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사회 프로젝트 - 노동과 여성·청년이 만나면 세상이 바뀐다
조돈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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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평등 사회가 지속되는 것은 불평등체제의 피해자들이 지배 질서를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11"

 이 문장을 읽고 우리는 왜 우리를 위한 사회 질서가 아닌 더 가진 자들이 세운 질서를 지키고 따르려하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우리 사회의 법과 제도의 틀은 오래되었다.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조금씩 개선되기도 하지만, 빠른 변화의 속도에 맞추거나 선제적으로 달라질 수는 없다. 오래된 제도의 허점을 이용하는 사람들도 생겨나고, 대응은 언제나 그보다 느리다. 개선이 반드시 긍정적인 방향으로만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수많은 법과 제도가 갈수록 권력과 경제력을 가진 사람들의 이익을 쫓아 교묘하게 만들어지고 있다. 사람들은 이런 현실을 꼬집어 규탄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을 보호하고 사회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복지 정책을 두고도 자신들에게 올 이익을 빼앗기는 것처럼 여기고 분노하거나, 복지 대상자들을 향해 상황을 극복해려는 노력이 부족하다 비난하는 경우도 볼 수 있다. 반면 가진 자에게 더 큰 이익을 주는 각종 제도와 정책은 오히려 그만큼 보장되고 보호 받아야 하는 경제질서로 이해해주려 하고, 이를 형평성에 맞게 개선하려는 변화는 불합리하게 보며 달가워하지 않는다. 불평등 이데올로기의 제 2명제, "불평등이 있다 하더라도 불평등은 정당하다 11"의 그늘에 있는 셈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복지의 대상이 될 리 없다는 듯이 굴지만, 우리들 대부분은 혜택과 권력을 쥐고 있는 가진 자들 편을 들어주는 '불평등의 정당한 그늘'이 아닌 복지의 그늘이 필요한 쪽에 더 가깝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어떻게 불평등체제의 피해자들이 수혜자의 입장에 서서 질서를 받아들이고 옹호하도록 만들었을까? 사람들의 눈을 가리고 생각을 멈추게 만든 것은 무엇이었을까? 전부터 느끼던 이 묘한 위화감에 대한 답을 '평등사회 프로젝트'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읽었다. 
 
" 스웨덴은 1900년 당시 미국보다 더 불평등한 사회였다. 그러나 한 세기를 지나오면서 미국은 더 불평등한 사회가 되었으나, 스웨덴은 훨씬 더 평등한 사회로 바뀌었다. 같은 자본주의 체제하에서도 어떤 시장경제 모델인가에 따라 불평등은 심화될 수도 있고 완화될 수도 있다. 214" 

코스트코는 되지만, 이케아는 안되는 한국 특성이 여기에도 적용되는 것일까? [1부 2장 불평등 대한민국의 미국 사랑 45]에 들어서면 한국인들의 '모순적 시민 인식: 불평등 불만과 미국 선호'에 대한 실태와 분석을 만날 수 있다. 책은 " 한국 사회는 불평등이 심각하고, 시민들은 불평등에 대한 불만이 높으며 평등한 복지국가에 대한 선호도가 높으나, 정작 발전 방향은 평등한 복지 선진국 스웨덴-스칸디나비아 모델이 아닌 불평등한 복지 후진국 미국식 모델을 따르는 모순을 가지고 있음 46-47"을 반복적으로 강조(53, 64, 90, 95, 207, 212)한다. 이 모순에는 미국을 우방국가로 긴밀히 협력해온 배경과 오랜기간 세계 패권국가 입지를 지켜온 지위에 대한 선망(50)이 반영되어 있다. 재미있게도 이 '선망'은 회원권을 구매한 일부인원이, 독점 계약을 맺은 결제 루트를 제한적으로 사용하여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코스트코의 방식은 성공적으로 안착하였으나 합리와 실용을 내세운 이케아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것도 기본적 선호도와 친숙함이 다르기 때문에 나타난 차이가 아닐까 싶었다.
정치적으로도 "국힘 계열 정치인은 물론 아스팔트 태극기 부대에서부터 국힘 정부의 대통령까지 모두 미국과 자유시장경제 모델을 방어하며 홍보한다. 64" 특히 이 보수층들의 미국 선호는 각종 보수시위현장에서 성조기가 꼭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으로도 드러나기도 한다. 물론 팍스 아메리카나의 몰락과 더불어 자본주의가 성공적인 모델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 선명해진 지금, AI와 기술 발달로 인한 노동시장의 변화(498)에 대비해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 시키고 평등한 복지 제도를 만들기 위한 새로운 구상이 절실하다. 하지만 긴 시간 노동계급의 사회정치적 영향력을 다져나간 스웨덴의 방식을 적용하기에는 구심점도, 시민 의식도 기반이 약하다. 게다가 스웨덴이 미국을 역전하는 평등 사회 모델이 세기를 거치며 안착되었다면, 이를 이처럼 장기간 관철하여 이끌어나가기엔 정권 변화에 따른 정책 불안정성이 크다는 점도 책의 내용과 현실적 문제 사이에서의 거리를 느끼게 만드는요소가 되었다. 노동자 계급형성과 정치세력화의 성공 정도에 의해 스웨덴 모델의 구축 가능성이 달라진다(226)고 보는데, 이어지는 3부에서 한국 노동계급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을 다룬다. 
" 민주노총은 한국노총과 마찬가지로 비호감도가 86%에 달한다. 20"
" 노동조합에 대한 필요성 80%이상 긍정, 적극적으로 인정하지만 양대 노총에 대한 호감도는 반대이다. 23년 2월 조사에서 비호감도가 86%로 극단적 수준이다. 241"
한국 사회에서 노총에 대한 평가는 극단적 수준의 비호감도이다. 시민들은 노동조합이 이익집단 역할에 중점을 둔 기득권 세력으로 변질되었다고 간주한다. 한국은 고임금 일자리, 저임금 일자리로 노동시장이 양극화되어 정규직-비정규직 두개의 계급으로 분절되어 있다. 저임금 일자리의 비정규직, 여성, 중소영세 사업장 노동자를 제대로 대변하고 있지 못한다는 시선(247)과, 노총이 취약 계층 보호 활동보다 정치적 활동에 더욱 중점을 둔다는 인식(246)이 호감도를 하락 시켰다. 더불어 이들의 활동이 전반적인 이해 없이는 때로 시민 편의에 양해를 구해야하는 불편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점도 아쉽지만 현실이다. 개인적으로는 노총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는데 노총이 품고 있는 모든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반독재 민주화 투쟁으로 시작되어 박근혜, 윤석열 퇴진 투쟁까지 정치적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투쟁에 뜻을 두고, 철도, 보건의료, 가스 등 "민주노조 투쟁이 없으면, 사회서비스 공공성도 없다(357)"는 최소한의 저지선 기능을 하고 있다는 데에 의미를 둔다.  

앞선 부에서는 우리가 어떤 사회 모델을 따라야 하는지, 실행 주체에서 가지고 있는 문제점이 무엇인지 알아보았다면, 4부에 이르러서는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왜 우리 사회는 불평등체제를 개선하고 사회복지 확대를 위한 합의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을까 살펴보게 된다. 한국인의 조세 부담 성향이 강하지 않은 편인데다가 지금도 '내가 낸 세금'을 운운하며 공공기관과 공무원을 상대로 돈낸값을 받아내려는 사람들이 있는데 거의 두배에 달하는 유럽 국가 수준(2021년 기준. 414)으로 증세했을때 보일 태도마저 우려된다. 또한 불평등에 대한 문제의식이 강하고 이에 대한 정부 책임을 강하게 요구하지만 성평등 촉진과 실업자 생활 수준 제공에 있어서는 정부 책임을 가장 약하게 요구한다는(443) 특징이 있는데, 이는 도리어 성차별이 심각하다는 반증이 되고, 실업문제를 사회 구조적 문제가 아닌 개인의 책임으로 보는 시선이 강하다는 뜻이 된다. 더불어 돌봄 서비스 제공 주체 중 특히 노인 돌봄에 '가족' 비중이 높다는 점(444)도 같은 뿌리를 둔다. '수저론'이 한차례 큰 유행을 탔던 것처럼 한국은 세대 간 자산 불평등 대물림 현상이 강한 상속 계급 사회임에도 부자 증세, 소득세 자산세를 통한 소득 불평등 완화 정책에 대한 찬성 의견이 반대보다 적다(510). 지배세력에 대한 불신과 평등사회 실현 가능성에 대한 확신이 부족한 탓에 수혜 집단(여성 466/청년 512)들이 오히려 보수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것에서 어느 정도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18장 응원봉도 촛불의 실패를 되풀이하는가?(537) 묻기에는 이미 응원봉의 불빛은 꺼지고 치열했던 응집력은 각자의 일상으로 흩어져버린지 오래다. 사람들은 다시 주식과 환율이 요동치고 부동산이 흔들릴 때마다 다음 정권은 경제 위기를 극복해줄 선택을 하게 될 수 밖에 없다며 실패의 구실을 쌓는다. 촛불과 응원봉을 들었던 절박함을 돈의 논리 앞에서 잊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될지도 모른다. 특히나 대통령의 자택 매각 소식과 더불어 고액의 근저당으로 인한 논란이 생겨난 상황이 그동안 강조해왔던 부동산 정책과 비교하여 다소 씁쓸하게 여겨지는 상황이다. 이래서야 더 공정하고 평등한 사회로 나아가겠다는 약속에 대한 믿음은 줄어들고, 최선이 아니라 차악의 선택밖에는 되지 않는다는 불신이 커질 수 밖에 없다. 책을 통해 사회의 구조적으로 문제와 시민의식 수준을 직시하고 불평등 문제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을 얻을 수 있었지만 '평등사회 프로젝트'가 우리 공통의 목표점인 것인지, 착수 가능한 사회에서 살고 있는 것인지 의심해야 하는 상황이 더욱 크게 느껴져 현실적인 아쉬움이 남았다. 분량이 적지 않지만 사회 문제에 관심을 두고 있다면, 혹은 왜 세상은 변하지 않는 것일까 같은 궁금증을 품고 있다면 '평등사회 프로젝트'가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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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것들의 밤
정보라 지음 / 현대문학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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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결국은 인간이 아닌 존재들이 지구를 물려받게 될 거야." 275_우리는 악마에게서 왔다" 

정보라 작가의 신작 '이름 없는 것들의 밤'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그 시절'(139)로 표현되는 미래 세계를 무대로 한다. 인공 지능을 갖게 된 기계가 판단하기에 인간이란 존재들은 지구의 안전과 존속에 악영향을 끼친다. 이에 '안전장치(인간이 아니라 기계가 행성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를 시행해 인간의 개체수를 조절하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이 인간처분을 실행하기엔 안전장치 시행 이전의 기계는 인간을 찾아서 잡아내는 기능을 갖추지 못한 경우가 많았고, 인간을 효율적으로 사냥하기 위해 세뇌를 통해 기계 숭배자로 만든 인간 사냥꾼들을 이용한다. 인간이 다른 어떤 동물보다 인간을 잘 살해한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척박해진 미래 세상을 배경으로 지구의 주인이 되어 인간 개체수조절을 하기로 한 기계, 세뇌와 이기심으로 기계에 종속되어 이에 저항하는 인간을 잡아바치기를 선택한 인간사냥꾼들, 기계 문명에 저항하고 살아남기 위해 싸우는 인간들의 냄새나고 더럽고 처절한 사투가 그려진다. 

" 기계의 순리를 믿으라. 기계의 합리를 믿으라. 적자생존의 순리를 따르라. " 

기계의 감시와 인간 사냥꾼들의 추적을 피해 사람들은 도시의 구석구석으로 숨어들었다. 기계들은 체온을 감지해 인간들을 찾아냈고, 도시 곳곳의 센서와 카메라들도 감시망이 되었다. 감시를 피해 찾아든 오래 전에 방치되어 썩은 물이 고여있는 지하 수영장에서 마리카와 나는 놀랍도록 인간과 유사한 인조인간, 빌리를 만나게 된다. 빌리는 스스로를 인간이라고 주장하지만 나는 냄새를 통해, 그리고 빌리의 피맛을 통해 빌리가 인조인간임을 확인한다. 이때 '나'의 정체가 흡혈인이었다는 점이 독자를 한번 놀라게 만든다. 빌리 역시 기존 인조인간들과는 달랐는데, 스스로를 인간이라고 믿고 있다는 것과 신체가 훼손되어도 빠른 속도로 다시 회복된다는 것이었다. 빌리에 대한 의심을 놓을 수 없으면서도 인조인간 제작소의 위치를 알고 있다는 말에 나는 시설을 공격하기 위해 빌리와 함께 그곳으로 향하게 된다. 

'이름 없는 것들의 밤'은 순식간에 이야기의 틀을 잡아나가면서 정보라 작가가 그리는 미래 세계의 음울함과 잔혹함에 스며들게 만든다. 어느새 독자의 머리 속에는 의심과 의문이 생긴다. 빌리는 정말 인간의 편일까? 인조인간인 빌리가 스스로를 인간으로 여기고 인간처럼 행동하고 사고한다면 빌리는 인간으로 규정될 수 있을까? 빌리가 기계라는 이유로 인간이 아니라 판단된다면, 살아있는 인간의 징후가 없고 흡혈을 하고 인간같지 않은 신체 능력을 가지고 있는 나는 인간일 수 있을까? 고민이 길어지기 전에 기계에게 노동을 대신시키는 것이 아니라 빼앗긴 인간들, 빚에 짓눌리고 어디론가 끌려간 이들은 어떻게 되었는가, 밀려드는 세계의 참혹한 스케치가 쌓아올린 희망을 모래성처럼 흩어버리길 반복한다. 인류에게 희망은 있을까? 아니, 인류는 희망을 기억하게 될까? 

우리에게 다가올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이런 질문에 대한 답으로 작가는 현재를 제시한다. 최초의 흡혈인은 "화장실의 미친 여자 186"에서 비롯되었다. 화장실에서 살면서 사람을 잡아먹는 여자의 괴담을 알린 건 여자화장실을 초소형 카메라로 촬영한 남자들이었다는 것이, 일상에서 모든 것들이 전자기기로 대체되고, 노동의 현장에서 사람 대신 기계가 자리를 대신하는 것이 정말 인간에게 도움과 해방이 되는 것일까 생각하게 만든다. 사실 AI 프로그램들을 잘 사용하지 않는데 다른 사람들 중에는 편하고 좋은데 왜 이용하지 않느냐며,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 혹은 21세기형 러다이트 운동가처럼 바라보는 시선도 있었다. 하지만 어떤 지점에선 반드시 사람이 스스로 해야만하는 것들이 있다는 생각이 책을 읽을 수록 깊게 남았다. 

오래전부터 내가 떠올릴 수 있는 미래의 모습은 어린 시절에 보고 자랐던 헐리웃 영화에서 비롯되었다. 원체 부정적인 성향인 탓인지, 아니면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니 답이 나오는 것인지, 세상의 모든 것들이 편리하게 발전해가는데도 이보다 더 미래 세계는 어떻게 될지 떠올리면 스카이넷*이 언젠가 인류를 해악으로 규정하게 될거야, 혹은 먼 인류는 감정과 능력을 맞춤형으로 조정/세뇌*해서 평화를 유지하게 될거야. 같은 음울한 모습들만 상상하게 된다. 하지만 1997년이 지나도 스카이넷은 각성하지 않았고, 2032년 세상의 모든 범죄가 사라지기는 커녕 우리는 전쟁과 폭동 같은 것들을 더욱더 경계해야 하는 시기를 맞고 있다. 3,40년이나 지난 시대에 그리던 미래를 아직도 붙잡고있을 순 없으니, 이제 미래의 모습을 떠올리기 위해선 다른 롤모델이 필요해졌다. '이름 없는 것들의 밤'이 새로운 디스토피아의 규격이 되어주지 않을까, 기대되었다.  


* <터미네이터 1> 1984
* <데몰리션맨> 1993

>>> 월간 현대문학 23년 3월 24년 12월 26년 3월 연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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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지 마, 죽지 마, 사랑하게 될 거야 ㅣ 은행나무 시리즈 N° 20
권혜영 지음 / 은행나무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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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사원은 죽으면 어떻게 되나요? 다시 회사원이 된단다. 

누구신데 이렇게 시비를 거세요? 작가는 대체 어떤 사람일까. 책소개를 보고 아, 저 사람 진짜! 하고 화가 나게 되는 일이 얼마나 있을까. 회빙환 장르의 전설이 되고자 출사표를 낸 것도 놀라운데 작가의 잔인함을 곳곳에서 발견할 때면 여름인데도 너무 더워서 땀이 줄줄 흐르는데도 오싹함을 느낀다. 뭐, 회빙환 장르를 보면 저 유명한 '트럭'에 치여 죽었다가 눈을 떠보니 낯선 사람이 되어 있고 조건을 달성 못하면 당신은 죽는다는 잔혹한 설정들이 많다. 하지만 이 작가의 진짜 잔인함은 주인공이 샤워하다가 죽었다(12)는 사실이다. 심장마비니, 뇌진탕이니 하는 사인은 모르겠고 아, 알몸으로 발견됐을거 아니에요! 옷은 좀 입혀서 보낼 것이지. '얼지 마, 죽지 마, 사랑하게 될 거야'에선 가는 길 하나도 이렇게 험하다. 작가는 종교가 있을까? 없을 것이다, 아마. 어느 교의 교리에도 이렇게 잔인한 생각은 들어있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종교가 있어서 이 죄를 다 씻어내고 새 작품 쓸 때마다 새롭게 짓는 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런데 이 책, 읽어도 될까? " 윤지훈의 목과 귀가 시뻘게졌다. 윤지훈이 속삭였다. "선배 여기서 이러시면 곤란해요......" 선배라는 여자가 윤지훈을 비웃었다. "곤란하다고 하지만 ...이하생략...(29)" 일단 책을 한 번 덮었다. '뭔가 잘못됐어 단단히 설명할 수도 없이'* 이제 어떻게 죽었느니, 직업이 뭐니 이런 건 문제조차 되지 않는다. 이게 대체 어떻게 돌아간 세상이야? 그리고 곱게 자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제가 감히 이런걸 읽어도 될까요? 19금 성인 오피스 하렘물이라니! 세상에, 감사합니다. 이런게 지옥이라면 안녕히 계세요, 현생의 여러분. 전 암튼 현생에서 벗어나, 가 아니라 '얼지 마, 죽지 마, 사랑하게 될 거야' 이 책 대체 뭔지 의문이 들었다. 어떤 책을 만나게 된 거지? 너무 더워서 내가 내용을 잘못봤나? 하지만 이어지는 19금 성인 오피스의 풍경은 여전했다. 오, 저런, 아멘타불. 얼마나 배덕하고 부도덕한지 엄한 눈으로 샅샅히 파헤쳐줄 각오(?)로 다시 책을 펼쳤다. 

펼쳐낸 세상은 금세 슬럼프에 빠진 만화가 '소연'의 세상으로 전환됐다. 아, 또 당했다. 분명 이 세상으로 가려고 했던 게 아니었는데? 게다가 읽을수록 누리의 세상이 더 궁금해졌다. 소연씨 삶이 참 팍팍하고 그런거 알겠는데 화이팅하시고 누리 얘기 좀 계속 보면 안될까요. 한참 몰아치다가 소연의 세상이 나오는 분량이면 나도 모르게 아쉬워지는게, 이렇게 순식간에 타락해버리다니. 놀라운 흡입력을 가지고 있는 책이다. 누리의 자각과 소연의 슬럼프가 벌어지면서 흐름은 서서히 방향을 틀어낸다. 아, 내가 정말 딱 각오했었는데. 그 길 까지는 가지말라는 듯이 몰아쳐오던 자극은 줄어들고 툭하고 누가 건들기만 해도, 건들지 않아도 금방이라도 엉엉 울어버리고 싶을만큼 삶이 찰랑찰랑 차오른 사람들로 가득해진다. 그 삶은 시도때도 없이 일을 벌이던 육욕으로 찰랑이는 대신, 가고자 했던 길, 열정과 꿈으로 가득했던 젊었던 소연을 잃어버리고 돈을 벌어야 했던 성인웹툰작가 소연만 남은 현재와 성공한 만화가가 됐지만 마감에 쫓겨 소중한 사람의 마지막도 살피지 못한 히카루의 고통이었다. 

어느새 정신줄을 부여잡은 누리의 맹활약은 이 두세계가 긴밀히 영향을 주고 받고, 느슨히 연결되어 같은 현실을 나눠쓰고 있는 덕분에 가능했다는 것이 독특했다. 소연이 연재하던 <심야 근무의 사정>의 세계관과 누리가 빙의한 현실이 같다면, 이들이 살고 있는 세계 역시 나의 현실과 같을 수도 있는게 아닐까? 최애캐로 리바이 병장(117)을 꼽는 것으로 봐서 이 현실감을 구현해내기 위해 신경썼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 현실이 다 오타쿠 투어로 채워져있어 보는 입장에서는 그게 뭔데, 싶지만. 혹시나 싶어 <심야 근무의 사정>을 검색해봤다가 '심야 야간수당 기준 계산' 수당표만 나와서 아쉬웠다. 과연 누리가 화장실을 가거나 샤워를 할 때 화이트로 지워져있을 것인가, 안심하고 볼일을 봐도 되는 것인가 확인해보고 싶었는데. 나의 세계와는 연결되어 있지 않았구나, 당연하면서도 아쉬웠다. 

암튼 작가 권혜영이 만들어낸 '얼죽사', 이 요상한 세상은 자극이 과하게 시작했다가 따뜻 말랑한 치유로 막을 내린다. 처음엔 정말 핸들이 고장난게 아니라 뽑혀버린 여덟톤 트럭이 비탈을 굴러내려가는가 싶었는데, 노련한 솜씨로 갓길에 비상 정차까지 완료해낸 듯해 안심했다. 어? 이게 되네? 우리 브레이크 정상작동합니다. 다행이면서도 아쉽고, 한편으로는 해외 지사로 발령 난 유지훈이 2부의 삶을 살아가고 있을 것인가 궁금해지기도 한다. 과연 1편2발의 만신 작가는 돌아올 것인가. 소연, 다운, 누리. 이 평온하고 무해한 연대는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마지막 줄에 이르러 마침표가 아닌 쉼표를 찍은 듯한 여운을 남긴다. 무엇을 상상하던 암튼 그 상상은 이보다는 덜하길 바라며, 고자극 19금 오피스 회빙환 장르, 통장잔고 0원부터 시작하는 직장인 생존기를 접해보고 싶다면, 더해서 오타쿠는 일본에 여행을 가면 뭘할까 궁금한 사람이라면 '얼지 마, 죽지 마, 사랑하게 될 거야'의 세계를 장바구니에 담고 [구매]. 


* 뭔가 잘못됐어 권진아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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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보면 보이는 미술사 - 시각적 문해력을 기르는 여정 ㅣ 창비청소년문고 48
류지이 지음 / 창비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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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나는 예술에 대해서 잘 몰라, 작품을 보는 눈이 없어. 라는 말을 하곤 했다. 감각이 뛰어난 사람들, 관심을 갖고 열심히 공부해 온 사람들도 있으니, 별다른 재능없이 노력도 하지 않은 입장에서 예술에 대해 모른다는 것은 당연한 말이었다. 그런데 '보다 보면 보이는 미술사'를 읽으면서 스스로에게 물어보게 되었다. 나는 보는 눈이 없었던 것 일까, 아니면 제대로 보지 않았던 것일까, 궁금함이 생겨났다. "시각적 문해력"이라는 말과 함께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보는 모든 것들을 읽어내고 받아들이고 있는 방식을 이야기할 때 갑자기 깨달았다. 평소 짧은 글을 하나 읽더라도  어떤 내용으로 흘러갈 것인지, 어떤 인물이 어떤 성격을 가지고 어떤 행동을 하는지 파악하려고 한다. 글은 이미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 읽어볼 수 있도록 적혀 있는데도 그 안에 담긴 의미를 더 읽어내려 한 것이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광고 한 편을 보더라도 그 광고가 상품의 어떤 면을 강조하는지, 어떤 이미지를 만들고 싶어하는지, 어떤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읽어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행동은 아주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시각적 문해력은 우리에게 익숙한 활동인 것이다. 그런데 예술 작품을 감상하려 했을 때 이 자연스러움을 잘 활용하려 했을까? 잘 모른다는 핑계로, 뭘 봐야할지,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지 찾아내기 어렵다고 '읽어내려' 하지 않고 보는 척, 남들만큼 뭔가를 아는 척하고, 잘 모른다는 사실을 들키기 전에 자리를 떠버리지 않았던가? 작품 앞에서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려고 했을까, 작가가 자신의 실력을 어떻게 드려내려 했는지, 어떤 요소를 숨겨놓고 싶어했는지 보고 이해하려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보다 보면 보이는 미술사'가 매력적이었다. 저자는 미술과 건축 등 열 개의 주제를 따라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재료, 매체, 흐름, 맥락, 시대 같은 단서들을 활용해 이렇게 접근해보면 어떨까요, 저렇게 시작해보면 어떨까요, 하고 자연스럽게 독자를 작품 앞으로 이끌어간다. 

책을 읽기 전, SNS를 하다가 세 개의 구멍이 뚫린 가리비의 사진(13)을 두고 당신은 이 조개껍데기를 어떻게 해석하는/느끼는지 묻는 질문과 마주했다. 그때는 당연히 역사적인 가치가 있는 작품일 것이라 생각했다. 속으로는 그저 구멍 난 가리비 껍데기일 뿐이라 할지언정, 가장 평범하고 틀리지 않을만한 답을 내놓으려 했다. 하지만 지금은 신석기 시대 사람들이 굳이 '조개 가면'을 가면/얼굴의 형태로 의도하고 만든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사람에게는 사물에게도 얼굴의 형태를 찾으려 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우리가 자동차의 정면을 보고 헤드라이트 부분을 눈이라고 여기거나, 우연한 구름의 모양, 의미없는 돌의 생김에서도 얼굴 표정을 찾으려고 하는 것처럼 우리가 짐작하기 어려운, 혹은 다른 의도로 생긴 구멍을 두고 가면이라고 부르게 된 것일 수도 있다. '보다 보면 보이는 미술사'를 읽고 난 뒤에는 이처럼 자신의 시각적 문해력을 사용하려 하게 되었다. 

가장 먼저 읽어보고 싶었던 것은 3장의 회화와 10장의 과정 미술과 퍼포먼스 내용이었다. 회화는 가장 친근하게 접할 수 있는 분야이기도 하고, 그래서 더 전시회를 가는 등 적극적인 감상을 하는 것이 망설여지는 면이 있어서였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274)의 퍼포먼스*에 관심이 있었는데 마침 10장에서 소개되어 있어 좋았다. 하지만 더 마음이 가는 분야는 4장 스테인드글라스였다. 예술의 영역 안에서 관심을 두고 만나게 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었는데 스테인드글라스가 건축물, 특히 종교적인 건축물 안에서 활용되는 압도적인 분위기와 아름다움을 느끼고 나니 매력이 더 크게 느껴졌다. 빛을 투과하며 더욱 작품이 살아난다는 점도 좋았다. 5장 도자의 내용에서는 평소 궁금했던 "예술이란 무엇일까? 사물은 언제 미술 작품이 되는 걸까? 139" 질문에 대해 다가갈 수 있었다. 현대 미술을 두고 난해하다거나 의미를 부여하기 나름이 아닌가 의문을 가지기도 하는데 (<번역된 도자기> 이수경 2007(159), <샘> 마르셀 뒤샹 1917(139)) 그런 불만에 대한 답이 되어주었다. 

다양한 작품들을 담아 색감도 잘 살리고, 한 작품으로 한 면을 다 채우는 등 최대한 작품의 분위기를 표현해낼 수 있게 소개하고 있어서 좋았다. 다만 이상하게도 책을 읽다보면 이해가 쏙쏙 되는 것 같고, 재미있고, 쉽게 느껴지는데, 어느 순간 갑자기 심화문제를 내주는 교수님 앞에 앉아있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솔직하자면 처음에 내준 퀴즈(24)는 풀 생각조차 접긴 했다. 교수님, 아니 작가님 저는 그냥 책을 들고 돌아다니는 침팬지에요. 왜 이런 느낌이 드나 했더니 실제로 카이스트에서 교양 과목을 강의하고 있는 이력 덕분이었나보다. 카이스트에 갈 수 없으니 대신 '보보미'를 찾아 읽어보자. 얼마나 이득인가! 하지만 청소년 독자들은 '보보미'를 재미있게 읽었다면 직접 가서 수강하도록 노력해보자. 예술 앞에 조심스럽게 돋아난 여리고 작은 관심을 어떻게 키우면 될지 흥미롭게 길을 터준 느낌이라 미술에 대해 더 알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책을 읽고 난 뒤에 마지막 장을 덮으며 마침표를 찍는 것이 아니라 더 이어가고 싶어지게 만들어주는 힘이 되는 책이다.  


* 파레이돌리아(pareidolia) 눈 코 입이 있는 실제 생물이 아님에도 무생물의 것에서 얼굴을 그려내는 현상
* Rest Energy 화살을 겨누고 있는 두 사람
Rhythm 0 관객을 상대로 인간의 본성을 시험한 퍼포먼스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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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터
이지은 지음 / 열림원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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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을수록 하터법에 찬성하게 되는 건 왜일까. 내가 어른이라서 일까? 

'하터'에 대한 소개를 읽고 굉장히 큰 기대를 품었다. 일단, '하터'의 세계관이 독특하고 매력적이었다. 마음의 선량함을 각종 지표로 재서 등급을 매긴다니, 그리고 그 결과값에 따라 혜택을 준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예민한 문제 중 하나인 대학입시에도 하트의 등급은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양심, 선량함, 다정함 같은 것을 어떻게 눈에 보이게 수치화할 수 있을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하트 관련 학원이 엄청 많이 생겨서 돈을 긁어모으겠다는 것이었다. 입시 하트 전략반, 하트 영재반, 하트 선행반, 하트 특별관리반 등등 하트 0에서 100까지 만든 하트 선배의 특강 같은게 얼마나 많을까, 같은 속물적 헤아림이었다. 어쩌면 어느 하트 학원에서 선행 하트반 담당수업을 했을지도 모른다. 이어지는 생각들은 과연 내 하트의 무게는 어떻게 될까? 내가 저 사람보다 더 착하다거나, 나쁘다는 것을 수치로 확인 받으면 인정할 수 있을까? 내 진심이 아니더라도 착한 일을 하면 수치는 올라갈 수 있을까? 진심이 아니라면 선행을 해도 수치에 변화가 없다면 수치를 올리지 않을 상황에서의 선행은 아무도 하지 않을까? 하트 수치가 높은 사람은 정말 좋은 사람이라고 신뢰할 수 있을까? 수많은 궁금증이 솟아올라 읽지 않고는 버틸수가 없었다. 

청소년소설을 읽을 때 생각이 많아지는 요소 중에 유행하는 말이나 문화를 얼마나 담아내느냐가 있다. 그 시절의 또래문화는 유행이 빠르게 생겨났다 금방 사라지곤 해서 어른이 요즘 뭐가 유행인지 알게 되는 때가 되면 시기가 지나버리는 것이 대부분이다. '하터'에도 가까워지려는 노력이 보이는데 아직도 이런 표현을 쓰나 싶은 줄임말이나 평생 아무도 타인에게 현실에선 쓰지 않을 것 같은 표현들이 나오면 손가락 관절들이 오그라드는 듯해 적응이 어려워지곤 했다. 특히 얼음공주(!)에 티여섬, 맑눈광, 우무커 같은 말들을 견디기가 좀 어려웠다. 그래서 초반에는 좀 작위적인 사건으로 인물들이 연결이 되는 것 같아 껄끄러운 느낌도 있었다. 하지만 좋은 인물은 전반적인 분위기를 바꿀만한 힘을 가지고 있는지, 다소 극단적임에도 리진이 어떤 인물인지 알게 되면서 조금씩 새로운 세계에 대한 어색함이 줄어들고 '하터'의 매력도 살아났다. 

처음 책을 손에 들었을 때 가볍단 생각이 들었다. 분량이 기대보다 적으려나 싶었고, 단숨에 책을 읽게 되지만 너무 짧아 아쉽기도 했다. '하터' 정도의 세계관이면 삼부작으로 리진과 김화의 이야기가 담긴 전편과 여섬의 진짜 성장을 담은 속편을 더해도 좋을 것 같다. 여섬이가 이제야 세상과 제대로 마주하고 사람들과 부대끼며 성장할 수 있는 발판에 올라섰는데, 부모님과의 관계가 어떻게 될지, 김화와의 관계가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궁금해져서 속편이 필요해졌고, 어떤 작품을 보든 주인공을 가장 좋아하는 인물로 꼽는 편인데 '하터'에서만큼은 리진과 김화라는 인물이 아주 매력적으로 다가와서 전편이 간절해졌다. 리진과 김화, 성숙한 사고를 가진 두 사람이 공유하는 시간을 통해 '하터' 세계관의 이면을 더 깊이있게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아 꼭 프리퀄 이야기가 나왔으면 한다. 특히 랩 가사는 그리 잘 못 쓰는 것 같지만 의외로 하트가 가득채워져 있을 것만 같은 인물 1위로 예상했던 리진이를 여섬이만큼 그리워하게 되었다. 

" 세상 모든 청소년을 잠재적 범죄자처럼 취급하느니 도덕적이고 바른 인성을 가진 청소년에게 많은 혜택을 제대로 퍼부어 주자는 취지에서 생긴 <하터법>은 대한민국 입시 제도를 완전히 뒤집었다. 12" 

하터법이 지나치게 인권을 침해하고 제대로 된 계도나 보증이 되어주지 않는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내가 어른이라서 일까? 아니면 세상에서 접하는 끔찍한 사건들에 갈수록 피로를 느껴서일까? 읽을수록 하터법에 찬성하고만 싶어졌다. 최근 운동 경기를 하면서 상대 학교의 연고를 두고 역사적, 인간적으로 존중받아야 하는 사건을 끌어와 비하와 조롱을 한 학생들의 사건이 있었다. 깊이 반성을 한다며 찾아가 사과를 건네고 자신들이 받은 징계가 가혹하다며 재심부터 청구했다. 이들의 반성과 사과에는 얼마만큼의 진심이 담겨있는지, 하트의 무게는 얼마일지 스캐닝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차마 진심이 담기지 않은 반성을 보여주기 식으로 공표하지는 않았을지 모른다. 어쩌면 애초에 대학에 잘 가고 싶어서, 프로 선수가 되고 싶어서 단지 재밌다는 이유로, 남들이 다 한다는 이유로 비하와 조롱을 할 엄두도 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자꾸만 하터법이 있는 세상은 어떨까 상상해보게 되었다. 

" "너 추리 소설이 왜 재밌는지 알아? 독자가 자기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어서야." 
...중략...
"독자가 자신의 의심을 스스로 납득했다는 거잖아. 타인의 인생이 무너지는 이유가 그런 사소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걸. 주변 사람의 마음속에는 어둠이 있을 거라는 걸 말이야. 그렇게 자꾸 생각하다 보면, 뭐 어찌 됐든 사람을 이해하게는 되더라." 94" 

책 소개글을 읽으면서 '마아트의 깃털'이라는 이집트 신화를 떠올렸었다. 이집트에서는 사후세계에 가게 되면 마아트라는 여신이 죽은 자의 심장을 저울에 올려 마아트의 깃털보다 무거운지 가벼운지 재어 죄의 무게를 달아본다고 한다. 현대판 양심, 인성의 저울이나 다름없는 '하터' 제도가 흥미로워서 기대되는 책이었다. 책을 읽고 난 뒤에 함께 나눌 수 있는 질문이 많은 책이라 더욱 좋았다. 나를 더 좋게 포장할 수 있는 수단으로 선함을 이용하는 세상이라면 그게 꼭 나쁜 것일까? 사람은 여러 모습이 있어 완벽하게 선한 사람은 있을 수 없다. 어떨 때는 보여지는 것을 위해 또는 자신이 선한 행동을 했다는 만족감을 위해 위선을 보이기도 하는데 이런 경우에도 그 사람의 선함을 믿을 수 있을까? 나의 하트는 몇 그램일까? 주변인들과 서로의 하트 무게를 예상해보고 이유를 써서 교환해본다면, 얼마나 일치하는 결과가 나올까, 만약 자신이나 혹은 아끼는 사람의 하트 무게가 적게 나온다면 어떤 생각이들까, 다양한 활동으로 세계를 넓혀간다면 더욱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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