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korea.kr/news/policyNewsView.do?newsId=148774198&call_from=naver_news "사랑은 피나무 잎처럼"


Linde bei Frankenbrunn By Rainer Lippert - Own work, Public Domain, 위키미디어 커먼즈






피나무 아래에서 마을의 무도회가 열렸다.

"……이미 피나무 주변은 꽉 찼네. 그리고 모두들 광란해서 춤을 추었네. 피나무로부터 멀리 울리는 소리. 야, 야, 얼씨구절씨구, 지화자, 어이(괴테, <파우스트>)."

신랑 신부가 서로 피나무 줄기에 대고 한 서약은 어찌됐건 구속력이 있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중세에 결혼식은 관례적으로 교회에서 피나무 아래로 옮겨졌다.

피나무는 항상 약한 이들과 방어할 수 없는 사람들 그리고 사랑하는 이들의 보호자로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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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다우의 문장은 린다우라는 이름의 유래된 뜻인 피나무이다 (Linde는 독일어로 피나무를 뜻한다).] 출처: 위키백과


린다우 - Daum 백과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b06r3503a







하나 또는 몇 그루의 피나무가 거주지의 중심에 또는 마을의 샘가에 심어졌는데, 그것은 생명의 나무이고 생명의 샘이며 공동체의 삶의 중심이었다.

끝없이 많은 평야의 명칭이 피나무라는 개념을 포함하고 있고 독일어권에서는 린다우에서 라이프치히에 이르기까지 천 개가 넘는 지명에서 그러한 명칭이 나타난다.

마틴 루터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피나무 아래에 건초용 나무 시렁이 있다면 그것은 평화의 표식일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피나무 아래에서 마시고 춤추고 즐거이 보내곤 하기 때문이고, 피나무가 우리의 평화와 기쁨의 나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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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편 '스완네 쪽으로' 중 1부 '콩브레'에 나오는 보리수 차의 보리수는 피나무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보리수라 불리는 나무들 (경전 속 불교식물, 2011. 5. 9., 민태영, 박석근)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993922&cid=46694&categoryId=46694


피나무꽃차 - 사진: UnsplashDeniz Rona


영국 식물학자 조너선 드로리가 지은 책 '나무의 세계- 80가지 나무에 담긴 식물과 사람 이야기(원제 Around the World in 80 Trees)' 유럽피나무 편에 프루스트 잃.시.찾 속 "피나무 꽃을 우린 차"가 언급된다.







고모는 자기가 흥분돼 있다고 느끼면 홍차 대신 보리수 차를 달인 탕약을 요구했다. 그러면 약봉지에서 접시에다 정량의 보리수 차를 꺼내 담아서, 그것을 곧 끓는 물에 넣는 것이 나의 임무였다. 바짝 마른 꽃줄기는 서로 뒤엉켜 고르지 못한 격자를 이루며 안쪽으로 굽어 있었고, 그 얽힌 격자에는 마치 화가가 장식적으로 배치한 것처럼 빛바랜 꽃이 달려 있었다.

이윽고 고모는 더운물에 달인 그 마른 잎과 시든 꽃잎을 맛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속에 조그만 마들렌을 담그고, 그 조각이 충분히 부드러워졌을 때, 그것을 나에게 내밀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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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UnsplashTim Schmidbauer


[김지승 '술래 바꾸기'] https://www.newsis.com/view/?id=NISX20230807_0002405308&cID=10701&pID=10700





약속한 날로부터 몇 년이 지나서야 친구에게 재출간된 『목욕탕』을 보내줄 수 있었다. 『목욕탕』 속 흐르는 자아처럼 책의 꼴도 계속 변화하고 있다. 친구는 특히 "죽는 날짜로 시작하는 이력서" 부분이 좋았다고 꼽았다. 책의 처음으로 돌아가게 하는 주문 같다면서. 내가 놓친 문장이었다. 어떤 차이는 동일성보다 미덥다. 너와의 관계를 이미 담지하고 있는 ‘2인칭 나’는 그 차이에 의지해 관계와 공생을 말할 수 있다.

그러나 타자를 안으려고 나를 비우는 순간의 언어는 유려할 수 없다는 것. 부정확하게 더듬거린다. 겨우 묻고 답한다. - 김지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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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늘 돋는 몸, 잃어버린 말… 경계선 밖으로 밀려난 존재]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30512021002&wlog_tag3=daum


작년 악스트 7.8월호에 김지승 작가가 쓴 다와다 요코의 장편소설 '목욕탕' 리뷰가 아래 글의 출처이다.

생선 비늘 By Doc. RNDr. Josef Reischig, CSc. - Author's archive, CC BY-SA 3.0, 위키미디어커먼즈







처음 일본어로 쓰여졌지만 독일어로 먼저 출간된 『목욕탕』의 일본어 제목은 ‘うろこもち(비늘 가진 사람)’이다. 비늘을 의미하는 ‘うろこ’는 비듬, 때로도 쓰이는데 이는 독일어 ‘Schuppen’도 마찬가지다. 비늘, 비듬, 때, 우유, 엄마, 화상 자국, 재, 죽음……. 크리스테바가 개념화한 ‘비체(abject)’를 떠올리지 않기가 오히려 어려울 만큼 무수한 비체와 비체화가 선명한 『목욕탕』의 초기 판본은 지금과 퍽 달랐다. 90년대 독일어판의 경우 재생한 것 같은 종이에 인쇄된 희미한 사진들 위에 본문 텍스트가 놓였다. 여성의 몸 사진이었다. 서른 명의 여성 사진이 두 번씩 쓰이며 총 60페이지를 구성하는 책의 매 페이지마다 텍스트가 사진 속 여성의 몸을 반투명하게 덮고 있다.

『목욕탕』에도 그런 진실이 있다. 독일어판 제목 ‘Das Bad’는 목욕탕 외에도 목욕하는 행위와 목욕물을 의미하며, 일본어판 제목은 비늘 가진 사람이라는 행위자를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2010년 출간된 『목욕탕』 독-일 이중어판은 연결과 분리의 동시성을 전달하는 데 충분히 효과적이다. 세로로 흐르는 일본어와 가로로 흐르는 독일어가 서로를 밀어내거나 당기는 상상만으로도 그 사이에 낀 것처럼 서 있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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