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그리드 누네즈 장편소설 '친구' 첫 머리에 이탈리아 여성작가 나탈리아 긴츠부르그의 글이 한 문장 인용된다('미리보기'를 통해 읽을 수 있다). 그 글이 나탈리아 긴츠부르그 산문집 '작은 미덕들'에 실려 있는데 '친구' 인용문으로 시작하는 문단을 옮긴다. 글 전체가 다 좋지만 후반부에 위치한 이 부분 이하는 특히 강력하다. 이 글의 제목은 '나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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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retta Junck - Torino, Aiuola Natalia Levi Ginzburg, CC BY-SA 4.0 나탈리아의 결혼 전 성이 '레비'다.
그리고 글을 쓰면서 자신의 슬픔을 달랠 수 있다고 기대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일이 우리를 어루만지고 달래주리라는 착각에 빠질 수 없다. 내 인생에서 쓸쓸하고 공허한 일요일들이 끝도 없이 이어졌던 때가 있다. 그때 나는 뭔가를 쓸 수 있기를 열렬히 바랐다. 글을 쓰며 고독과 권태를 위로받고, 문장과 단어가 날 어루만지고 달래주길 기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 한 줄도 쓸 방법이 없었다. 그러니까 나의 일은 나를 항상 거부했고 나에 대해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이 일은 위로나 오락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일은 친구가 아니다. 이 일은 우리에게 피가 날 정도로 채찍을 휘두를 수 있는 주인이며 고함을 치고 정죄하는 주인이다. 우리는 침과 눈물을 삼키고 이를 악물고 상처의 피를 닦고 주인을 섬겨야만 한다. 그가 원할 때 섬겨야 한다. 그러면 그는 우리가 일어서서 두 발로 확실히 땅을 딛고 서게 도와줄 것이다. 광기와 섬망을, 절망과 열병을 이겨내게 도와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명령하길 바라며 우리가 그를 필요로 할 때 우리 말에 귀 기울여주려 하지 않는다. - 나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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