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은 죽으면 어떻게 되나요? 다시 회사원이 된단다.
누구신데 이렇게 시비를 거세요? 작가는 대체 어떤 사람일까. 책소개를 보고 아, 저 사람 진짜! 하고 화가 나게 되는 일이 얼마나 있을까. 회빙환 장르의 전설이 되고자 출사표를 낸 것도 놀라운데 작가의 잔인함을 곳곳에서 발견할 때면 여름인데도 너무 더워서 땀이 줄줄 흐르는데도 오싹함을 느낀다. 뭐, 회빙환 장르를 보면 저 유명한 '트럭'에 치여 죽었다가 눈을 떠보니 낯선 사람이 되어 있고 조건을 달성 못하면 당신은 죽는다는 잔혹한 설정들이 많다. 하지만 이 작가의 진짜 잔인함은 주인공이 샤워하다가 죽었다(12)는 사실이다. 심장마비니, 뇌진탕이니 하는 사인은 모르겠고 아, 알몸으로 발견됐을거 아니에요! 옷은 좀 입혀서 보낼 것이지. '얼지 마, 죽지 마, 사랑하게 될 거야'에선 가는 길 하나도 이렇게 험하다. 작가는 종교가 있을까? 없을 것이다, 아마. 어느 교의 교리에도 이렇게 잔인한 생각은 들어있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종교가 있어서 이 죄를 다 씻어내고 새 작품 쓸 때마다 새롭게 짓는 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런데 이 책, 읽어도 될까? " 윤지훈의 목과 귀가 시뻘게졌다. 윤지훈이 속삭였다. "선배 여기서 이러시면 곤란해요......" 선배라는 여자가 윤지훈을 비웃었다. "곤란하다고 하지만 ...이하생략...(29)" 일단 책을 한 번 덮었다. '뭔가 잘못됐어 단단히 설명할 수도 없이'* 이제 어떻게 죽었느니, 직업이 뭐니 이런 건 문제조차 되지 않는다. 이게 대체 어떻게 돌아간 세상이야? 그리고 곱게 자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제가 감히 이런걸 읽어도 될까요? 19금 성인 오피스 하렘물이라니! 세상에, 감사합니다. 이런게 지옥이라면 안녕히 계세요, 현생의 여러분. 전 암튼 현생에서 벗어나, 가 아니라 '얼지 마, 죽지 마, 사랑하게 될 거야' 이 책 대체 뭔지 의문이 들었다. 어떤 책을 만나게 된 거지? 너무 더워서 내가 내용을 잘못봤나? 하지만 이어지는 19금 성인 오피스의 풍경은 여전했다. 오, 저런, 아멘타불. 얼마나 배덕하고 부도덕한지 엄한 눈으로 샅샅히 파헤쳐줄 각오(?)로 다시 책을 펼쳤다.
펼쳐낸 세상은 금세 슬럼프에 빠진 만화가 '소연'의 세상으로 전환됐다. 아, 또 당했다. 분명 이 세상으로 가려고 했던 게 아니었는데? 게다가 읽을수록 누리의 세상이 더 궁금해졌다. 소연씨 삶이 참 팍팍하고 그런거 알겠는데 화이팅하시고 누리 얘기 좀 계속 보면 안될까요. 한참 몰아치다가 소연의 세상이 나오는 분량이면 나도 모르게 아쉬워지는게, 이렇게 순식간에 타락해버리다니. 놀라운 흡입력을 가지고 있는 책이다. 누리의 자각과 소연의 슬럼프가 벌어지면서 흐름은 서서히 방향을 틀어낸다. 아, 내가 정말 딱 각오했었는데. 그 길 까지는 가지말라는 듯이 몰아쳐오던 자극은 줄어들고 툭하고 누가 건들기만 해도, 건들지 않아도 금방이라도 엉엉 울어버리고 싶을만큼 삶이 찰랑찰랑 차오른 사람들로 가득해진다. 그 삶은 시도때도 없이 일을 벌이던 육욕으로 찰랑이는 대신, 가고자 했던 길, 열정과 꿈으로 가득했던 젊었던 소연을 잃어버리고 돈을 벌어야 했던 성인웹툰작가 소연만 남은 현재와 성공한 만화가가 됐지만 마감에 쫓겨 소중한 사람의 마지막도 살피지 못한 히카루의 고통이었다.
어느새 정신줄을 부여잡은 누리의 맹활약은 이 두세계가 긴밀히 영향을 주고 받고, 느슨히 연결되어 같은 현실을 나눠쓰고 있는 덕분에 가능했다는 것이 독특했다. 소연이 연재하던 <심야 근무의 사정>의 세계관과 누리가 빙의한 현실이 같다면, 이들이 살고 있는 세계 역시 나의 현실과 같을 수도 있는게 아닐까? 최애캐로 리바이 병장(117)을 꼽는 것으로 봐서 이 현실감을 구현해내기 위해 신경썼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 현실이 다 오타쿠 투어로 채워져있어 보는 입장에서는 그게 뭔데, 싶지만. 혹시나 싶어 <심야 근무의 사정>을 검색해봤다가 '심야 야간수당 기준 계산' 수당표만 나와서 아쉬웠다. 과연 누리가 화장실을 가거나 샤워를 할 때 화이트로 지워져있을 것인가, 안심하고 볼일을 봐도 되는 것인가 확인해보고 싶었는데. 나의 세계와는 연결되어 있지 않았구나, 당연하면서도 아쉬웠다.
암튼 작가 권혜영이 만들어낸 '얼죽사', 이 요상한 세상은 자극이 과하게 시작했다가 따뜻 말랑한 치유로 막을 내린다. 처음엔 정말 핸들이 고장난게 아니라 뽑혀버린 여덟톤 트럭이 비탈을 굴러내려가는가 싶었는데, 노련한 솜씨로 갓길에 비상 정차까지 완료해낸 듯해 안심했다. 어? 이게 되네? 우리 브레이크 정상작동합니다. 다행이면서도 아쉽고, 한편으로는 해외 지사로 발령 난 유지훈이 2부의 삶을 살아가고 있을 것인가 궁금해지기도 한다. 과연 1편2발의 만신 작가는 돌아올 것인가. 소연, 다운, 누리. 이 평온하고 무해한 연대는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마지막 줄에 이르러 마침표가 아닌 쉼표를 찍은 듯한 여운을 남긴다. 무엇을 상상하던 암튼 그 상상은 이보다는 덜하길 바라며, 고자극 19금 오피스 회빙환 장르, 통장잔고 0원부터 시작하는 직장인 생존기를 접해보고 싶다면, 더해서 오타쿠는 일본에 여행을 가면 뭘할까 궁금한 사람이라면 '얼지 마, 죽지 마, 사랑하게 될 거야'의 세계를 장바구니에 담고 [구매].
* 뭔가 잘못됐어 권진아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