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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애
김별아 지음 / 문학의문학 / 200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소설을 좀처럼 읽지 못한다. 아니 안 읽는다. 예전에는 내가 살아가는 인생 자체가 소설 그 자체이고 시트콤이라 읽지 않는다 하였는데, 기실은 뒷얘기가 궁금해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서 읽기를 겁내 하는 장르가 바로 소설이다. 근데, 이렇게 선물을 받으면 다른 모든 책들을 제쳐놓고 먼저 손이 가는 것이 소설이기도 하다. 더구나 작가의 친필 사인이 있는 책이라면 더더욱이나~
지인의 소개 덕분으로 김별아 작가님과의 사적인 자리를 할 수 있었고, <미실>, <백범 김구>에 이어 세번
째로 읽게 되는 소설이다.
아나키스트이며 니힐리스트이며 독립 운동가이기도 한 박 열이라는 인물보다도 일본인이면서도 미워할 수 없는 후미꼬 - 그녀가 더 가슴에 남는다. 내가 여라자서일까? 아니면 머리에 먹물 들었다하여 능력없어 보이는 그런 이미지가 오버랩되는, 사형선고를 받고 무기징역으로 형이 가벼워지자 스스로 목숨을 끊어 결의를 보연준 후미꼬와는 반대로 해방까지 살아남은 박열이란 인물에 대한 편견때문일까? 암튼, 내가 박열이였다면 사랑하는 연인 후미꼬와 함께 스스로 생을 마감하지 않았을까? 아니면, 후미꼬의 죽음이 자살이 아니라 타살이라서 그 억울한 죽음에 대한 원한과 해명을 위해서 끝까지 살아남았을까?
사랑이야기는 언제나 원초적 자극을 동반한다. 지난 한 학기에도 [정신분석과 욕망이론]이란 학과목에서 쥘리아 크리스테바의 <사랑의 역사>를 접하면서 그 해답을 찾지 못했던 사랑이라는 정의.
잘은 모르지만 인간이 존재하는 한 사랑의 의미는 정의 되지 못하지 않을까 싶다.
표지의 그림처럼 후미꼬는 20년대 미용사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단발 펌에 진주 목걸이를 하고 아나키즘의 대표색이 검정 옷을 입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사형선고를 받는 최후 심판에서 박열과 함께 정장도 아닌, 기모노도 아닌, 조선옷을 입고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어머니의 여동생과 바람이 나서 그녀와 그녀의 어머니를 버렸고, 그녀의 어머니도 남자에 대한 의존성이 강해서 결국 그녀를 버린다. 또한 그녀의 외할머니, 할머니 조차도 그녀를 버린다.
배고픔과 추위의 고통스러움보다 더 참을 수 없는 것은 사랑받을 수 없고, 사랑할 수 없는 깨달음이 그녀의 가슴을 더 아프게 했다.
그녀의 나라, 그녀의 가족도 버린 그녀에게 처음으로 친절을 베푼 것은 그녀의 나라가 짓밟고 있는 나라 바로 조선이였다. 그랬기에 그녀는 국경과 사상을 초월한 조선의 한 남자를 사랑했던것이다. 자기 자신보다도 더 사랑하는 일은 없을거라 다짐했지만, 결국 그 다짐은 죽음도 함께 할 정도로 더 커버렸다.
그런 그녀에게 찾아온 사랑은 사소한 일에도 감동해 쩔쩔매게 했다.
상처입은 고독한 가슴을 가진 그녀에게 사랑에 대한 감정은 결코 아낌이 없었다. 죽을 줄 알면서도 불을 향해 달려드는 불나방처럼 목숨을, 마음과 함께 준 것이다. 이런 사랑이야말로 열애가 아닐까?
비록 서투르기 짝이 없었지만 고백도 후미꼬가 먼저 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오늘날 아직도 고백은 여자보다는 남자가 먼저 해야만 구색이 맞을것 같은데...1920년대 그 시절 그녀는 사상이나 사랑도 모던한 신여성이였다. 신여성이라 하면 사고나 사상에 있어서는 긍정적이지만, 사랑에 있어서는 다소 부정적이다.
자칫 콜론타이스트처럼 자유연애를 주장하며 정조 관념이 없는 그런 여성으로 비춰질 수 있으나 그녀는 아니었다. 그래서 그녀가 박열보다도 내게는 더 깊은 인상으로 남는다.
초반의 후미꼬는 공지영의 <착한여자>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건 나의 오해였다. 그의 아픈 과거는 과거일 뿐 그녀가 하나도 선택한 것이 없었다. 비록 고통스럽지만 부정할 수 없었다. 되려 그녀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고 그녀의 운명을 껴안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활짝 만개한 꽃도 시간이 지나면 이울기 마련이거늘 그녀는 가장 아름다워야 할 순간에, 가장 빛나야 할 순간에 이슬처럼 사라졌던 그녀는 충분히 사랑 받을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해 주고 싶다.
마지막으로 그녀가 박열을 연모하게 만든 시이다. 제목은 좀 거시기 하지만...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비참한 모습으로 사는 이들만이 공감할 수 있는 시.
개처럼 - 아니 개보다 못한 삶을 살면서도 애꿎은 하늘만, 달만 보고 짓고 있는....
그 모습에서 그녀는 힘없는 그녀를 보았고, 힘없는 나라 조선을 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그녀의 삶과 조선이라는 나라에 연민을 가지게 되었고, 연민을 품은 나라의 독립을 위해 일하는 박열을 연모하게 되었나보다.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하늘을 보고 짓는
달을 보고 짓는
보잘것없는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높은 양반의 가랭이에서
뜨거운 것이 쏟아져 내가 목욕을 할 때
나도 그의 다리에다
뜨거운 줄기를 뿜어대는
나는 개새끼로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