을 빼놓곤 이야기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물론 <문화의 패턴> 역시 그녀의 역작임에 틀림없지만 상대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국화와 칼> 만큼의 영향력에는 미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그만큼 한권의 책이 주었던 인상은 강렬했다. 2차대전 직후 씌여진 <국화와 칼>은 군국주의를 앞세운 일본과 그 문화에 대한 연구로 평화를 상징하는 국화와 전쟁을 상징하는 칼을 통해 일본인의 이중성을 날카롭게 해부하여 그녀의 이름을 널리 알린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작 루스 베네딕트는 일본에 단 한번도 가보질 않았으며 그녀의 연구방식 역시 문화인류학이라는 학문적 방법론에 근거한 원격문화연구라는 생소한 접근방식이기도 했지만 주위의 우려와 여러가지 난제를 딛고 마침내 미국 인류학계의 대표적인 학자로 자신의 이름을 남기게 된다.

이 책 <루스 베네딕트>는 그녀의 제자이며 또한 학문적 동료이기도 했던 마거릿 미드가 쓴 루스 베네딕트의 전기이다. 하지만 이 책을 미국 문화인류학에 지대한 공헌을 했던 한 학자의 단순한 전기라고 하기엔 다소 이채로운 구성을 지니고 있다. '인류학의 휴머니스트'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은 1974년 루스 베네딕트의 사후 26년이 지나고 나서 출간된 작품이라고 한다. 이미 1959년 베네딕트의 일대기를 <연구중인 인류학자 : 루스 베네딕트의 저술>이름으로 출간한 바 있는 마가릿 미드는 베네딕트의 생애를 보다 간결하게 정리하고 베네딕트의 생애와 저술에 관해 자신이 전하고 싶은 핵심 사항을 묶어 다시 한번 출간하게 된다. 즉 1974년판 베네딕트의 전기는 미드 자신이 쓴 서문과 연대기 형식으로 서술된 베네딕트의 일대기 그리고 베네딕트의 연구논문 7편이 실려 있지만 이 책에는 이후 새로운 사실들이 추가되면서 베네딕트를 연구하던 두명의 교수가 이 책을 미드가 간행하게 된 배경과 함께 보다 포괄적인 접근이 가능하게 하는 설명의 추천사 두 편을 싣고 있다.

루스 베네딕트의 아버지는 장래가 촉망되던 외과의사였지만 그녀가 겨우 세살때 사망하고 그녀는 어머니와 갓 태어난 여동생과 함께 외가인 시골의 농장에서 성장하게 된다. 이후 그녀의 어머니는 생활을 위해 교편을 잡고 뉴욕으로 이주하게 되면서 그녀의 뉴욕생활이 시작된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그녀의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베네딕트는 교사로서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다. 그리고 스탠리 풀턴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에 이르게 된다. 당시 대부분의 여성들이 그랬던 것처럼 베네딕트 역시 여성으로서의 한계를 곳곳에서 경험하게 된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싶었고 전통적인 여성관의 굴레를 깨뜨리기 위해 사색하던 그녀에게 아주 위험한 수술을 거치지 않으면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은 절망으로 다가온다.

공부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려던 베네딕트에게 우연히 접한 인류학은 아주 흥미로운 학문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그녀는 그 학문이 자신의 인생을 바칠만한 열정의 대상임을 깨닫게 된다. 결국 그녀는 34세가 되던 1921년 미국 인류학의 창시자라 일컬어지는 프란츠 보아스가 재직중인 컬럼비아 대학원에 입학에 드디어 인류학에 입문하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당시 학부 학생이던 15세 연하인 이 책의 저자 마거릿 미드를 만나게 된다. 이후 책에는 베네딕트가 미드에게 보낸 많은 편지들로 채워져 있다. 당시 교수사회에서 여성이라는 신분이 얼마나 견디기 힘든 사실이었는지 또한 직접 현지 답사를 통해 현지인들과의 마찰이나 저항에 부딪히는 어려움들을 토로하기도 한다. 결국 그녀는 현지탐사보다는 도서관에서 접하는 정보력과 취재를 통한 연구방식으로 <문화의 패턴>을 출간해 낸다. 당시 그녀의 관심사는 제도화된 문화의 특성이 문화속의 개인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에 관한 것이었다. 그것은 아마도 그녀 자신이 어려운 유년시절과 결코 행복하다 할 수 없는 결혼생활을 이어나가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그녀의 입장과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었을까라고 미드는 해석하기도 한다. 2차대전이 절정에 이를 무렵 베네딕트는 전쟁공보청에 들어가게 되고 전시 미국과 관련이 있는 나라들의 문화를 연구하는 임무를 맡게 된다. 성공적인 루마니아 문화연구는 그녀에게 원격문화 연구방법이라는 자신만의 룰모델을 개발해내게끔 하고 그것은 일본문화 연구로 이어진다. 전쟁 당시였기에 쓸만한 자료가 부족했지만 그녀는 다양한 문학적 자료와 함께 일본의 영화들을 보면서 일본문화에 접근해가기 시작했고 마침내 그녀 최고의 역작 <국화와 칼>을 탄생시킨다. 전쟁이 끝나고 그녀는 미국 인류학협회 최초의 여성회장이 되고 컬럼비아 대학에서도 정교수에 임명된다. 그리고 당시 인류가 반복적으로 직면하는 문제에 대해 연구하여 국제적 이해를 도모하고 국제간 의사소통을 보다 자유롭게 하기 위해 추진된 대규모 프로젝트 '현대문화연구'의 책임자가 되지만 그것을 완성하지 못한채 그녀는 죽음을 맞이한다. 

 일대기 이후 실린 7편의 논문들은 그녀의 연구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줄 것이라는 판단하에 미드가 첨부한 것들이다. 물론 베네딕트의 학문적 업적과 그녀의 연구 결과들은 후대의 학자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 전기문을 쓴 미드가 사망한 이후 여러가지 새로운 사실들이 밝혀지기 시작한다. 미드는 베네딕트의 일대기를 집필하면서 그녀의 연구성과에 대해 많은 부분들을 할애하고 있지만 정작 베네딕트의 개인사에 대해서는 대부분 간단한 언급이나 함구로 일관하고 있다. 또한 베네딕트의 외모에 대해 자주 언급하며 그녀에 외모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이기도 한다. 물론 개인의 사생활에 대해서까지 우리가 알 필요는 없을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그녀의 학문적 성과를 이뤄내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면 얘기는 분명 달라질 수 있다. 베네딕트에게는 여성으로 느끼는 학문적 소외감 뿐만 아니라 자신의 성 정체성은 극복하기 힘든 사실이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엔 금기시되던 그것을 극복하고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녀는 학문적으로 더욱 성공할 수 있게 되었음을 책 후반부에 추가된 두 교수의 추천사를 통해 우리는 알 수 있게 된다.

 받아들이기 힘든 어려움을 학문을 통해서 극복했고 또한 시대를 앞서간 페미니스트로서의 루스 베네딕트의 삶은 신념에 찬 그녀의 성과이며 업적이기도 하다. 인류학이라는 당시로서는 다소 생소한 학문 분야에서 획기적인 역할을 담당했으며, 지식인으로 성장해서는 당시의 두터운 교수사회의 성차별을 극복해 낸 위대한 학자였던 그녀는 분명 성공한 개인임에는 틀림없다. 미드 역시 이 전기를 집필하는데 있어 그러한 부분을 강조하여 포커스를 맞추는데 심혈을 기울였던 것으로 보인다.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20세기 인류학에 있어 누구보다도 강한 영향력을 남겼던 그녀의 소망은 시대를 초월한 진정한 자유인이 되고 싶었던 것 아니었을까.

 "인생의 문제점은 해답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너무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에 가서 나는 나이고 그들 중 어떤 사람도 될 수 없기 때문에 그 누구도 나의 완벽한 해답이 되어주지는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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