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연초에 읽은 비키 바움 소설집 '크리스마스 잉어' 수록작 '길'로부터 옮긴다. 병에 걸려 아픈 친칸 부인이 돌아가신 어머니의 환영과 대화하는 장면이다. 토마스 만이 높게 평가한 작품이라고 한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난 비키 바움은 음악가 출신 유대계 여성작가로서 미국으로 망명한다.

Traditionelles Heilig-Abend-Essen: Der Weihnachtskarpfen By AnRo0002
'크리스마스 잉어' 번역은 원로 여성 독문학자 박광자 교수가 했는데 비키 바움의 장편 '그랜드 호텔'도 같은 역자이다. 박광자 교수가 번역한 올해의 신간 헤르만 헤세 전기와 함께 쏜살문고 '기만'(토마스 만)을 찾아둔다.
그녀가 눈을 떴는데, 세상을 떠난 어머니가 곁에 나타났다. 어머니는 침대가에 앉아 있었다. 젊어서 세상을 떠났는데 백발이었다. 친칸 부인은 미소했다. "알아요, 어머니." 그녀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 "그래, 너도 곧 알게 돼." 어머니가 조용히 말하고 하얀 머리를 끄덕였다. 부인은 거의 움직이지 않은 채 이렇게만 말했다. "이제 쉬워졌어요." 그녀는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부드럽고 따스한 손을 잡아 자신의 목에다 놓았다.
그러자 숨을 쉴 수 있었다. "어떻게 살아왔니?" 어머니가 물었다.
"내가 어떻게 살아왔지?" 부인이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내가 어떻게 살아왔지?"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우는 것 같은데, 눈에서는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저 멀리 자신의 삶이 보였다.
그녀는 한참 동안 가만히 누워 자신의 삶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못 이룬 꿈뿐이에요, 어머니." -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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