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르발 남작의 성
최제훈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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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런 독특한 취향의 유머리스트라니!!

성호와 강지민이 우리의 단골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었다.
은은한 촛불의 울타리 안에서 그녀는 성호를 바라보며 나른하게 웃었다. 몸을 돌려 덜컹거리는 철제 계단을 조심스럽게 올라갔다. 강지민이 나를 설핏 본 것도 같았다. 나는 <태>에 다른사람을 데려온 적이 없었다. 밀약 같은 건 없었지만, 둘만의 아지트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 성호의 생각은 달랐던 모양이다. 강지민이 내가 미치지 못하는 영역에서 성호를 채워줬다면훨씬 견디기 쉬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나와 성호의 교집합부분만을 잠식해 들어왔다. 친구가 아닌 연인으로서. - P92

네가 왜애? 어젯밤 이 대답을가장 고심해서 갔다. 직접 언급하지 않으면서도 내가 비밀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눈치챌 수 있는 대답, 수치심을 걷어내고 제안을 수락하면서도 자괴감은 남겨두게 만드는 대답. - P94

솔직히 내가 다른 누군가로 변한다는 환상은 매혹적이잖아요. 선생님도 가끔 꿈꿔보지 않나요? - P121

혹자는 말한다. 과거 특정 시점의 현상을 현재의 세계관으로 판단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 P164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상자가 열린 이후 인간들은 순수한 선의 존재를 믿게 되었다. 이것은 베이징 나비의 날갯짓처럼 전혀예상치 못한 결과를 초래했으니, 신들의 사회에 구조 조정의 칼바람이 몰아친 것이다. 인간들은 점차 강력한 리더십으로 자신들을 이끌어줄 완벽하게 선한 신을 원했다. 신이라면 모름지기유한한 삶을 넘어설 수 있는 영원의 비전을 제시해주어야 한다.
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신성한 빛으로 둘러싸인 절대자, 지상의악을 소탕하는 정의의 사도, 신축 중인 천국 아파트 분양권을독점한 존재. 그런 신이 있을 턱이 있나. 그러나 인간들은 가끔불가능한 일을 해내는 뚝심을 보여준다. 마치 오만 신들을 원심분리기에 집어넣고 엑기스를 뽑아낸 듯한, 순도 99.9%의 순결한 신들이 탄생했다. 태생부터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이들은 초고속 승진을 거듭하며 세력을 넓혀갔다. 바야흐로 글로벌 경영을 추구하는 무한 경쟁의 시대가 왔건만, 철밥통을 꿰차고 있던올림포스 신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지 못했다. 1차 정리해고 대상자였던 디오니소스에게 당시 상황에 대해들어보자.

디오니소스 (술의 신, 제우스와 세멜레의 아들)
그게 무슨 신이야, 사이보그지. 감정도 없는 사이보그, 어디서 근본도 없는 것들이 튀어나와 나대는데 말이야, 정말 같잖아서……… 그래도 나는 오픈 마인드를 가진 신이야. 하루는 아후 - P174

정말 미쳤나 봐, 그 사이코를 …… 그 사이코는 영문과조교라고 했다. 교수들에게 아부로 붙어살면서 학생들에게는성깔 더럽고 인정머리 없기로 악명이 자자하다는 설명이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추한 것을 미워하지. 그러니 어떤 생명체보다도 추한 내가 얼마나 혐오스러울까! 그대, 나의 창조자여,
하물며 당신까지도 자신의 피조물인 나를 혐오하고 멸시하고있소. 그래도 그대와 나는 둘 중 하나가 죽어야만 풀릴 끈으로묶여 있소. (……] 삶은 비록 고뇌 덩어리라고 해도 내겐 소중한 것이오. 그러니 난 삶을 지킬 것이오. 명심하시오. 당신은나를 당신 자신보다 더 강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 P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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