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보다 낯선 오늘의 젊은 작가 4
이장욱 지음 / 민음사 / 201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세상에 숨 쉬고 사고하는 모든 것들의 수 만큼 서사가 존재하기에, 가끔 세상을 바라보면 그 거대한 세계의 질량이 주는 압박감으로 숨이 막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같은 공간에 같은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마저도 각자 다르게 생각하고 감정을 느끼고 있는 것을 읽다 보니 그런 압박의 감정들이 몰려왔다. 인물들의 감정이 교차하는 복잡다단한 분위기에 끌려오다 소설의 말미에 뒤집어지는 반전과 이야기의 장치들이 나를 교란시켜 다시금 복잡한 기분에 휩쓸리게 하는 소설이었다.
이장욱의 소설처럼 세상을 이해해야겠다. 그의 소설처럼 세상을 바라봐야 겠다.

나는 그 방의 공기를 조금씩 호흡하며 주어진 시간을 통과할 것이다. 주인이 아니라 과묵한 손님이 되어서 하루하루를 묵어 갈 것이다. 그것이 내가 가진 희망의 전부라고 해도 좋았다. 희망은 사소하면 사소할수록 좋았다. 그런 희망은 사람을 좌절시키지 않고, 배신감에 치를 떨게 하지않고, 죽게 만들지 않으니까.- P17

나는 내 안에서 발생하는 감정들에 이름을 붙이는데 익숙하지 않다. 그것들은 언제나 형태를 갖추지 않고 흘러가니까. 사건이나 현상에 즉시 반응하는 것이 내겐 매우 어려운 일이다.- P21

상대에 대해 예의 바른 거리를 만들어 내는 미소 말이다. 염의 입에서 나온 게 욕설뿐이었다면아마도 끝까지 평정을 유지했을 것이다. 평정을 잃는다는은 곧 실패를 의미하니까. 실패한다는 것은 이 세계의 주변부로 밀려난다는 걸 의미하니까.- P36

애도란 산 자들의 것이라고 말한 이가. 죽음이 뚫어놓은 구멍을 메우기 위한 산 자들의 의식이라고 말한 이가. 그렇다. 그것은 삶을 지속하기 위해 수행하는 인간의 제도에 불과하다. 나는 애도하는 인간이 되고 싶지 않다. 나는 그 구멍속으로 나 자신을 들이밀고 싶은 인간이다. 그 구멍이 나를 잡아먹을 때까지. 그 구멍이 나를 완전히 수긍할 때까지.
A가 죽었다. A가 시신으로 변했다. 삶이 제거된 하나의 물질로 바뀐 것이다. 혈관의 피와 뇌의 운동이 정지한 것이다.
그 물질을 애도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죽음을 완성하고 승인해서, 죽은 자의 삶을 이 세상에서 완전히 떼어 내겠다는 뜻 아닌가. 시신의 세계에서 보면 추모라는 형식 자체가이미 모욕이 아닌가. 이미 나 자신이 그 모욕의 일부가 아닌가.- P53

보수 언론이 제작한 녹음 테이프를 튼 기분이었다. 노동 착취로 성장한 국가가 여전히 그 착취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논리. 일하는 자들의 고통을 끝없이 요구하는 성장의 논리, 철저하게 동물화된 약육강식의 세계. 수긍할 수 없는 지배와 피지배의 세계……… 자본주의라는 제도에 미칠 듯한 적의를 느끼던 시절의 감정이 나를 엄습했다.- P54

터널은 약간 흰 채 뻗어 있었다. 출구가 보이지 않았다. 우리나라에 이렇게 긴 터널이 있었나…… 나는 중얼거렸다. 길고, 어둡고, 정지할 수 없는 터널이었다. 터널이란 참으로 알맞은 인생의 비유가 아닌가, 나는 생각했다. 입구가 있고, 출구가 있다. 입구와 출구의 사이는 일직선이다. 샛길이나 갓길 같은 것은 없다. 말하자면 출생이 있고, 죽음이 있을 뿐이다. 샛길이나 갓길 같은 것은 없다. 인생은……… 터널이다.
상투적인 비유다.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상투적인 비유만큼 위대한 것이 있을까? 예술적인 척, 독창적인 척하는 것들의 허세보다는, 차라리 상투적인 것들의 몰취미가 아름답지 않은가?- P103

그 유명 감독들의 영화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감독들을 좋아한다고 말함으로써 취향을 과시하는 것뿐이라고 나는 단정했다. 꼬일 대로 꼬인 상징들로 가득한 영화들, 롱 테이크를 쓰면 예술이 되는 줄로 착각하는 영화들, 인생의 지루함을 닮는 게 리얼리즘인 줄 아는 영화들….. 일뿐이라고 생각했다.- P109

이런 이야기를 A에게 하고 있다니. 내 웃음 끝에서 쓴맛이 배어 나왔다. A는 학점이니 연수니 토익이니……… 그런 것들과무관한 친구였다. 짐짓 그런 척하는 게 아니라는 건 그녀의눈빛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이 세계의 논리 바깥에있었다. 그런 A가 나를 따라 웃었다.- P14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보편적 정신 오늘의 젊은 작가 18
김솔 지음 / 민음사 / 2018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상의 진리를 탐구하기보다는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여 답을 구해야 하는 한국식 교육방식에 익숙한 작가가, 독자에게 집필자의 숨은 의도를 파악하여 소설의 의미를 구하라고 요구하는 듯한 불친절한 소설....
마르케스를 좋아하는 독자로써 약간의 반가운 대목이 있긴했지만....

화학과 물리학에 조예가 깊은 직원들이 물질들을 적절히 섞고 화학반응을 일으켜서 시료의 절반을 만들어 내면, 나머지 절반은 문학과 철학, 언어와 역사를 전공한 직원들이 의미와 논리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분업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우려한 바대로, 하나를 없앨 때마다 두 개 이상으로 늘어나는 변수들과 이들을 조합할 때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논리적 모순 때문에 실험은 매번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P24

그래도 우연이 역사 속에서 얼마나 위대하고 많은일들을 처리해 왔는지 잘 알고 있는 직원들은 상투적인 결말을 기대하면서 자신의 업무를 묵묵히 처리했으며 희생의 이타적 목적을 점점 깨달아 갔다. 하지만 현재는 더 이상 질문을 생산하는 시대가 아니라 오히려 답변만을 소비하는 시대이기 때문에, 질문이 불어날수록 불안감도 함께 커졌고, 결국 그 무의미한 질문들이 회사를 절멸시켰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P26

농사나 사냥이 그러하듯이,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순간을 기다려 감사하고 수긍하는 것이지, 극복하고 개선하는 게 아니라고 그는 생각했기 때문이다.- P7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보통 별 볼일 없는 작자들이 글을 쓰기 시작하는 초보적인 레파토리는 비슷할 것이다. 뭔가이슈가 되는 주제나 단어에 대한 사전적인 정의를 배껴오는 것으로 말머리를 시작한다. 주제와 유사한 과거의 사례나 신문기사를 인터넷에 검색하여 자료를 긁어 모으고 편집하여 분량을확보한다. 논점에서 벗어난 소재라 할지라도 아주 미세한 정도의 교집합이 존재하면 주제의당위성을 무시하더라도 일단 가져와서 억지스럽게 끼워맞춘다. 분량의 확보는 어마어마한 수치의 폭격으로도 채울 수 있다. 통계적인 수치를 디자이너의 능력을 빌려 그래프로 나타내고한 자 한 자 읊어대기까지 하면 피상적이고 보나 마나 한 책을 완성할 수 있다.
점점 분량이 늘어나면 흡족해지지만 정작 이야기의 중간을 넘어가 자신이 써야 하는 주제에대 제대로 된 안목을 가지고 새로운 해석을 내놓을 수 없다는 걸 알게 된다. (사실 시작부터알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구체적인 과거 사례와 사전적 정의를 가지고 왔지만, 추상적이고 피상적이고 허망한 문장으로 결론에 이르려 애쓰거나 앞으로 생각해볼 문제라며 미래 독자들에게 책임을 떠넘기기도 한다. 할 수 있는건 결국 디자인과 편집에 공을 들여 표지를 예쁘게 뽑아내는 것이지만 이건 저자의 능력을 가늠하는 분야는 아니다.


그냥 공짜로, 전자책에 익숙해지기 위한 시도정도로 괜찮다.

미국 의학협회는 의료 종사자들의 악수를 금기한 바 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 CDC의 통계에 따르면, 병원에 입원한 환자100명 중 4명 정도가 의료 종사자의 손을 통해 옮겨진 세균에 감염되는데, 이로 인한 사망자만 연간 7만 5000명이었다. 병원의환자와 의료 종사자가 인사한다고 악수하다가 죽는 사람이 매년 7만 5000명이라는 건, 병원 외에 일상에서 악수하다가 손을 통해옮겨진 세균에 감염되어 병에 걸리거나 죽는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매년 10만여 명이 악수 잘못해서 생명의 위협을 받는 셈이다.
이건 미국만의 숫자니까, 전 세계로 확장시키면 말도 안 되는 엄청난 숫자의 사람들이 악수 때문에 죽는 것이다.

1979년 동독 수립 30주년 행사에서 소련 공산당 서기장 브레즈네프와 동독 공산당 서기장 호네커의 형제 키스 장면은 역사적장면 중 하나다. 1989년 동독 수립 40주년 행사에선 고르바초프가 호네커와 형제 키스를 나눴다. 사회주의 국가들이 건재했던1960년대에서 1980년대 중반까지의 냉전시대 때 사회주의 국가 정상들끼리 나눈 사회주의 형제 키스나 포옹 사진이 꽤 남아 있는데, 이것이 광고에 패러디되어 쓰이기도 했다.

우린 연결되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를 살고 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초연결 시대에 단절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 사람과의 연결에서 오는 불필요한 갈등과 오해, 감정 소모, 피로에 대한 거부다. 하루종일 사람을 대면하지 않고도, 말 한마디 꺼내지 않아도 불편하지 않을 수 있는 세상이다.

불편한 소통 대신 편한 단절

이제는 더이상 사람이 사람을 직접 보며 감시하고 관리할 필요가 없어졌다. 기술적 진화와 산업적 진화 때문이다.
우리의 사무실 공간이나 일하는 방식은 우리가 임의로 정한 게 아니다. 기술적·산업적 진화에 사회적 진화가 더해져서 만들어진 산물이다. 그때는 맞았지만 지금은 틀린 것이 있을 수밖에 없다. 미국의 기계공학자이자 산업공학자엔지니어 프레드릭 테일러 Frederick Winslow Taylor, 18:56~1915는 ‘과학적 관리법 Scientifie Management‘을 창안해 공장 개혁과 경영 합리화에 큰 기여를 했다. 그에 의해 완성된 테일러리즘 Taylorism(1904)은 사무실 공간 설계를 할 때, 업무의 효율적진행과 함께 쉬운 감시 감독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탁 트인 넓은 공간에 책상들이 직급별로 일렬로 배치된다. 동일공간 내에서 가장 많은 책상을 밀집시켜 배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고, 초기 사무실은 대부분 이런 형태였다.

코로나19는 누굴 만나고, 어떤 모임에 나가고, 어떤 활동을 하는지 등 평판 관리와 투명성에 대한 자각에 좀더 눈뜨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낯선 상대의 호의나 오지랖에 대해 더 경계할 수 있게 되었고, 자신의 행동에서도 남들이 알았을 때 문제가 될 것에 대해 더 조심하게 될 가능성이 커졌다. 유흥업소에서 접대받고, 뇌물 주고받고, 짬짜미로 계약하는 것에 대해 너무 오랫동안 관성으로 받아들이다 보니 이것이 문제라는 자각이 부족했던 이들도 생각의 변화가 생길 수 있다. 접대 없이는 비즈니스가 안 된다는 한국적 마인드를 깨는 데 사회적 투명성과 함께 언컨택트 트렌드도 일조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직접 대면하면서 몰래 하던 것과 달리, 언컨택트의 방식으로 하게 되면 근거가 다 남는다. 가장 대표적인 언컨택트가 캐시리스 다.

여전히 이런 구조를 유지하는 업종들도 있다. 사실 사람들이 앉아 있을 때 그들을 감시 감독하고 제어하는 것이 훨씬 쉽다. 사무실 내의 모든 사람들이 일하는 모습을 한눈에 파악하기도 쉽다. 현대적 사무실의 책상과 의자 배치는 이런 의도가 담긴 채 만들어졌고, 이 방식은 전 세계 기업의 사무실에 가장 많은 영향을 주었다. 이후 1960년대 독일식 사무 공간‘이라는 뜻의 뷔로란트샤프트 Bitrolandschetit독일을 중심으로 유럽에서 유행했는데, 파티션도 일부 도입되고 프라이버시 보호에도 신경 쓰는 등 테일러리즘의관료적이고 감시 감독하는 환경에서 조금 벗어나는 흐름을 만들어냈다. 1980년대 들어 개방된 공간에서 벗어나 파티션도 많아지고, 아예 독립적인 칸막이로 나눠진 구조가 확산되었다. 1990년대 들어 컴퓨터가 사무실 책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면서 사무 공간 구조도 변화하게 되었고, 2000년대 들어서는 실리콘밸리의 IT 기업들이 개성적이고 독특한 사무 공간을 만들어내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재택근무와 원격근무가 더 보편화되면서, 매일 출근하는 게 아니다 보니 상시적 자기 책상이 있는 사무 공간에서공용으로 쓰는 사무 공간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전통적인 대학들은 그동안 오프라인에서 넓은 캠퍼스와 수많은 건물을 지으며 부동산 가치를 자산으로 삼고, 스포츠팀을 운영하며, 수익사업과 투자에 적극적이었다. 대학이 학생들을 위해 존재하는 건지, 대학의 비즈니스를 위해 학생들이 존재하는 건지에 대한 문제 제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대학의 중심이 교육이 되기 위해선 오히려 온라인 기반의 비대면 모델이 대안이 될 수도 있다.
이는 미네르바 프로젝트 Minerve Project의 설립자이자 CEO인 벤 넬슨 Ben Neson이 미네르바 스쿨을 만들기 위해 가졌던 문제의식이라고 밝힌 내용들이다.

비대면 주문 자체가 핵심이 아니다. 비대면이라는 것은 사람은 빠지지만 그 자리에 애플리케이션과 데이터가 들어간다는 것을의미한다. 이는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을 마케팅에 적극 활용해야 경쟁력을 가지는 시대에선 중요한 자원이 된다.

중요한 건 이들 모두 AI 스피커 사업을 하고 있다는 것이고, 온라인 광고 시장에서 개인화는 가장 중요한 기반이다. 결국 이들의광고 수익은 우리의 사생활이자 개인정보를 활용해 얻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로 인해 벌었지만 우리에게 나눠주진 않는다. 엄밀히 말해 여기서 우린 데이터 노동을 했다. 우리가 뭘 샀는지, 뭘 봤는지, 뭘 좋아하는지, 뭘 관심 있어 하는지등 데이터의 흔적을 남겼고, 그 과정에 시간과 돈을 투자했다. 그래서 이런 데이터 노동에 대해 수혜를 본 기업이 돈을 지불해야 한다는 주장도 계속 제기된다. 인공지능 시대가 되면 데이터 노동의 가치를 더 인정해줘야 한다는 견해도 나오지만, 기업으로선 이런주장에 저항할 수밖에 없다. 기존에 공짜로 활용하던 우리의 사생활과 데이터 노동에 돈을 지불하기 시작하는 건 그들로선 끝까지저항해서라도 버틸 이슈이기 때문이다. 이건 기업과 개인의 문제가 아닌 우리 사회와 공동체의 문제다.

사회 양극화, 경제 양극화는 단지 부자와 서민의 차이가 커진다는 의미가 아니다. 사회 불평등의 심화를 얘기하고, 중간계층이 사라지는 것을 얘기한다. SF영화에서 다룬 미래 사회의 모습에서 경제적·사회적 지위가 만든 사회적 신분에 따른 거주 지역의 분리다. 사회적으로 배제되는 계층은 대부분 가난하고 소외된 계층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실 난 ‘다른 사람’의 흡입력을 잊지 못한다. 그때의 카타르시스라고 해야하나....조금은 친절했던 ‘다른 사람’의 전개와는 다르게 살짝 난해하거나 두 번 읽어봐야 숨어있는 은유적인 장치들을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단편은 좀 어려웠다. 한창 흥미진진하게 빠져들다가도 해결하지 못한 결말을 섬뜩하게 마주하면 뒤의 친절한 작품해설을 보며 이해하려는 노력도 들여야 했다.

조금 아쉬운 점이라면 남성독자들에겐 (폭력과 무능함의 단계를 넘어서는) 깊은 자기반성과 성찰의 시간을 가질 수 없다는 점이다.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남자캐릭터는 비중도 없거너 이미 너무 쉽게 결론이 나와 버리는 평면적인 인물들이다. 여성의 서사를 위해 깔아버리는 배경이 아니라 조금 더 비중 있게 다뤄 주길 바라면 작가의 개성을 포기하라는 요구인가...

사인본을 예약 구매해서 받아보고 한참이 지나서야 목차를 펼쳐보니 이미 읽은 단편이 3개나 있었다. 내가 그동안 독서를 그렇게 열심히 해왔나 싶었다. 7편 중 거의 절반이 봤던 작품이라니.

얼마 전 씨네21에 테일러 스위프트의 노래로 컬럼을 기고한 걸 본적이 있어 테일러의 팬이라는 짐작은 했는데, 표제작 화이트호스가 그렇게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었는지는 소설을 보고서야 알았다. 백마라니, 대체 강화길작가의 ‘백마’는 어떤 모습의 ‘백마’일까 싶었는데, 결과적으로 내게는 테일러 스위프트의 그 ‘백마’라는 인상이 좀 더 깊게 남았다.(다시 읽어야 겠다.....)
테일러 스위프트는 미국 대중음악사에 남을 아티스트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래미 올해의 앨범의 타이틀을 두 번이나 거머쥔 아티스트. 실패하지 않는 장기간의 음악 커리어와 같은 규모의 수많은 남성편력과 스캔들을 뿌리고 다니는 헐리우드의 셀러브리티. 그런 점에서 테일러 스위프트의 존재감은 ‘화이트 호스’뿐만 아니라 ‘오물자의 출현’에서도 안착한 느낌이다. 김미진이 좀 지적으로 모자란 이미지였다면 테일러는 항상 도덕적으로 모자란 대중의 평이 따라다녔으니까. 어느 평론가의 말처럼 강화길작가는 여성이 혐오하는 것을 쓰는데 자신의 커리어를 바치고 있다는 느낌도, 테일러와 비추어 보면 테일러 역시 혐오스러울 정도의 여성들이 혐오하는 ‘짓’들을 자신의 커리어를 깎아내는 데 헌신하고 있는 느낌이랄까.
리뷰에 테일러 스위프트이야기를 길게 남기는 건 이 소설 전반에 흡수된 그 미국가수의 분위기 때문이자 작가가 다시는 그렇게 길게 쓰지 않겠다는 작가의 말에도 차지하는 분량이 커서인데, 나는 그냥 개인적으로...... 빨리 강화길작가가 테일러 스위프트의 늪에서 빠져나왔으면 좋겠다. (난 케이티 페리의 팬이라서...........) 테일러 스위프트의 피상적인 페미니즘운 그냥 본인 욕심을 채우기 위한 편파적인 당위에 불과하니까.......

하지만, 왜, 어째서.
그 무책임한 남자를 미워하는 것이, 이 미련한 여자를 사랑하는것보다 힘든 것일까.
왜 나는 항상 이 여자 때문에 미칠 것 같은가.
왜 그때 그 마음이 잊혀지지 않는가.- P73

오래전, 이 길 양쪽으로 폐가가 늘어서 있었다. 군데군데 점집이 있었다. 늙은 점쟁이들은 칠이 벗겨진 녹슨 철문을 사이에 두고 서로의 액운을 점쳤다. 그들이 진심을 감추는 순간은 돈을 들고 찾아오는 파리한 얼굴들을 마주할 때뿐이었다.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 마음에 품은 희망을 누군가에게 들켜야만 하는 사람들.- P12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독고다이 獨 GO DIE - 이기호 한 뼘 에세이
이기호 지음, 강지만 그림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이기호작가 마니아로서 지금은 서점에서 구입 할 수 없는 책을 중고서점을 통해 구입하고 탐독하였다. 이 시대의 최고의 묵직한 유머리스트답게 짧고 굵은 메시지나 유쾌한 웃음이 만선하여 정박한 느낌이다.
하지만 에세이답게 몇가지 반론하거나 대변해 주고 싶은 부분이 없지는 않았다. 이제 더 이상 ‘은’으로 불리는 원로 작가의 설화는 풀지 않겠지만, 장애체험의 의의와 목적이 체험당사자들에게 미치는 인식의 변화, 인권감수성의 변화를 설명해주고 싶지만, 그래도 이기호작가의 의도만 순수하게 받아들이면 될 일인 것 같다.

2천5백 원담배 한갑에 세금이 천백 원, 아내에게 받은 돈으로 나는 성실하게 납세의 의무를 다한다. 내가 낸 세금으로 보건복지가족부 에선 출산 장려 정책을 세우고, 그에 필요한 예산을 확보한다. 담배 피우면 일찍 죽는다고, 건강 해친다고 잔뜩 겁을 주면서, 다른 한편으론 그 담배를 팔아 출산 장려 정책을 세우는 것은, 마치 흡연자들로 하여금 어떤 부당한 식민 통치를 당하고 있다라는 자괴감을 갖게 해준다.- P23

모두 흡족한 얼굴들이다. 통과를 허락받은 자의 얼굴엔 남모를 자부심 같은 것도 엿보인다. 어쩌면, 어쩌면 말이다, 주차차단기라는 것은, 타인을 통과시키지 못하게 하는 장치가 아니라, 그 사람의 상태를드러내주기 위한 장치로서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 대기업사원들이 점심시간마다 목에 전자칩이 내장된 사원증을 자랑스럽게내걸고 밥을 먹으러 가는 것처럼 말이다. 그 사원증을 멀거니 바라보고 있는 백수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사원증이 명함이 되고, 주차차단기가 아파트 시세를 좌우하는 세상이다.- P33

"어느 시대나 좌파로 살 수 있는 인간적 소양을 가진 사람은아주 적다. 우파는 자신의 양심을 건사하는 일만으로도 건전할 수 있지만, 좌파는 다른 이의 양심까지 지켜내야 건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P35

작가란 마치적십자 회원과도 같은 것이어서, 언어에는 국경이 있지만, 세계관에는 국경이란 것이 있을 수 없다. 문학은 본질적으로 날것의 인간을다루는 장르이기 때문에, 그 안에서 국경은 무의미하다. 문학에서 국경을 의식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상품과 정치의 시각으로 예단하려는 분들뿐이다.- P53

자식 낳고 제일 조심해야 할 게 뭔지 알아? 자식핑계로 욕심 늘리는 거래. 그게 바로 자기를 잃어버리는 첫걸음이래.- P135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모든 렌즈들은 관찰이 아닌, 감시로 그 역할들을 바꿔나갔다. 사실, 그건 렌즈의 잘못이 아니다. 우리의눈이 관찰이 아닌 감시 쪽으로 변해갔기 때문에, 자연스레 렌즈 또한그 시선을 따라온 것이다.- P155

유전자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시대는 어쩔 수 없는 필연의 세계이자, 결정론의 세계이다. 모든 것이이미 태어날 때 결정되어 있다는 인식. 그러나 많은 생물학자들은 아무리 좋은 유전자를 갖고 태어났다 하더라도, 유전자가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이 더 많고, 그것들을 좌우하는 것이 바로 환경이라고 주장한다. 즉, 동일한 유전자를 가진 초파리라 할지라도, 주어진 환경에 따라 전혀 다른 모양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말씀. 그것은 나름 우리에게 힘이 되는 말이기도 하지만, 웬일인지 그리 위로가 되진 않는다.
자꾸 우리 환경 또한 필연적으로, 결정론적으로 굳어져만 가고 있다는 생각, 재단사 아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노벨상 수상자가 되기 어려워졌다는, 조금 씁쓸한 생각.- P223

지나고 생각해보니, 내가 몸담았던 조직은 노동의 질보다는, 노동의 충성심을 더 높이 샀던 것 같다. 그리고 이 땅의 많은 조직들 또한 그것을 더 간절히 원하고 있다는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 그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거대한 병영국가에서 살고 있다는 뜻이다.- P226

내 청춘의 대부분을 흘려보낸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부끄러웠다. 등록금과 세월을 바친 만큼, 내 지식이, 내 의식이 한 뼘쯤이라도 성장했는가, 자문해보면 고개가 절로 숙여지고 만다. 내 공부라는 것이, 학문에 온전히 바쳐진 것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에 의해 좌지우지되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아둔한 머리로 대학원에 진학한 것 역시 돌아보니, 어떤 두려움 때문이었다. 남들에 비해 뒤처진다는 두려움과, 사회에 안정적으로 연착륙하길 바라는 욕망, 그 마음이 늘 학문보다앞섰다. 그러니 근래 말이 많이 나오는 학력 위조에 대해서도 나는그리 할 말이 없다. 졸업장을 갖는다 해서 학력 위조에서 자유로운가? 너는 그래 대학을 나온 사람으로서, 얼마나 대학을 나온 사람처럼 행동했는가? 대학에선 과연 무엇을 배웠는가? 그 질문들에 대해나는 묵묵부답, 그저 고개를 떨굴 뿐이다. 결과의 위조 못지않게, 과정의 위조 역시 우리가 함께 생각해봐야 할 사항이다.- P228

독서는 하나의 읽는 행위이지만, 그것은 또한 누군가와의 대화 행위이기도 하다. 지은이가 16세기 사람이든, 19세기인물이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밀담을 나누는 것, 그래서 그 안에서작자와 나 사이의 차이와 합일을 느끼는 것, 그것이 바로 독서 경험이다. 한데, 그 책들을 누군가 골라주면, 대부분의 경우 대화가 아닌, 강요가 되고 만다. 그러니 우리는 책을 고를 때 실패를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실패 또한 하나의 대화이니, 그것이 타인의 강요보다는 훨씬 낫다. 실패들 많이 하시길.- P268

장애인 체험 학습이란 것이 있다. 아이들에게 안대와 지팡이를 주고 몇백 미터쯤 걸어보게 하거나, 짝을 이뤄 휠체어를 타고 이동하는것이 주종을 이루는 프로그램이다(때가 되면 정치인들까지 우르르 몰려와 함께 체험한다). 행사를 주관하는 단체에서는, 이런 체험 학습을통해 현재 장애인들이 얼마나 고통받고 있는지, 그들의 이동권이 얼마나 열악한지, 일깨워줄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주장하는 것은 그들 자유이지만, 최소한의 예의를 갖췄으면 좋겠다. 실제 장애인들이 그런 행사를 어떤 기분으로 바라볼까, 한번쯤 깊이 생각해봤는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몇백 미터나, 반나절로 이해할 수 있는 타인의 고통 따위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대부분 자기 자신의 현재를 되돌아보고, 정체성을 확인하는 기회가 될 뿐이다. 체험의 속성이란 것이 그렇다. 타인에게 다가가는 듯한 포즈이지만, 최종 기착지는 결국 자기 자신이 되고 마는 것. 아이들에게안대를 주고, 결국 자기 두 눈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체험학습. 이것은 얼마나 폭력적인가. 농활 한번 다녀와서 농민의 현실을 다 이해했다고 말하는 것과 진배없다. 그러니 체험 학습이란, 어쩌면 포즈 학습인지도 모르겠다. 하긴, 요즘 시대에 그것보다 더 훌륭한 가르침 또한없으니.- P286

내가 저 영화 원작 소설을 얼마나 좋아했는데, 영활 보고 내가 상상한 거하고 다르면 어떡해. 친구의 반응은 좀 예민한 것이었지만, 그렇다고 전혀 수긍이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활자를 보면서 우리가 마음속으로 품었던 상상과 전혀판이한 방식으로 제작된 영화들이 그만큼 많았기 때문이다.
.......
사실, 그것은 영화 제작자의 잘못은 아니다. 그것은어찌 보면 활자가 불러일으키는 보이지 않는 상상이, 시각화라는 편협하고 왜소화된 감각으로 재편될 때 벌어지는, 별수 없는 현상이기도 하다.- P87

아버님은 입이 짧은 탓에 어머님이 하신 음식외엔 결코 수저를 대지 않는 분이시다. 어머님이 주말마다 내려가서국이다 찌개다 이것저것 해놓고 온다지만 여름이다 보니 채 이틀도가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 후엔 주로 라면을 끓여 어머니가 담근치와 함께 드신다고 했다. 글쎄 큰일이구나, 식당에 나가 이것저것사드시라고 해도 맛없다는 말만 하니, 어머님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나는, 그건 다 어머니 잘못이라고, 어머니가 아버지 식성을 그렇게 만든 거라고 말했다. 그 말이 싫진 않았는지 어머니는 내게 이런말을 했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이 나이까지 살아보니 아무것도 남긴 게 없는 거야. 나 죽으면 그저 먼저처럼 끝날 거 같고, 그래, 내 한사람만은 나를 기억하게 해야지, 한 사람만은 내가 해준 밥을 기억하게 해줘야지, 하는 마음으로 음식을 만들었더니, 그게 그렇게 됐네..
나는 괜스레 마음이 조금 울컥해졌다.- P16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