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33
페터 한트케 지음, 윤용호 옮김 / 민음사 / 200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설을 읽는 이유 중 하나는 공감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날이건 어느 상태이건 의도치 않게,
예상하지 못하게 밀려드는 감정들이 있다. 패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 이라니, 골키퍼가그런 상황에서 ‘자신감이 넘치는 상태는 아니었나 보다. 무엇인가 만들어 낼 의지는 없는 상황에서 무엇인가 다가올 것 같은 불안. 그런 감정의 서사를 따라가며 약간 (현재 내 상황에서는) 사치스러운 ‘불안함‘을 한껏 느껴볼 수 있었던 독서였다.
서평에서는 서술 중심에서 내용 중심으로 변모한 한트케의 첫 작품이라고 하는데 그래도 내용에 감동할 수 있는 작품이라기 보다는 서술에 감탄할 수 있는 작품이라는 것에 가깝다. 카뮈,
카프카, 베케트부터 남미 문학인 마르케스, 보르헤스 등 다양성, 새로움의 상징이 되는 작가들의 작품(국내라면 한강, 김봉곤 정도랄까?)을 접하면서 독자들에게는 ‘이해‘ 보다는 ‘읽기‘에 집중하게 되는 독서의 분야가 있는 것 아닌가.

페널티킥이 선언되었다. 관중들은 골문 뒤로 달려갔다.
"골키퍼는 저쪽 선수가 어느 쪽으로 찰 것인지 숙고하지요." 하고 블로흐가 말했다. "그가 키커를 잘 안다면 어느 방향을 택할 것인지 짐작할 수 있죠. 그러나 페널티킥을 차는 선수도 골키퍼의 생각을 계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골키퍼는, 오늘은 다른 방향으로 공이 오리라고 다시 생각합니다. 그러나 키커도 골키퍼와 똑같이 생각을 해서 원래 방향대로 차야겠다고 마음을 바꿔 먹겠죠? 이어 계속해서, 또 계속해서….."
블로흐는 모든 선수들이 차차 페널티에어리어 밖으로 나가는 것을 보았다. 페널티킥을 찰 선수는 슛 지점에 공을 갖다놓았다. 그런 다음 그도 뒷걸음질로 페널티에어리어 밖으로 나갔다.
"공을 차기 위해 키커가 달려 나오면, 골키퍼는 무의식적으로 슈팅도 되기 전에 이미 키커가 공을 찰 방향으로 몸을 움직이게 됩니다. 그러면 키커는 침착하게 다른 방향으로 공을차게 됩니다." 하고 블로흐가 말했다. "골키퍼에게는 한 줄기지푸라기로 문을 막으려는 것과 똑같아요."
키커가 맹렬히 달려왔다. 환한 노란색 스웨터를 입은 골키퍼는 꼼짝도 않고 서 있었다. 페널티 키커는 그의 두 손을 향해공을 찼다.- P120

흔히 우리는 문학작품이란 숙련된 작가가 아름다운 이야기를 아름다운 문체로 서술해야하고, 독자는 그것을 읽고 감동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알고 있다. 아니, 우리 스스로가 알았다기보다는 그렇게 교육된 것이다. 그런데 한트케의 실험작은 형식과 내용 가운데 의도적으로 내용을 무시하고 있다. 내용보다는 서술이 우선인 문학 작품이라니, 18~19세기의 문학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진한 감동과는거리가 먼 이야기이다. 20세기의 이름 있는 작품들, 즉 카프카의 『변신』이나 까뮈의 『이방인』,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등이 진한 감동을 주는 작품이라고 누가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내용이 없는 것이 아니라, 무슨 내용인지 감을 잡을 수가 없어서 인내심 깊은 원시시대의 독자나 인문주의 시대의 독자라 하더라도 마침내 자제심을 잃고 격노하게 되는 것이다. 그들이 알고 있는 문학은 감동과 아름다움이 충만한 것인데, 도대체 이게 뭐냐는 심정에서 소위 비난의 봇물을 터뜨리게 되는 것이다. 한트케도 이러한 실험 작품을 시작으로 다수로부터는 혹독할 정도로 부정적인 평가를, 소수에게는 새로운 문학 세계를 열었다는 긍정적 평가를 받아 왔다. 그러다 1970년대에 들어와 그의 서술 기법이 실험적인 것에서 전통적인 것으로 돌아선다. 무시했던 내용을 다시 복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P12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결국 너무 많은 사람이 아니라 부족한 인간성이 문제다. 기후변화와 인류세는 아무 생각 없이 발을 질질 끌며 멸종을 향해 나아가는 영혼 없는 생명체의 업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우리의 진짜 모습 중 한 가지 극단적인 부분만을 모방한 설명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정치적 우울감에 주목해야 한다. 좀비는 슬픔을 느끼지도, 분명 무력감을 느끼지도 않는다. 그저 존재할 뿐이다. 정치적 우울감은 기본적으로 하나의 생명체가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지 못할 때 경험하는 감정을 뜻한다. 절망감과 무력감마저 사실은 항의의 절규인 셈이다. 그렇다.
정치적 우울감은 자신이 어떻게 인간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는 느낌이 들도록 만든다. 그런 절망과 회의 속에는 중요한 깨달음이하나 묻혀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 내에서 의미 있는 행동을 할 수 있는 능력이 곧 ‘인간성‘ 이라면 우리는 아직 진정한 의미에서 인간이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관점은 얼마 지나지 않아 뒤집힐 것이다. 즉 우리는 ‘영속성의 심오함에 압도당하는 것이 아니라 지구상에존재하는 모든 형태의 영속성을 비웃을 만큼 연쇄적이고 혼란스러운 ‘변화의 심오함에 압도당할 것이다.

‘체호프의 총(작품에 등장한 장치는 반드시 사용돼야 한다는 안톤체호프의 극 이론-옮긴이)

사실 현생 인류는 20만 년 전부터 존재했지만 농업(수렵과 채집에 의존하는 삶을 끝냈으며 도시와 정치 체계는 물론 오늘날 우리가 ‘문명‘ 이라고 여기는 대상을 불러일으킨 혁신)은 불과 1만 2,000년 전에 시작됐다. 심지어 《총, 균, 쇠Guns, Germs, and Steely에서 서구 산업사회가 부상하는 과정을 지리생태학적으로 설명하고 문명의 붕괴 Collapse)에서 다시 생각하자는 흐름의 전신을 마련한 재레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 조차 신석기 혁명을 가리켜 ‘인류 역사상 최악의 실수‘ 라고 부른다.

그에 비하면 유발 하라리의 접근법은더욱 특이하지만 그만큼 효과적이기도 하다. 우리가 스스로 자초한 환경 위기가 닥치고 있는 와중에 인류 진보에 대한 집단적인 신념을 뿌리부터 다시 생각하도록 권하기 때문이다. 하라리는 자신이 동성애자로서 커밍아웃한 일이 어떻게 이성애나 진보 개념 등 널리 퍼진 거대 담론에 대한 회의론으로 이어졌는지 감동적인 방식으로 이야기한다. 또한 자신이 군사역사학을 공부했음에도 어떻게 신화를 까발리는 해설자로서 빌 게이츠, 버락 오바마, 마크 주커버그를비롯한 대중의 찬사를 받게 됐는지 설명한다. 하라리의 핵심적인 통찰은, 집단이 공유하는 허구적인 이야기가 사회를줄곧 하나로 묶어 왔으며 지금이라고 해서 전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다. 단지 종교나 미신이 차지하던 자리를 진보나 이성 같은 가치가 대체했을 뿐이다.

과실을 인정하는 분위기 속에 협력적인 지원망을 형성하는 것이다. 하지만 서구권의 부유한 국가가 지구온난화의 고통을 가장 심하게 겪을 가난한 국가에게 기후 부채를 지고 있다고 시인한 적은 아직 거의없다.

문제의 규모가 거대하다는 사실, 문제가 모든 면을 아우른다는 사실, 달리 준비된 대안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 문제를 외면할 때 얻는 이득이 탐스럽다는 사실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서구권 선진국의 전문직 중산층이 점차 쌓여 가는 불만에도 무의식적으로 현실을 합리화하게 만드는 기초적인 근거가 됐다.

추측건대 이런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사람들이 꿀벌에 관한 허위 정보를 즐기기 때문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위기를 우화로 다루는 것이 어떤 식으로인가 안심이 되기 때문이다. 마치 우리가 의미를 통제할 수 있는 이야기 속에 문제를 가둬 두려는 것과 같다.

사실 온난화는 이미 인간의 삶에 크나큰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에 기후변화의 늘어나는 공세를 확인하기 위해 굳이 멸종위기에 놓인 동물이나 위험에 빠진 생태계 등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릴 필요가 없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얼음 조각 위에고립된 북극곰 이야기나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산호초 이야기를 보며 슬퍼하는 등 애써 주의를 돌린다. 우리는 기후변화를 우화로 다룰 때면 우리의 목소리를 투영하지 않는 이상 입을 다물고 있는, 그리고 우리 손에 죽어 가고 있는동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기 좋아하는 것 같다(에드워드 윌슨은 2100년까지 그중 절반이 멸종되리라고 추정한다). 19 오늘날 우리는 기후변화가 인간의 삶에 미치는 심대한 영향을 직접 경험하고 있음에도 동물에게 주의를 돌린다. 존 러스킨JohnRuskin이 남긴 ‘감상적 오류pathetic fallacy‘라는 표현으로 그 이유를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다. 자신의 책임을 외면하는대신 짧게나마 동물의 고통에 공감만 하면 된다는 점에서 동물에게 감정이입하는 편이 이상할 만큼 쉽게 느껴지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손으로 직접 폭풍을 일으켰고 지금도 매일 그러고 있지만 오히려 무기력한 태도를 학습함으로써안도감을 얻으려 한다.

실제로 기후 종말을 묘사하는 영화를 조사한 한 연구에 따르면 대다수 영화가 기업의 탐욕을 겨냥하고있었다. 하지만 전 세계 탄소배출량에서 운송업과 공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40퍼센트 미만이라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더 이상 기업에 모든 책임을 부과하고 끝낼 문제가 아니다. 차라리 기후변화에 관해 잘못된 정보를 퍼뜨리거나기후변화를 대대적으로 부인하는 기업이라면 충분히 악당이라고 부를 만하다.

미국 이외의 국가 역시 탄소 배출 문제에 늦장 대응을하고 있고 실질적인 정책 변화를 강하게 거부하는 상황 속에서 부인주의적인 태도는 문제 축에도 못 낀다. 물론 화석연료 사용에 기업이 미치는 영향은 실재한다. 하지만 타성에 젖어 단기적인 이익을 좇고 기호를 포기하지 않으려는전 세계 노동자 및 소비자의 태도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이들 가운데는 다 알면서도 이기심을 부리는 사람부터 시작해아예 무지한 사람은 물론 나태해 보일지언정 현실에 안주하는 본능에 충실할 뿐인 사람까지 책임 수준이 다양한 온갖사람이 포함된다. 이를 이야기에 담아낼 수 있을까?

하지만 기후변화가 전쟁의 원인이 아니라는 말은 어디까지나 기후변화가 허리케인의 원인이 아니라는 말과 맥락을같이한다. 다시 말해 기후변화가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을 높이는 것은 사실이며 따라서 원인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은 언어상의 구분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기후변화가 특정한 나라에 분쟁이 일어날 가능성을 불과 3퍼센트 올린다 하더라도 간과할 문제는 아니다. 전 세계에는 거의 200개의 나라가 존재하므로 실질적으로는 기후변화에 따라 전쟁이서너 번 내지는 대여섯 번 더 발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10년 동안 일부 전문가들은 기온과 폭력성 사이의 모호한 상관관계를 수치화하기도 했다. 예컨대 기온이 0.5도 상승할 때마다 무력 분쟁이 일어날 가능성은 10~20퍼센트증가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얼음은 냉동된 역사이기도 하며 그중 일부는 얼음이 녹아내리면 다시 시작될 수도 있다. 현재 북극의 빙하에는 지난 수백만 년 동안 공기 중에 퍼진 적이 없는 질병이 갇혀 있다. 인류가 한번도 마주친 적이 없는 질병도 있다. 그런 인류 역사 이전의 질병이 얼음 밖으로 나오면 오늘날 우리의 면역 체계는 대응하는 방법조차 모를 것이다.

기온이 4도 증가한 세계에서는 지구환경 곳곳에서 수많은 자연재해가 들끓다 보니 사람들이 자연재해를 그냥 ‘날씨‘ 라고 부를 것이다.

해수면 문제에만 지나치게 집중한 나머지 고열, 이상기후, 전염병 등 다음 세대를 공포에 질리게 할 다른 온갖 기후 재앙을 독자의 눈앞에서 치워 버린 것이다. 하지만 해수면 상승 문제가 이미 우리에게 친숙하다 해도 기후변화가 초래할 재난의 중심에 두기에 무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가까운 미래에 해수면이 급격히 상승하리라는 전망에 이미 너무나도 많은 사람이 익숙해졌다는 사실은 광범위한 핵전쟁을 피할 수 없다는 체념만큼이나 침울하고 당황스러운 일이다. 차오르는 바닷물이 불러일으킬 참상의 규모 역시 핵전쟁만큼이나 심각하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인류가 얻은 교훈은 암울하다. 지구온난화가 문제로 인식된 지 70~80년이 지났지만 우리는 문제에 대처하고 스스로를 보호하기는커녕 에너지 생산 및 소비 방식에 이렇다 할 조정을 가하지 않았다. 너무나 오랫동안 일반인 관찰자들은 과학자들이 기후를 안정시킬 수 있는 방안에 대해 논의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세상이 그에 맞춰 변화하리라고 결론 내렸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그 방안들이 저절로 실현되기라도 할 것처럼 사실상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시장 논리에 따라 더 싸고 범용성 있는 녹색에너지가 출현했지만 바로 그 동일한 시장 논리에 따라 에너지 혁신은 이윤 목적으로 이용당했을 뿐 탄소배출량은 계속 늘어만 갔다. 정치권에서는 세계적으로 방대한 결속과 협력을 이룰 듯한 움직임을 보였지만 결국에는 얼마 지나지 않아 약속을 저버렸다. 기후변화 운동가 사이에서는 오늘날우리에게 기후재난을 피하는 데 필요한 도구는 모두 주어져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주 흔한 일이 됐다. 물론 맞는 말이다. 하지만 정치적 의지는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쓸 수 있는 하찮은 요소가 아니다. 주어진 도구로 말하자면 우리는 이미 빈곤, 전염병, 여성 학대 같은 문제를 해결할 도구도 가지고 있다.

2019년에 한 싱크탱크에서는 인터넷 포르노 사업이 초래하는 탄소량이 벨기에가 초래하는 탄소량에 맞먹는다고 계산하기도했다.

우리가 충분히 ‘탈공업화 사회‘로 넘어왔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직도 온갖 일상용품이 화석연료를 태워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을지도모른다.

스스로에게 솔직해지자면 세상은 한정된 자원을 두고 제로섬 경쟁을 벌이는 전쟁터나 마찬가지이므로 자신이 유리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고 운 좋게 출생복권에도 당첨된 이상 앞으로 세계에 무슨 일이 벌어지더라도 결국 상대적으로는 늘 그랬듯이 승자가 되리라고 믿었을지도 모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는 평등을 외치고, 갑질과 차별에 분개한다.
그러나 실상은 자신이 무시받고 싶지 않다는 뜻이지내가 다른 이를 무시하지 않겠다는 뜻은 아니다.- P229

어느 방송에서 흙수저, 금수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당시 워낙 이슈였던 터라 어딜 가나 그에 관한 이야기를 했을 때다.
그중 한 패널이 우리가 식당에 들어갈 때숟가락을 보고 식당을 고르는 게 아니듯숟가락이 중요한 게 아니라 무엇을 떠먹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니 숟가락에 연연하지 말고 자신이 원하는 걸 떠먹으라는 이야기였다.
물론 멋진 비유이자 위로였고, 선한 마음으로 이야기한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흙수저, 금수저에 대한 이야기는진짜 숟가락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 본질은 세습 자본주의에 있다.- P197

우정의 기초와 세상에 대한 신뢰를 다져야 했던 그 시절,
우리는 더 좋은 대학, 더 높은 성적을 위해경쟁적 대인관계를 독려 받았다.
그건 타인을 신뢰하는 대상이 아닌 경쟁하는 대상으로 바라보게 했고,
우리의 공동체 의식을 말살시키며 사람과 세상에 대한 신뢰를 훼손시켰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초집단주의 사회임에도
OECD의 ‘공동체 지수’도 ‘사회적 관계‘도 모두 꼴찌를 차지했다.- P168

사회가 개인을 통제하는 수단으로개인주의 사회가 주로 개인의 죄책감‘을 사용한다면,
집단주의 사회는 주로 ‘수치심‘을 사용한다.
죄책감이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이라면,
수치심은 타인을 통해 바라본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이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통제하며, 끊임없이 타인을 의식하도록 요구받는다.
역지사지라는 가르침 속에, 타인의 시선에서 자신의 행동을 점검하고,
그 결과 "보란 듯이 잘 살겠다"
"남부끄럽지 않게 살고 싶다" 같은 쓸데없는 말을 하는 거다.- P164

당시에는 개인의 감정을 극단적으로 억압하고도리라는 이름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 미덕이었고,
이것은 아무리 울화가 치밀어도 화합을 위해희생을 강요하는 통치 이데올로기였다.
나의 어린 시절에도 미덕이 있었는데 바로 근면 성실이었다.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몸이 아프거나 다쳐도빠짐없이 학교에 가면 개근상장을 줬고,
칠판 위에는 ‘근면 성실‘이라는 급훈이 쓰인 액자가 걸려있었다.
왜 그랬을까?
근면 성실을 최고의 미덕으로 배운 건우리 사회가 제조업 기반의 사회였던 것에 있다.
제조업에서는 창의력이나 개성보다근면함과 성실함이 가장 필요한 자질이었으니 말이다.- P85

내 동생은 늦둥이다.
막냇동생은 부모님의 남은 숙제랄까.
엄마는 동생이 자리 잡고잘 사는 걸 봐야 자신도 행복할 것 같다고 말했다.
부모 마음이 다 그렇다 할지라도 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나는 엄마가 행복하면 좋겠는데,
엄마가 행복해지기 위해선 동생이 행복해야 한다.
그 말은 엄마의 행복이 자신의 통제권 밖에 있다는 뜻이다.
그건 자기 행복의 결정권을 문밖에 두고
누군가 초인종을 눌러주기를 기다리는 일이다.- P25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건 싫다." 라고 딱 부러지게 말하기가 무서운 거야. 걔들한테는 지금의 생활이 주는 안정감과 예측 가능성이 너무나 소중해.- P121

"다들 이렇게 살아. 다른 회사도 그래. 요즘 저녁 시간 전에 퇴근하는 사람이 학교 선생 말고 누가 있냐? 너도 취직하면 알 거야."
"호주에선 안 그래."
내가 반박했지.
"호주에서도 그럴걸. 너도 호주에서 제대로 된 사무직 일은 해 본 적 없잖아. 호주에서도 기업 임원이나, 펀드매니저나,
변호사, 의사 같은 사람은 정신없이 바쁠걸?"
그러니까 바꿔 말하면 기자나 기업 임원이나 펀드매니저나변호사, 의사 같은 ‘진짜 직업들이 있고, 그 아래 별로 중요하지 않은 다른 직업들이 있다는 거지. 내가 직장에 다니더라도그게 토플 문제지나 조선 업체 정보지를 만드는 일이라면 지명이는 아마 그걸 ‘진짜 직업‘으로 인정하지 않을 거야. 나는그냥 살림하는 여자인 거지. 그런 건 싫어.- P159

"만약 남극을 지나가던 사람들이 파블로를 잡아다 헬리콥터에 태워서 하와이에 내려다 줬다면…… 파블로는 그래도행복했을까?"
내가 물었어.
"어쨌든 하와이에 갔잖아."
지명이 고집했지.
"똑같이 하와이에 왔다고 해도 그 과정이 중요한 거야. 어떤 펭귄이 자기 힘으로 바다를 건넜다면, 자기가 도착한 섬에겨울이 와도 걱정하지 않아. 또 바다를 건너면 되니까. 하지만누가 헬리콥터를 태워 줘서 하와이에 왔다면? 언제 또 누가자기를 헬리콥터에 태워서 다시 남극으로 데려갈지 모른다는생각에 두려워하게 되지 않을까? 사람은 가진 게 없어도 행복해질 수 있어. 하지만 미래를 두려워하면서 행복해질 순 없어. 나는 두려워하면서 살고 싶지 않아."- P160

내 고국은 자기 자신을 사랑했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그자체를, 그래서 자기의 영광을 드러내 줄 구성원을 아꼈지. 김연아라든가, 삼성전자라든가. 그리고 못난 사람들한테는 주로 나라 망신‘이라는 딱지를 붙여 줬어. 내가 형편이 어려워서 사람 도리를 못하게 되면 나라가 나를 도와주는 게 아니라 내가 국가의 명예를 걱정해야 한다는 식이지. 내가 외국인을 밀치고 허둥지둥 지하철 빈자리로 달려가면, 내가 왜 지하철에서 그렇게 절박하게 빈자리를 찾는지 그 이유를 이 나라가 궁금해할까? 아닐걸? 그냥 국격이 어쩌고 하는 얘기나 하겠지. 그런 주제에 이 나라는 우리한테 은근히 협박도 많이했어. 폭탄을 가슴에 품고 북한군 탱크 아래로 들어간 학도병이나, 중동전쟁 나니까 이스라엘로 모인 유대인 이야기를 하면서, 여차하면 나도 그렇게 해야 된다고 눈치를 줬지. 그런데내가 호주 와서 이스라엘 여행자들 만나서 얘기 들어 보니까얘들도 걸프전 터졌을 때 미국으로 도망간 사람이 그렇게 많았다더구먼. 학도병들은 어땠을 거 같아? 다들 울면서 죽었을걸? 도망칠 수만 있으면 도망쳤을 거다. 뒤에서 보는 눈이 많으니까 그러지 못한 거지.- P171

자기 행복이 아닌 남의 불행을 원동력 삼아 하루하루를 버티는 거야.집 사느라 빚 잔뜩 지고 현금이 없어서 절절 매는 거랑 똑같지 뭐.
어떤 사람들은 일부러라도 남을 불행하게 만들려고 해. 가게에서 진상 떠는 거, 며느리 괴롭히는 거, 부하 직원 못살게구는 거, 그게 다 이 맥락 아닐까? 아주 사람 취급을 안 해주잖아.- P18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셰셀 씨는 겉보기와 달리 야심 때문에 옹졸해졌다. 능력는 자들에게는 야심을 품고 그것을 실현시킬 수 있는 특권이있다. 하지만 소심한 사람들은 야심을 겉으로 드러내놓고 그것을 이루지 못해 남들의 조롱을 받기 마련이다. 셰셀 씨는 능력 있는 자의 직선 코스를 밟지 못했다. 그는 하원의원을 두번 지냈고 선거에서 두 번 낭패를 보았다. 예전에는 국장이었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성공과 패배를 이어서 맛보면서 그의 성격은 망가졌고 좌절된 야심가가 그렇듯이 모질어졌다.- P52

젊음은 힘을 발휘하는 데서 기쁨을 느낀답니다. 그러다 보면 다른 사람들에게 속기 전에 자기 자신에게 속게 된답니다. 그 열정은 좀 아껴두세요.- P110

그분은 자신에게 굽실거리는 자는 더 짓밟는 분이고 자기에게 맞서는 자의 자존심에는 감탄하는 분이랍니다. 그분은 강철 같은 분이에요.- P112

친구여, 교활함을 이 세상 처세술의 으뜸으로 삼는 사람들도 많지요. 사람들을 이간질해서 그 틈새에 자기 자리를 마련하려는 거지요.- P113

사람은 물질과 정신으로 이루어져 있다. 동물적인 본성이그 안에서 다 발휘되고, 천사의 성질이 그 안에서 시작한다. 그래서 우리는 천사가 보여주는 미래와, 동물이 되새겨주는 본능 사이에서 갈등을 느낀다. 육체적인 사랑과 신성한 사랑사이에서 갈등을 느끼는 것이다. 어떤 이는 덧없이 지나가는욕정을 충족시키기 위해 온갖 여성들 사이를 헤맨다. 반면에어떤 이는 단 한 명의 여성을 이상화시켜서 그 안에 전 우주를 담는다. 어떤 이들은 물질적인 쾌락과 정신적인 쾌락 사이에서 우유부단하게 방황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육체에 정신성을 부여한 후, 결코 육체가 줄 수 없는 것을 그 쾌락 속에서 찾기도 한다.- P16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