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글로 읽은 윤성희 작가의 단편 '어제 꾼 꿈'을 오디오북으로 들었다. 개인 소설집 '날마다 만우절'과 여성 작가들의 단체 작품집 '나의 할머니에게' 수록작. 슬프고 따뜻하다. 마녀 수프를 끓이는 장면이 환상적이다.
문학동네 2021 겨울호에 윤성희 작가 특집이 실려 있다.
좋아하는 대상 앞에서 자신을 스스럼없이 ‘할미’라 칭하지만 정작 아직은 젊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이들에게 할머니란 어떤 존재일까. 이들에겐 반복되는 경험 속에서 감각이 무뎌지고 감수성 또한 흐려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다. 윤성희의 「어제 꾼 꿈」은 그런 면에서 틀림없는 안도감을 준다.
복지회관 수영장에서 아쿠아로빅을 배우거나 유치원에서 열리는 동시 발표 대회를 구경하러 갔다가 알게 된 시("비가 오면 손가락을 벌려요. 그 사이로 비가 지나가게.")를 기억하면서 비 오는 날 "창밖으로 손바닥을 내밀고 한참 서 있어보곤"(14쪽) 하는 주인공이 알려주는 건 이런 것이다. 늙어간다는 건 한 지점으로 좁혀져 들어가는 게 아니라 다양한 나이대를 통과해가며 그것들을 한 몸 안에 품어가는, 다채롭게 넓어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는 사실. - 발문_황예인 · 아직은 아니지만, 동시에 이미 할머니가 되어
조카가 태어났을 때 나는 식물도감을 사서 봄에 피는 들꽃의 이름을 외웠다. 훗날 조카들이랑 산책을 하게 되면 척척박사처럼 들꽃 이름을 말해주는 고모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카랑 산책할 일은 거의 없었고 들꽃들도 볼 일이 많지 않아서인지 금방 까먹었다. 식물도감 외우기는 언젠가 다시 도전해볼 생각이다. 손주들은 없겠지만…… 들꽃을 볼 때마다 혼자라도 이름을 불러보는 할머니가 되고 싶기 때문이다. - 작가 노트
"이모할머니랑 그거 해도 돼요?" "그게 뭔데?" 내가 묻자 지후가 마녀할머니 놀이라고 대답했다. "생일날마다 할머니랑 그걸 하거든요." 내가 동생에게 마녀할머니 놀이가 뭔지 묻자 동생이 이렇게 설명을 해주었다. "만화에 보면 나오잖아. 마녀들이 끓이는 이상한 수프. 그걸 만드는 거야. 아, 진짜 먹을 수 있는 수프는 아니고." 그걸 만들어서 뭐 하느냐고 묻자 지후가 그걸로 주문을 외울 거라고 했다. "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한번 해보자." 그러자 지후가 박수를 치면서 깡충깡충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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