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아르의 주인공은 개새끼다. 다만 책을 읽는 중간부터 끝까지 나는 그 개새끼를 처단하는것과 동시에 그에 동조하고 지지하고 열광했던 이들의 책임도 추궁해야할 일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개새끼만 처벌해서 그들에게 면죄부를 줄 수 없으니.

유머러스한 문체임에도 결국 눈물이 나고 말았다. 책뒷표지에 있던 ‘작가라면 비극적 감상에 빠지기보다는 차라리 고통스럽게 웃겨야 한다는 것’이 정말 작가의 능력이었다.

사람이란 누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두 하나씩, 한 가지씩 죄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

후에 그녀의 동료 교사들은당시를 회고하면서 김순희에 대해 짧게 이런 평을 내리기도 했다.
밤이나 낮이나 잠깐이라도 딴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사람, 봉사가 아니라 자기 몸을 학대하려고 노력한 사람……(129p)

마치 이쪽과 저쪽으로 반하게 잘린 나무처럼, 끈이 풀린 검은 커튼이 갑자기 쏟아져 내려대와 객석을 반으로 나눈 것처럼, 그녀는 그렇게 과거와 단절한 채 살아갔다. (130p)

그러니, 보아라. 바로 이 지점에서 어떤 사람들은 우리 이야기의 핵심을 그대로 단정지어 버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아무것도 읽 지 못하고, 아무것도 읽을 수도 없는 세계. 눈앞에 있는 것도 외면하고 다른 것을 말해 버리는 세계, 그것을 조장하는 세계(전문 용어로 ‘눈먼 상태‘ 되시겠다.), 그것이 어쩌면 ‘차남들의 세계’라고 말해 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179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최초의 인간이 이 낯선 친구에게 자신을 맡길 때는 실로 용기와 믿음이 필요했을 것이다. 우리의 본성에는 뭔가 믿음직스럽지못한 데가 있어서, 우리가 믿어야 한다고 생각되는 여러 가지 일을 억지로 믿으면서 자신을 맡겨 버리곤 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아무리 피곤하다고 해도 자기 스스로 눈을 감거나 알지못할 이 낯선 꿈의 세계로 발을 들여놓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인간의 마음이란 것이 어차피 이해하기 힘든 것들로 가득 차있는데, 인간의 영혼 안에서 일어나는 것을 왜 모조리 알려고하는가? 자연이든, 사람이든, 또는 자신의 가슴속에서 일어나는일이든, 우리를 가장 매료시키는 것은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이아니었던가.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인간, 해부용 표본처럼 그 구조가 우리 눈에 분명하게 보이는 인간들은 수많은 소설 속에 나오는그저 그런 인물들처럼 우리를 열중시킬 만한 힘이 없다. 그리고생활에 있어서나 인간에게 있어서, 무엇보다도 흥을 깨는 것은모든 것을 다 설명해 버려서 내면에 존재하는 불가사의함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윤리적 합리주의이다.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라는 것은 어느 존재에나 있는 법이어서, 우리는 그것을 운명이라고도 하고 영감(靈感) 또는 성격이라고도부른다. 그러나 어떤 경우라도 영원히 남는 요소가 있기 마련인데, 이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인간의 모든 행동을 모두 분석할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자기 자신은 물론이고 인간의 보편성을모른다고 볼 수밖에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과는 잘해요 죄 3부작
이기호 지음 / 현대문학 / 200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죄를 찾다 죄를 짓고 죄를 벌하지만 끝내 나는 나의 죄를 생각하지 못했다.
이기호의 소설은 재밌다. 일상적이어서 일상적으로 저지르고 마는 죄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하는 시선이 좋다. 다만 읽는순간 한번에 와 닿지 못하면 끝내 미궁에 빠져버리는게 (나 자신에게)좀 아쉽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쩌면 그것은 자연스러운 관성 같은 것이었는지도 몰랐다. 가정을 진실로 만들어버리는 관성 같은 것.

이곳을 벗어나기만 한다면, 수술에 대한 생각만 버린다면, 이 모든 모멸감과 수치스러움, 그리고 그것들을 감추기 위해 어쩌면 억지로 꾸며낸 모든 말들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만 같았다.(161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그 원고를 읽으면서 내가 그동안 그들에게서 숱하게 보아왔더 누구에게나 호감과 신뢰를 줄 만한 여유롭고 자신감 있는 미소가 이제는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희미해진 것을 보았고, 그들이 긴장한 채, 어떤 간절함을 품은 채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걸 느꼈다. 나는 그제야 그들이 나를 찾은 이유를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오랫동안 오직 둘만이 존재했던 세계에 이제는 그들에게 동의해줄 타인이 필요하다고 느꼈으며 그게 그들의 세계가 지속될 수있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들은 어떤 유적도 역사도 없는 그들의 애처로울 정도로 빈약한 세계를 증언해줄 목격자를 원했고, 최후의 순간에 그들의 편에 서줄 동조자를 원했으며, 점점 커져가는 그들의 죄책감을 함께 나눌 공범을 원했다.

"우리 매년 여름마다 여기 올까?"
우리가 단 한 번도 이야기해본 적 없는 다음 여름에 대해 이야기할 만큼 현수는 그곳이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우리가 단 한 번도 이야기해본 적 없는 다음의 다음, 또 다음의 여름에 대해 이야기할 만큼 현수는, 그리고 우리는 그날의 분위기가 좋았던 것이다.
이후 잠시 동안, 결코 길지는 않았지만 모두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분명하게 정적이 흘렀다. 매해 여름이란, 이런 아름다운 계절이 한 번도 아니고 두 번도 아니라 셀 수 없이 많이 지속될 여름이란 우리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아득하고 눈부신 말이었다. 그동안 우리가 종종 나누기도 했던 조금은 과장된 약속들과 달리 그건우리 모두를 미몽에서 깨울 만큼 강력한 주문이었다. 물론 그 짧은 정적 이후에 우리는 다시 활기를 되찾았고, 문학과 삶에 대해 목소 리를 높였지만 그뒤로는 모든 게 공허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그 주 문이 내게 준 실감은 언젠가 우리가 서로를 잃을 거라는 것이었고,
그 상실에 대한 두려움만큼 내가 그들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니 그때 느낀 공허함은 다른 누구의 것이 아닌 분명 나의다. 그 공허함은 정은의 것이고 현수의 것이었지만, 그만큼이나 나의 것이기도 했다.

이제 와 돌이켜보면 내가 현수와 무슨 이야기를 나누려고 했던것인지 알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에게 사과를 받으려던 것도 아니고 그에게 글을 이어 쓰라고 강요하려던 것도 아니었다. 아마도 그를 만나 무언가를 확인하거나 기다리기 위함이라기보다는그저 어떤 시기를 연장시키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나는 온전히 나로서 존재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온전히 나로서 존재하게 되는 걸 피하고자 했던 것 같다. 꽤 오랫동안 무엇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나 돌이켜보았지만, 그건 옳은 질문이 아니었다. 오히려무엇이, 그들이 나를 그렇게 만들 수 있도록 했는지가 더 나은 질문이었다.

소설은 누군가가 누군가를 만나 어떠한 사건을 겪고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맞이하는 것입니다
........
여전히 내가 그 이후를 어떻게 지나왔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이후, 내가 어떻게 변했는지에 대해서는 나는 말할 수 있다. 누군가가 내 몸을 보고 흥분하고 발기하는 일을 선물처럼 여기게 되었다. 첫이 아닌 것들의 의미를 더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 이 되었다. 사랑에서 애걸로 되는 건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남자를 좋아하는 남자, 를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 조금은덜 실패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도 영화도 내가 선택한 잘못 찾아들 어간 길이란 걸 깨닫게 되었다.(305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