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을 읽는 시간'(김지현)이 아래 글의 출처이다.

1908년 11월 Marguerite Martyn이 St. Louis에서 스케치한 샤미나드 (위키미디어 커먼즈)



* 살롱음악의 마지막 그림자, 세실 샤미나드 https://www.busan.com/view/busan/view.php?code=2025080717532440993 한국 여성 플루티스트 나재령의 연주로 샤미나드의 플루트곡을 듣는다.






처음에는 나무로 플루트를 만들었어요. 기다란 원통형 나무 몸체에 구멍을 뚫어서 음정을 냈는데, 생김새가 국악기 대금과 비슷합니다. 연주하기도 어렵고 음정도 정확하지 않았죠.

19세기 초에는 금 세공 기술이 있는 연주자 테오발트 뵘Theobald Böhm이 악기 재질을 금속으로 바꾸면서 안정적이고 화려한 소리를 내게 되었고, 독주 악기로서 오늘날까지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죠.

19세기 전반까지 뵘이 음향학적으로 안정된 음정과 음질을 내는 플루트를 개량한 덕분에 많은 작곡가가 플루트에 관심을 가지게 됐죠. 더욱이 금속 재질로 바뀌어 대량 생산이 가능해지면서 더 친숙한 악기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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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루스트의 '쾌락과 나날'에 실린 '부바르와 페퀴셰의 사교취미와 음악애호'는 플로베르의 '부바르와 페퀴셰' 두 인물을 등장시킨 작품으로 '사교취미'와 '음악애호' 두 장 구성이다. '음악애호'에서 거론된 프랑스 작곡가들 중 세실 샤미나드라는 여성이 있다(아래 옮긴 글로 보다시피 호의적인 언급은 아니다). 


그녀의 작품 중 '가을'이란 제목의 피아노곡을 수전 톰스의 연주로 듣는다('여성 작곡가의 피아노 작품집' 수록). 피아니스트이자 작가인 수전 톰스는 자신의 책 'Women and the Piano'(국내에도 번역되면 좋겠다)과 함께 음반을 냈다. 우리 나라에는 '피아노의 시간'이란 저작이 번역되었다.

사진: Unsplash의Ivan Kuznetsov


cf.'세이렌의 노래 : 여성 작곡가들의 삶과 음악'(만복당)이란 책에 ‘13장. 보통의 피아니스트를 위한 작곡가 세실 샤미나드’가 있다.






페퀴셰는 샤미나드의 미학을 혐오하면서도, 그리고 부바르는 모든 프랑스인들이 가진 기사도를 발휘하여 여성을 항상 먼저 앞세우는 전통에 따라 샤미나드에게 당시 작곡가들 중 선두 자리를 신사적으로 양보했다. - 부바르와 페퀴셰의 사교취미와 음악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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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6-10-30 12: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세실 샤미나드, 많이 알려진 작곡가도 아닌데 문학작품 속에 언급되었었군요. 세실 샤미나드의 6 romances sans parole 중 Meditation op 76 no 6도 추천드려요.

서곡 2026-10-30 13:58   좋아요 0 | URL
그래도 당시에 꽤 유명하지 않았을까요 희소한 여성 작곡가이기도 하고......비록 프루스트의 평이 박하긴 하지만요 프루스트의 이 책을 보면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가들이 주르륵 나옵니다 ‘화가와 음악가의 초상‘이란 글도 있고요 그리고 샤미나드의 음반이 꾸준히 계속 나왔더군요 역사적으로 재발견된 것 같습니다 네 추천해주신 곡 샤미나드 대표곡들 들을 때 들어봤습니다 감사합니다~
 

올해 상반기에 새로 나온 열린책들 세계문학 '마담 보바리 - 지방 풍속' 역자(김용은)해설을 읽었다. 새 역본을 완독하고 싶다는 생각은......엄두가 안 남!


Rêverie, 1957 - Robert Brackman - WikiArt.org


김용은 역자는 '성 안투안느의 유혹'을 먼저 번역출간했었다.






『마담 보바리』는 소멸하기의 소설이다. 사랑은 충분하지 않다. 엠마는 행복하지 않았고, 한 번도 행복한 적이 없었다. 〈이런 삶의 결핍감, 그녀가 의지하는 것들이 순간 썩어 내리는 이 느낌은 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중략) 그러나 어딘가에 〈강하고 아름다운 존재〉가 있다면 왜, 우연히, 그녀라고 만나지 못할 것인가. 엠마 보바리는 저항할 수 없는 에로스와 결코 이길 수 없는 타나토스와의 불공정한 갈등을 상징하는 얼굴이다. 그녀는 〈죽어 버리고 싶고 동시에 파리에서 살고 싶었다.〉 - 역자 해설 ― 무(無)의 안과 밖, 만화경인가 만다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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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0월 백세희 작가가 세상을 떠났다. '쓰고 싶다 쓰고 싶지 않다'에 실린 글로부터 옮긴다.

Still life with a burning candle, 1627 - Pieter Claesz - WikiArt.org


추모집 '버터밀크웨이 - 남겨진 세 사람의 기록'이 이 달에 발간되었다.






오늘 쓸 수 있을까? 아니. 무조건 써야 해. 근데 따뜻하고 좋네. 뜨거운 물로 씻을 수 있다는 건 정말 축복이야. 할머니 말처럼 화장실이 집 안에 있다는 거 자체가 대박이지. 이상하다. 무언가를 쓰고 있기는 한데, 전부 구리다. 문장 하나하나 건질 게 없어. 일단 많이 쓴 다음에 고치고 걸러내야 하지만, 그러면서도 쓴 문장들이 다 내 새끼들 같아서 아깝다. 지우기가 아까우니까 쓰는 것에도 신중해지는데, 누군가가 마치 "쓰지 마!" 하면서 손을 묶어버리는 것 같다. 왜 이러지? 그래도 일단 쓰자. 몇 줄이라도. - 백세희 • 무리하기, (마)무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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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딕테'의 작가 고 차학경(테레사 학경 차) 전시도록 '관객의 꿈' 개정판이 다음 달 초인 그녀의 기일에 맞춰 나올 예정인가 보다. 아래 글은 '안녕, 테레사'(존 차) 역자(고형렬) 후기가 출처이다.


cf. 과거 공연 및 전시 기사 : [제18회 공연 '말하는 여자'(Dictee) - “관객의 꿈: 차학경(1951-1982)"] http://mythostheatre.org/repertory/18.htm [차학경 회고전 ''관객의 꿈'']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2/0000004422


예술가 차학경에 대한 기억은 전시회에서 만난 그의 작품들에서 비롯된다. 지금 내게 아직도 남아 있는 당시의 느낌은 어떤 형언하기 어려운 안도감 같은 것들이었다. 그 안도감은 ‘아, 이렇게도 언어와 언어 행위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었구나’ 하는 것이었고, 동시에 그녀의 작품들은 나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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