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가 두고 간 세계 - 돌봄과 상실 너머, 다시 시작된 사랑의 모험
천희란 지음 / 김영사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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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양이는 다시 인간과 인간을 잇는다. 그렇게 고양이가 떠난 자리에도, 여전히 고양이는 존재한다. 137" 

어렸을 때는 뭘 몰랐고 어느 정도 나이를 먹고 나서 오히려 자꾸만 '비인간 동물'과 함께 살고 싶어졌다. 이쯤되면 책임을 질 수 있을 것 같았고, 솔직하자면 빈 마음을 다른 존재로 채우고 싶은 그런 때였다. 얼마나 잘못된 생각이었는지는 너무나 잘 체득하게 되었다. 물론 친구처럼 가족처럼 함께하며 행복이 채워지는 경험을 하기도 했지만 또다른 상실이 반드시 있을 것이란 걸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결정이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 지나고 남은 것은 두 번 다시는 나와 다른 시간을 살아가는 친구들과는 함께 살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나보다 앞서가는 친구들이 날 떠나가며 남은 상처를 감당할 자신이 없어졌다. 좋아해서 종종 듣긴 하지만 가을방학의 <언젠가 너로 인해>라는 노래를 차마 부르지는 못한다. 노래방에서 갑자기 눈물이나 흘리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테오를 만나 보기 위해 조심스럽게 메시지를 보내는 부분(31)에서는 이상하게 울컥해졌다. 그 조심스럽고 복잡한 마음이 구구절절하게도 정말 구질구질하게도 훅 와 닿았다. 어떤 마음인지 알 것 같아서 그 솔직함에 마음이 뭉그러졌다. 너와 같은 혹은 너처럼 사랑할 다른 누군가를 만날 수 있을까. 닮은 강아지들은 수도 없이 많다. 연예인이나 다름없이 유명한 강아지들도 있고, 잘 훈련받아 똑똑한 강아지들도 많지만 너만큼 예쁘고 특별하고 멍충하고 귀여운, '우리 강아지'는 없었다. 키워보고서야 알게 된 이런 종류의 이별. 물론 고맙게도 이런 종류의 사랑이 있다는 것도 배웠지만 사랑이 큰 만큼 슬픔도 크기 때문에, 마음이 좁은 사람은 도저히 더는 용기가 나지 않는다. 결심은 확고했지만 반려동물을 들이게 된 계기나 더이상 들이지 않기로 결심한 까닭같은 것들은 종종 나에게 죄책감을 느끼게 했다. '고양이가 두고 간 세계'는 이 죄책감, 상처 같은 것들을 최대한 이해해주는 내용을 담고 있어, 때로 정곡을 찔린듯 하면서도 위로받는 기분이 들었다. 

" 디오는 미친놈이었다. 도저히 대체할 수 있는 단어를 찾을 수가 없다. 디오는 보통 미친놈이 아니었다. 166" 

고양이가 열어준 세계 속에는 이별의 눈물바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아깽이 디오와 만나 함께 살기를 시작하는 이야기는 혈기왕성한 아깽이답게 이리저리 튀는 에너지가 느껴졌다. 특히나 테오가 공동육묘를 하는 모습은 당황스러울만큼 놀랍기도 했다. 저도 응석받이이면서 어느날 들이닥친 갓난쟁이 동생을 어떤 마음으로 보살피기 시작한 것일까. 게다가 제가 나서서 디오를 돌보기 시작했으면서도 창가에 가서 깊은 한숨을 내쉬는 것(177)으로 육아 스트레스를 달랬다고 하니, 사람에게서 말을 배운 어린 고양이(193)의 엉뚱한 울음소리처럼 사람같은 비인간 동물들의 모습을 생각하면 읽다가도 갑자기 웃음이 난다. 

이런 비인간 동물들의 인간적인 면모에 웃음이 나지만 그들을 인간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해석하는 것에는 항상 경계심이 남는다. 책을 읽다 가장 마음이 쓰였던 부분 중 하나는 다시 소변 실수를 하게 된 루이에게 눈맞춤을 하지 않는 교정 방법을 썼던 때(67)였다. 나이 먹은 고양이가 자신의 의도와는 다르게 용변 실수를 하게 된 것이 고양이적으로는 어땠을지 모르지만,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눈물이 났다. 용변 실수를 하고 수치스러웠을까, 실패에 괴로웠을까, 일부러 그랬다는 오해를 받아 억울했을까, 주인이 눈을 맞춰주지 않아 속상했을까, 어쩌면 고양이는 뭐 그럴 수도 있지 했을까. 나이 든 고양이의 이야기를 눈물로 해석하는 것도 인간의 입장에서 고양이를 오해하는 방식일까. 

" 분명 인간이 고양이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하는 지식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 지식이 유통되는 과정은 훌륭한 보호자라는 고정된 이미지를 생산하는 한편, 반려하기 수월한 이상적인 고양이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 같기도 하다. 198" 

저자 역시 인간에 의해 인간의 영역에서 함께 살아가게 된 비인간 동물 친구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깊이 고민한 티가 났다. 인간의 생에서도 사고나 질병으로 긴급한 수술과 연명치료가 필요할 때 어떤 선택이 더 존엄을 고려한 것일까 의견이 분분한데, 하물며 자신의 의지를 표현하지 못하는 비인간 동물들의 생을 어떻게 존중할 것인지는 더더욱 어렵다. 비인간 동물에 대해 말하지만 사실 인간이라는 동물의 세계에서도 같은 인간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잘 이루어지지 못한다. 이 냉혹하고 잔인한 셈 아래에서 같은 인간조차 거래와 학대의 대상이 되는 일이 존재한다. 그러니 이런 인간들이 만들어놓은 세상 안에서 비인간 동물들에 대한 인식과 처우, 권리와 생존의 합의를 논하는 길은 멀어보인다. 

" 비인간 동물이 거래되지 않는 세상, 학대받지 않고 본능에 가깝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은 아직도 요원하지만, 적어도 그러한 세상이 도래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는 존재한다. 50" 

" 고양이는 인간과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주위에서는 당연히 답을 알 길은 없다. 죽음이라는 관념을 이해하지 못하는 고양이가 스러져가는 몸을 인식하며 죽고 싶다거나 살고 싶다는 의욕을 느낄 가능성은 없으리라 추측할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에게 모든 결정권이 주어졌다 믿어도 되는 걸까. 45" 

하지만 갈수록 인식이 달라지고 있고, 한번 비인간 동물과 함께 살며 세상이 바뀌는 경험을 한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모르는만큼 다른 만큼 더 많이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려는 변화가 생기고 있다. 애완이었던 대상이 반려하는 존재로 인식의 변화가 생긴 것도 유의미하다. 오죽하면 반려동물들이 한마디 말을 할 수 있다면 어떤 것을 고를 것이냐는 질문에 나의 만족감을 채울 수 있는 사랑한다는 말을 듣기보다 상대의 안위를 파악하고 대처할 수 있도록 아프다는 표현을 할 수 있기를 바라는 답이 더 많겠는가. 

욕심껏 '고양이가 두고 간 세계'를 엿보기 위해 책을 꺼내들었지만, 어쩌면 나는 이 책을 제대로 소화할 수 있을만큼의 극복은 실패한 사람일 것이다. 종종 귀여운 비인간 동물들에게 온통 시선을 빼앗기곤 하지만, 길을 걷다가도 불현듯 어딘가에 있는 비인간 동물들의 존재를 감지하고 대뜸 핸드폰 카메라를 들이대기도 하지만, 그 이상으로 마음을 줄 용기는 내지 못한다. '고양이가 두고 간 세계'를 앞에 두고 나만 고양이가 없다며 박탈감에 부들부들 떨면서도 핸드폰 속에 저장해 둔 길에서 만난 고양이들의 사진으로 귀여워하고 싶은 욕망을 달랠 뿐이다. 이 욕망은 책임보다 나약한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책임을 다하는 반려인간들과 함께 살아가는 배려를 보여주는 비인간 동물들 모두에게 깊은 경외를 보낸다. 무슨무슨 법으로 사진 매일 열장씩 자랑해주기를, 버려지고 학대 당하는 비인간 동물들이 없도록 세상이 달라지기를 함께 바란다. 



>>> 이 서평은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게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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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의 빈자리에 - 괴물, 여성, 망자, 호명되지 못한 존재들에 대해
권혁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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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감성적인 이름들을 만나게 될 것이라 생각지 못했다. 어쩌면 조금 신랄한 내용이나 냉소적일지 모르겠단 생각을 했었다. '호명되지 못한 존재들에 대해'라는 부제를 보며 반년쯤 전에 읽었던 [양양]이란 책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양양]은 가족 안에서 지워진 존재인 고모의 자취를 찾아가는 과정을 담은 에세이로 가족들의 이름이 모두 새겨진 비석에 오직 고모의 이름만이 없음을, 그리고 아무도 그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 '이름없는 여자'가 존재했음을 알리는 추적기이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이름의 빈자리에'를 앞에 두고 상실과 소외 같은 것들을 먼저 이어붙여 나갔던 것 같다. 

하지만 '이름의 빈자리에'에서 만난 이름들은 대체로 감성적이고 조금은 애틋한 존재들이다. 때로는 불행하기도 하지만 그를 돌아보는 시선에는 온기가 맺혀 있다. 대상을 감싸안는 연민에서 가끔은 멀어지기도 하고 결국은 함께 머물며 기대기도 했다. 남다른 이름으로, 그리고 종종 불리고 싶은 이름을 붙여서 살아온 저자가 모아놓은 이름들은 사랑하는 이의 이름으로 자신을 불러달라는 일치의 고백(94)이자, 차마 부치지 못한 편지의 첫 마디(84)이기도 하고, 영원히 떠나가는 이를 붙잡는 마지막 울림(132), 끝내 미결로 남아버릴 사랑의 이름(186), 오래된 필름 속에 박제된 젊음의 초상(234)이다. 

" 서래와 동점. 서쪽에서 와서, 동쪽으로 점점. 불교의 전래 경로를 따서 지은 이름이라 하셨다. 190" 저자가 <헤어질 결심> 속의 서래보다 십여년은 더 먼저 서래라는 이름을 선점했음을 또렷하게 밝힐 때마다 얼마나 큰 애착을 가졌던 이름이었는지 느껴졌다. 사실 보는 입장에서야 누가 먼저이건 큰 상관은 없는데, 가끔 우리는 이런 사소한 것들을 확실히 인정받고 싶을 때가 있다는 점에선 공감이 됐다. 다만 살면서 어떤 언어로든 쉽게 쓰여지기 어렵고 비슷한 이름을 가진 사람을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독보적인 이름을 가진 저자는 왜 다른 이름들을 사용하려 했을까는 궁금해졌다. 이 '다른 이름으로 살아보기'는 다른 옷을 입는 것 같을까? 다른 사람이 되는 것 같을까? 

'다른 이름으로 살아보기'는 낯설수록 쉽고 가까울수록 어렵다. 이름을 바꾼 사람들의 오랜 주변인들은 버릇처럼 원래의 이름을 먼저 찾는다. '처음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가 다가와 하나의 의미가 되었'*던 순간이 전부인양, 때로는 악의적이리만큼 꿋꿋하게 본명을 부르곤 한다. 하지만 낯선 이에게 다른 이름을 사용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 '이름 바꾸기'가 유행처럼 번진 때도 있다. 택배나 배달음식을 받을 때 주문자에 곽두칠, 문근철, 조덕출 같은 이름을 붙이는 꿀팁이 여성들 사이에서 퍼져나간 것이다.* 여성임이 드러나 혹시 모를 위험에 스스로를 노출시키기 쉬운 이름 대신 쎄보이는 남성적인 이름으로 불편한 상황을 피해보려는 시도였다. 이름이 암묵적으로 드러내는 정보와 공유하는 느낌이 있음이 새삼 와닿았다. 

저자와 비슷한 세대이긴 하지만 조금은 차이가 있다고 느꼈던 부분이 '리버 피닉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 였다. 90년대 학번 정도의 세대가 가진 리버 피닉스에 대한 탐닉, 예찬, 감탄, 갈망의 정서(234)를 어렴풋이 엿본 것 같았다. 리버 피닉스보다는 호아킨 피닉스의 영화가 더 익숙하고, 리버 피닉스의 동생이라는 수식이 아닌 호아킨 피닉스의 형으로 소개되는 쪽이 더 익숙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른 남매들이 리버, 레인, 섬머 일때 혼자만 호아킨이었다면 좀 섭섭하긴 했을 것 같다. "다들 보라, 노을인데 왜 나만 덕선이야!"* 하고 울부짖던 성덕선이 떠오른다. 

책에서도 소개된 [프랑켄슈타인](32)을 작년 처음 읽어보았는데, 그에 대한 감상이 저자의 딸과 같았다. 우선씨일지 민진씨일지 모르겠지만, 그들과 같이 젊지 않아도 감상은 같을 수 있으니 피조물에게 느끼는 바가 갈리는 것은 온전히 나이탓은 아닐테다. 피조물의 마음이 악으로 채워진 원인이 아무도 자신을 사랑해주지 않아서,라는 온통 원망과 불평, 증오로 가득찬 태도에서 지긋지긋함을 느꼈다. 날 사랑해주지 않으니 널 고통과 불행 속에 빠뜨리겠다는 공격적인 대응을 우린 뉴스, 사회면에서 너무나 자주 만나게 되지 않는가. 

이름이 가진 의미와 기능들을 찬찬히 음미해보는 시간이었다. 평생을 흔한 이름으로 무감히 지내왔는데 가끔은 내가 불리고 싶은데로 이름 붙여보고 싶어졌다. 나에게 달라붙은, 이제는 나와 구분되지 않는 익숙한 이름을 벗어내면 좀 더 가볍게 살아볼 수도 있지 않을까? "넌 착하고, 똑똑하고, 중요한 사람이야.* 넌 무엇이든 될 수 있어." 응원해주는 것처럼 그 '이름의 빈자리에' 넌 어떤 이름으로든 불릴 수 있다고 이야기해주는 특별한 책이었다. 


* 시 [꽃] - 김춘수
*'쎄 보이는 곽두팔 씨'가 필요한 세상 [아시아경제 20190404]
*드라마 <응답하라 1988> 2015
*영화 <헬프>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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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펑 - 나를 울리고 너를 배반하며 이룩되는 케이팝 이야기
복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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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밤낮으로 실체 없는 대상을 향해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를 외치는 쪽이 더 광신도 아닌가? 이 아이돌이란 사람들은 자기가 파는 환상에 도리어 자기가 묶여 있는 상태란 거다. 아이돌을 향한 팬의 사랑이 환상이라는 건 더 말할 것도 없다. 54"


 그러니까 좀, 무서워요. 무서운 것이다. 지하철 1호선 광인과 케이팝을 연결 시킬 수 있는 사람의 케이팝이란 뭘까. '펑펑'이 정말 좋았다. 재미로 따지자면 올해 벌써 6월인데, 그 전으로도 후로도 '펑펑'을 넘어설 콘텐츠가 존재할 수 있을까, 아마 없을거야, 싶다. 너무 재밌긴한데 한편으로는 수치스럽다. 어릴적에 익혀둔, 봐선 안되는 간행물을 슬쩍 몰래 넘겨보고 안본척하던 스킬을 써서 몰래 봐야 할 것 같은 책이다. 읽다가 혀를 여러번 빼물고 내두르고 씹어야 했는데 하나같이 강렬한 감각들이 휘몰아쳐댄 탓이다. '거울 치료를 위해 태극기부대를 찾아가(26)'는 이 판에는 대체 어떤 자만이 살아남아 있는 것일까. 기형적인 구조라는 것은 알지만 이 극단의 방법을 스스로에게 쓸 줄이야. 지금은 괜찮으신지 안부를 묻게 된다. 혹 독을 독으로 치료하려다 중독된 것은 아닐지 걱정도 되고. 


 사실 평생에 있어 케이팝 소비를 해왔겠지만 진짜 '소비'를 한 적은 없다. 저자가 '듣는 음악'을 주장한 것과 비슷하다. 들어왔지만 보고 소비하는 것에 더 집중된, 전복된 듣기처럼. 소비없는 소비를 한 라이트팬은 어릴 적엔 잡팬으로 불렸고 나이들고 나서는 머글이 되었다. 유재석의 멜론 탑100 귀 이야기에 맞아, 내가 그래! 하고 무릎을 쳤다. 물론 요즘은 아이돌 노래는 잘 듣지 않을 나이까지 됐다. 케이팝의 띵곡은 90년대에 이미 완성되었지, 안경 척! 하고 마는 것이다. 사실 그 시절엔 대중가요를 잘 몰랐으면서도. 그렇지만 평생을 봐온 케이팝 휀걸들의 삶이 바로 내 친구이고 이웃의 이야기여서 '펑펑'을 읽으며 약간이나마 공감하고 또 대리 수치도 느낄 수 있었다. 


 " 케이팝의 진정성은 누가 뭐라 해도 무대로 완성 되는 법이다. 76"


 '펑펑'의 케이팝 역사가 너무 찐해서, 찐이라서, 읽다보니 그냥 아는 것을 쓴 것인지 쓰기 위해 알아간 것인지 궁금해졌다. 오소녀(124), 거북이 빙고의 숨은 리스너(223) 디테일에 깜짝깜짝 놀랐다. (그런데 '우리나라 대통령도 이제 여자분이신데 - 걸스데이 여자대통령'은 왜 없지?) 저자는 얼마나 케이팝에 인생을 갈아 넣은 것 입니까. 돌보다 더 오래도록 그 바닥에서 구르며 산업 그 자체가 되어버린 휀 더이상 걸도 아닌 늙크크의 슬픈 초상("아줌마, 언제까지 케이팝 판에 기웃거릴 건가요?" 213)이 여기에 있었다. 문장이 괜히 비장해지는 것이 '펑펑' 읽다가 얼마나 케이팝 보법에 절여진 건지 감도 안온다. (그런데 소녀야 언제까지 젊을거니? 내년에도 젊어? 후년에도 젊을꺼니? ... 그렇겠지. 좋겠다 소녀야 아줌만 갈게 넌 평생 케이팝 하렴.)


 얼마나 위험한 책인지. 솔직히 재밌게 읽기는 했는데, 주변에 읽어보라고 꼭 소매넣기 찔러주고 싶은 책인데, 읽을때는 혼자서만 몰래 읽고 싶은 그런 책이다. 오랜만에 만난 동창과의 이야기를 풀면서 "닥쳐 제발... 넌 수치심이란 것도 없니? 30"했다지만 그쪽도 신화 누드집 돈 모아서 사봤다는 얘기 했잖아요. 칼머리(40)얘기하면서 이반 문화 오픈했잖아요. 왜 케이팝 얘기하면서 귀여니랑 김종국을 안양의 소울(246)로 묶냐구요. 읽으면서 왜인지 수치스러움으로 고통받는 독자도 배려 좀 해주시겠어요? 과거는 다 불태워 묻어버리기로 사회적 합의를 하면 안될까 싶었다. '펑펑'에는 정말 다양한 곡과 가수들이 솔직하고 적나라한 모습으로 등장했는데 재밌는 점은 묘하게 샤이니에게는 낯을 가린다는 느낌이 든다. 짐승돌엔 덕질하면서 '누난 너무 예쁘다'며 노래하는 소년과는 좁히지 못하는 거리가 있다니, 오히려 불미스럽다.


 암튼 '하투하팬 7명, 이즈나팬 7명, 미야오팬 7명, 리센느팬 7명 도합 10명인 세계관' 속의 우리 케이팝 휀걸들은 꼭 이 책을 읽어보시라. 고일대로 고여진 휀걸끼리 독서모임 혹은 싸움이든 할 말이 가득 쌓일만한 콘텐츠 아닐까. 솔직히 머글 눈에는 그저 웃기고 재밌는 추억은 방울방울이었는데 찐팬의 입장에서는 또 다른 면이 보일까 궁금하기도 하다. 어떤 역사는 누구의 입장에서 쓰여졌는지에 따라 다르게 전해질 수도 있는 법이니까(비장). 다른 사람 후기랑 저자 북토크 현장이 이렇게 궁금한 책은 또 처음이다. '펑펑'은 북토크라기 보단 팬싸라고 해야되는게 아닐까. 책 사면 저자 포카라도 랜덤으로 증정하라! 여담이지만 덕질에는 뭘 잡고 시작하냐에 따라 소나무 같은 취향이 생긴다는 말이 있는데, 아무도 묻지 않았지만, 평생 내 심장을 뛰게 하는 것은 슴돌이었는데 요즘은 코르티스가 늙크크의 눈에 밟힌다. 갈아탈수도 있나? 빅히트도 다시보면? 이런 흐름 어색하지 않은 분이라면 '펑펑' 꼭 읽기, 약속.


 '펑펑' 읽고 다른 사람 후기 궁금해서 찾아왔으면 같이 감상 달려주기 입니다. 꼭. 케이팝 좋아하시면 '펑펑'하세요. 재밌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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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은 왜 실패하는가 - 대한민국 정책 생태계의 민낯과 가능성
이창곤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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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한 차례의 선거가 지났다. 언젠가부터 선거는 '심판'으로 불리고 있다. 그때마다 사람들이 투표의 의미를 잘 살려 활용하고 있다고 생각되기도 하고, 이 심판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맞을까 의문이 생기기도 했다. 대체 왜 자꾸 대표자를 뽑는 일이 '심판'이 되어야 하는 상황이 이어지는 것일까. 정책은 왜 실패하는가를 통해 우리가 심판자로 뽑은 대표자들이 내놓은 정책이 왜 실패하는지, '정책은 근본적으로 정치'라면 우리의 심판이 실패로 돌아가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도 있는 것인지 연관성을 알아보고 싶었다. 

'정책은 왜 실패하는가' 솔직히 읽기 전에는 독서에 왜 실패하는가 먼저 생각해야 하는게 아닐까 싶었다. 그런데 막상 읽기 시작하니 일상에서 접했던 사회 문제들을 예시로 끌어와 읽기 쉽게 설명되어 있어 재밌었다. 왜 이런 시위를 했는지, 어떤 문제를 말하고 싶었는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정책으로 접근했는지, 연결해 읽으니 나에겐 체감되지 않던 문제에 좀 더 관심을 갖고 이해하게 되었다. 또한 왜 "노동 빈곤층의 확산, 인구 구조의 급변, 기후위기 대응(246), 국민연금 개혁(120), 의료 개혁(266), 장애인 이동권(53)" 등 우리 사회의 주요 문제가 개선되는데 어려움이 생기는지 바탕을 파악할 수 있었다. 

" 정책의 효과가 현장에 안착하려면 최소 10~15년의 긴 호흡이 필요하다. 이는 이념과 정권을 초월한 지속성과 일관성이 담보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하지만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임 정부의 정책이 폐기되는 우리의 정치 풍토에서, 이러한 '백년대계'를 기대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48 / 거시적 문제에 대한 정책 비전을 포함은 '어떤 나라를 만들 것인가'에 대한 명확한 국가 비전을 제시할 의무가 있다. 97 / 가장 뼈아픈 실책은 '선제적 경고'의 부재다. 문제가 터지기 전에 미리 내다보고 대책을 세웠어야 하는데, 뒷북만 치는 처방에 그쳤다는 뜻이다. 200" 

그동안 치열하게 진영 싸움이 지속되면서 어느쪽이 정권을 잡는지에 매몰되어 있던 우리나라의 현실 상 장기적인 계획과 실행이 지속되기는 어려웠다. 눈에 드러나 공론화 된 것으로 한 지역의 성공적인 대표로 자리잡은 표어와 상징물 조차 소속 정당이 다른 시장이 당선되고 나서 순식간에 폐기해 버리는 치졸한 전임자 공로 지우기, 세금 낭비 같은 것들이 대놓고 이루어진 사례가 있다. 그저 자리 뺏기와 승자 되기에 매몰되어 이미 시민들의 생활에 자리잡은 친근한 이미지마저 지우기 위해 혈안이 된 것을 보면, 시민의 의견과 삶에 대해서 고려하거나 눈치조차 보지 않는 태도가 만연함을 느낀다. 다만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국가 중장기 전략 연구를 위해 전담 부서를 신설하고 중장기 미래 전략 연구에 본격적인 착수하는 개선을 보이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 일방으로 기울어진 정책 생태계의 균형을 되찾으려면 정부의 철학 변화만으로는 부족하다. 사용자 단체는 스스로 공적 책임을 수용해야 하며, 노동계는 대안적인 정책 역량을 증명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민사회는 이 거대한 권력의 흐름을 놓치지 않는 냉철한 감시자로 거듭나야 한다. 258 / 시민이 일상에서 스스로 배우고, 의견을 나누며, 공동체의 미래를 직접 설계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 그리고 누군가 대신 결정해주는 시혜적 정치를 넘어 시민이 직접 이끄는 정치를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 그것이 바로 정책 생태계 혁신이 도달해야 할 최종 목적지다. 356" 

이번 선거에서 시민들의 선택으로 재밌게도 보수 텃밭이라 불리는 지역에서 진보 진영의 당선자가 나온 사례가 있다. 울산 시도지사 선거의 배경인데 전 당선자가 울산 지역의 버스 노선을 실제 교통상황과 환승 실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탁상행정으로 개선해 불필요한 환승과 외곽지역에 사는 고령층의 교통 불편이 늘게 되는 일이 생겼다. 생활에 밀접한 문제가 생기가 후보에 대한 불만과 불신이 커졌고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공약을 제 1 정책으로 내세운 후보가 당선이 된 것이다. 우리가 어떤 정책을 원하는지, 또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어떻게 의사를 표명하는지 잘 드러난 사례라 생각되었다. 안타깝게도 이 모든 것을 '집값' 같은 문제로 뭉개고 든 지역도 있지만. 

저자의 서문을 읽으며 "2026년 현재, 대한민국은 다행히 다시 안정의 궤도에 올라섰다. 16"는 문장에서 쓴웃음이 나왔다. 책에서도 '2025년 서부지법 폭동(320)'에 대한 예가 있었는데, 이번 선거 이후로 다시 밀집하기 시작한 집단이 2024년 겨울의 밤을 마치 시기하여 따라하기라도 하듯 강남 지역 복판에서 식음료 물자를 받고 방한 용품을 요청하며 시위를 하고 있다. 안정의 궤도를 이야기하기엔 이르다. 물론 윤 정부 기간 동안 다방면으로 손을 댄 문제들이 돌이킬 수 없는 지점에 이르기 전에 멈춰질 수 있어 다행이었으나 불거져나온 분열과 갈등, 혐오는 진정되지 못한 상태다. 복잡하게 얽힌 이해관계를 풀 방법은 무엇일까 고민하게 된다.
우리 사회의 어둠은 빛의 그늘 아래에서 짙게 꿈틀거리고 있고, 목표를 향해 함께 나아가야 할 궤도는 흔들리고 있다. 국가적 위기 상황을 시민의 감시와 위기 대처 능력을 발휘해 극복해냈다는 성과도 잠시, 그 어떤 이성과 사리도 경제/돈의 만능주의 앞에서는 쉽게 힘을 잃는다는 현실을 마주할 때마다 탈력감을 느끼게도 된다. '정책이 왜 실패하는가'를 이해하는 동안 우리 사회가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지, 왜 이런 구조를 가지고 있는지, 그 안에서 정당, 언론, 지식인, 사회단체, 시민 등 구성원들은 어느 위치에 있는지 살피며 감각의 균형을 새롭게 잡을 수 있었다. 급변하는 기술의 발달, 양극화와 분열 앞에서 인간 중심의 가치를 잃지 않고 나아가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자리에서 공부하고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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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고가 돈 문제에 대처하는 법
루피 소프 지음, 보탬 옮김 / 열림원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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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해도 될까?" 22

이 말이 이렇게 역겨운 책이 또 있을까. 30대 후반 유부남이 게다가 선생과 학생 사이라는 위계를 이용해서 19살짜리를 꼬셔서 임신 시키는 관계의 시작이다. 게다가 마크는 임신 사실을 알고 난 뒤에 잠적, 뒷처리를 그의 엄마에게 떠넘기기까지 한다. 나이 차이 나는 남자가 어린 당신에게 이유없이 친절하게 다가온다면 혹은 재능이 있다거나 열심히 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는 말로 접근한다면 그 이유는 당신입니다. '마고가 돈 문제에 대처하는 법'을 읽으면서 여러번 생각했다. 마고의 대처법에 대해 너무 동양적인 시선으로 혹은 보수적이거나 냉소적으로 판단하려 들었나? 미국 감성이란 이런 것일까? 다른 독자들의 생각도 궁금해졌다.

 마고가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기 때문에 그녀의 입장을 옆에서 낱낱이 바라보게 되니 일이 어떻게 흘러가든 어쨌든 좀 잘 되기를 응원해주게 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요즘 여러번 나오는 모 브랜드의 가전광고처럼 영화 <인터스텔라>의 책장 장면을 떠올리며 몇 번이나 책상을 두드리면서 '마쪽아 안돼! 하지마! 다시 생각해!' 외치고 싶었다. 위기감이 없고 충동적인 마고의 성향이 나와는 정반대로 느껴지는 것이 마고 MBTI는 ENPF가 아닐까 싶다. 어쨌든 하나씩 따지다보면 처음 모든 것부터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하고 싶은데 그래도 어떻게든 알아서 살아보겠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 조금 너그러워진다.

 " 내가 보디를 사랑하는 것만큼 한때 날 사랑했을 나의 엄마까지도 나체 사진 몇 장에, 자기 인생에서 날 몰아내지 않았던가. 그런데 안 그럴 이유도 없지 않을까? 나는 거짓말쟁이에, 창녀인걸. 나는 말 그대로 내 인생에서 사람들에게서 떨어져 나와 고립되었다. 358"
 
 마고의 뒤늦은 후회와 자기 연민에 종종 마음이 쓰이기도 했지만 근본적으로 마고가 뛰어든 '온리팬스'라는 이 구독자 전용 서비스 산업이 사실상 성적인 콘텐츠를 제작 판매하는 부적절하고 역겨운 성질의 것이라는 점, 때문에 이 선택에 대해 마냥 '재치 있다'고 긍정할 수 없다는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온리팬스 안의 마고, 헝그리고스트는 마치 프로 레스링 시합의 선수들처럼 일종의 캐릭터이고 역할이며 직업일 뿐이라고 할 수 있지만, 어떤 사정을 대더라도 이 산업에 뛰어들어 돈을 벌기로 했다는 것이 개인적으로는 용납되지 않는다. 여성의 성을 사고 파는 일은 한 개인의 사정으로 국한되지 않고, 여성을 구매 대상으로 전락시키고 다른 여성들의 노력, 노동 가치마저 폄하시킨다. 심지어 마고는 다른 일과 온리팬스를 선택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웨이트리스 일은 비전이 없고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온리팬스를 지속하기로 결정한다. 거기엔 다른 이해나 사정이 들어갈 여지가 없다.

 '마고가 돈 문제에 대처하는 법'은 현대판 동화나 먼치킨 주인공이 등장하는 만화 같다. 이야기의 초반 모든 것에 서툴고 어렸던 마고의 어설픔, 실수와 결핍 같은 것들을 위태롭게 쌓아올린다. 하지만 보디를 낳고 난 뒤 깨닫게 된 '책임'의 무게와 냉정한 현실 앞에서 마고는 좌절하되 주저앉지 않는다.기죽지 않고 자기만의 방법으로 문제에 돌진해버리는 마고의 태도와 점차 단단하고 재기발랄한 모습으로 성숙해지는 내면이 그 전에 쌓아올린 것들을 날려버리는 것 같은 쾌감을 스트라이크로 준다. 거기다 온리팬스 안에서 정상인을 찾아 진솔한 마음을 나누는 상대를 만나게 된다는 것은 현실에서도 사실 허구에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20달러에 포켓몬 평가서'를 보내주겠다는 사람과 그 평가서가 흥미롭다는 사람의 만남에서는 더더욱.

 " 마고는 지금까지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들과 이런 처지에 이르기까지 했던 일련의 결정들과 그 의미들을 돌이켜보면서 한 시간이 넘도록 플러턴 거리를 걸어 다녔다. 바로 이 순간의 친절이 얼마나 큰 의미인데, 친절을 베풀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기도 하고, 아기는 자기에게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성스러운 존재인데, 다른 사람들에겐 그저 식상하고 성가신 존재일 뿐이라는 사실들을. 67"

 이 책의 흥미로운 점 중 하나는 마고의 상황이 아이를 가진 사람들이 겪는 내면적 혼란과 사회적 문제를 고스란히 보여준다는 것이다. 임신을 하면서 받은 축하와 호의, 긍정적 감정들이 계속해서 이어지면서 주변인들도 자신의 상황에 함께 공감하고 특별하게 여겨줄 것이란 판단을 하는 경우가 있다. SNS나 메신저에 아기 사진을 시도때도 없이 올리는 지인에 대한 불평을 보게 되거나, 차가운 지인들의 반응에 섭섭한 마음을 토로하는 글을 종종 보게 되는 것처럼. 마고가 플러턴 거리를 걸으며 깨달았던 사실이 실제적이고 씁쓸하면서도, 마고가 점차 현실적인 감각을 되찾고 있다는 것을 느꼈던 부분이다. 

 더불어 '마고가 돈 문제에 대처하는 법'이 "너무나 재치 있고 사랑스러운" 싱글맘 고군분투기처럼 그려졌지만 사실 일부 남성들이 여성의 삶과 노동력의 가치를 폄하하는 주장-'자신의 성을 팔면 인생 난이도가 쉬워지니 좋겠다'-을 주체적으로 보이는 포장으로 덮어 내놓은 것과 다름 없다는 점은 아쉽다. '유쾌하고 다정한' 마고의 이야기가 적당히 비참하고 사실은 웃기지 않은 이 불편함이 어디에서 왔을까 생각하며 읽었다. 처음 생각한대로 문화가 달라서인지 사고나 성향의 차이 때문인지 스스로를 검열했다. 여성의 주체적, 자발적 선택과 참여, 금전적인 보상 같은 것이 이유가 될 수 있을까, 여전히? 작은 모욕을 견딘 사람에게는 더 큰 모욕이 주어지게 된다는 말이 떠오른다. 주인공을 응원했지만 좋아할 수는 없었다. 아쉬운 점이 있지만 또 다 좋아하고 만족할 수는 없다,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만들어준 책이다. 


*예기는 29p
*살짝 섬_했다. 18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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