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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것들의 밤
정보라 지음 / 현대문학 / 2026년 7월
평점 :
" "결국은 인간이 아닌 존재들이 지구를 물려받게 될 거야." 275_우리는 악마에게서 왔다"
정보라 작가의 신작 '이름 없는 것들의 밤'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그 시절'(139)로 표현되는 미래 세계를 무대로 한다. 인공 지능을 갖게 된 기계가 판단하기에 인간이란 존재들은 지구의 안전과 존속에 악영향을 끼친다. 이에 '안전장치(인간이 아니라 기계가 행성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를 시행해 인간의 개체수를 조절하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이 인간처분을 실행하기엔 안전장치 시행 이전의 기계는 인간을 찾아서 잡아내는 기능을 갖추지 못한 경우가 많았고, 인간을 효율적으로 사냥하기 위해 세뇌를 통해 기계 숭배자로 만든 인간 사냥꾼들을 이용한다. 인간이 다른 어떤 동물보다 인간을 잘 살해한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척박해진 미래 세상을 배경으로 지구의 주인이 되어 인간 개체수조절을 하기로 한 기계, 세뇌와 이기심으로 기계에 종속되어 이에 저항하는 인간을 잡아바치기를 선택한 인간사냥꾼들, 기계 문명에 저항하고 살아남기 위해 싸우는 인간들의 냄새나고 더럽고 처절한 사투가 그려진다.
" 기계의 순리를 믿으라. 기계의 합리를 믿으라. 적자생존의 순리를 따르라. "
기계의 감시와 인간 사냥꾼들의 추적을 피해 사람들은 도시의 구석구석으로 숨어들었다. 기계들은 체온을 감지해 인간들을 찾아냈고, 도시 곳곳의 센서와 카메라들도 감시망이 되었다. 감시를 피해 찾아든 오래 전에 방치되어 썩은 물이 고여있는 지하 수영장에서 마리카와 나는 놀랍도록 인간과 유사한 인조인간, 빌리를 만나게 된다. 빌리는 스스로를 인간이라고 주장하지만 나는 냄새를 통해, 그리고 빌리의 피맛을 통해 빌리가 인조인간임을 확인한다. 이때 '나'의 정체가 흡혈인이었다는 점이 독자를 한번 놀라게 만든다. 빌리 역시 기존 인조인간들과는 달랐는데, 스스로를 인간이라고 믿고 있다는 것과 신체가 훼손되어도 빠른 속도로 다시 회복된다는 것이었다. 빌리에 대한 의심을 놓을 수 없으면서도 인조인간 제작소의 위치를 알고 있다는 말에 나는 시설을 공격하기 위해 빌리와 함께 그곳으로 향하게 된다.
'이름 없는 것들의 밤'은 순식간에 이야기의 틀을 잡아나가면서 정보라 작가가 그리는 미래 세계의 음울함과 잔혹함에 스며들게 만든다. 어느새 독자의 머리 속에는 의심과 의문이 생긴다. 빌리는 정말 인간의 편일까? 인조인간인 빌리가 스스로를 인간으로 여기고 인간처럼 행동하고 사고한다면 빌리는 인간으로 규정될 수 있을까? 빌리가 기계라는 이유로 인간이 아니라 판단된다면, 살아있는 인간의 징후가 없고 흡혈을 하고 인간같지 않은 신체 능력을 가지고 있는 나는 인간일 수 있을까? 고민이 길어지기 전에 기계에게 노동을 대신시키는 것이 아니라 빼앗긴 인간들, 빚에 짓눌리고 어디론가 끌려간 이들은 어떻게 되었는가, 밀려드는 세계의 참혹한 스케치가 쌓아올린 희망을 모래성처럼 흩어버리길 반복한다. 인류에게 희망은 있을까? 아니, 인류는 희망을 기억하게 될까?
우리에게 다가올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이런 질문에 대한 답으로 작가는 현재를 제시한다. 최초의 흡혈인은 "화장실의 미친 여자 186"에서 비롯되었다. 화장실에서 살면서 사람을 잡아먹는 여자의 괴담을 알린 건 여자화장실을 초소형 카메라로 촬영한 남자들이었다는 것이, 일상에서 모든 것들이 전자기기로 대체되고, 노동의 현장에서 사람 대신 기계가 자리를 대신하는 것이 정말 인간에게 도움과 해방이 되는 것일까 생각하게 만든다. 사실 AI 프로그램들을 잘 사용하지 않는데 다른 사람들 중에는 편하고 좋은데 왜 이용하지 않느냐며,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 혹은 21세기형 러다이트 운동가처럼 바라보는 시선도 있었다. 하지만 어떤 지점에선 반드시 사람이 스스로 해야만하는 것들이 있다는 생각이 책을 읽을 수록 깊게 남았다.
오래전부터 내가 떠올릴 수 있는 미래의 모습은 어린 시절에 보고 자랐던 헐리웃 영화에서 비롯되었다. 원체 부정적인 성향인 탓인지, 아니면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니 답이 나오는 것인지, 세상의 모든 것들이 편리하게 발전해가는데도 이보다 더 미래 세계는 어떻게 될지 떠올리면 스카이넷*이 언젠가 인류를 해악으로 규정하게 될거야, 혹은 먼 인류는 감정과 능력을 맞춤형으로 조정/세뇌*해서 평화를 유지하게 될거야. 같은 음울한 모습들만 상상하게 된다. 하지만 1997년이 지나도 스카이넷은 각성하지 않았고, 2032년 세상의 모든 범죄가 사라지기는 커녕 우리는 전쟁과 폭동 같은 것들을 더욱더 경계해야 하는 시기를 맞고 있다. 3,40년이나 지난 시대에 그리던 미래를 아직도 붙잡고있을 순 없으니, 이제 미래의 모습을 떠올리기 위해선 다른 롤모델이 필요해졌다. '이름 없는 것들의 밤'이 새로운 디스토피아의 규격이 되어주지 않을까, 기대되었다.
* <터미네이터 1> 1984
* <데몰리션맨> 1993
>>> 월간 현대문학 23년 3월 24년 12월 26년 3월 연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