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밤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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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령은 주인공 '지연'에게 여름으로 기억되는 도시라 한다. 그녀가 열 살 때 열흘간 머물렀던 할머니의 집이 있던 그곳의 여름 냄새로 기억되는 곳..

그 이후 할머니와 엄마는 왕래하지 않았고 그녀 '지연'은 할머니도 초대하지 않은 채 결혼도 했었다가 이혼을 하고, 희령 천문대의 연구원으로 오게 된다. 그녀의 나이 서른두 살..

6년간의 결혼생활 끝에 남편의 외도로 선택했던 이혼이었지만,

밤에는 잠들지 못하고 불안으로, 분노로 낯선 장소에서 아파하던 그녀에게 같은 아파트 이웃이었던 어떤 할머니가 사과를 건넸고, 제 아픔에 겨워 주위를 깊게 보지 못했던 '지연'을, 그녀의 할머니는 이미 알아보고 있었던 듯..

 

조심스럽게 부담 안 주려고 거리를 유지하는 할머니와

다행이라 여기면서도 그런 거리를 즐길 수만도 없는 그녀 '지연'은,

자신을 닮았다는 할머니의 엄마, 그러니까 그녀의 증조할머니 이야기를 궁금해하고, 더 듣고 싶어하고 그녀들의 편지를 읽고 싶어 하면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나'는 '지연'이

'나'의 엄마는 '길 미선'

'나'의 할머니는 '박 영옥'

'나'의 증조할머니는 '이 정선'이다.

증조할머니, '정선'은 백정의 딸로, 어릴 때 아버지가 죽고 병든 어머니를 부양하며 역전에서 삶은 옥수수를 팔아 생계를 유지했는데

그런 그녀에게 양민 남자 열아홉의 '박 희수'는 저고리에 검은 천(백정이라는 표식)을 매달고 행상하는 열일곱의 그녀가 천진난만한 호기심으로 물어온 말에 관심을 보였고, 일본 군이 그녀를 데려갈 것이라며 자기와 함께 개성으로 가자 한다. 실제로 일본군이 집으로 와, 공장에 취직시켜준다고 강제로 데려가려 했고, 그녀는 병 져 누워있는 엄마를 두고 개성 길에 오른다.

'박 희수'는 천주교 신자 집안의 후손이었고, 목수로 재산을 일군 아버지를 둔, 3남 4녀 중 막내였다. 그의 아버지는 백정의 딸을 며느리로 들일 수 없다면서 반대했고, 떠돌고 싶은 충동을 갖고 살던 '희수'는 '정선'의 아픈 어머니를 '새비 아저씨'라는 사람에게 돌봐줄 것을 부탁하고 길을 떠난다.

'정선'의 엄마는 딸더러 자기도 데려가달라 했다가 체념하면서 다음 생에는 너의 딸로 태어나 네게 못해준 것을 해주겠다고 한다.

'정선'은 고향에서도 백정이라고 놀림당했고, 개성에 와서도 백정이었다는 것이 밝혀져 왕따를 당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녀의 고향이 '삼천'이라 해서, 그녀를 '삼천이'라 부른다.

'삼천'은 살기 위해 냉정하게 엄마를 버리고 떠나왔지만,

자신의 엄마를 돕던 '새비 아저씨'를 은인으로 생각했고 뭔가를 꼭 갚겠다고 다짐했다.

그녀 '삼천이' ,'나', '지연'과 닮았다는 것이 할머니, '영옥'의 말이다.

'영옥'이 간직한 오래된 사진 속에 증조할머니는 '지연'이 보기에도 자신과 많이 닮아있었다.

'삼천'의 엄마가 죽고 '새비 아저씨'가 처를 데리고 개성으로 온다.

고향이 새비라서 '새비 아저씨'라 불리던 그의 아내는 '새비 아주머니'라 불린다.

'삼천이', '새비' 둘은 막역한 친구 사이가 된다. 백정이라는 처지 때문에 한 번도 친구를 둘 수 없었던 '삼천'에게 '새비'는 커다란 위안이 된다.

그런 '삼천'이 딸 '영옥'을 낳고

'영옥'이 '미선'을 낳고 '미선'이 '지연'을 낳는다.

'새비'는 '희자'를 낳고.. 그렇게 여인 4대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히로시마 원자 폭탄이 투하되고

한국 전쟁이 발발하고

그 시대를 살았던 '삼천'과 '새비'의 우정, 삶, 그들의 남편들 이야기가

할머니 '영옥'의 회상과 67년 전의 편지들로 씨실 날실이 되어 펼쳐진다.

 

- 이하생략- 

 

 

 

 

엄마는 일평생 내게 기대하고, 실망했다. 너 정도로 똑똑하고 너 정도로 배운 사람이라면 응당 자신은 꿈도 꿔보지 못한 삶을 사는 게 마땅하다는 것이 엄마의 주장이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가진 것 별로 없는 그와 결혼한다고 했을 때 엄마는 내게 크게 실망했지만, 내가 결혼을 하고 정상 가족을 꾸린다는 사실 자체에 만족하는 것으로 마음을 돌렸다. 엄마는 사위를 살뜰히 챙겼다. 우리가 우리의 가족을 잘 굴려나가서 남들 보기에 그럴듯한 모습으로 살기를 기대했다. 나는 엄마의 그 작은 기대마저도 충족시키지 못했다. 엄마를 철저히 실망시켰다. 엄마에게 인정받기를 기대하고 번번이 상처받기보다는 내 일에서 인정받고 친구들에게 지지를 받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머리로는 아는 일을 내 가슴은 잘 받아들이지 못했다. 자식은 엄마가 전시할 기념품이 아니야. 마음속으로는 그렇게 소리치면서도, 엄마의 바람이 단지 사람들에게 딸을 전시하고 싶은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마음이 아팠다. 135-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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