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바다 - 공지영 장편소설
공지영 지음 / 해냄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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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이란 시간은 이집트를 탈출한 유대인이 광야에서 헤맨 시간이라 한다.

머리에서 기억이 지워져도 몸이 그걸 기억 하고 있으므로 그 육체의 기억을 지우는데 필요한 시간이 또한 40년..

하여 40년이란 시간은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불가역적인 시간인 것..

여고생이었던 그녀가 뉴욕에 사는 첫사랑의 그를 만나러 가기까지 40년이 흘러있었다.

그는 할아버지가 되어있었고, 그녀 역시 아빠 없는 아이를 낳겠다는 딸아이의 출산을 앞두고 있다.

뉴욕에 살고 있는 그 사람은, 신학생이었고

그녀는 성당 고등부 행사차 오른 춘천행 기차에서 잘생기고 여학생들에게 인기 있는 그에게 한눈에 반했었다.

영원을 말하던 그는 인생을 그분에게 바치고자 하는 길을 걷고 있었고

그녀 '미호'는 그를 위해 자신의 사랑을 그분에게 양보했었다.

삶은 가차없고 매정하다는 그들의 회상처럼

누구에게나 그러했다.

40년 전 그가 왜 그랬는지 그렇게 묻고 싶었지만 차마 물을 수 없었던 질문을 던지고 집으로 돌아와 괴로워하던 그녀에게 어머니가 해주던 말.

- "돌아보니까, 아픈 것도 인생이야. 사람이 상처를 겪으면 외상 후 스트레스성 장애라는 것을 겪는다고 하고 그게 맞지만, 외상 후 성장도 있어. 엄청난 고통을 겪으면 우리는 가끔 성장한단다. 상처가 나쁘기만 하다는 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거지. 피하지 마. 피하지만 않으면 돼. 우린 마치 서핑을 하는 것처럼 그 파도를 넘어 더 먼바다로 나갈 수 있게 되는 거야. 다만 그 사이에 날이 가고 밤이 오고 침묵이 있고 수다가 있고 그런 거야. 젊어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이걸 깨닫지 못해. 하지만 이제 너도 오십이 훨씬 넘었고 이제는 이해할 수 있을 거야. 너무 많이는 아파하지 마. 250-251

대학교수였던 그녀의 아버지는 독재에 항거하며 '김재규' 사형을 반대하는 연판장에 사인한 죄목으로 대학에서 잘리고 고문을 받고 돌아와 앓아눕는다.

집안이 몰락하자 서울 변두리로 이사 갔고 대학 2학년 때 어머니의 권유로 독일 유학길에 올랐고 지금은 독문학 교수가 되어있지만, 마약에 중독된 남편과는 이혼한지 오래였다.

그녀가 끝내 그에게 묻고 싶었던 말은 자신들의 미래를 결정해버린 그를 피해 달아난 자신의 모습, 그땐 너무 어렸고 어떠한 것이든 결정된 것을 받아들이기가 두려웠다는 그 마음이 와닿았다.

그들은 자연사 박물관 공룡 앞에서 만나기로 한다. 바로 사우르스는 1억 5,600만 년 전의 공룡이다. 그들이 헤어져 있던 40년이란 시간은 그에 비하면 먼지 같은 세월이라지만, 그래서 오래전 헤어진 첫사랑을 만나기에 좋은 장소라고 역설하기도 한다.

그녀가 문득 꺼내는 기억 속의 먼바다는 연한 에메랄드 빛의 서해, 몽유도이다. 그들이 중고 연합 여름 수련회를 갔던 장소.

물을 두려워했다는 그녀가 그를 따라나서 먼바다까지 헤엄을 쳤다고 그는 기억한다는데, 도대체 그녀는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없었다는 거였다.

여전히 물을 두려워하는 그녀가 그런 사실이 있었다면 기억나지 않을 리가 없다고..

그녀가 묻고 싶었던 그날을 그는 기억 못 하는듯하다.

그렇게 그들은 서툴렀던 그들 사랑의, 절정의 순간은 잊은 채 살았단다.

-이하 생략-

 

- 40년 전 그해의 추웠던 여름, 농작물들이 냉해를 입었던 그해 여름처럼 그렇게 추운 여름이 있듯이 단 한 번도 뜨겁지 못했던 인생이 있는데, 하필이면 그것이 자신의 생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렇게 잃어버린 젊음 때문에 그녀는 단 한 번도 젊지 못했고 따라서 늙어가지도 못했다고 생각해 왔다. 방부 처리된 낱말들처럼 너무 조숙해서 성숙해지지 못한 애어른처럼. 2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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