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이 된 2025년의 첫날에 화가 폴 세잔에 관해 페이퍼를 작성했다. 2025년의 첫 페이퍼였다. 한 해가 흘렀고 올해 2026년도 세잔으로 시작한다. 마침 지금 읽고 있는 중인 로베르트 발저 작품집 '산책자'(배수아 역)에 세잔이 주제인 글이 있다.

Tulips in a Vase, 1892 - Paul Cezanne - WikiArt.org


Still Life, Tulips and apples, 1894 - Paul Cezanne - WikiArt.org


* '세상의 끝 - 로베르트 발저 산문.단편선집'(임홍배 역)에도 '세잔 생각'이 실려 있다.







내가 여기서 이야기하고 있는 사람은, 예를 들자면 흔하다면 흔하고 신기하다면 신기하다고 할 수 있는 이 과일들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그는 과일의 형태에 깊이 몰두한 상태였다. 겉을 팽팽하게 감싼 껍질에, 과일이란 존재 자체의 고유하면서 독특한 고요에, 과시적이면서 동시에 선량하게 웃고 있는 외양에. "이건 정말로 거의 비극이로군." 그는 생각했다. "자신들의 유용성과 아름다움을 전혀 의식할 수 없을 테니 말이야." 과일들이 스스로에 대해 생각할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도 안타까운 나머지 그는 할 수만 있다면 자기가 가진 사고력을 과일들에게 전달하고 흘려보내고 옮겨주고 싶었다. 내 말은, 그가 과일들의 처지를 가엾게 여겼을 것이 분명하고, 그런 다음에는 문득 자기 자신에 대한 연민에 빠져들었을 것이며, 하지만 무엇 때문에 그런 감정이 드는지 그 이유는 오랫동안 전혀 알지 못했을 거라는 뜻이다.

그가 마법을 써서 종이 위로 옮겨놓은 꽃들은 식물 특유의 흐느적거림을 그대로 유지한 채로 여전히 이파리를 떨었고, 방종한 몸짓으로 미소를 머금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식물의 살덩어리, 특별한 천성에 깃든 불가해한 비밀의 정신을 표현하는 일이었다. - 세잔에 대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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