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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터
이지은 지음 / 열림원 / 2026년 6월
평점 :
읽을수록 하터법에 찬성하게 되는 건 왜일까. 내가 어른이라서 일까?
'하터'에 대한 소개를 읽고 굉장히 큰 기대를 품었다. 일단, '하터'의 세계관이 독특하고 매력적이었다. 마음의 선량함을 각종 지표로 재서 등급을 매긴다니, 그리고 그 결과값에 따라 혜택을 준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예민한 문제 중 하나인 대학입시에도 하트의 등급은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양심, 선량함, 다정함 같은 것을 어떻게 눈에 보이게 수치화할 수 있을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하트 관련 학원이 엄청 많이 생겨서 돈을 긁어모으겠다는 것이었다. 입시 하트 전략반, 하트 영재반, 하트 선행반, 하트 특별관리반 등등 하트 0에서 100까지 만든 하트 선배의 특강 같은게 얼마나 많을까, 같은 속물적 헤아림이었다. 어쩌면 어느 하트 학원에서 선행 하트반 담당수업을 했을지도 모른다. 이어지는 생각들은 과연 내 하트의 무게는 어떻게 될까? 내가 저 사람보다 더 착하다거나, 나쁘다는 것을 수치로 확인 받으면 인정할 수 있을까? 내 진심이 아니더라도 착한 일을 하면 수치는 올라갈 수 있을까? 진심이 아니라면 선행을 해도 수치에 변화가 없다면 수치를 올리지 않을 상황에서의 선행은 아무도 하지 않을까? 하트 수치가 높은 사람은 정말 좋은 사람이라고 신뢰할 수 있을까? 수많은 궁금증이 솟아올라 읽지 않고는 버틸수가 없었다.
청소년소설을 읽을 때 생각이 많아지는 요소 중에 유행하는 말이나 문화를 얼마나 담아내느냐가 있다. 그 시절의 또래문화는 유행이 빠르게 생겨났다 금방 사라지곤 해서 어른이 요즘 뭐가 유행인지 알게 되는 때가 되면 시기가 지나버리는 것이 대부분이다. '하터'에도 가까워지려는 노력이 보이는데 아직도 이런 표현을 쓰나 싶은 줄임말이나 평생 아무도 타인에게 현실에선 쓰지 않을 것 같은 표현들이 나오면 손가락 관절들이 오그라드는 듯해 적응이 어려워지곤 했다. 특히 얼음공주(!)에 티여섬, 맑눈광, 우무커 같은 말들을 견디기가 좀 어려웠다. 그래서 초반에는 좀 작위적인 사건으로 인물들이 연결이 되는 것 같아 껄끄러운 느낌도 있었다. 하지만 좋은 인물은 전반적인 분위기를 바꿀만한 힘을 가지고 있는지, 다소 극단적임에도 리진이 어떤 인물인지 알게 되면서 조금씩 새로운 세계에 대한 어색함이 줄어들고 '하터'의 매력도 살아났다.
처음 책을 손에 들었을 때 가볍단 생각이 들었다. 분량이 기대보다 적으려나 싶었고, 단숨에 책을 읽게 되지만 너무 짧아 아쉽기도 했다. '하터' 정도의 세계관이면 삼부작으로 리진과 김화의 이야기가 담긴 전편과 여섬의 진짜 성장을 담은 속편을 더해도 좋을 것 같다. 여섬이가 이제야 세상과 제대로 마주하고 사람들과 부대끼며 성장할 수 있는 발판에 올라섰는데, 부모님과의 관계가 어떻게 될지, 김화와의 관계가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궁금해져서 속편이 필요해졌고, 어떤 작품을 보든 주인공을 가장 좋아하는 인물로 꼽는 편인데 '하터'에서만큼은 리진과 김화라는 인물이 아주 매력적으로 다가와서 전편이 간절해졌다. 리진과 김화, 성숙한 사고를 가진 두 사람이 공유하는 시간을 통해 '하터' 세계관의 이면을 더 깊이있게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아 꼭 프리퀄 이야기가 나왔으면 한다. 특히 랩 가사는 그리 잘 못 쓰는 것 같지만 의외로 하트가 가득채워져 있을 것만 같은 인물 1위로 예상했던 리진이를 여섬이만큼 그리워하게 되었다.
" 세상 모든 청소년을 잠재적 범죄자처럼 취급하느니 도덕적이고 바른 인성을 가진 청소년에게 많은 혜택을 제대로 퍼부어 주자는 취지에서 생긴 <하터법>은 대한민국 입시 제도를 완전히 뒤집었다. 12"
하터법이 지나치게 인권을 침해하고 제대로 된 계도나 보증이 되어주지 않는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내가 어른이라서 일까? 아니면 세상에서 접하는 끔찍한 사건들에 갈수록 피로를 느껴서일까? 읽을수록 하터법에 찬성하고만 싶어졌다. 최근 운동 경기를 하면서 상대 학교의 연고를 두고 역사적, 인간적으로 존중받아야 하는 사건을 끌어와 비하와 조롱을 한 학생들의 사건이 있었다. 깊이 반성을 한다며 찾아가 사과를 건네고 자신들이 받은 징계가 가혹하다며 재심부터 청구했다. 이들의 반성과 사과에는 얼마만큼의 진심이 담겨있는지, 하트의 무게는 얼마일지 스캐닝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차마 진심이 담기지 않은 반성을 보여주기 식으로 공표하지는 않았을지 모른다. 어쩌면 애초에 대학에 잘 가고 싶어서, 프로 선수가 되고 싶어서 단지 재밌다는 이유로, 남들이 다 한다는 이유로 비하와 조롱을 할 엄두도 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자꾸만 하터법이 있는 세상은 어떨까 상상해보게 되었다.
" "너 추리 소설이 왜 재밌는지 알아? 독자가 자기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어서야."
...중략...
"독자가 자신의 의심을 스스로 납득했다는 거잖아. 타인의 인생이 무너지는 이유가 그런 사소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걸. 주변 사람의 마음속에는 어둠이 있을 거라는 걸 말이야. 그렇게 자꾸 생각하다 보면, 뭐 어찌 됐든 사람을 이해하게는 되더라." 94"
책 소개글을 읽으면서 '마아트의 깃털'이라는 이집트 신화를 떠올렸었다. 이집트에서는 사후세계에 가게 되면 마아트라는 여신이 죽은 자의 심장을 저울에 올려 마아트의 깃털보다 무거운지 가벼운지 재어 죄의 무게를 달아본다고 한다. 현대판 양심, 인성의 저울이나 다름없는 '하터' 제도가 흥미로워서 기대되는 책이었다. 책을 읽고 난 뒤에 함께 나눌 수 있는 질문이 많은 책이라 더욱 좋았다. 나를 더 좋게 포장할 수 있는 수단으로 선함을 이용하는 세상이라면 그게 꼭 나쁜 것일까? 사람은 여러 모습이 있어 완벽하게 선한 사람은 있을 수 없다. 어떨 때는 보여지는 것을 위해 또는 자신이 선한 행동을 했다는 만족감을 위해 위선을 보이기도 하는데 이런 경우에도 그 사람의 선함을 믿을 수 있을까? 나의 하트는 몇 그램일까? 주변인들과 서로의 하트 무게를 예상해보고 이유를 써서 교환해본다면, 얼마나 일치하는 결과가 나올까, 만약 자신이나 혹은 아끼는 사람의 하트 무게가 적게 나온다면 어떤 생각이들까, 다양한 활동으로 세계를 넓혀간다면 더욱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