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여행자들 오늘의 젊은 작가 3
윤고은 지음 / 민음사 / 201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간이 만든 재난에 몰입하던 중에 자연의 재난에 깜짝 놀라는 반전.
‘윤리적 관광’이라는 문제도 한번 상기시킨 소설.
너무 신박한 참신함이 놀랍다.

그는 유능한 상사였다. 정확히 말하면 유능한 상사가 아니라 유능한 부하였고, 덕분에 유능한 상사 역할도 유지할 수 있었다. - P19

이곳에서의 휴식은 쉼표가 아니라 마침표처럼 통했다. 자신이 고갈되었다고 생각하면, 그때 사람들은 우회적인 방법으로 휴직계를 던졌고, 영영 돌아오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 P31

"하긴, 먼 데서 재난을 찾을 것도 없네요. 우리나라도 이제쓰나미 안전지대가 아니라니까요."
"남해안 일대가 초토화됐더라고요."
"그런데 왜 우리는 여기까지 왔을까요?"
어느새 돌아온 교사가 그렇게 물었다.
"너무 가까운 건 무섭거든요. 내가 매일 덮는 이불이나 매일 쓰는 그릇과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어야 더 객관적으로 보이지 않나요?" - P55

재난 여행을 떠남으로써 사람들이 느끼는 반응은 크게 ‘충격 → 동정과 연민 혹은 불편함 → 내 삶에 대한 감사 → 책임감과 교훈 혹은 이 상황에서도 나는 살아남았다는 우월감’의 순으로 진행되었다. 어느 단계까지 마음이 움직이느냐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결국 이 모험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재난에 대한 두려움과 동시에 나는 지금 살아 있다는 확신이었다. 그러니까 재난 가까이 갔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안전했다는 이기적인 위안 말이다. - P61

조르주 바타이유는 여기서 전도된 에로티시즘을 발견했다. 그가 말하는 에로티시즘은 고통이 주는 강한 삶의 열망이라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사람들은 타인의고통 속에서 살아갈 힘, 에로스를 얻는다. 고통은 망막에 새겨졌을 때 강력한 이미지로 인식된다. 지독한 고통에 시달리는 이웃을 이미지로 확인할 때, 사람들은 값싼 우월감을 구매한다. 어마어마한 재난 지역을 뉴스로 보며 사람들은 감히체험키 어려운 숭고를 접한다. 직접적 체험으로서의 재난이위대한 자연의 숭고를 깨우쳐 준다면 렌즈를 거친 재난은 흥미로운 스펙터클과 다를 바 없다. - P240

윤고은이 『밤의 여행자들에서 보여 주는 회사라는 세계는 감수성이 사라진 현실이다. 감성(sensitivity)이 정보를 처리하는 인간의 감각 능력이라면 감수성(sensibility)은 맥락을 이해하고 관계를 공감하는 능력이다. 그런 점에서, ‘정글은 감성만 있고 감수성이 부재하는 공간이다. 비단 정글만이 아니다.
정글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 감수성 없이 감성의 인식만으로 세상을 버텨 나가는 여기, 이곳의 반영에 가깝다. 정글이 곧 현실이라는 상상력은 윤고은이 우리가 처한 삶을 이윤 창출의 회사와 다를 바 없다고 판단했음을 보여 준다. - P24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언니밖에 없네 큐큐퀴어단편선 3
김지연 외 지음 / 큐큐 / 202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정현, 조해진, 정세랑 작가라니. 큐큐단편선 라인업은 마치 음악 페스티벌 라인업을 기대하는 것 만큼 설레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줄리아나 도쿄 - 2019 제43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한정현 지음 / 스위밍꿀 / 2019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장을 얼마나 많이 덮었는가.
전개를 이어서 받아들이기엔 조금은 긴 텀이 필요한 구간이 많았다.
‘선택’이라는 명사에는 능동형의 의미가 담겨있지만 ‘선택지’는 수동적으로 주어진다. 이미 전제가 책임을 물을 수 없는데 그걸 강요한다. 폭력이 다양하게 변형되어 산재해있다.

쉽게 뱉어서는 안되는 단어와 문장이 많다는 걸 살면서 체감하게 된다.

그녀는 눈을 감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참 이상했다. 상처는 완전히 잊혀진 듯했다가, 가장 용기가 필요한 순간에 그 존재를 다시 드러내니 말이다. - P23

매춘이 자신을 망가뜨리는 일인가? 그녀는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자신도 거기서 자랐으니까. 그래서 매춘이 나쁘다고 말하면 마음 한구석에 걸리는 게 있었다. 하지만 그걸 두고 선택이라고 하는 사람들 앞에서 고개를끄덕이는 건, 불가능했다. 캬바쿠라는 궁지에 내몰린 여성들이 혼자 힘으로 살아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찾아온곳이었다. 무엇보다 강간당한 경험이 있는 여성들은 결심하듯 말했다.
"내가 이겨낼 수 있다는 걸, 내게 일어난 일이 아무것도아니라는 걸 나는 보고 싶어."
그들 대부분은 더이상 갈 곳이 없었다. ‘난 이곳이 좋아‘ 하고 말하지만 사실은 좋아해야만 하는 것. 그녀는고 그름에 대해 판단해야 할 때면 늘 혼란스러워졌다. - P92

줄리아나 도쿄의 화장실엔 별의별 것들이 다 버려져있었다. 한쪽엔 값비싼 것들로 치장한 사람들이 오르는화려한 무대가 있고, 또다른 한쪽엔 상상도 할 수 없는 쓰레기들이 모인 더러운 무대가 있다. 화려하고 아름다운것들이 밟고 선 게 무엇인지 그녀는 그때 똑똑히 보았다. - P98

"한주 씨, 무언가를 선택할 수 있는 삶은 얼마나 행복한삶입니까."
눈은 쌓여가면서 녹고 있었다. 반짝이는 결정체들이나타났다 사라졌다.
"분명하게 고르거나 버리지 못하는 경우가 삶에는 훨씬 많습니다. 받아들여야만 하는 일이 인생에는 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걸 선택이라고 말합니다." - P103

‘이 사람, 스스로를 벌줬구나.‘ - P122

사람들은 유키노에게 혐오를 격렬하게 드러내진 않았다. 대신 소란 없이 쥐를 죽이기 위해 아주 조금씩 비소를 뿌리는 것처럼 진심 어린 걱정이라는 표현으로, 좋은 의도라는 명목으로 유키노를 재단하고 판단했다. - P131

어머니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떨어져 있던 칼의 손잡이를 감싸쥐었다. 유키노는 그 모습을 보며 어머니가 이미 셀 수 없이 많은 불행을 감당하며 살아왔다는 걸 실감했다. 누구든 경험이 많은 일에는 당황하지 않고 능숙하기까지 한 법이니 말이다. - P160

유키노의 이야기를 들으며 의사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떠올리고 있었다.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반에 꼭 한 명쯤은 있었던 미혼모의 아이들, 함께 어울려 지내다가도 미혼모의 아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어김없이 따돌림을 당했다. 그저 지우개를 숨기고 연필심을 부러뜨린 정도라고 누군가는 회상할지도 모른다. 가해자들에게 그런 것은 그저 지나간 유년의 추억거리일 뿐이니까. - P161

유키노는 그녀가 자신에게 지긋지긋하다고 말한 것이아닌데도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그때까지불평을 달고 사는 것이 크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누군가를 때리거나 욕하는 게 아니니까. 불만을 중얼거리는 걸 누군가 듣는다 해도, 자기 자신만 저급한 인간이라고 여겨지면 그만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한주가 자신의 눈을 바라보며 지겹다고 말하는 순간, 이제껏 그녀를 괴롭히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겁이 났다. - P164

그는 볼에 바람을 집어넣었다가 후 하고 길게 뱉었다. 긴장에 아쉬움까지 섞여 어떤 것에도 차분하게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사실 추는 불가항력이라고 생각되는 일에는우울함을 잘 느끼지 않는 타입이었다. 눈이 오는 걸 막을 수도 없었고, 폭설을 예견하고 매해 이 시기에 진행되는학회 일정을 옮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 P195

어머니는 추가 알지 못하는 부분에서까지 따가운 시선을 견뎌야 했던 것이다. 누구의 아이인지, 남편은 어떤 사람인지, 왜 낳지도 않은 아이를 혼자서 키우는지와 같은쓸데없는 호기심들, 사람들은 진심으로 걱정하는 것도 아니면서, 다정한 음성을 가장해 자신의 궁금증만을 채우려고 한다. 채워지면 금방 잊고 그 자리를 떠난다. 채워지지 않으면, 어두운 욕망으로 지어낸 이야기를 여기저기 옮기고 다닌다. 학교에 들어가면서 추는 그런 인간의 속성을일찌감치 파악할 수 있었다.
......
누군가 그랬다.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근본적인 방법은 문제를 문제로 보지 않는것이라고. - P206

"나 그때 무작정 선생님 앞에 서서 울기만 했지. 아무것도 고를 수 없는데 뭐든 고르라고 하는 선생님 앞에서. 이제 그건 유키노가 고른 거예요, 하는 선생님 앞에서." - P247

"아버지와 오빠는 결국 제 의사를 존중하겠다고 하셨어요, 네 ‘선택‘ 이니까, 하면서요. 물론 책임도 제 몫이라고 하셨죠."
......
"그럼 이건 제 선택일까요, 아니면 그들의 오해일까요?" - P285

내내 슬픔에만 젖어 있고 싶지는 않았다. 슬프지 않다는 뜻은 결코 아니었다. 다만 원래 흘러가던 대로 내버려두고 싶었다.
그래서 어머니의 유품도 한꺼번에 정리하지 않기로 했다. 어머니는 자신의 삶을 살다가 떠난 것이지 이 세상에애초부터 없었던 사람이 된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 P21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찌보면 막장이라 할 수 있는 스토리가 작가의 필력덕에 무한감동의 문학작품으로 승격된 사례가 아닐까.

그리고 좀 알송달송..... 작가가 쓰지 않은 이야기는 나는 잘 모르겠다. 초반부터 그래서 아버지는 누구인가 흥미진진하게 읽어왔는데....대체 누구인가.

나는 그녀가 말하는 상식에 대해서 생각했다. 정상적인 사람들에게는 과거가 단일한 게 아니라 여러 개다. 가족이 기억하는 유년과 친구가 기억하는 유년과 자신이 기억하는 유년이 모두 다르리라. 그러므로 그들은 그중에서 가장 합당한 과거를 선택하면서 지금의 자신에 이르렀으리라. 이치에 맞느냐, 맞지 않느냐를 따지는건 그렇게 선택할 수 있는 과거가 여러 개인 사람에게나 가능하지 않을까? 돈이 없어서 며칠 동안 굶고 다닌 사람에게는 길에 굴러다니는 동전 한 닢도 너무나 중요하다. 마찬가지로 단 하나의 과거도 없는 내게는 아무리 터무니없고 불합리하며 비이성적일지라도사소한 단서 하나하나가 소중했다. 하찮은 사실 하나를 지키기 위해 상식적 세계 전체와 맞서야만 하는 순간도 찾아오리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 P44

나는 인생의 불행이 외로움을 타는 걸 본 적이 없어요. 불행은불량한 십대들처럼 언제나 여럿이 몰려다니죠. - P71

하지만 개인의 불행은 건기나 우기나 마찬가지입니다. 이곳방글라데시에서 저는 수많은 개인사적인 불행을 만났습니다. 불행이란 태양과도 같아서 구름이나 달에 잠시 가려지는 일은 있을망정 이들의 삶에서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습니다. 거기 늘 태양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거기 늘 태양이 있다는사실을 잊습니다. 이들도 같은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불행을 온몸으로 껴안을 때, 그 불행은 사라질 것입니다. 신의위로가 아니라면, 우리에게는 그 길뿐입니다. - P130

내가 쓴 글을 읽어보면 우리들의 사랑 이야기‘는 전혀 아름답지도, 애틋하지도않았습니다. 우리 사랑이라는 게 겨우 그 정도였는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게 아니라 제 글솜씨가 아름다운 집도 변소로 묘사하는 수준이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더라고요. 그러고 나니까 알겠더군요. 아름다움이란 솜씨의 문제이고, 솜씨는 어떻게바라보느냐의 문제라는 걸. 그렇구나. 괴로웠다고 생각하면 괴로운 글을 쓰는 것이고, 행복했다고 생각하면 행복한 글을 쓰는것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 P138

"왜 검모래를 둘러보라고 하느냐면, 희재양이 내게 이루 말할수 없을 정도로 질 낮은 인간이라고 말했기 때문이에요. 내가 선생으로서,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그렇게 훌륭하지는 않을 수도 있어요. 물론 이런저런 결함이 있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인간으로서 자격 미달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살아온 시대를 지금의 잣대로 재단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보수 세력들이 나의 당선을 막기 위해 어떤 터무니없는 인신공격을 퍼붓고 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저열한 짓거리에 흔들릴만큼 엉망의 인생을 살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에게는 오직 인간적인 연민이 들 뿐, 내 도덕성에는 어떤 흠집도 나지 않습니다."
......
"정지은과 관련해서 도의적으로는 모를까, 도덕적으로 내가 비난받을 만한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너는 그 말이 혼란스럽다. 도의와 도덕의 경계는 과연 어딜까? - P175

모든 것은 두 번 진행된다. 처음에는 서로 고립된 점의 우연으로, 그다음에는 그 우연들을 연결한 선의 이야기로, 우리는 점의인생을 살고 난 뒤에 그걸 선의 인생으로 회상한다. 정상적인 사람들은 과거의 점들이 모두 드러나 있기 때문에 현재의 삶에 어떤 영향도 끼치지 못한다. 앞으로 어떤 점들을 밟고 나가느냐에 따라서그들의 인생은 지금보다 좋아질 수도 있고, 나빠질 수도 있다. 하지만 너 같은 경우는 완전히 다르다. 과거의 점들이 모두 발견되지않았다는 점에서 네 인생은 몇 번이고 달라지리라. 인생의 행로가 달라진다는 말이 아니라 너라는 존재 자체가 달라진다는 뜻이다.
예컨대 진남을 방문하고 미국으로 돌아간 뒤, 이따금 어린 시절의일들이 다른 의미를 띠면서 떠오를 때가 있었다. 입양 초기 걸음마를 겨우 배웠을 무렵부터 너는 바다를 무척이나 좋아해서 에릭이 일하러 나갈 때마다 늘 자기도 데려가달라고 조르곤 했었다는 말을 앤에게서 자주 들었다. 너는 자신이 산보다 바다를 더 좋아하는것은 바그너보다 브람스를 더 좋아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건 개인적 취향이라고.
개인적 취향에 불과했던 그 일은 진남을 방문한 뒤부터 중요한의미를 띠게 됐다. 너는 자신의 취향이 무의식, 즉 자신이 알지 못하는 과거의 어떤 우연한 점에 의해서 결정됐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즉 진남이라는 항구도시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바다를 좋아한 것일 수도 있다는 사실 말이다. 그렇게 이전에 보이지않던 점들이 발견될 때마다 그 점들을 잇는 새로운 선들이 그어졌고, 네 인생은 그때마다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선이 달라질 때마다 너라는 존재도 바뀌었다. 검은 머리에 검은 눈동자를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카밀라라는 이름이 붙은 미국 소녀에서, 동백나무 아래에서 찍은 사진이 있었기 때문에 카밀라라는 이름을얻게 된 입양아를 거쳐, 아이를 낳으면 ‘희재‘라는 이름을 짓겠다.
던 열일곱 살 여고생의 딸까지. 새로운 점들은 너라는 존재를 그처럼 가변적으로 만들었다. 문제는 과거의 그 점들을 통제할 방법이 네게는 없었다는 점이다 - P178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겠지만, 요즘 세상에는 값싸게 즐길 수있는 고독이란 게 없어. 돈을 지불하지 않은 고독은 사회 부적응의표시일 뿐이지. 심지어는 범죄의 징후이기도 하고, 예를 들어 선생들은 무리에서 떨어져 혼자서 지내는 학생에게서 자살이나 학교폭력의 가능성을 읽고, 이웃들은 친구나 가족의 왕래가 없이 살아가는 1인 가구의 세대주가 잠재적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사이코패스가 아닌지 늘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만 하잖아. 우리 시대의 고독이란 부유한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럭셔리한 여유가 된 거야. 고독의 재발견이란 바로 그런 이야기를 하자는 거지. 고독이란 단어에 어울리는 요가나 명상 같은 프로그램이나 오가닉 상품들이 뭐가 있는지 한번 알아봐." - P214

낮과 밤은 이토록 다른데 왜 이둘을 한데 묶어서 하루라고 말하는지. 마찬가지로 서른 이전과 서른이후는 너무나 다른데도 우리는 그걸 하나의 인생이라고 부른다. - P220

그런데 왜 인생은 이다지도 짧게 느껴지는 것일까? 그건 모두에게 인생은 한 번뿐이기 때문이겠지. 처음부터 제대로 산다면 인생은 한 번으로도 충분하다.
하지만 단번에 제대로 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단 한 번뿐인 인생에서 우리가 저지르는 실수는, 그게 제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돌이킬 수 없다는 점에서는 모두 결정적이다. 한번뿐인 인생에서 우리는 그런 결정적인 실수를 수없이 저지른다는걸 이제는 잘 알겠다. 그러니 한 번의 삶은 너무나 부족하다. 세 번쯤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 번의 삶은 살아보지 않은 삶이나 마찬가지다. - P251

주님은 내게 죄를 사해주는 분이 아니라 복수할 권한을 빼앗는 분이었다. 나는 갑자기 무력해졌다. - P261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서로에 대한 이해를 가로막는 심연이 존재합니다. 그 심연을 뛰어넘지 않고서는 타인의 본심에 가닿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우리에게는 날개가 필요한 것이죠. 중요한 건 우리가 결코 이 날개를 가질 수 없다는 점입니다. 날개는꿈과 같은 것입니다. 타인의 마음을 안다는 것 역시 그와 같아요. 꿈과 같은 일이라 네 마음을 안다고 말하는 것이야 하나도 어렵지않지만, 결국에 우리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 방법은 없습니다. 그럼 날개는 왜 존재하는 것인가? 그 이유를 잘 알아야만 합니다. 날개는 우리가 하늘을 날 수 있는 길은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날개가 없었다면, 하늘을 난다는 생각조차못했을 테니까요. - P24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두 방문객 오늘의 젊은 작가 22
김희진 지음 / 민음사 / 201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전체적으로 진부한 감정표현이 많이 아쉽다.
현실성 없는 인물관계도가 유치하다는 생각이 들어 읽는 내내 실소를 터트리게 했지만, 결론적으로 모두 제정신을 차리고 ‘보통’의 단계로 가라앉은 것 같아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반부부터 드러난 반전요소는 초반에 오그라드는 인물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듯하지만, 퀴어라는 요소가 동시대의 문학에 전혀 신선한 소재가 아니라 그런지 흥미를 돋우지는 않았나 보다. 결국 말미에 보이는 ‘손경애’의 ‘진실’을 받아들이는 태도나 감정은 클리셰도 아니고, 작가의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의식을 비약적으로 끼워 맞추려는 의도가 아니었나 싶다.

남자애를 향한 여자애의 사랑이 어느 정도인지 알 것도 같았다. 하지만 어떤 관계에서 싹튼 사랑이든, 사랑한 만큼 되돌려 받을 수 있는 사랑이라는 것은 없었다. 계산기로 두들겨 플러스 마이너스 ‘0‘이 되는 감정의 교환이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숫자 놀음은 수학에서나 가능하다는 걸 여자애는 왜 모르는 걸까. 나는 상운이를 잃고 나서야 알았다. 일방적으로 사랑하고픈 대상이 존재한다는 것은, 살아 숨 쉬고 싶은 이유가 된다는 것을. 그리고 그 대상의 죽음이 곧 자기 자신의 죽음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사랑은 사랑하는 것으로시작되는 것이지 사랑받는 것으로 시작되는 게 아니었다. - P68

그래, 스쉬턴하이트였다. 자기가 지금 읽고 있는 독일 소설이 있다면서, 그가 그 소설에 대해 잠깐 언급한 기억이 났다.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아우슈비츠로 끌려간 두 독일 남자에관한 이야기라는 설명과 함께 그가 덧붙인 말은 이것이었다.
"인류가 생겨난 이래 우리들의 사랑은 항상 죄악시 돼 왔어..
아니, 죽음을 의미했지. 적어도 죽임을 당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보면 현재를 살아가는 지금의 나는 그나마 다행인 건가?" 그때 내 대답은 이랬다. "너나 나나 스스로를 감춘 채 살아가고 있는데 현재가 무슨 의미야." 그런데 현재를 살아가는지금의 자기를 다행으로 여겼던 그가 스스로 죽음 속으로 사라져 간 것이었다. - P15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