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리커버) - 제20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장강명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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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가 이렇게 따듯한 글을 썼다니 조금 기존에 내가 가지고 있던 선입견을 버려야 겠다는 생각..

감동적인 소설이라기엔 표현이 적절하진 않은 것 같고, 감정이 쉽게 복받쳐 오르게 하는 소설이라는 게 적당한듯하다.

복잡하게 인과가 얽힌 세상에서 피해와 가해라는 불분명한 선 위에 방치돼 있는 우리의 자화상이랄까.

내가 아까 우리 중에 미래를 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했죠? 그런데 현재를 제대로 보는 사람도 많지 않아요. 사람이 과거에사로잡혀 있거나 미래에 홀려 있으면 현재를 제대로 보지 못해요. 서울 택시기사들, 특히 개인택시 하시는 분들은 내가 보기에 상당수가과거에 사로잡혀 있어요. 작가가 말했다. -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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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거짓말 오늘의 젊은 작가 11
전석순 지음 / 민음사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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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소년 그 그녀 로 이어지는 모호한 인물 설정때문에 초반부는 정말 이해하기 힘들었다.
두서도 없고 인과관계마저 무시한 글의 전개도 문제이지만 일단 재미가 없다.
남성작가가 여성화자로 이야기하는데 감정도 제대로 전달 안되고...


마지막에 참고문헌을 보고는 한숨이 절로.....
그렇게 열심히 떠들어 댄 거짓말에 대한 고찰이 작가의 사유도 철학도 아닌 전문서적 짜집기였다니....

남자를 만나기 전 거짓말 치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
이제껏 진실은 과대평가되어 왔다. 거짓말은 회복할 수 있을 만큼 사랑을 병들게 하지만 진실은 사랑을 아예 도려낸다.
모든 것을 다 드러낸 관계는 결코 견고하지 않다. 숨어 있던진실이 드러나는 순간은 이별하는 순간과 정확하게 맞물려있다. - P10

같은 사람이 인사를 해도 평가는엇갈릴 수 있다. 보고서를 바탕으로 제 안에서 각자의 진실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어디에도 순정한 진실은없다. 각자가 진실이라고 믿는 것이 있을 뿐. - P39

감정이 스며든 문장은 금방 물렁해진다. 음식이 공기와 만나는 순간 썩기 시작하는 것처럼 거짓말은 감정과 만나는순간 밑바닥부터 무너진다. 거짓말이 내려앉는 건 순식간이다. 그 자리엔 진실이 눈을 부릅뜨고 오도카니 앉아 있다. - P40

남자에게 그녀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남자는 별 사이아니라고 둘러댔지만 그래서 둘의 관계가 나만큼이나 깊다는것을 알았다. 둘러댄다는 건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뜻이니까.
내가 아무리 집요하게 캐물어도 남자는 절대 그녀와의 관계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에게도 나를 부정할까. 의문 끝에 언젠가 엄마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원래 더 귀한 걸 뒤로숨기는 법이다. - P49

하지만 질문이 지나간 자리를 가만히 들여다보니 원하는 건 따로 있었다.
내가 믿고 있는 게 진짜라는 것. - P67

진실을 알아서 좋을 건 없었다. 불신은 몸을 피곤하게 만들 뿐이었다. 한 번 싹튼 의심은 울창하게 자라나 시들 줄 몰랐다. 온몸을 꽁꽁 옭아맬 때까지도 성장은 멈추지 않았다. 진실을 기대했지만 몰랐더라면 좋았을 때도 있었다. 그래서때론 아닌 줄 알면서도 믿었다. 애써 믿는 척하기도 했다. 그게 전 났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차라리 최선을다해 속는 편이 현명할 수도 있었다. 사막에서 살아남으려면는 오아시스가 나올 거란 거짓말을 믿어야 했다. - P68

거짓말 가이드북에서는 보통 이쯤에서 첫 거짓말을 계획한다고 했다. 자신이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순간.
그제야 아이들이 던졌던 질문에 마땅한 대답이 떠올랐다.
아이들이 정말 알고 싶던 건 따로 있었을지도 몰랐다. 거짓말을 잘 칠 수 있는지 없는지. 거짓말은 나쁜 아이가 치는 것이아니라 사랑받지 못하는 아이가 친다. 있는 그대로도 사랑받을 수 있다면 굳이 거짓말에 손댈 필요는 없다. 거짓말은 나쁜 거니까 하면 안 된다고 하지만 결국 거짓말을 치게 만드는건 그렇게 말한 사람들이다. 어쩌면 거짓말은 사랑해 달라고보내는 생의 첫 번째 신호일지도 모른다.
그때부터 완벽한 거짓말을 연습했다. 너무나도 완벽해서나마저도 진짠지 아닌지 헷갈릴 정도의 거짓말, 선물을 받으려면 산타가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믿는 척해야 했다.
산타를 믿지 않는 아이에게는 결코 크리스마스 선물이 주어지지 않았다. 이익은 오로지 거짓말쟁이들의 것임이 분명해졌다.
일단 속일 사람이 필요했다. 예전에는 거짓말이 성립하려면 최소한 두 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속이는 사람과 속는사람,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사람만 있어도 가능하다는 것을알았다. 속이는 사람과 속는 사람이 꼭 다를 필요는 없었다.
그래서 첫 연습 상대는 나로 정했다. 나는 거짓말을 연습하기에 알맞은 상대였다. 일단 들킨다고 해도 혼날 일이 없었다. - P71

거짓말은 진실을 견디는 힘을 주었지만진실은 거짓말을 견디는 힘을 주지 않았다. - P80

그거면 그쪽 말을믿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믿을 수도 있겠다는 건 믿겠다는얘기가 아니었다. 도리어 어떻게든 믿지 않겠다는 쪽에 가까웠다. - P123

서른은 나이가 든다는 것이 더 이상 성장으로 정의되지 않는다. 이제는 퇴화와 유지에 가까워진다. 지금까지 해 왔던 성장을 하나씩 잃는 것으로 시간을 보낸다. 몸의 변화는 자연스러운 흐름이 아니라 질병의 신호일 때가 잦다. 앞으로 이제껏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질병에 노출될 것이다. 뭘 시작하기에도 마무리 짓기에 애매한 나이도 서른이다.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괜찮다는 위로가 먹히는 나이. 그런 위로로 몇년쯤은 버틸 수 있을 것이다. 버티다 보면 어느 순간 훌쩍 나이가 들어 있을 것이다. 그래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때가되면 자격증에 홀로그램이 붙어 있을 것이다. 그 안에는 마흔둘이나 환갑에 어울리는 거짓말도 있겠지. - P135

"늙었다고 잘 속는 줄 아니?"
"그럼?"
"잘 속는 사람은 따로 있어."
"그게 누군데?"
"누구긴 누구야. 기댈 곳 없는 사람들이지. 그런 사람들이어물쩍 거짓말에 기대는 거야." - P150

돌이켜 보면 이렇게 숨기는 건 소년의 방식이었다. 문장 사이사이를 비워 두고 그 틈에 상대방의 짐작이나 기대가 고이게끔 하는 방식. - P161

아버지는 구라를 알아차렸을 때 내가컸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진실과 거짓이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는 걸 알았을 때 내가 성장했다고 생각했다. - P171

남자를 보며 사랑을 느낄 만한 구석을 찾았다. 작정하고 덤비면사람마다 어느 한구석쯤은 꼭 사랑스러운 데가 있기 마련이었다. 그것만 집요하게 보면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는 일은 쉬웠다. 거짓말 가이드북에선 거짓으로 사랑에 빠지는 방법을생각보다 간단하게 요약하고 있었다. 나에겐 아버지보다 거짓말을 잘 치는 사람인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소년이 거짓말을못 치는 사람인 것만으로도 충분한 것처럼. - P188

어쩌면 사랑을 유지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거짓말이 아니라 사랑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제 그와 그녀는 답을 얻을 것이다. 끝까지 답을 얻지 못한 건 나뿐이다. 거짓말이 무너지면 마지막엔 진실이 남을 거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이제는 남은 것이 진실이라도 의심할 것이다.
혹시 나에게만 통하는 건 아닌지.
결국 마지막까지 아무도 믿지 못했다. 끝까지 믿는 척만 했을 뿐이다. 모두를 의심하면서 속는 척 연기하다 보면 분명해질 줄 알았다. 하지만 더 나아진 것도 밝혀진 것도 없다. 나는이제껏 내가 남을 속이고 있는 줄만 알았다. - P213

믿음을 깨뜨린다고 알려진 거짓말은 믿음을 바탕으로 통한다. 그녀는 별다른 대꾸도 없이 전화를 끊었다. 남자는 한숨 뒤에 혼잣말을 파묻었다. - P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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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 계
장아이링 지음, 김은신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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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대표하는 여성문호 장아이링의 작품인데 책이 절판되어 더 이상 시중에서는 구할 수가 없었다. 영화로도 유명한 작품인데 쇄를 더 찍거나 개정판이 나오지 않고 있다는게 좀 의아하지만 나름 그럴만한 이유도 알 수 있었다.
소설의 문장을 중간 중간 떼먹은 느낌이랄까. 함축적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는데 사실 불친절한 전개일 뿐이다. <못잊어>정도는 매끄럽게 이어지는 맛이 있지만 다른 작품들은 소설의 진위를 파악하기가 좀 힘들어 소설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모호한 경우가 많았다.

섹계는 전혀 선정적인 작품이 아니었다. 당시 시대를 생각해봐도 문학이 옌롄커의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와 같은 정도의 수위를 오간다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사실 영화도 보지 않았기 때문에 비교를 한다는 건 말이 안되지만 주변에서 들은 바에 의하여 영화에서 각인된 이미지를 떠올려 비교해 보자면 과연 장아이링은 이안감독의 영화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 궁금해진다.

그녀의 눈에 이렇게 변해버린 그의 모습은 하나도 이상하게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아버지를 너무나도 증오하는 동시에 너무나도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 사람을 진심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분명 ‘사랑‘ 이라는 감정에서 나오는 것이었지만 증오 역시 뭔가를 철저하게 이해하는 특이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 P104

그녀는 가끔 ‘오래되고 낡은 것은 하찮게 여기면서도 새로운 것은 또 할 줄 아는 게 없는’자신이 속한 세대 사람들이 제일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 P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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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때와 죽을 때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46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지음, 장희창 옮김 / 민음사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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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찾아보게 된 건 은희경작가의 <빛의 과거>에 나왔던 구절 덕분이었다. 브론스키와 안나, 제롬과 알리사, 베르테르와 로테가 나오는 작품은 알았는데 에른스트와 엘리자베스는 어느 작품의 주인공인지 궁금해 찾아보다가 <사랑할 때와 죽을 때>라는 작품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사실 4개의 작품 중 3개의 작품을 보았지만 감동을 주는 작품은 딱히 없었고, 재미있는 작품이라면 방대한 분량과 비극적 결말에도 불구하고 유쾌하고 재치 넘치는 필력이 매력적인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리나> 정도였나? <사랑할 때와 죽을 때>역시 문체가 어렵거나 내용이 전위적인 것도 아니었지만 감동이나 재미를 안겨다주는 작품은 아니어서 그런지 빠르게 읽히지는 않았던 것 같다.
2차 세계대전 당시 3주간의 휴가를 얻은 독일군 에른스트가 고향에 돌아와 폭격을 맞은 자신의 고향 집을 보며 부모를 애타게 찾고, 어렸을 적 친구들의 다양한 변모를 느끼며 혼란스러워 하다가 아버지가 강제수용소에 갇혀있는 엘리자베스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하는 등의 혼동의 전쟁 시기를 묘사한 작품이다.
당시 독일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책들 중 고전으로 살아남기 위한 조건인 유대인에 대한 원죄의식 또한 두드러지고, 전쟁의 비극적인 참상을 묘사하는 데 뛰어난 작품이다.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시대를 아우르는 인간 감정에 대한 통찰력을 키우고, 단편적이고 일방적으로 받아들였던 과거에 대한 기록을 보다 입체적이고 폭넓게 이해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목적을 위해서 부담스러운 분량의 고전이라도 묵묵히 참고 읽을만한 가치가 있다. 물론 톨스토이나 헤세같이 시대가 지나도 흥미를 돋아주는 필력의 작가들의 작품이라면 좋겠지만....

음식보다 더 긴요한 것은 희망이 아니던가? 희망은 그 어떤 알 길 없는 뿌리들로부터 솟아오르지 않던가? - P143

"선생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다른 사람에게서 답을 구하는 것은 결정을 회피하는 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저도 선생님께 실제로 답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실은 자신을 향해서 물어본 것이지요. 종종 다른사람에게 물어본다는 것은 곧 자신에게 물어보는 것입니다." - P251

무치히는 다리를 절뚝거리면서 걸어갔다. 죽은 사람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니 그래도 위안이 된다고 그래버는 생각했다.
자신의 불행이 좀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 P306

그들은 계속 걸어갔다. 저녁놀은 더 짙고 더 깊어졌다. 그들의 얼굴과 손이 붉게 물들었다. 그래버는 맞은편에서 다가오는 사람들을 보았다. 갑자기 그들이 이전과 달라 보였다. 각자 자신의 운명을 지고 있는 것이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을 때는 판단을 내리고 용감해지는 것이 쉽다. 그러나 무언가를 가지게 되면 세상은 달라 보인다. 더 쉬워질 수도 더 어려워질 수도 있으며 때로는 거의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 용감해지는 것은 언제든 가능했지만, 이제 그것은 다른 모습이고 전혀 다른 이름으로 나타나며 또 바로 거기서 출발해야 한다. 그는 숨을 깊이 들이켰다. 적의 점령지에서 정찰대에 쫓겨 아슬아슬하게 피난처로 도피했지만, 이전보다 더 안전하지도 않고 잠깐 동안만 한숨을 돌릴 수 있는 그런 느낌이었다.
엘리자베스가 말했다. "신기해요. 그래도 봄이 온다는 게. 여긴 파괴된 거리이고 봄이 올 이유도 전혀 없어요. 그런데도 어디선가 제비꽃 향기가 나는 것 같아요." - P339

그래버는 발길을 돌리며 생각했다. 나는 나를 지탱해 줄 무언가를 가지려고 했어. 하지만 그것을 가지게 되면 그것이 오히려 나를 두 곱이나 고통스럽게 한다는 점은 몰랐던 거야. - P385

"죽어야 할 운명이었다면 그보다 더 나은 죽음을 맞았으리라고는 단정할 수 없는 겁니다. 점심은 들었든가요?"
"예. 정식으로, 포도주와 좋아하시는 후식도 곁들여서 말입니다. 생크림을 얹은 사과 케이크를요."
"그렇군요, 클라이네르트 부인. 그 정도면 훌륭한 죽음입니다. 나도 그런 식으로 죽고 싶어요. 그러니까 부인도 그렇게 목을 놓아 우실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너무 이른 나이라."
"언제 죽어도 이른 건 마찬가지랍니다. 일흔이 되어도 마찬가집니다. 장례식은 언제인가요?" - P419

슈타인브레너가 웃었다. 그는 남이 비웃는 것을 알아차리는 귀가 없었다. 그의 잘난 얼굴이 만족감으로 빛나고 있었다. - P499

요제프가 어깨를 으쓱했다. "증오! 그런 건 사치야! 증오하면 경계심을 잃게 돼." - P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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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르발 남작의 성
최제훈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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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런 독특한 취향의 유머리스트라니!!

성호와 강지민이 우리의 단골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었다.
은은한 촛불의 울타리 안에서 그녀는 성호를 바라보며 나른하게 웃었다. 몸을 돌려 덜컹거리는 철제 계단을 조심스럽게 올라갔다. 강지민이 나를 설핏 본 것도 같았다. 나는 <태>에 다른사람을 데려온 적이 없었다. 밀약 같은 건 없었지만, 둘만의 아지트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 성호의 생각은 달랐던 모양이다. 강지민이 내가 미치지 못하는 영역에서 성호를 채워줬다면훨씬 견디기 쉬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나와 성호의 교집합부분만을 잠식해 들어왔다. 친구가 아닌 연인으로서. - P92

네가 왜애? 어젯밤 이 대답을가장 고심해서 갔다. 직접 언급하지 않으면서도 내가 비밀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눈치챌 수 있는 대답, 수치심을 걷어내고 제안을 수락하면서도 자괴감은 남겨두게 만드는 대답. - P94

솔직히 내가 다른 누군가로 변한다는 환상은 매혹적이잖아요. 선생님도 가끔 꿈꿔보지 않나요? - P121

혹자는 말한다. 과거 특정 시점의 현상을 현재의 세계관으로 판단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 P164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상자가 열린 이후 인간들은 순수한 선의 존재를 믿게 되었다. 이것은 베이징 나비의 날갯짓처럼 전혀예상치 못한 결과를 초래했으니, 신들의 사회에 구조 조정의 칼바람이 몰아친 것이다. 인간들은 점차 강력한 리더십으로 자신들을 이끌어줄 완벽하게 선한 신을 원했다. 신이라면 모름지기유한한 삶을 넘어설 수 있는 영원의 비전을 제시해주어야 한다.
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신성한 빛으로 둘러싸인 절대자, 지상의악을 소탕하는 정의의 사도, 신축 중인 천국 아파트 분양권을독점한 존재. 그런 신이 있을 턱이 있나. 그러나 인간들은 가끔불가능한 일을 해내는 뚝심을 보여준다. 마치 오만 신들을 원심분리기에 집어넣고 엑기스를 뽑아낸 듯한, 순도 99.9%의 순결한 신들이 탄생했다. 태생부터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이들은 초고속 승진을 거듭하며 세력을 넓혀갔다. 바야흐로 글로벌 경영을 추구하는 무한 경쟁의 시대가 왔건만, 철밥통을 꿰차고 있던올림포스 신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지 못했다. 1차 정리해고 대상자였던 디오니소스에게 당시 상황에 대해들어보자.

디오니소스 (술의 신, 제우스와 세멜레의 아들)
그게 무슨 신이야, 사이보그지. 감정도 없는 사이보그, 어디서 근본도 없는 것들이 튀어나와 나대는데 말이야, 정말 같잖아서……… 그래도 나는 오픈 마인드를 가진 신이야. 하루는 아후 - P174

정말 미쳤나 봐, 그 사이코를 …… 그 사이코는 영문과조교라고 했다. 교수들에게 아부로 붙어살면서 학생들에게는성깔 더럽고 인정머리 없기로 악명이 자자하다는 설명이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추한 것을 미워하지. 그러니 어떤 생명체보다도 추한 내가 얼마나 혐오스러울까! 그대, 나의 창조자여,
하물며 당신까지도 자신의 피조물인 나를 혐오하고 멸시하고있소. 그래도 그대와 나는 둘 중 하나가 죽어야만 풀릴 끈으로묶여 있소. (……] 삶은 비록 고뇌 덩어리라고 해도 내겐 소중한 것이오. 그러니 난 삶을 지킬 것이오. 명심하시오. 당신은나를 당신 자신보다 더 강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 P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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