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기술
에리히 프롬 지음, 황문수 옮김 / 문예출판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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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우연한 기회에 찾아온 행운이 아닌 능동적으로 성취해야 하는 기술이다. 사랑을 배워야 할 필요가 없다는 잘못된 통념은 사랑을 ‘하는’ 것이 아닌 ‘받는’ 것이라는 생각과, 할 줄 아는 ‘능력’이 아니라 ‘대상을 찾는’ 것이라는 가정, 그리고 지속적으로 사랑에 머무는 상태가 아닌 사랑에 빠지는 최초의 경험이라는 착각에서 나온다.
인간이 ‘분리’되어 있다는 인식, 즉 개별적인 존재라는 인식은 다른 무언가의 ‘합일’을 갈망하는 욕구에서 사랑의 필요성이 발생했다. 이러한 합일은 상대방으로써 자신이 충족되는 공서적 합일과는 다른, 자신의 개성을 유지하는 능동적인 힘을 가진 합일을 뜻한다.
‘형제애’는 동등한 자, 혹은 모든 인간에 대한 사랑이자 모든 사랑의 바탕이 되는 근간이다. ‘모성애’는 무조건적인 긍정이자 수동적인 사랑이며 보호와 책임을 동반한다. 성숙한 모성애는 자식으로 하여금 분리(개별적인 독립)를 지지하는 사랑이다. ‘성애’는 사랑의 종류 중 가장 기만적인 사랑으로 육체적으로 원할 때 사랑하고 있다는 잘못된 결론에 이르며, 독점욕으로 발전해 소유적 애착으로 변질되기도 한다. 사랑은 강렬한 감정이 아니며 감정일 뿐이면 영원하리라는 근거는 더욱 없다. ‘자기애’는 이기적, 배타적인 것이라 오해하고 있지만 사실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한 기초이자 근원이며 미덕이다. ‘신에 대한 사랑’과 관련해서 서양의 사상은 올바른 행동이 아닌 올바른 ‘사고’를 강조해온 누를 범했으며, 바람직한 종교인이라면 신에게 기대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올바른 신앙이 아닌 올바른 행동을 강조한다.
사랑이 붕괴된(사이비 사랑이 판을 치는) 이유는 자본이 노동력을 지배해 생명보다 더 높은 가치를 갖게 되고, 개인의 개성을 잃고 소모품으로 전략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낳은 소비의 사회는 행복을 ‘즐기는 것’으로, ‘만족스러운 소비’를 하는 것으로 변해버렸다.
두 사람의 이기주의에 불과할 뿐인 결혼(‘팀’이라고 말한다)은 ‘신경증적(괴로운) 사랑’으로 종종 나타난다. 어버이에 대한 애착에서 벗어나지 못한 남녀의 과오들이 고통으로 점철된다. 누군가를 우상시하는 ‘우상 숭배적 사랑’은 결국 기대를 저버리기 마련이라 새로운 우상을 찾아 부유하는 결과를 낳는다. 영화나 잡지, 유행가에서 추상화 되는 ‘감성적인 사랑’도 나타난다. 또한 자신의 문제를 회피하고 사랑하는 사람의 결함이나 결점에 관여하는 ‘투사적 매커니즘’도 사랑의 실패를 야기한다. 그렇다고 사랑이 결코 갈등이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고 오해해서는 안된다.
사랑의 기술을 습득하기 위한 안으로는 집중과 인내를 강조하고, 자아도취적으로 왜곡된 나의 상을 극복하고 객관적인 현실을 파악하는 데 노력해야 한다.

해결책은 역시나 좀 실망스러웠지만 그래도 사랑에 대한 범인류적인 차원의 접근과 행동을 강조하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자주 책을 들춰 꾸준히 상기시켜야겠다.

인간이 분리된 채 사랑에의해 다시 결합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의 인식, 이것이 수치심의 원천이다. 동시에 이것은 죄책감과 불안의 원천이다. - P26

현대 서양 사회에서도 집단과의 합일은 분리 상태를 극복하는 일반적인 방법이다. 이것은 개인의 자아 대부분이 사라지고그 목적이 군중에 소속되어 있는 합일이다. 만일 내가 남들과 같고, 나 자신을 유별나게 하는 사상이나 감정을 갖고 있지 않으며, 나의 관습이나 옷이나 생각을 집단의 유형에 일치시킨다면나는 구제된다. 고독이라는 가공할 경험으로부터 구제되는 것이다. 독재체제는 이러한 일치로 이끌어가려고 위협과 공포를 이용하고, 민주 국가는 암시와 선전을 이용한다. 물론 두 체제에는 매우 큰 차이가 있다. 민주주의에서는 불일치가 가능하며 사실상 불일치가 전혀 없을 때란 없다. - P30

피학대 음란증적 인간이 가학성 음란증적 인간에 의존하듯이가학성 음란증적 인간도 복종하는 자에게 의존한다. 양자는 한쪽이 없으면 살아나갈 수 없다. 차이점은 오직 가학성 음란증적인간은 명령하고 착취하고 상처를 입히고 모욕을 가하고, 피학대 음란증적 인간은 명령받고 착취당하고 상처를 입고 모욕을당한다는 점뿐이다. 현실적 의미에서 여기에는 상당한 차이가있다.
그러나 더욱 깊은 감정적 차원에서 볼 때 양자가 공통으로 갖고 있는 것, 다시 말하면 통합성이 없는 융합에 비하면 차이는그다지 크지 않다. 이 점을 이해한다면, 우리는 한 사람이 보통 가학성 음란중적 방식과 피학대 음란중적 방식이라는 두 가지방식으로 서로 다른 대상에 반응한다는 것을 알더라도 놀라지않을 것이다. - P39

공서적 합일과는 대조적으로 성숙한 ‘사랑‘은 ‘자신의 통합성‘,
곧 개성을 유지하는 상태에서의 합일‘이다. 사랑은 인간에게 능동적인 힘이다. 곧 인간을 동료에게서 분리하는 벽을 허물어버리는 힘, 인간을 타인과 결합하는 힘이다. 사랑은 인간으로 하여금 고립감과 분리감을 극복하게 하면서도 각자에게 각자의 특성을 허용하고 자신의 통합성을 유지시킨다. 사랑에서는 두 존재가 하나로 되면서도 둘로 남아 있다는 역설이 성립한다. - P40

사랑은 수동적 감정이 아니라 활동이다. 사랑은 ‘참여하는 것‘
이지 ‘빠지는 것‘이 아니다. 가장 일반적인 방식으로 사랑의 능동적 성격을 말한다면, 사랑은 본래 ‘주는 것‘이지 받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할 수 있다. - P40

사랑의 능동적 성격은, 준다고 하는 요소 외에도, 언제나 모든사랑의 형태에 공통된 어떤 기본적 요소들을 내포하고 있다는사실에서도 분명해진다. 이러한 요소들은 보호 책임, 존경, 지식등이다. - P47

어머니에게 내가 필요하기 때문에 사랑받는다. 더 일반적으로 말하면 ‘나는 현재의 나로서 사랑받는다.‘ 혹은 더정확하게 말하자면 ‘나는 나이기 때문에 사랑받는‘ 것이리라. 어머니의 사랑을 받는 이러한 경험은 수동적인 경험이다. - P65

본래 사랑은 특정한 사람과의 관계가 아니다. 사랑은 한 사람과, 사랑의 한 ‘대상‘과의 관계가 아니라 세계 전체와의 관계를결정하는 ‘태도‘, 곧 ‘성격의 방향‘이다. 어떤 사람이 다른 한 사람만을 사랑하고 나머지 동포에게는 무관심하다면, 그의 사랑은사랑이 아니라 공서적 애착이거나 확대된 이기주의다. 그럼에도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은 능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대상에 의해서 성립한다고 믿고 있다. 사실상 그들은 심지어 그들의 ‘사랑을 받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 것이 그들의 사랑의 강렬함을 입증하는 길이라고 믿고 있다. 이것은 위에서 이미 말한 바와 동일한 오류다. - P74

성애는 아마도 현존하는 사랑의 형태 중 가장 기만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우선 성애는 흔히 사랑에 빠진다‘는 폭발적인 경험, 곧 그 순간까지도 낯선 두 사람 사이에 있던 장벽이 갑자기 무너져버리는 경험과 혼동된다. 그러나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갑작스럽게 친밀해지는 이러한 경험은 본질적으로 오래가지 못한다. - P83

이 밖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분리의 극복을 나타내는 또 다른요인들이 있다. 자기 자신의 개인 생활, 자신의 희망과 불안을 말하는 것, 자신의 어린아이 같은 유치한 면을 보이는 것, 세계에 대해 공통된 관심을 확립하는 것, 이 모든 일은 분리를 극복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자신의 분노, 증오, 그리고 자제심의완전한 결여를 드러내는 것도 친밀감으로 여겨진다. 이것은 흔히 부부가 서로에 대해 갖고 있는 변태적인 매력이 부부는 잠자리에 들었거나 서로에게 증오와 분노를 발산할 때만 친밀하다—을 설명해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형태의 친밀감은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희박해지는 경향이 있다. - P84

성적 욕망은 대부분의 사람들 마음속에서 사랑이라는 관념과 짝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육체적으로 서로를 원할 때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잘못된 결론에 도달하기 쉽다. - P85

성애에는, 형제애와 모성애에는 없는 독점욕이 있다. 성애의이러한 배타적 성격은 좀 더 검토할 필요가 있다. 흔히 성애의독점욕은 소유적 애착으로 오해되고 있다. 우리는 흔히 서로 ‘사랑하고’ 있는 두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는 전혀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들의 사랑은 사실은 두 사람 사이의 이기주의다. - P86

우리는 성애의 중요한 요인, 곧 ‘의지‘라는 요인을 무시하고 있다. 어떤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결코 강렬한 감정만은 아니다.
이것은 결단이고 판단이고 약속이다. 만일 사랑이 감정일 뿐이라면, 영원히 서로 사랑할 것을 약속할 근거는 없을 것이다. 감정은 생겼다가 사라져버릴 수 있다. 내 행위 속에 판단과 결단이포함되어 있지 않다면, 어떻게 내가 이 사랑이 영원하리라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인가? - P88

다른 사람만이 아니라 우리 자신도 우리의감정과 태도의 ‘대상‘이며, 다른 사람과 우리 자신에 대한 태도는 모순되기는커녕 기본적으로 ‘결합적‘인 것이다. 지금 토의하고 있는 문제와 관련해서 말하면 다음과 같다. - P91

여기서 다음과 같은 결론이 나온다. 곧 나자신의 자아도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나의 사랑의 대상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 자신의 생명, 행복, 성장, 자유에 대한 긍정‘은 ‘우리 자신의사랑의 능력‘, 곧 보호, 존경, 책임, 지식에 근원이 있다. 만일 어떤 개인이 생산적으로 사랑할 수 있다면, 그는 자기 자신도 사랑할 수 있다. 만일 그가 오직 다른 사람만을 사랑할 수 있다면, 그는 전혀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 - P92

이기심과 자기애는 동일한 것이기는커녕 정반대되는 것이다. 이기적인 사랑은 자기 자신을 엄청나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거의 사랑하지 않는다. 사실상 그는 자기 자신을 미워한다.
자기 자신에 대한 애착과 배려의 결여-이것은 그의 생산성의 결여에 대한 한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는 그를 공허하게 만들고 좌절시킨다. 그는 필연적으로 불행하며 생활에서 만족을얻기 위해 초조해하지만 스스로 이 만족의 달성을 가로막고 있다. 그는 지나칠 정도로 자기 자신을 돌보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진정한 자아를 돌보는 데 실패한 것을 은폐하고 보상을 받으려고 노력하고 있을 뿐이며, 이러한 노력은 실패로 끝난다. 프로이트는 이기적인 사람은 자신의 사랑을 다른 사람들로부터철수시켜 자기 자신에게 돌리는 것과 같으므로 자아도취적이라고 주장한다. 이기적인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한다는것은 사실이지만, 그는 또한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도 못한다. - P93

다르지 않다. 사실상 비이기적인 어머니의 영향이 더욱 나쁜 경우가 많다. 자녀들은 어머니의 비이기주의 때문에 어머니를 비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어머니를 실망시켜서는 안된다는 압박을 받는다. 아이들은 덕이라는 가면 아래서 삶에대한 혐오를 배운다.
만일 순수한 자기애를 가진 어머니의 영향을 연구할 기회를갖는다면, 우리는 자녀들에게 사랑, 기쁨, 행복이 무엇인가를 경험하게 하는 데 있어서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어머니의 사랑보다 더 전도력이 있는 것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되리라. - P96

신의 사랑은 ‘은총‘이고, 종교적 태도는 이 은총을 믿고 자신을연약하고 무력한 자로 만드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신을 움직이지는 못하며, 또한 가톨릭 교리가 주장하는 바와 같이신이 우리를 사랑하게 만들지도 못한다. - P100

신이 아버지인 한, 나는 어린아이다. 나는 전지전능에 대한 자폐적 욕망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 나는 아직도 인간으로서의 나의 한계, 무지, 무력함을 깨닫는 객관성을 획득하지 못했다. 나는 아직도 어린아이처럼 나를 구해주고 지켜주고나에게 벌을 주는 아버지, 내가 복종할 때 나를 좋아하고, 내가찬미하면 기뻐하고, 내가 복종하지 않으면 화를 내는 아버지가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 P106

참으로 종교적인 사람은, 만일 그가 일신론적 관념의 본질에따른다면, 어떠한 일을 위해서도 기도하지 않고 신에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다. 그는 어린아이가 아버지나 어머니를 사랑하듯 신을 사랑하지는 않는다. 그는 신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을 만큼 자신의 한계를 느끼고 있어서 겸손하다. - P106

브라만교에서는 불교나 도교와 마찬가지로 종교의 궁극적 목적을 올바른 신앙이 아니라 올바른행동에 둔다. - P115

서양 사상의 주요한 흐름에서는 이와는 반대되는 것이 참된것으로 생각되었다. 올바른 사고에 의해서만 궁극적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고 기대했기 때문에, 올바른 행동도 동시에 중요시되기는 했지만, 중요한 강조점은 사고에 놓였다. - P116

자본은 노동력을 지배한다. 생명이 없는 축적된 물품이 살아 있는 인간의 힘, 곧 노동보다 더 높은 가치를 갖는 것이다. - P124

근대 자본주의는 원활하게 집단적으로 협력하는 사람들, 더욱많이 소비하는 사람들, 그 취미가 표준화되고 쉽게 영향받고 예측할 수 있는 사람들을 필요로 한다. 근대 자본주의는 권위나 원리, 또는 양심에 종속되지 않고 자유롭고 독립되어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 그러면서도 즐거이 명령에 따르고 그들에게 기대되는 일을 하고 마찰 없이 사회 기구에 순응하는 사람들, 폭력 없이 관리되고 지도자 없이 인도 되고 목적 없이 좋은 것을 만들어내고 계속 움직이고 기능을 다하고 곧바로 나간다는 목적 이외에는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을 필요로 한다. - P126

오늘날 인간의 행복은 ‘즐기는 데 있다. 즐긴다는 것은 ‘만족스러운 소비‘를 말하고 상품, 구경거리, 음식, 술, 담배, 사람들,
강의, 책, 영화 등을 ‘입수하는 것‘을 말한다. 모든 것이 소비되고 모든 것을 삼켜버리는 것이다. 세계는 우리의 식욕에 대한 하나의 커다란 대상으로서 커다란 사과, 커다란 병, 커다란 유방이된다. 우리는 젖을 빠는 자이고, 영원히 기대하는 자이고, 희망에 가득 찬 자이다. 그리고 영원히 실망하는 자이다. 우리의 성격은교환하고 받아들이고 싸게 팔아버리고 소비하는 데 적합하다.
모든 것은, 물질적 대상과 마찬가지로 정신적 대상도, 교환과 소비의 대상이 된다. - P128

사람들은 세계에 대항하는 두 사람 사이의 동맹을 형성하고, ‘두 사람만의‘ 이기주의는 사랑과 친밀감으로 오해된다. - P129

사랑은 성적 만족의 결과가 아니며, 성적행복은 오히려 -심지어 이른바 성의 기교에 대한 지식조차도-사랑의 결과다. - P130

신경증적 사랑의 기본적 조건은 ‘애인‘ 가운데 한 사람 또는두 사람이 모두 어버이 상에 애착을 느끼고 있고, 어른이면서도일찍이 아버지 또는 어머니에 대해 품고 있던 감정, 기대, 공포를애인에게 전이한다는 사실에 있다. 이러한 사람들은 유아적 관계 유형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했고, 어른으로서의 애정적 욕구에 있어서도 이러한 유형을 추구하고 있다. 이러한 경우, 이 사람은 지능적·사회적으로는 자신의 생활 연령 수준에 도달해 있지만, 애정에 있어서는 두 살 또는 다섯 살, 또는 열두 살 어린아이로 남아 있다. 더 심각한 경우에 이러한 감정적 미숙성은 사회적 유능성을 방해하기도 한다. 그보다 덜 심각한 경우에 갈등은친밀한 개인적 인간관계 분야에 국한된다. - P136

대체로 그녀를(또는 그를)우상시하는 자의 기대에 따라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에 결국은 실망하기 마련이고 따라서 보상으로서 새로운 우상을 찾게 되는데, 때로는 이러한 순환이 끝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 - P143

신경증적 사랑의 또 하나의 형태는 자기 자신의 문제를 회피하고 그 대신에 ‘사랑하는 사람의 결함이나 결점에 관여하려고
‘투사적 메커니즘‘을 이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개인은 집단, 민족 또는 종교와 매우 흡사한 행동을 한다. 그들은 다른 사람의 사소한 결점까지도 낱낱이 비판하고 자기 자신의 결점을천연덕스럽게 무시해버린다. 항상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고 개조하기에 바쁜 것이다. 두 사람이 모두 이와 같이 하면 아주 흔히 있는 일이지만-사랑의 관계는 상호 투사의 관계로 변한다.
만일 내가 오만하거나 우유부단하거나 탐욕스럽다면, 나는 상대방의 이러한 점을 비난하고 나의 성격에 따라 그를 고치거나처벌하려고 한다. 상대방도 이와 같이 한다. 이렇게 해서 두 사람은 그들 자신의 문제를 무시하는 데 성공하고 따라서 그들 자신의 발달에 도움이 되는 조치를 하는 데 실패한다. - P145

사랑은 갈등이 전혀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고 보는 환상이다. - P146

정신과 의사가 고객에게 좀 더 어필하기 위해서는 고용인들이행복해야 한다고 권고하는 것처럼, ‘신을 당신의 반려로 삼으라‘
는 말은 사랑과 정의와 진리에 있어서 신과 일체가 되기보다는오히려 사업에 있어서 신을 동업자로 만들라는 의미이다.
형제애가 비개인적 공정성으로 대체된 것처럼, 신은 멀리 떨어져 있는 ‘우주‘라는 주식회사의 사장으로 변했다. 당신은 신이저기에 있고 신이 쇼를 연출하고 있다는 신이 없어도 아마 쇼는 연출되겠지만) 것을 알고 있고, 당신은 신을 결코 보지 못하지만 당신이 ‘당신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동안에는 신의 리더십을 인정하고 있다. - P151

사랑의 기술을 배우려고 한다면, 나는 모든 상황에 객관적이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내가 객관성을 잃고 있는 상황에 대해 민감해야 한다. 나는 자아도취적으로 왜곡된 어떤 사람과 그의 행동에 대한 ‘나의‘ 상과, 나의 흥미, 욕구, 공포와는 관계없이 존재하는 나의 현실 사이의 차이점을 파악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 P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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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러키 스타트업
정지음 지음 / 민음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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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다. 무조건적인 상대의 비난에 물린지 오래지만 그래도 재밌다.

박국제는 어떤 미팅에서든 본론보단 기선제압에 용쓰는 사람이었다. 제시간에 갈 수 있음에도 일부러 늦게 도착하기, 회의 내용을 숙지하지 않고 상대방에게재차 설명하도록 만들기, 느슨한 존대에 비아냥거리는 반말을 농담처럼 섞기. 의미 없는 기선제압은 상대방이 어린 여자일수록 은밀해졌다. - P29

- 서경 언니가 조언하길…… 상대에게 큰 실망을 선물하고 싶다면 먼저 기대감을 키워 주래. 기대가 클수록 깨졌을 때 실망도 충격도 커지는 법이라고. 배신하고 싶으면 더충성하고, 절연하고 싶으면 더 친해지고, 헤어지고 싶으면더 사랑하래. 처음엔 이 언니 뭐야, 되게 무섭다 싶었는데, 생각할수록 무슨 말인지 알 것 같기도 하고. - P78

용도가 결백하지 않을 땐 ‘크리에이티브‘, ‘린‘, ‘그릿‘등의 단어도 금지해야만 옳았다. 그것들은 원래의 건강한의미를 잃고, 스타트업 대표가 노예에게 산업혁명을 떠넘길때나 쓰이게 된 지 오래였다. 사람을 노예처럼 다루는 자의최후는 노예혁명뿐이라는 걸……. - P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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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68
페터 한트케 지음, 안장혁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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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 무엇도 해석하려하지 않았어. 어떤 것은 다른 것의 결과일 뿐이라고 여겼지. 당신도주변 세계가 당신 곁을 스쳐 지나가며 춤을 추도록 내버려두는 타입으로 보여, 당신도 자신을 직접 연루시키기보다는 경험들이 스스로를연출해 보일 수 있도록 배려하는 편이라는 의미야. 당신은 세상이 당신을 위해 마련된 성탄절의 선물 축제인 듯 행동하지. 당신은 포장된 선물 꾸러미가 하나하나 풀어지는 모습을 공손하게 지켜볼 뿐이야. 그 일에 관여하는 것은 무례한 태도가 되겠지. 당신은 사건이 일어나는 대로 그냥 내버려두었다가 무엇인가 당신에게 직접 영향을 미치면그제야 놀라서 해결하려고 나서지. 그러고는 그 수수께끼 같은 사건에 감탄하면서 그것을 이전에 경험했던 수수께끼와 비교해보기도 하고 말이야. - P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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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공무원 생리학 인간 생리학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류재화 옮김 / 페이퍼로드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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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시대와 비슷한 듯 아닌 듯.

발자크의 소설 중 이 정도 냉소는 겪어본 적이 없는데, 소설 외의 형식이다보니 본색이 드러나는가 싶을 정도로 신랄한 것이 충격적이다. 에밀 졸라가 생각났는데, 해설을 보니 순서가 바뀌었다. 졸라가 발자크의 영향을 받았다.

발자크의 소설을 읽을 때 그의 냉소와 풍자를 유심히 찾아봐야겠다.

살기 위해 봉급이 필요한 자, 자신의 자리를 떠날 자유가 없는 자, 쓸데없이 서류를 뒤적이는 것 외에 할줄 아는 게 없는 자.

철학자라면, 약간 의사라면, 약간 생리학자라면, 약간 작가라면, 약간 행동관찰가라면, 약간 골상학자라면, 약간 자선가라면, 우리 시대 편집증의 산증인인 공무원의 정신상태가 심히 의심스럽다는 것을 인정할 것이다. 제3장에서 ‘백치로 만들다‘라는 동사를 가지고 이미 언급한 것처럼, 몇 년 동안 사무실에서 똑같은 일만하면 그런 불운한 자가 될 수밖에 없다. 다만 이 깃털 포유류가 이 직업으로 인해 백치가 되는 건지 아니면 태어날 때부터 약간 백치였기 때문에 이 직업을 택하는 것인지, 뭐가 더 맞는 건지는 알 수가 없다.

회계사는 기계처럼 또는 의미에 연연하지 않는 사람처럼 주고받는 것에 능하다. 하는 일이 ‘회계‘ 이다 보니 자신을 화폐처럼 다룰 줄 아는 것이다. 쥐며느리처럼 창구에 딱 붙어 해고 걱정 없이 은신하면 되는 것이다. 행복한 사람을 그리고 싶다면 장관 부처의 금고 창구에 딱 붙어 있는 포동포동하고 반반한 얼굴을 그리면 된다. 이 자들은 얼굴에 주름이 하나도 없다.

이 청년은 정치인은 아니지만, 정치적 인간이거나 인간 정치 그 자체다. 거의 항상 젊은 사람인데, 장군에부관이 있듯 장관에 보좌관이 있는 것이다. 그의 역할은 밀착전담이다. 그는 장관의 필라테스이다. 장관에게 아첨하고 충언한다. 아니, 충언하기 위해 아첨하고, 아첨하면서 충언하고, 충언 아래 아첨을 감추기도 한다.
새파란 젊은이는 얼굴이 누렇게 뜬 채 장관의 말에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게 몸에 배어 있다. 전혀 이해되지 않는 내용인데 소통을 해야 하니 아는 척을 하느라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다. 당신이 하는 말에 대해서도 무심히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는 척할 것이다. 그들은 ‘그러나‘ ‘하지만 ‘그런데도‘ ‘그러니까 저라면‘ ‘당신 입장이라면 저는 같은 말을 항상 입에 달고 산다. 문장마다 이미 모순어법이 준비된 것이다.

순진하고 순박하며 어떤 환상에 젖어 있는 자다. 하기야 환상 없이 어찌 살 수 있을까? 예술이라는 ‘성난황소‘를 실컷 먹고 우리에게 믿음을 주는 모든 기초 과학을 게걸스럽게먹어 치울 수 있는 힘을 주는 게 이런 환상 아니던가. 환상이란 과도한 믿음이다!

두 종류의 임시직밖에 없다. 가난한 임시직과 부유한 임시직
가난한 임시직은 희망만큼은 부자이다. 자리 하나만 주면 된다. 부유한 임시직은 정신만큼은 가난하다.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부유한 집안의 이름난 재사라면 관청에 들어가겠다고 그렇게 아등바등하지 않는다.

수집가
관공서 일은 교대 근무를 하는 사람에게 너무나 따분한 일이다. 이 권태를 다른 열정으로 풀게 하는데, 직원들 정신 상태가 완전히 불이 꺼진 것은 아니다. 그래서일까? 행정부마다 수집가나 예술가가 없는 부처가 없다.
정리 정돈을 좋아하고 세심하고 꼼꼼한 수집가는 자신의 승진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생활할 수 있을 만큼만 벌고 취미에 몰두할 수 있는 일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국가는 공무원에게 아주 적은 비용을 들이지만, 공무원은 두 배의 실존을 요구받는다. 정부 일과 산업 일 둘 다 공유하면서 해내야 한다. 그 결과 일은 더 힘들어지니 천천히 진행하는 수밖에 없다. 달리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것이다.

모든 공무원은 사무실에 9시에는 출근하지만, 대화하고 설명하고 토론하고 깃털 펜 다듬고 밀통하다 보면 벌써 오후 4시 반이다. 노동 시간 가운데 50퍼센트는 이렇게 날아간다. 20만을 지불하면 되는 일에 1천만을 지불하는 꼴이다.

적게 받기 때문에 적게 일한다.

두 친구는 평화 시에는 함께 흐르는 강물을 보며 낚시의 기쁨을 누리다가 전쟁 시에는 아주 미세한 차이로 갈라설 수 있다.

프랑스 문학에서 ‘생리학‘ 시리즈가 대유행한 것 1840~1842년 무렵이다. 이 용어는 이중적인 함의를 갖는데, 하나는 내용적인 면이고 하나는 형식적인면이다. 인간 또는 인간 사회를 더는 관념적으로 설명할 수 없을 때, 이제 동물이나 식물의 분류법처럼 인간 또는 인간 유형을 과학적 연구 대상으로 삼아 분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인간은 그 나름의 생존방식에 따라 생리적 기질대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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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에 대하여 - 지금, 깊은 상실을 겪고 있는 당신에게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 민음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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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똑똑한 사람들도 슬픔 앞에서는 결국 무너지고 마는 것이다. 슬픈 감정도 절망한 상태도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


누군가를 잃는 슬픔은 잔인한 종류의 배움이다. - P14

슬픔은 내게 새로운 거죽을 씌우고 눈에서 비늘을 벗겨 낸다. 나는 과거의 확신들을 후회한다. 너는 물론 애도하고, 이야기로 풀고, 정면으로 마주하고, 돌파해야 해. 아직 진정한 슬픔에익숙하지 않은 자의 우쭐대는 확신이었다. - P23

너무 깊게 생각할 엄두를내지 않는다. 안 그랬다가는 고통뿐만이 아니라 숨 막히는 허무주의에 질 테니까. 아무 의미도 없어, 무슨 의미가 있겠어, 아무것에도 아무런 의미도 없어, 라는 생각의 반복. 나는 의미가있길 바란다. 설사 지금은 그게 무슨 의미인지내가 모르더라도. 현실 부정에는 품위가 있다는축스 오빠의 말을 속으로 되뇐다. 이 현실 부정,
이 외면은 피난처다. - P24

나는 조의를 표하는 사람들을 피해 다닌다. 친절한 사람들이 좋은 뜻으로 하는 말이지만 그사실을 안다고 해서 상처를 덜 받지는 않는다. - P36

"그 사람은 좋은 선생이 아니구나. 문제를 못 풀어서가 아니라 자기가 모른다는 걸 인정하지 않았기때문이야." 그래서 내가 모를 때 모른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걸까? 아버지는 내게배움에는 끝이 없다고 했다. - P50

친구가 내 장편 소설의 한 구절을 보낸다. "애도는 사랑에 대한 찬미다. 진정한 슬픔을 느낄 수 있는 자는 진짜 사랑을 경험한 운 좋은 사람이다." 이상하지 않은가, 내가 쓴 글을 읽는 것이이토록 고통스럽다니. - P78

나이지리아는 늘 그렇듯이 모든 일을 필요 이상으로 어렵게 만든다. 다채로운 무능이 사방으로 사지를뻗어 사악한 광채로 모든 것을 오염시킨다. 내가 태어난 나라에 대한 환멸은 어제오늘 일이아니지만 이 정도로 강렬한 적대감은 신선하다. - P84

어떻게 자신의 무의식이 그토록 잔인하게 자기를 공격할 수 있단 말인가? - 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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