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가까스로 재구성하고 있는 지금의 나 는 어쩌면 전수진의 이야기가 모두 사실인 건 아 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거기에는 일부의 사실 과 일부의 거짓, 혹은 과장이나 왜곡이나 편집이 들어갔을 수도 있다. 완전히 꾸며낸 이야기일 가 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대부분 그렇듯 우리는 자 신의 삶을 서사화하고 그 속에서 특정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행위를 통해 이 무의미한 삶을 어떻게 든 견뎌내려고 하니까. - P109
모나리자」라면 사진으로 지겹 게 봤는데 뭘. 나는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식이라 면 이 여행은 애초부터 올 필요가 없었다. 모든 것 은 이미 사진 속에 존재하니까. 지도 위에 별을 찍 고 스트리트 뷰를 보며 온라인으로 전 세계를 돌 아다닐 수 있는 지금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그건 구글과 유튜브가 없던 1999년에도 마찬가지였다.에펠탑도, 베르사유궁전도, 모나리자와 루브르박 물관도, 센강과 대성당과 개선문도. 어쩌면 여행 이란 대상을 사진에서 구해내는 행위인지도 모른 다. 그러나 그 여행을 떠나서도 나는 다시 뷰파인 더의 사각형 안에 대상을 가두곤 했다. 그것만이 내 여행을 증명할 유일한 방법이라는 듯이. - P159
섣부른 일반화, 근거없는 비약, 내 목소리만 소중한 이기주의, 타인의 입장에 서본적도 없으면서 쉽게 단정짓기, 세상의 모든 불행은 여성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모든 이익은 남성에게 귀결된다며 억울해 하기. 사실 요즘 시대엔 철이 지난 딱하고 안쓰러운 사고방식이긴 하다. 평등이란 건 미신적 사고가 낳은 80년대생들의 무속신앙이며, 자기 자신의 아름다움을 과시하며 만족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한 걸 깨닫고 성대결에 등을 돌린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마지막에 구색을 맞추고 싶었는지 남자 편 조금 들어준다고 들고나온 카드가 사회복무요원….(에휴…개들 행복해. 사람은 누구나 죽는 소리 하는 척하지.)이런 성대결론자들은 자신의 욕구불만을 가장 상대하기 쉬운 성차별에 매몰되어 토로한다. 그래야만 진짜 감당하기 어려운 부의 격차나 인종차별과 같은 불합리함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까. 자기 위선으로부터 도피할 수 있으니까.
세상이 좋아지고 사는 게 편해져서 젊은 사람들이 힘든 일은 안 하고 쉽게 돈 벌려고 하니까 나라 경제는 점점 안 좋아지고언젠가 엄마는 크게 신경질을 내며 이렇게 대꾸했다. 덜 힘든 일이랑 더 힘든 일이 있으면 당연히 덜 힘든 일 을 선택하지. 젊은 애들이어서 그런 게 아니라 사람은 다 그런 건데 뭘 젊은 애들 탓을 해. 당신은 그랬어? 나라 경제 생각해서 힘든 일만 골라 했어? 나라 사정 안 좋은 것까지 어째서 애들 탓을 해. 이제 막 시작하는 애들이 뭔 죄가 있다고. - P15
위험을 위탁하고 떠넘기는 일은 원청과 하청 사이에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었다. 같이 일하는 공간에서도 일어 났다. 누구에게 위험을 맡길 것이냐, 누구의 휴일을 뺏을 것이냐, 하루 열두 시간 넘게 일을 시키고도 한 달에 90만 원만 주면 되는 사람이 들어왔다. 일한 만큼 돈을 벌고 싶다는 건 큰 욕심일까? 같은 기계를 미성년자 가 다뤄도, 20년 차 베테랑이 다뤄도, 사장이 다뤄도 안전한 곳에서 일하고 싶다는 건? 빚을 지면서 대학에 다 니고 싶지는 않았다. 나와 누구를 비교하고 싶지도 않았다. 박탈감이나 괘씸함, 억울한 감정을 품고 ‘세상이 좋 아졌다‘는 말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그저 좋은 세상에서 살고 싶었다. - P28
아줌마, 지형이 긍정적인 애 아니에요. 걔가 세상에서 제일 혐오하는 사람이 자기였어요. 자기를 일단 형편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하면 실패를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으니까. 죄책감 없이 자기 실패를 남의 것처럼 경멸할 수 있으니까. 자기를 깔보는 거, 그게 가장 쉬운 방법이니까. - P47
매일 똑같은 시간까지 학교에 가야 하는 것, 자리에 꼼짝없이 앉아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것, 아이들 끼리 우르르 몰려다니면서 비슷한 얘기나 놀이를 해야만 하고 그러지 않으면 이상한 애가 되는 것, 남들보다 느 리거나 못하면 잘못이 되고 놀림을 받는 것이 싫었다. 그런 걸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나를 더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학교에 다 모여 있었다 - P62
우연히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기습 시위 영상을 봤는데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라는 댓글이 달 려 있었다. 일부 사람들은 평생 이족 보행할 자신이 있다는 듯 동조했다. 영원히 늙지도, 아프지도 않을 듯이.머지않은 미래에 기어코 붕괴하고야 말 그들의 믿음이 그려졌다. 통쾌하긴커녕 내가 그들인 양 괴롭기만 했다. - P58
아끼면 존중해야지! 자기 일부처럼 대하는 게 아니라 존중하고 지지해줘야지 - P91
엄마는 중금속 얘기를 하고 싶은 게 아니야. 내 삶을 통제하고 싶은 거야 - P91
그리고 정부는 이거 못 잡아. 안 잡아. 대한민국이 자주 그래. 지킬 수 없는 규정을 발표하고 다 같이 뭉개지. 그 런 풍토를 이해하고 위선자가 되어야 하는 순간을 잘 파악하는 사람이 사회 지도층 인사가 된다. 규정을 다 지 키며 사는 사람은 경쟁에서 점점 밀려나 나중에는 아예 게임에 끼질 못하게 돼. - P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