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작가 조지 손더스가 쓴 '작가는 어떻게 읽는가'에서 두번째로 읽는 작품은 '가수들'(투르게네프)이다.

Portrait of writer Ivan Sergeyevich Turgenev, 1874 - Ilya Repin - WikiArt.org






투르게네프는 귀족이었고, 서술자와 마찬가지로 사냥을 하러 시골로 도보 여행을 가곤 했다. 〈가수들〉이 처음 실린 책 《사냥꾼의 수기A Sportsman’s Sketches》는 문학 인류학에서 획기적인 작품으로 지식인에게 ‘이 사람들’, 즉 농민이 사는 방식을 바라본 결과물을 제공했다. 투르게네프는 당시 이 사람들의 초상을 그려내는 감수성과 동정심으로, 또 사실주의로 칭찬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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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 채소롭게'(단단)로부터 옮긴다. 채소 수프를 끓이긴 귀찮지만 글로 읽으니 편해서 좋구나.

사진: UnsplashVictoria Shes







혼자인 날들이 하루하루 쌓여 가고, 나는 조금씩 천천히 스스로를 믿을 수 있게 되었다. 혼자서 해 보지 않았던 일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고, 이 많은 일을 혼자 아무렇지 않게 해낼 수 있다는 것이 뿌듯했다. 이제서야 비로소 어른이 되어 가는 것만 같았다. 그렇지만 가끔 어떤 날들은 버겁기도 했는데, 그런 날에는 집에 돌아와 냄비 가득 수프를 끓였다. 수프가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소리를 들으며 잠시 아무 생각 없이 수프를 바라볼 때가 있다. 수프는 공기 방울을 보글보글 뿜어내며 끓고 있고, 나는 이 수프를 바라보고 있고, 지금 이 수프를 바라보는 나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저 멍하니 이 평화를 즐긴다. 어쩌면 이런 것도 명상의 일종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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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제나 희망하고 있지 않나요'(버지니아 울프)로부터 옮긴다. 언니 바네사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로서 바네사가 그린 '제이콥의 방' 초판본 표지 사진을 보니 언니가 요구사항을 잘 반영한 것 같다.

'제이콥의 방'(버지니아 울프) 초판 표지(바네사 벨) 1922


『제이콥의 방』 https://blog.naver.com/sol_book/223733855750






우리는 언니가 한 《제이콥의 방》 표지 디자인이 사랑스럽다고 생각해. 다만 그게 실용적일지 의문이 들어. 레너드는 글자가 충분히 명료하지 않고 그 효과가 다소 지나치게 현란하다고 생각해. 방room의 ‘r’을 대문자로 바꿔 줄 수 있어? 그리고 글자를 더 선명한 색깔로 알아보기 쉽게 만들어 줄 수 있어?

하지만 이런 요구 사항들이 디자인을 망칠 수도 있지. 혹시 언니가 변경할 수 있으면 이렇게 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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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영 작가의 신작 드라마 '모두 자신의 무가치와 싸우고 있다'를 보고 있다. 주인공 황동만(구교환)은 종종 '등신'이라고 불리는데 '작가는 어떻게 읽는가'(조지 손더스)에서 다루는 두번째 작품 '가수들'(투르게네프)에서 어떤 인물의 별명은 '얼간이'다.


Idiot Stick 22, 2006 - David Batchelor - WikiArt.org


* 이 포스트의 제목을 '등신과 얼간이'라고 적고 나니 '병신과 머저리'(이청준)가 떠오른다.





얼간이부터 시작해 보자. 그의 본명은 유그라프 이바노프지만 동네 사람 누구나 그를 오직 얼간이라고만 불렀고 그 자신도 그렇게 불렀다. 그만큼 그에게 어울리는 별명이었다. 늘 걱정에 사로잡혀 있고 볼품없는 이목구비와 완벽하게 어울리는 느낌이었다. 그는 미혼의 방종한 자가自家 농노로 그의 주인들은 오래전에 그를 구제 불능이라고 포기했으며 그 결과 그는 어떤 종류의 일자리도 없고 아무런 임금도 받지 못했는데 그럼에도 다른 사람 돈으로 어떻게든 즐겁게 지낼 방법을 찾아냈다. 그는 술과 차를 사줄 지인이 아주 많았지만 그러는 사람들도 자신이 왜 그러는지 알지 못했다. 그와 함께 있을 때 재미있기는커녕 다들 그의 무의미한 수다, 견딜 수 없는 치근댐, 안달복달하는 행동, 쉼 없고 부자연스러운 너털웃음을 지긋지긋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그는 노래도 못하고 춤도 추지 못했으며, 분별력 있는 말은커녕 알아들을 수 있는 말조차 한 번도 한 적이 없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냥 웅얼웅얼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잔뜩 늘어놓을 뿐이었다. 진짜 얼간이였다! 그럼에도 그 근방에 그가 물렛가락 같은 다리로 걸어와 손님들 사이에 등장하지 않는 큰 술자리는 단 하나도 없었다. 사람들은 그에게 너무 익숙해져서 그의 존재를 필요악으로 견디었다. 물론 사람들은 그를 경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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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나무, 손수건, 그리고 작은 모자가 있는 숲'(로베르트 발저) 수록작 '초록'(1911)으로부터 옮긴다.





세상 어떤 색도 초록만큼 이 행성에 홀로 버려진 것 같은 외로움을 표현해주지 못한다. 초록은 세상의 명예이자, 가장 위대하고 장엄한 색이다. 또한 색의 출발점이자 총체이자 자랑이다. 초록은 색의 영혼이다.

초록은 죽음이다.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것, 이것들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 우리는 그걸 이해하지 못한다.

이제 나는 안다. 그것도 정확히 안다. 꽃피는 봄은 시간이 갈수록 인간에게 점점 더 강한 인상을 심어준다는 사실을. 봄이 되면 만물은 수분을 흠뻑 머금고, 온통 초록으로 춤을 춘다. 그러면 인간의 모든 일이 환한 대낮의 미친 짓거리처럼 이상해 보인다. 사실 초록에도 광기 같은 것이 있다. 꽃을 피우는 것도 광기가 아니면 뭘까? 파르르 떨리는 반짝임은 광기다. 분명히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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