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늘 돋는 몸, 잃어버린 말… 경계선 밖으로 밀려난 존재]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30512021002&wlog_tag3=daum


작년 악스트 7.8월호에 김지승 작가가 쓴 다와다 요코의 장편소설 '목욕탕' 리뷰가 아래 글의 출처이다.

생선 비늘 By Doc. RNDr. Josef Reischig, CSc. - Author's archive, CC BY-SA 3.0, 위키미디어커먼즈







처음 일본어로 쓰여졌지만 독일어로 먼저 출간된 『목욕탕』의 일본어 제목은 ‘うろこもち(비늘 가진 사람)’이다. 비늘을 의미하는 ‘うろこ’는 비듬, 때로도 쓰이는데 이는 독일어 ‘Schuppen’도 마찬가지다. 비늘, 비듬, 때, 우유, 엄마, 화상 자국, 재, 죽음……. 크리스테바가 개념화한 ‘비체(abject)’를 떠올리지 않기가 오히려 어려울 만큼 무수한 비체와 비체화가 선명한 『목욕탕』의 초기 판본은 지금과 퍽 달랐다. 90년대 독일어판의 경우 재생한 것 같은 종이에 인쇄된 희미한 사진들 위에 본문 텍스트가 놓였다. 여성의 몸 사진이었다. 서른 명의 여성 사진이 두 번씩 쓰이며 총 60페이지를 구성하는 책의 매 페이지마다 텍스트가 사진 속 여성의 몸을 반투명하게 덮고 있다.

『목욕탕』에도 그런 진실이 있다. 독일어판 제목 ‘Das Bad’는 목욕탕 외에도 목욕하는 행위와 목욕물을 의미하며, 일본어판 제목은 비늘 가진 사람이라는 행위자를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2010년 출간된 『목욕탕』 독-일 이중어판은 연결과 분리의 동시성을 전달하는 데 충분히 효과적이다. 세로로 흐르는 일본어와 가로로 흐르는 독일어가 서로를 밀어내거나 당기는 상상만으로도 그 사이에 낀 것처럼 서 있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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