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프 좋아하세요?'(황유미)가 아래 글의 출처이다. 수프를 좋아하게끔 계기가 되어 준 구 남친의 가명을 '구숩'이라고 썼다. 

사진: UnsplashJametlene Reskp


'수프 먹을래?'라는 짧은 그림책도 봤다. 귀엽다. 


지금은 수프를 식사 대용으로 파는 음식점도 많이 보이지만 당시에는 수프만 파는 음식점이 드물었기 때문에 애피타이저 메뉴에 집착하는 듯한 내 모습은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의구심을 자아낼 수밖에 없었다. 왜 그렇게 (그다지 대단하지 않은, 식전 요리일 뿐인) 수프를 좋아하느냐고 묻는 사람 앞에서 이유를 솔직하게 말한 적은 없었다. 레스토랑에서 파는 수프 먹는 재미를 알게 된 계기가 바로 (구)애인인 구숩(가명) 덕분이었기 때문이다.

구숩과 함께 식당에 갔을 때 야채 수프를 주문하는 사람을 살면서 처음 보았다. 식당에서 수프를? 그것도 ‘야채’ 수프를 주문한다고? 그때까지 내 머릿속에서 야채 수프란 동화 속 으스스한 복장을 한 마녀가 악의를 담아 끓인 의심스러운 모양새의 혐오 식품이었다.

내가 얼마나 의심 가득한 눈으로 쳐다보았으면 구숩은 약간은 애원하는 말투로 나를 믿고 한 번만 먹어 봐 달라고 권유했다.

충격적인 맛이었다. 살면서 먹었던 음식들, 그간의 기억을 더듬어 보았을 때 어느 한 지점에서도 교집합이 없을 정도로 새로운 맛을 본 것이다. 혓바닥에서는 찌르르 작은 전율이 일었다. 잘게 썬 감자와 당근의 적당한 익힘 정도와 국물의 깊은 맛. 눈앞에 잘 보이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것도 깜빡 잊고 고개를 아래로 파묻고 숟가락질을 멈추지 못했다. 수프와 함께 메인 디시도 시켰지만 기억에 남은 건 야채 수프뿐이었다. - 수프를 나누면 반이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에 글로 읽은 윤성희 작가의 단편 '어제 꾼 꿈'을 오디오북으로 들었다. 개인 소설집 '날마다 만우절'과 여성 작가들의 단체 작품집 '나의 할머니에게' 수록작. 슬프고 따뜻하다. 마녀 수프를 끓이는 장면이 환상적이다. 

사진: UnsplashHalanna Halila


'돌멩이 수프' 생각도 났다. [돌멩이를 끓이는 법]https://v.daum.net/v/2021042109441979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을유세계문학전집 '리어 왕.맥베스'에 실린 '맥베스'로부터


프림로즈(앵초) Pixabay로부터 입수된 Erwin님의 이미지


앵초 - Daum 백과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b15a0528a


[Knocking.] Knock, knock. Never at quiet! What are you?—But this place is too cold for hell. I’ll devil-porter it no further: I had thought to have let in some of all professions, that go the primrose way to th’ everlasting bonfire. 출처 The Project Gutenberg eBook of Macbeth https://gutenberg.org/cache/epub/1533/pg1533-images.html#sceneII_20.3 



(노크 소리) 꽝, 꽝. 조용할 때가 없군! 대체 누구요? 하지만 여기는 지옥에 비하면 너무 춥지. 지옥의 문지기 노릇은 그만 해야겠다. 영원히 타오르는 지옥 불로 이끄는 환락의 길에 들어선, 갖가지 직업을 가진 여러 놈들을 들여보낼 생각이었지만 말이야. - 맥베스 2막 3장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림로즈(앵초) - 사진: UnsplashW i l l i a m R a y


충고 고마워요. 제 마음의 파수꾼으로 소중히 간직할게요.
하지만 오빠,성실하지 못한 목사님들처럼 나에게는 천국으로 가는 험한 가시밭길을 가르쳐주면서, 자기는 멋대로 놀아나는 탕아처럼 환락의 꽃밭이나 기웃거리는 건 아니겠죠?
나한테 지금 한 설교를 저버리지 마세요. - 제1막 제3장 폴로니어스 저택의 어느 방

I shall th‘ effect of this good lesson keep
As watchman to my heart. But, good my brother,
Do not, as some ungracious pastors do,
Show me the steep and thorny way to heaven;
Whilst, like a puff‘d and reckless libertine,
Himself the primrose path of dalliance treads
And recks not his own read.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림로즈 By Anne Burgess, CC BY-SA 2.0, 위키미디어커먼즈


프림로즈는 가장 싱싱하고, 순수한 봄꽃이지만 청춘과 연결된다는 점에서 희망뿐 아니라 위험도 뜻한다. 그 건강하던 에메랄드색 잎이 섬세한 꽃을 조롱이라도 하듯 병색이 도는 누런색으로 쉽사리 변하는 모습은 사람들로 하여금 프림로즈의 추락을 늘 경계하게 한다. 셰익스피어는 프림로즈에 ‘단정한prim’ 면이라고는 없다는 걸 알았으며 이들의 순진한 외모가 지닌 위험한 매력을 이해했다. 《맥베스Macbeth》에서 술 취한 성문지기는 "프림로즈 길을 따라 영원한 지옥불로 들어가는 자를, 직종을 가리지 않고 모든 업종에서 몇몇씩"을 들여보내길 기대한다.

이 성문지기의 음울한 농담은 셰익스피어의 또 다른 위대한 비극 《햄릿Hamlet》에서 오필리아가 자신의 사적인 행동을 충고하는 오빠 레어티스의 위선을 경고하며 비난하는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레어티스가 오필리아에게는 "천국으로 가는 가파른 가시밭길"을 가리키면서 정작 그 자신은 "환락의 프림로즈 길을 밟고" 있음을 다시 생각해보라고 말이다. 어떤 길이나 오솔길에 줄지어 있는 프림로즈는 너무도 매혹적이고 순수해 보여서 그들이 우리를 선善과는 거리가 먼 곳으로 이끌지 모른다고 의심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되돌아오지 못할 만큼 너무 멀리 가버리기 전에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