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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6월
평점 :
근래 책 지름신을 연달아 영접해서 알게 모르게 내 맘속에는 묘한 죄책감(?)같은 찌꺼기가 남아 있던지라 이 책은 아쉽게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
하루키의 동남아 여행은 어땠을까, 특히나 태국과 베트남, 중국과 캄보디아 사이에 끼어 거대한 메콩강이 남북을 가로지르는,
길쭉한 지도를 그리는 라오스라는 나라에서 느낀 정취가 궁금했다.
하지만 나의 예상을 뒤엎고 책 내용은 라오스를 포함한 세계 여러 나라에서의 단편들을 모아놓은 여행기였다.
더군다나 최근에 다녀온 내용이 아니고 과거에 갔었던 곳의 여행기라니..(아직 집에 쟁여둔 먼 북소리도 주인의 간택을 기다리고 있는데 말이다)
게다가 내가 가보지 못한(물론 몇군데 다녀보진 못했지만), 또는 내가 가보고 싶은 곳을 다룬 여행기는 없었다.
살짝 실망감을 품고 읽기 시작해서 그런지 몰라도 이 책은 내용면에서도 만족스럽지 못했다.
물론 단편의 특성상 깊이있는 내용을 풀어 쓸 여유는 되지 못했을 것이다마는 내 취향이 좁고 깊게 다루는 내용들을 좋아해서 그랬을 것이다.비슷한 시기에 내놓은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는 참 괜찮은 느낌을 받은 걸 보면, 이 책은 마치 정품에 끼어주는 부록마냥 하루키 특유의 쫀쫀한 텍스트를 느끼지 못했다.
다만, 아이슬란드의 온천에 대한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아이슬란드는 온 나라에 온천이 나온다. 정말이지 온천 수증기를 국기 마크로 써도 되지 않을까 싶을 만큼 온천이 많다
-53쪽(...)
물론 안 좋은 면도 있으니, 화산분화와 지진이 그렇다. 일본과 마찬가지다. 온천이 있는 곳에는 아무래도 이 두가지가 따라붙기 마련이다.-55쪽.
온천 중 가장 유명한 곳은 레이캬비크에서 차로 한 시간 정도거리의 ‘블루 라군’인데, 이곳의 넓이는 정말이지 대단하다.(...)문제는 온천 안에 사람이 많다는 것. 내가 갔을 때 블루 라군은 한국에서 온 단체 관광객으로 가득했다. 주위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거의 다 한국어였다. 다함께 온천에 몸을 담그고 매우 즐거워하는 모습이었다. 혹시 한국에는 온천이 없나?그런 의문이 들 정도로 마냥 신나 보였다.-58쪽.

책 안에 사진으로 본 온천은 거의 강 크기만큼이나 컸다.
그 안에 머리만 내놓고 동동 떠있는 사람들이 보이는 데 많은 인원에도 불구하고, 온천의 크기가 워낙 커서 손님없는 수영장 느낌이 날 정도로 한산해보이는 느낌? 큰 땅덩어리에 인구 30만 정도가 사는 아이슬란드의 축소판 같았다.
(어디서나 다른 나라들의 언어는 시끄럽게 들리는 모양이다. 알아듣지 못하니 의미 없는 소리로 들려서 그런지 몰라도..그 넓은 온천에 거의 한국어만 들린다니 ㅎㅎㅎ '혹시 한국에는 온천이 없나? 그런 의문이 들 정도로 마냥 신나 보였다'란 문장에서는 살짝 찌푸린 듯한 하루키의 표정이 떠오른다. 흐흐 내 느낌이 맞는가요? 하루키씨)
주위엔 산들이 병풍같이 아득히 에워싼, 김이 모락모락 나는 노천탕으로 평소 홋카이도의 온천을 꼭 가보고 싶어하는 나로선 정말 구미가 당기는 풍경이 아닐 수 없었다. 다만, 한국 사람들만 동동 떠 있으면 좀 뻘쭘하려나~
시종일관 하루키의 여행은 그 곳의 일상을 함께 느낀다는 마음가짐이 있다.
물론 집필을 목적으로 몇달 간 체류하는 동안에는 더더욱 그러하다.
오히려 '일상'처럼 여행을 한다는 게 일반 여행자들이 큰 돈을 들여서 패키지로 다녀오는 것에 비해면 시간적, 비용적으로 감히 엄두도 못낼 만큼 사치인 편이지만 '여행'이란 말에는 원래가 '나그네란 뜻'을 품고 있는 것처럼 거창한 이벤트가 아니란 말일게다.
특히나 인증샷 찍고, 후딱 이동하고, 찍고 이동하고, 또 찍고 이동하고... 갔다 오면 누구보다 더 그 곳에 대해 잘 아는 척 하는 것처럼...한낮 단편의 경험들을 가지고 마치 그 곳의 모든 것들을 다 보고 온것처럼 착각하는 ...목적이 '나 그곳에 다녀왔다'아니면 '나 이만큼 다닌다'정도로 귀결되는 여행말이다. 물론 나 자신도 예외는 아니지만.
‘여행지에서 모든 일이 잘 풀리면 그것은 여행이 아니다‘라는 것이 나의 철학(비슷한 것)이다. -137쪽
그다지 화려한 부분은 없지만 몇 번을 가보더라도 '오오. 이런 게 있었다니!'라는 놀라움과 함께
스케줄이 늘 꼬이는 게 여행이듯이, 잘 풀리지 않는 일정의 스트레스도 함께 하는,
'시간이 조용하고 잔잔하게 흘러간다'는 일상의 느낌을 받는 여행을 동경해본다.
또 다른 곳에서 인생의 나그네가 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