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계에는 악과 고통이 있고, 거기 희생되는 무고한 사람들이 있다.
신이 선하지만 그것을 바로잡을 수 없다면 그는 무능한 존재이다.
신이 선하지 않고 다만 전능하며 그것을 바로잡지 않는다면 그는 악한 존재이다.
신이 선하지도, 전능하지도 않다면 그를 신이라고 부를 수 없다.
그러므로 선하고 전능한 신이란 성립 불가능한 오류다.

진심으로 화를 낼 때 당신의 눈은 커지지요. 숱 많은 눈썹들이 치켜올라가고, 속눈썹과 입술이 떨리고, 숨을 몰아쉴 때마다 가슴이벅차게 오르내리지요. 당신은 나에게서 펜을 돌려받은 뒤 수첩에휘갈겨 썼지요.

그렇다면 나의 신은 선하고 슬퍼하는 신이야. 그런 바보 같은논증 따위에 매력을 느낀다면, 어느 날 갑자기 너 자신이 성립 불가능한 오류가 되어버리고 말걸.- P43

말할 수 있었을 때, 그녀는 목소리가 작은 사람이었다.
성대가 발달하지 않았거나 폐활량이 문제였던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공간을 차지하는 것을 싫어했다. 누구나 꼭 자신의 몸의 부피만큼 물리적인 공간을 점유할 수 있지만, 목소리는 훨씬 넓게 퍼진다. 그녀는 자신의 존재를 넓게 퍼뜨리고 싶지 않았다.- 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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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처럼 단단하게
옌롄커 지음, 문현선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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옌롄커의 열성독자가 된 이후로 지난 작품들도 천천히 찾아서 읽어보는 중이지만, 분량의 압박이 가볍지가 않다. 700페이지 가까이 되는 소설의 첫 장을 펼치는 것 만큼 부담스러운 일도 없었지만 또 다시 중국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넓히는 기회가 되기도 하면서 흥미진진하게 독서에 몰입할 수 있었다.
중국을 이해하기 위해선 중국 소설을 읽어보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라고 어느 번역가가 말했던 것 같다. 이들의 생각을 이해하기에는 짧은 논설이나 실시간으로 업로드 되는 잡다한 기사들 가지고는 도통 심중을 파악할 수가 없다. 여러 권의 중국소설을 읽으며, 그들의 역사를 찾아보며 현재 그들이 사고하고 행동하는 방식에 대해 수긍을 하며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 같다. 어느 나라나 그렇지만 중국은 참으로 그들만의 독특한 사고방식을 가진 나라다.

문화대혁명 시기에 지식인과 예술인들이 탄압을 받았던 것은 대부분 아는 사실이지만 무엇을 근거로, 어떤 방식으로 탄압과 억압을 받으며 고통받았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화자 가오아이쥔과 홍메이가 혁명을 이루는 방식을 보면서 알게 되었다. 그때의 지식인과 예술인들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사유로 혁명분자들에의해 짖 밟히고 제거되었는지.
주인공은 선의의 편이라는 선입견에 초반부는 화자의 혁명을 기대하며 읽었지만 소설이 전개될수록 주인공들의 사상을 작가가 조소를 유발하는 풍자적 기법으로 서술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적어도 내가 아는 옌롄커라면). 불륜으로 맺어진 사랑과 열정의 힘으로 주변부 인물들의 꼬투리를 잡아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살인과 고발을 일삼다가 혁명의 코 앞에서 결국 본인들의 저지른 일과 똑같은 방식으로 당하며 무너지고 만다.
노골적으로 사랑의 행위를 그리면서 순결한 혁명의 행위를 반혁명적으로 그리는 작가의 서술방식에 문제를 삼아 출판이 금지되었을 것이다. 혁명이라는 구실로 개인의 사적 이득을 취하는 당시 혁명분자들에 대한 조롱을 날리며, 문화대혁명의 모순을 고발하는 통쾌한 소설이었다.

흔히들 하늘이 아무리 커도 사랑을 안을 수 없고 땅이 아무리 넓어도 정을 담을 수 없다고 하지요.(3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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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는 사람은 완전히 느긋하게 보일 수 있어. 하지만 내성적인 사람들은 겉으로는 조용해보일지라도 내면적으로는 시끄러운 경향이 있지. 속으로 혼잣말을 되풀이하면서 최근 자신이 격정하는 부분과 집착하는 것들을 계속 떠올리는 거야.
이러한 잡념에서 벗어나는 것이 나무늘보스러움을 지향하는 목표지만 내성적인 사람들에게는 무척 어려운 과제야.

미안하지만 제한속도에 맞춰 달리는 차를 추월한 운전자가 얻는 보상이란 없어. 다음 신호등에 똑같이 걸렸을 때 비웃음을 당하는 거 말고는.

제발 액정화면으로 세상을 감상하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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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같은 일상의 디테일한 경험담이나 심리흐름에 따른 서사가 아닌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멋진 소설가라는 점 인정.

그러나 곧 세상에 홀로 남을 이 아이가 겪게 될, 종류와 정도를 가늠 못 할 폭력과 곤궁을 떠올렸는데,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들에 골몰하는 거야말로 무의미하나 가능성만은 매우 높다고 할 수 있었으며, 그렇다면 어느 쪽이 더 가혹하고 비참한 일인지를 저울질하다가 결국 이 아이에게 삶이란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더 늘리는 일에 불과하다는 결론으로마음이 기울어졌다. 이 아이의 앞날은 뜨거운 물에 뿌려진 한 줌 설탕의 운명만큼이나 명백해 보였다.
편하게 해줄게.

"더러운 것보다도 슬퍼 보여서요."
손님은 고개를 기우뚱해 보였다.
"네? 정말로 슬프거나 최악의 상황에 놓여 더 이상 아무것도 지킬 것도 버릴것도 없는 사람은 저렇게 술에 취해 소리칠 기운도 없을걸요. 제 눈에는 약간불행을 전시하는 걸로 비치기도 해요."
콘은 고개를 저었다.
"제가 슬프다고 한 건, 저렇게 천편일률적인 방식으로 고통을 드러낼 수밖에 없을 만큼 사람들마다 삶의 무게가 비슷하구나 싶어서입니다."
"그건 그러네요."

"그래도 걱정 마세요. 저는 정말로 그러려고 여기 온 게 아니니까요. 일부러발품을 들여가면서 자기 죽을 장소를 물색하는 게 자신의 생에 마지막으로 건네는 선물인 사람도 있겠지만, 저는 만약 그럴 작정이었으면 여기까지 오지도않았을 거예요. 그런데 제가 그렇게 암울해 보였나요?"

남과 같지 않은 것은 그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하고 증오의 대상이돼요. 아니면 잘해야 동정의 대상이 되는데, 그것은 타인이 시혜하는 동정과그에 수반하는 불편한 시선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수혜자의 합의 아래에서보통 이루어지곤 해요. 당신에 대한 강하의…… 글쎄요, 그 불합리는 과연 뭐였을까요, 그 긴장과 불안과 원망은, 강하는 그 혼란을 평범한 일상이 주는 초조 정도 차원으로 수용하려 했어요.

원래 양가감정은 논리적으로 설명하라고 있는 게 아니에요. 나만 해도 엄마없이는 못 산다고 그렇게 오래 엄마를 포기 못 한다며 붙잡았으면서도, 엄마를하루에 몇 번씩 아무도 모르는 데로 갖다 버리는 상상을 한 적 있어요. 실행에옮기지는 않았지만, 마침내 엄마가 떠났을 때 나한테 슬픔보다 먼저 큰 부피로찾아온 건 해방감이었어요.

다만 당신이 알아야 할 것은 따로 있어요. 강하가 예전에 당신을 어떤 방식으로 싫어했든 간에, 그 싫음이 곧 증오를 가리키지는 않는다는 걸. 그건 차라리 혼돈에 가까운 막연함이라는 걸요. 사람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은 매 순간흔들리고 기울어지는 물 위의 뗏목 같아요. 그 불안정함과 막막함이야말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는 유일한 방법 아닐까요.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할때 확신할 수 있는 단 한 가지는, 이 마음과 앞으로의 운명에 확신이라곤 없다는 사실뿐이지 않을까요.

나는 숨기지 않겠어요, 곤, 딱히 내가 강하와 뭘 어쩌고 싶었던 것도 아니고 남들같이 알찬 미래를 설계하기에는 각자의 정신이 이미 늙어버렸지만, 그 순간 느꼈던 보통 이상의 친밀함은 그저 타인에게 받아들여지지 못할 유일한 무엇을 공유한 사람들끼리 나눌 수 있는 한 조각의 감정, 한 마디의 호흡이었다고 하겠어요.

지금처럼 남들이 이미 다 밟고 떠나 누더기가 된 해수욕장에 꾸역꾸역 짐을싸가지고 온 것도 실은 아이들 학교에서 내주는 빌어먹을 방학 숙제 때문으로,
부모님과 온 가족의 단란한 피서 기록을 10분 안팎 동영상으로 저장해서 제출하는 수행평가였는데, 아빠는 그렇게 손이 많이 가거나 아이들 수준에 무리여서 최소한 어른이 신경을 써야 꼴이라도 갖출 수 있는 과제에 일절 관심을 보이는 일이 없고, 엄마는 이 과제에 담긴 두 가지의 전제 조건을 혐오하고 있어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불안해하며 왔다가 쌓인 불만이 서로 터진 참이었다.
그 두 가지란, 하나는 모든 아이들에게는 부모가 있을 것이며 따라서 가정은화목하리라는 오류. 또 다른 하나는 모든 화목한 가정이 동영상 촬영 가능한스마트폰이나 그에 준하는 전자 기기를 보유하고 있을 만큼 물질적으로 넉넉하리라는 짐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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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파과
구병모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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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같은 긴장감과 박진감에 몰입돼버렸다. 문장의 호흡이 긴 작가라고 들어 알고 있었는데 그 긴 문장이 지루하거나 억지스럽지 않고 유려하다.
아쉬운 점은 투우 아버지의 방역의뢰인의 정체가 밝혀지지 않고 넘어갔다는 점, 후반부 투우의 조각에 대한 복수를 결심하는 과정에서 증오심의 감정 서사가 빈약하다는 점(의뢰인을 반드시 찾아내겠다는 생각은 안하는 것 같다), 투우와 조각의 결투장면에서 그들 과거의 연결고리를 찾아가는 장면이 너무 듬성 듬성 생략되었다는 점이다.

주인 여자의 전체적인 인상과 몸 상태는 자식을 공부시키는 데에 올인하고 자신은 돌아볼 틈 없이 진통제로 근근이 연명하다 손쓸 수 없을 지경이 된, 보편적이며 통속적인 어머니들의 희생정신을 떠올리게 한다.

누군가에게는 숨 쉬는 것만큼이나 당연하고 사소한 권력이 다른 이에게는 증오를 넘어선 제거 욕망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단둘이라니, 아들과 딸, 이 무한한 단순성과 합리성을 겸비한 한 쌍이라니. 간결 속의 풍요를 응시하고 그것에 익숙해질수록 소녀는 자기가 떠나온 곳이 돼지우리 같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어린 몸집에도 끼어 잘 데가 마땅치 않아 모로 누워 칼잠을 자고 막내 아기까지 같은 자세로 누나들의 가슴과 등 사이에 끼여 자다가 질식할 뻔했을 만큼 비좁고 더러워서만은 아니었으며, 치열한 아귀다툼과 함께 먹을 입만 남은 곳에서 공간과 곳간에 비례해 감당이 되지 않을 정도로 애새끼들을 싸질러 놓은 친부모의 행위가 흘레만 붙여놓으면 꿀꿀거리며 새끼를 까는 돼지 같았다는 생각이, 당숙네를 보고서야 비로소 든 것이었다. 아이들이 한 무더기로 뒤엉켜 자는 일곱평 집 안에서 부모는 대체 그 짓을 어디서 어떻게 하고 막내까지 뽑았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던 데다, 누구나 그렇게 아이를 놓고 살아야만 하는 줄로 알고 이유 불문 아이란 아들이 나올 때까지 – 그 아들을 어디다 써먹을 건지는 나중에 생각하고 – 계속해서 낳는 게 당연한 줄로 알고, 그러다 집안이 더 심하게 기울어져서 당장 손 붙잡고 굶어 죽게 생겼으면 비로소 새끼들 가운데 누군가 제일 덜떨어지거나 얼굴이 못났거나 많이 처먹어대는 녀석을 골라 다른 데다 보내버리면 그만인, 근대화가 덜 된 무식쟁이들이 돼지말고 다른 것으로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았다.

그전까지 두 명이 쓰던 부엌방도 운동장이었는데 생활수준이 올라가니 이제는 바라는 범위가 한 뼘 더 늘어나고 자신이 친척으로서 이 정도 대우는 받아도 괜찮지 않느냐는 은밀한 신분 상승의 감각, 돼지우리에서 벗어난 자신의 물리적 도약을 감사하며 그 이상은 바라지 않는다고 생각했음에도 막상 눈앞에 각도가 다른 현실이 펼쳐지자 자신의 겸양이 그저 기대하지 않는 척이었을 뿐임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말하자면 소녀는 긴장이 풀렸다.

"사람들은 자기가 가는 곳이 어딘지도 모르면서 꼭 남더러 갈 곳을 끈질기게 묻더라. 당신 지금 자기가 뭐 하고 있는지 정말 알기나 해? 아는 건 단 하나, 목적지는 몰라도 하여튼 가고 있다는 사실뿐이지."

당신은 얼마든지 그 사람을 바라보고 생각할 자유가 있어. 근데 자격은 없지.

"자네가 계속 일을 해나갈 팔자라서가 아닐까. 이보시게, 하나의 조직이란건 말이지. 어느날 갑자기 두목이라는 놈이 인생무상이다 만사 싫어져서 손 씻겠다며 아랫것들 불러놓고 오늘부로 우리 해산합시다, 한다고 없어지는 게 아닐세, 두목은 이미 움직이기 시작한 조직을 흩어버리거나 그 조직이 가는 길을 웬만해선 바꿀 수 없네, 그 점에 있어서는 조직의 가장 막냇동생과 다를 바 없지, 한번 구축된 조직은 이미 더 큰 질서 안에 포섭이 되어버리고, 그다음부터는 그 질서가 조직을 움직이는 것일세. 기계의 부품이 모두 빠지고 더 이상 대체할 게 없어지기 전까지는 말일세, 물론 대체룸은 소모되는 속도 못지않게 양산 속도도 빠르지."

그 아이가 빈정거릴 때는 상대방에 대한 뚜렷한 적의보다는 있는 힘껏 팽창된 자아가 엿보였기에, 지나고 나면 그저 웃어넘길 수 있는 일이었다.

평균수명이 아흔이든 백이든 그것이 누구 자체의 건강을 재는 척도는 되지 못한다. 평균수명이 높아진 것은 다만 죽음이 급습하는 시기를 과학과 의학이 지연시켰기 때문이고 그것은 효율이나 질을 완전 충족시키지 못한 채 생명 연장의 꿈에서 ‘연장’에 포인트를 맞춘 것으로서 평균수명100세 시대의 노인이란 어디까지나, 소원을 빌 적에 ‘젊은 모습으로 예쁘게’라는 옵션을 잊어 주름 잡힌 얼굴과 흰 허리로 구차한 영생을 잇게 된 예언 무녀의 운명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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