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 제1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 3판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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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 보이지 않는 논쟁과 타협으로 사람은 결국 허무해지고 마는건가.
누군가의 고통이 수반되지 않은일이라면 노력보다는 이른 체념이 이 사회의 건강함이라 판단한다면 이런 정서에 빠져 나이브해 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공포라는 연료 없이 혁명은 굴러가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면 그 관계가 뒤집힌다. 공포를 위해 혁명이 굴러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P8

"그랬구나. 세상은 재밌어. 진실은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지만거짓말은 사람을 흥분시켜. 안 그래?"- P31

"엄마 생각 안 나?"
"너도 똑같구나. 그런 질문이나 해대고 말야. 넌 이해 못 해.
그리고 앞으로 이딴 거 묻지 마. 난 뭐 물어보는 인간들 질색이야. 질문이 많은 남자들은 숨길 게 많은 놈들이야.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면 될걸 꼭 남에게 묻는단 말야."- P39

"왜 비디오를 두려워하죠?"
그의 질문에 그녀는 눈을 크게 뜨며 맞받았다.
"두려워하다니요? 전 단지 싫었을 따름이에요."
"두려움은 흔히 혐오의 외피를 쓰곤 하죠. 자전거를 배우려면쓰러지는 쪽으로 핸들을 꺾어야 해요. 그리고 힘차게 페달을 밟으면 되죠."- P108

나이 서른이 되면 사랑도 재능인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P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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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슬픈 경계선 - 사람이 존재하는 한 반드시 그어지는
아포 지음, 김새봄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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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나 중국 남부는 휴양지로만 알고 있다. 역사책에서 그들은 잠시 서구열강에 스쳐 지나간 식민지로만 소개될 뿐. 그들의 역사에 무슨 사연과 고통이 있는지. 어떤 유구한 문명을 이루었으며. 어떤 문화가 자리 잡고 이어져 왔는지는 대부분 관심이 없다. 그나마 베트남전쟁에한국인이 사죄할 일이 남아있다라는 의식이라도 있으면 다행이려나.
어렵고 무거운 책일 줄 알았지만 다행히 기행문에 저자의 역사. 인류학에 대한 지식이 가미되어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중수질이었다. 그래도 내용이 가진 의미만큼은 가볍지 않았다. 이웃한 국가 간의 충돌과 패권 다.. 서구의 식민지배부터 근대국가로의 발돋움 과정에서생겨나는 다양한 이권 다툼과 이해관계를 걸환기 식으로라도 살펴볼 수 있어 동남아시아를 이해할 수 있는 발판이 될 것 같다.
이웃한 사람하고는 서로 비슷하기 때문에 경쟁이 붙어 서열을 만들려 하고 그 과정에서 분열하고 충돌하여 적이 되고 싸우게 된다. 먼 타지에서 온 존재들은 낯설음과 적개심으로 공포의대상이 되어 싸우게 된다. 이래저래 인간은 싸우고 사는가 보다.



중국과 베트남 - 양국은 명확한 국경선이 존재하지 않았으나 중화민국 수립.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통해 경계가 생겼다. 이러한 과정에서 베트남과 중국은 서로 위협적인 존재로 갈등관계에 놓여 있다.
중국과 캄보디아 - 중국의 주달관이 남긴 기행문을 통해 캄보디아의 앙코르제국이 널리 알려졌다.
캄보디아와 베트남 - 중국의 지원을 받은 크메르루주와 베트남지원을 받은 시아누크 정권의분쟁은 현재까지 베트남과 캄보디아 간의 원망과 증오로 남아있다.
태국과 라오스 라오스는 미얀마. 태국 등 주변국가의 침입을 품임없이 받아왔으며, 현재의국경선도 제국주의 열강의 흔적이다. 중국 원난 다이족에서 갈라져 나온 산족, 타이족, 라이족은 같은 계통의 언어를 쓰면서 복잡한 역사속에서 찾아가고 있다.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 같은 국가였던 두 나라는 말레이시아가 싱가포르를 국가에서 탈퇴시키면서 어쩔 수 없이 독립을 하게 된다. 중국계 화교인 리콴유가 통치한 싱가포르는 적은인프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척박한 환경과 절박함을 성장동력으로 강대한 도시국가를 건설했다.
오키나와 - 모란사 사건 등 타이완, 중국과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으며,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으로 미국의 관할 아래에 있던 오키나와는 미국의 식민통치에 저항하기 위해 일본이라는 정체성을 받아들인다.
타이완과 한국 - 중국과 미국 등의 강대국들의 계산으로 벌어진 한국전쟁은 여러모로 타이완에게 전쟁을 피할 수 있는 반사이익을 가져다 주었다.
미얀마의 타이완인 - 국공내전 이후 중국-미얀마 국경지대를 떠돈 국민당부대 중 일부는 미안마에 잔류하게 되어 정체성의 혼란을 겪으며 살고 있다.





˝이 땅이 식민주의자에 의해 국가 형상이 갖춰지기 전에는 어떤 모습이었는가?˝
˝그들을 원망하지 않아?˝ ˝그들도 결국은 그 구조 아래에 속한 일원에 불과해,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할 뿐이지. 그걸 어쩌겠어.˝
˝항상 그들은 절대 악이고, 오로지 우리 자신만이 ‘정의‘의 편에 서 있었다.˝

인류학이란 결국 다른 문화를 이해하려는 노력이다.

그로부터 700여 년이 흐른 오늘날, 대중 매체와 색다름을 추구하는 여행 상품들이 인류의 감각을 무디게 만들었다.
이제 우리는 잘 알지 못하는 꽃과 풀을 보며 그다지 신기해하지 않게 되었다. 책과 스크린을 통해 갖가지 조류와 동물에익숙해졌기 때문에 오늘날 여행객들은 주달관처럼 세세한 기록을 굳이 남기지 않게 되었다.

‘권력의 중심‘은 국력의 차이에 따라 바뀐다. 따라서 예전에는 국경이 선명하게 정해지지 못했지만, 오늘날세계지도는 어떤 의문도 용납하지 않는 수학 공식과 같아졌다. 국경은 절대치이고, 그 수치를 정한 이는 보통식민지 개척자들이었다. 식민통치를 당하지 않은 태국조차 식민지배 세력이 그들의 경계를 그렸다. 베네딕트앤더슨Benedict Anderson은 《상상의 공동체magined communities )에서 바로 이 부분을 꼬집었다. 리처드 뮤어Richard Muir 또한 《정치지리학 Political Geography》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국경선은 국가와 국가의 영토 간 접촉면이다. 그것은 주권의 범위를 결정짓고, 폐쇄적인 정치 영역의 공간 형태를정의 내린다. 그러나 국경은 수직적인 접촉면으로서 존재하는 것으로, 국경에 수평의 폭이란 없다. 다시 말해 국가와국가 간의 경계선은 모호한 평면의 공간이 아니라, 철저하고 확실한 단절이다. 그것이 바로 20세기에 시작된 지리학모델이기도 하다. 동남아시아적 전통에서 정치적 범위의 개념이라 할 수 있는 ‘공국‘은 이미 사라졌다. ‘보이지 않으며, 경계가 있는 영토 공간이라는 각도에서 국토를 상상‘ 하는 ‘국가‘가 그것을 대체했기 때문이다."
식민주의자들은 아시아, 아프리카에 가장 모더니즘적인 선을 남겨놓았다. 바로 지도다. 지도는 식민주의자들이 차지한 땅들을 마치 하나하나 세어질 수 있는 물건처럼 쭉 진열해놓음으로써 그들이 자신들의 재산을간편히 확인할 수 있도록 해줬다. 그 안의 토지와 국가는 마치 조각보를 깁듯이 선이 그려지고 색이 칠해져커다란 그림이 되었다. 그 속에서 종족, 전통 따위를 들여다보기는 힘들다. 지도는 한 장 한 장 복사되고, 국가도 그들에 의해 하나하나 빚어졌다.

따라서 타이완에서 한국을 최대 라이벌로 삼아 경계하는 말을 들을 때면 "가장큰 적은 자기 자신이라는 말이 그래서 있는 거구나" 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너무 닮았기에 절대 질 수 없는 것이다.

국가, 국민, 정체성 등은 당시 타이완 내에서 뜨거운 주제였다. 사실 내게 있어서는 그것들이 쉬운 것 같으면서도 잘안 잡히고, 중요한 듯하면서도 당장은 시급하지 않은 이슈로 보였다. 그런데 이 순진한 섬나라 국민은 국경 근처에 와서야 비로소 ‘내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 수 있었다. 그것의 의미는 ‘나‘라는 한 개인에 있는 게 아니라, 나와 타인 사이에 놓인 연결과 단절에 있었다.

한족은 원주민들을 산속으로 몰아내고 양질의 농토를 쟁취했다. 발언권을 차지한 이들 또한 한족이었기에 그들이 타이완에서 황무지를 개간해낸 것은 ‘강탈‘이 아닌 고된 노동을 감내해낸 ‘미담‘이 되었다.

"오늘날 베트남 정부는베트남은 ‘전쟁‘이 아니라 ‘나라‘ 라고 계속해서 강조한다."

일제에게 황민화民化란 곧 야만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신체, 문화적 ‘야만‘ 이 금지되고 탄압받았다. 그러나 전쟁과 살육은 일제가 규정한 야만에 포함되지 않았다. ‘야만‘ 적인 그들의 신체와 문화가 벗겨진타이완 원주민들은 충성을 보여줌과 동시에 문명의 척도를 증명해 보이기 위해 ‘비야만적인 전쟁터로 나갔다. 그렇게 그들은 야만적인‘ 남양의 원주민들에게 대항하고, 문명적이지 못한 남쪽 사람들을 수탈했다.

타이완 사회는 외국인 배우자를 대할 때 매매혼을 중심에 놓고 바라보면서 낙인을 찍곤 했다. 우리는 사랑이 아니라조건에 의해서 성립되는 결혼이 우리가 사는 세계의 가치관과 어긋난다고 여긴다. 하지만 대부분이 망각한 사실이 있으니, 바로 우리 이전 세대만 해도 중매인의 말에 따라 혼인을 맺는 일이 일상다반사였다는 점이다. 그 시절 자유연애 따위가 어디 있었겠는가.
오늘날에 이르러서도 혼인 시 두 집안의 수준‘이 걸맞아야 한다는 관념은 여전히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혼사 또한 당사자가 아닌 그들 어른들 간의 합의도 거쳐야 한다. 전통적인 관념에서 혼인이란 늘 사랑이 아닌 재산 및 노동력의 ‘생산‘을 위한 행사였다.
인류학의 관점에서 볼 때, 혼인에는 항상 사회적 재산의 교환과 분배가 동반된다.

그는 여행 문학을 비판하면서도 책 속에서 자신이 여행 중에 본 것들을 되돌아본다. "우리가 세계 각지를 여행하며 맨 처음 보게 되는 것은 우리 자신의 오물이다. 인류의 면전에 내던져진 오물 말이다."
<슬픈 열대>는 짙은 비관주의로 가득 차 있다. 그는 세계화가 가져온 문제와 서서히 용해되고 소멸된 여러 종족 문화를 바라보며 깊게 탄식한다.

그들이 바로 우리이고, 우리가 그들이될 수도 있음을 빠르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역지사지를 거치고 난 다음에야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우리‘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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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대 감기 소설, 향
윤이형 지음 / 작가정신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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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보다는 연대가 더 어렵다. 연대를 우선하다가는 호오에 갈려 진위를 상실하기 마련이다.
항상 비슷한 자들끼리는 경쟁이 붙고 우열을 가려내는 과정에서 상처를 주고 받는다. 결국 적은 내부에 있기 마련이고 그러다 보니 우리는 대의 안의 목표의식과 정체성을 상실하고 분열하고만다.
페미니즘 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상상하고, 그것을 가짜 기원으로 삼으면서 동시에 향수를 느끼는 것˝이라는데, 모든 상징하는 것들, 관념적이고 추상적이라서 그냥 대충 때려 맞추고 넘어가는 모호한 것들이 우리를 괴리속에 빠져들게 만드는 게 아닌가.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상처 받을 준비‘를 하고 이어나가야 하는 게 삶인가 보다.

우정이라는 적금을 필요할 때 찾아 쓰려면 평소에 조금씩이라도 적립을 해뒀어야 했다. 은정은 그런 적립을 해둬야 한다는 생각도, 자신에게 도움이 필요할 거라는 예측도 하지 못했다. 그런 식의 적립과 인출이 너무도 부자연스럽다고, 노골적인 이해관계나 다를 것 없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친분을 쌓는 사람들을 남몰래 폄하했다.- P23

- 손님을 평가하지 마, 절대로, 머릿결이 많이상하셨네요, 피곤해 보이시네요, 여기 목뒤에 뭐가 나셨어요. 피부가 안 좋으시네요. 이런 말 절대하지 마. 손님들이 자기 상태를 모를 것 같니? 다아는데 좀 나아지게 하려고, 기분이 조금이라도좋아지려고 미용실에 오는 거잖아. 그런데 머리하러 와서까지 그런 말을 들어야겠니? 그렇게 무신경할 거면 이 일 하지 마, 아예.- P30

모든 것이 갖추어졌다고 해서 삶이 반드시 제대로 돌아가는 것도 아니었다.
.......
세연은 상상 속에서 친구를 속물로 만들고 있는 자기 자신이 지극히 속물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불편함은 실재하는 것인데.- P79

- 우리가 반드시 같아질 필요는 없어. 억지로그러려고 했다간 계속 싸우게 될 거야.
같아지겠다는 게 아니고 상처받을 준비가 됐다는 거야, 진경이 중얼거렸다.- P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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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저넌에게 꽃을
대니얼 키스 지음, 구자언 옮김 / 황금부엉이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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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두꺼워 보이지 않았는데 읽다 보니 종이 재질이 얇다는 걸 알게됐고, 책의 분량은 450페이지에 달했으나 다행히 지루하진 않았다.
지능이 높아지는 과정 중에 사물의 이면에 숨은 의미를 파악하는 능력(한마디로 의심), 타인의 과오와, 단점을 들춰내는 능력(한마디로 기만)을 습득하면서 감정적으로 피폐해지고 냉소적으로 변한다면 지능이 높다는 것은 저주를 받았다는 말로 갈음할 수 있지 않나 싶다.
순수하게 산다는 것이 아둔하고 세상 물정을 모르는 것이라며 조롱을 했고, 자기 이익이 되는 실속을 챙기고 남들보다 손해를 조금 덜 보고 사는 것이 현명하다. 생각했다. 앞으로 그렇게 살지 않을거란 허망한 다짐도 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런 삶에 답답하다는 말은 하지 않을것 같다.

나는 니머 교수님과 버트와 함께 심리학 사무실로 다시 들어갔고머리가 혼란스러웠다. 나는 그들이 날 놀리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고, 내가 너무 무지해서 알 수 없을 때에는 나를 속인다고 확신하고있었다. 분노는 내게 자극적이고, 짜릿한 느낌을 주어서 쉽게 가라앉힐 수 없었다.
나는 싸울 준비가 되어있었다.
니머 교수님이 테이프를 가져오기 위해 보관 케이스로 갔을 때, 버트가 설명했다. "지난번에도 오늘과 거의 똑같은 단어들을 사용했어요. 이런 테스트들을 매번 시행할 때마다 똑같은 과정으로 진행되어야 하니까요."
"그 말은 직접 들어보고 믿을게요."
니머 교수님과 버트는 눈짓을 주고받았다. 나는 피가 얼굴로 몰려서 확 달아오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두 사람은 나를 비웃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 나는 내가 방금 전에 했던 말을 깨달았고, 내 목소리를들으면서 두 사람이 눈짓을 주고받는 이유를 이해했다. 그들은 웃고있지 않았다. 그들은 내게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고 있었다. 내가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으며, 분노와 의심이 내 주위의 세상을향한 첫 번째 반응이었던 것이다.- P95

"찰리는 사물의 겉모습 뒤에 무엇이 있는지를 보기 시작하는 중이에요. 부분들이 하나에 속해있어야 한다고 했는데, 꽤 좋은 통찰력이에요."- P123

대학교의 카페에 앉아서 대학생들이 역사와 정치와 종교에 관해 토론을 벌이는 것을 듣고 있으니 이상하게도 그것들이 모두 어린애들이노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런 기초 수준에서 사상들에 관해 토론을 나누는 것이 더 이상 즐겁지 않다. 문제가 가진 복잡성에 접근하지 않는 점을, 그러니까 표면의 물결들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를 모른다는 점을 보여주면 사람들은 화를 낸다. 지능이 높아져도 여전히 좋지 않은 점이 있고, 나는이런 것들에 관해서 비크맨 대학교의 교수들과 토론하려는 시도도 포기했다.- P151

질문을 받은 사람들은 늘 빠져나갈 변명을 찾으려 했고, 자신들의 지식이 좁은 영역에 국한되어있다는 사실을 밝히기 두려워했다. 지금 와서 보면 교수들이 얼마나 달라 보이는지. 교수들을 지식에있어서 거인이라고 늘 생각했던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던가. 교수들도사람이며, 세상이 자신들의 어리석음을 들추어낼까 봐 두려워한다.- P153

언어가 이해를 돕기보다는 오히려 가로막는 장벽이 될 수도 있다는점을 내게 다시 알려준다. 지능의 차이가 만드는 장벽의 반대편에 내가 놓이다니 무척 아이러니하다.- P175

"선생님이 뭘 알아요? 잘 들어요. 그중에서 가장 나은 사람들도 잘난체하면서 자비라도 베푸는 것처럼 생색을 냈죠. 자신들이 우월해 보이면서 부족한 점은 감출 수 있도록 저를 써먹으면서 말이죠. 누구든지 바보 옆에 있으면 자신이 똑똑한 것처럼 느껴지죠."- P188

"냉소적으로 변했군." 니머 교수가 말했다. "이 모든 기회를 통해 자네가 얻어낸 결과가 고작 그런 것인가? 천재가 되더니 세상과 동료에대한 믿음을 죄다 잃었군 그래."
"그 말씀이 완전히 옳다고는 할 수 없죠." 나는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지능 하나만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여기 당신들의 대학에서는 지능과 교육과 지식을 모두 숭배하죠. 하지만 당신들이 모두 놓친 한 가지 사실을 이제 저는 알게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지능과 교육도 인간에 대한 애정과 조화를이루지 못하면 아무런 가치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나는 근처에 달린 찬장에서 마티니를 꺼내 마시며 설교를 이어갔다.
"오해는 마세요." 나는 말했다. "지능은 인간에게 주어진 뛰어난 능력들 중의 하나입니다. 하지만 지식을 추구하다가 사랑을 몰아내는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제가 최근에 발견한 다른 사실이 있는데요. 가설로 제시하죠. 애정을 주고받을 줄 모른다면, 지능은 정신적이거나 도덕적인 붕괴로 이어지고, 신경증이나 정신병까지 낳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이기적인 목표에 온 정신이 팔려 타인과의 관계를 배척하면 분명 폭력과 고통만 남게 되겠죠."- P366

엄마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항상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었다. 자신이나 가족들보다 겉으로 비친 모습에 집착했다. 그리고 그것이 옳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매트는 몇 번이고, 살면서 가장 중요한 일이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는 건 아니라고 말해보았지만 아무런 소용이없었다. 노마는 옷을 잘 입어야 했고, 집에는 좋은 가구를 두어야 했으며, 다른 사람들이 잘못된 점을 알지 못하도록 찰리는 집 안에 있어야 했다.- P382

나는 두렵다. 삶 혹은 죽음 혹은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는 사실이 두려운 게 아니라, 세상에 나라는 존재가 전혀 없었던 것처럼 낭비되는것이 두렵다. 그런데 입구를 지나가려 하자 내 주위에 압력이 느껴지면서, 동굴의 입구 쪽으로 거친 파도와 같은 움직임이 나를 밀어낸다.- P415

이 점에서 과학소설은 미래를 예측해서 적은글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묘사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는 어슐러 K. 르 귄의 주장과 맞닿는다.- P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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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 오늘의 젊은 작가 24
김기창 지음 / 민음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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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짜여진 스토리의 상업영화를 본 기분이다. 작가가 문화, 예술, 취미의 세계를 성실히 조사했는지, 원래 조예가 깊은지는 모르겠지만(동생이 사려던 써벨로의 S5를 실물로 보자마자 모델명까지 알아보는 여자는 비현실적이다... 차라리 몇 년 식까지 언급을 해보지 그랬다... 이건작가들이 얘기하는 핍진성도 아니고 전문성도 아니고 그냥 남들이 잘 모르는 무엇인가가 쓰이면 글의 가치가 높아 보인다는 믿음에 근거한 수작이다) 집중력을 오히려 떨어트리는 장치들에도 불구하고 잘 짜여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캐릭터들의 입체성이 부족한 진부한 클리셰들이 큰 문제였는데 참고 완독할 만 했다.(그래서 영화 같은 것이고, 어쨌든 결말은 궁금하니까....)
‘자신이 배운 지식의 양과 정의의 크기가 비례한다‘는 착각을 하는 정우와 마찬가지로 끝까지 섬세하고 엄격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며 치료까지 필요해 보이는 섬머는 끝내 자신이 저지른 살인의 정체도 모르고, 아버지가 살해당한 것도 모른다. 마지막에 최후를 맞이하는 훙의아버지 말처럼 ‘누군가 넘어져서 땅이 파인 자리에 다른 누군가가 반드시 또 넘어지듯이 진실의 행방을 알 수 없는 묘연한 사건들은 폭력의 크기만 다를 뿐 일상에 어쩔 수 없이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어쩔 수 없다라는 말은 핑계라고 할 수 있고, 자연스러운 인생이랄 수도 있는 것인가. 활력만 남아 있다면 이 인생을 소중한 ‘추억으로 둔갑시킬 힘’을 남겨두기 위해....

자신만의 규칙이 있어 철저히 따르고 있는 듯했다. 홍은정인의 그런 면도 마음에 들었다. 자신만의 규칙이 있는 사람은 지나친 선행을 베풀지 않았고, 쓸데없는 악행을 저지르지도 않았으며, 무엇보다 무의미한 웃음을 흘리지 않았다.- P16

팟퐁을 찾은 사람들은 낮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다시는 낮이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밤을 소비했다. 서로를 유혹하고 희롱하는데 모든 힘을 쏟았다. 터져 나오는 분수처럼 웃고 울었다. 서로에게 아무렇지 않게 피해를 주고 아무렇지 않게 사과했다. 죄책감이 낮의 일이라면 밤의 일은 질문을 지워 버리는 것이었다. 적어도 팟퐁의 밤은 그랬다.- P23

섬머는 인간도 동물이라 주장하는 사람들을 경멸했다. 인간은 동물보다 나은 존재여야 했다. 윤리가 기준이었다. 섬머의 말에 따르면 윤리적이지 않은 인간은 모든 생명체에게 고통만을 안겨 주는, 신의 가장 큰 실수일 뿐이었다. 언젠가 벤은 섬머의 주장에 시큰둥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네 엄마가 윤리적이지 못해서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진 건아냐.
그건 다른 문제예요.
윤리적인 일이든 그렇지 않은 일이든 언제나 가해자와 피해자가 생겨. 의식하지 못하거나 무시할 뿐이지. 나는 뭐가 다른 문제인지 모르겠군.
아빠는 좀 더 섬세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어요. 아니, 우리모두가 그래야 해요.- P30

나쁘기만 한 사람도 아냐. 많은 사람이 그래. 인간이 할 수있는 가장 잔인한 일은 누군가의 고통에 눈감는 일이라고 생각해. 누군가에게 고통을 주는 사람보다 누군가의 고통에 눈감는 사람이 더 많아. 그래서 끝없이 고통이 반복되는 거야.
동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고, 눈을 감지 않는 게 중요해. 그러면 많은 것이 달라질 수 있어.- P50

갖은 고생 다 하고 살아온 애들은 안 돼. 엄마 봐. 자기 손해 보는 일 절대 안 해, 희생은 여유에서 나와, 여유 있는 외국남자 만나. 설마, 회사에 마음에 드는 놈이 있는 건 아니지?- P60

그러냐? 사실, 나도 그 창녀를 나쁜 년이라 생각하지 않아,
그 여자가 엄마를 죽인 거예요.
누군가 넘어져서 땅이 파인 자리에는 다른 누군가가 반드시 또 넘어지게 되는 법이야. 그 창녀도 누군가한테 옮았겠지. 네가 내 아들로 태어난 것처럼 스스로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을 거다. 그렇지만 너하고 트린한텐 정말 미안해, 트린을 잘보살펴야 해. 알겠지?- P92

술집 앞에 놓인 플라스틱 테이블에 모여 앉아 술잔을 부딪치는 사람들은 활력이 넘쳐 났다. 그들에게는 찰나의 하룻밤을 오랫동안 기억에남을 찬란한 추억으로 둔갑시킬 힘이 아직 있어 보였다.- P139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뭐 그리 큰 잘못을 했나 싶어. 어쩔 수 없이 상처 주고 상처받고, 다들 그렇게 사니까. 삶의 어느 순간에 제일 중요하다 싶은 것이 머리에 차오르면 다른 건 눈에 안 들어와.- P158

섬머가 지금까지 데려온 놈들은 하나같이 예의 바르고 잘난 놈들이었지. 그런 놈들이 있어. 자신이 배운 지식의 양과자신이 가진 정의의 크기가 비례한다고 생각하는 놈들 말이야. 내가 알기로는 그 반대거든. 예의 바르게 말하고 정의로운척하면서도 속에서는 잔머리를 굴리고, 실제로 용감해야 할때는 한없이 비겁하고 비굴해지지.- P191

정우는 한숨을 쉬었다. 정우는 타인을 위해 어떠한 희생도마다 않는 사람들을 보며 종종 생각했다. 위대한 사람들이긴하지만 동시에 치료도 필요한 사람들이라고, 그들의 행동은마음속 어딘가가 크게 구멍이 난 결과일지도 모른다고, 정우는 눈앞에 있는 섬머가 바로 그런 사람처럼 느껴졌다.- P234

한국은 동방예의지국이라 불립니다. 예의는 미덕이라고 생각해요.
어느 기사에서 봤는데 한국이 OECD 국가 중 노인 자살률이 1위더군. 이런 생각이 들었지. 저놈의 나라는 주체할 수 없는 분노를 고등학교에 총질을 하거나, 마구잡이 연쇄 살인으로 푸는 대신에 예의 있게 스스로 목숨을 끊는 걸로 해결하는 거 같다고 말이야.- P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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