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 메모리엄 - 2024 올해의 영국 도서상 데뷔 소설 부문 수상
앨리스 윈 지음, 이나경 옮김 / 다산책방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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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인 메모리엄]을 두고, '잔혹한 참호 속에서 "피어나는 사랑"의 서사시' 중 사랑에만 관심을 가졌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이 주고받는 대화가 너무 간질간질했다. "전쟁이 아니었어도 네가 나에게 키스했을까?" 둘 사이에 어떤 서사가 있길래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어도 키스를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품고도 전쟁이 났기 때문에 키스를 했을 것이란 자학적인 질문을 했을까. 하지만 1914년 영국의 한 기숙학교를 배경으로 시작되는 이 이야기의 첫 장을 펼치며 마주하게 된 학교 교지 '더 프레슈티언'의 부고와 추모란을 시작으로 시선은 사랑에서 '잔혹한 참호'로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있는 세상으로 조금씩 옮겨졌다. 적게는 16살에서 대부분 스무살 안팎인 청년들의 이름과 나이가 소속연대나 전투지와 함께 적혀있었다. 젊다기보다는 어린 나이와 어울리지 않았다.
전쟁에 참전하지 않는 청년을 향한 압박이 얼마나 컸던지 군복을 입지 않고 길을 나가면 낯선 사람이 하얀 깃털*을 건네며 "왜 당신들은 전선에 있지 않죠?(40)"하며 압박을 주고 조롱을 하고 그를 지켜보는 사람들 역시 경멸의 시선을 보내는 것으로 동조한다. 가족들마저 아버지의 직장, 여동생의 결혼 등 사회적 평판을 위해 열아홉도 채 되지 않은 아들에게 참전을 강요한다. 부고를 알리는 신문에는 "부모님과 친구들로부터 전달받은 내용을 기쁜 마음으로 전달합니다.(471)"는 문구가 덧붙여지기도 했다. 죽거나 운이 좋으면 어딘가 부상을 당해 돌아오게 될지도 모르는 전쟁터에 생면부지의 타인을, 아끼는 가족을 몰아내려는 사회의 분위기가 이해되지 않아 이상하고 무서웠다. 전쟁이라는 극단적 상황에서 두려움과 불안을 피하기 위해 집단 내에 비이성적인 광기를 이용해 혼란을 막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세상이 전쟁의 그늘 아래에서 시달리는 동안 사랑을 하는 두 소년의 마음 속에도 늘 폭풍이 있었다. 엘우드와 곤트가 어린시절 기숙학교에 입학한 이후로 서로 가까워지는 시간들을 보여주며 기숙학교의 묘한 분위기를 함께 드러낸다. 기숙학교 내에서 암묵적으로 이루어지는 동성과의 관계를 두고, 서로 짐작하면서도 이를 드러내지 않고 재학중에 잠시 빠질 수 있는 한때의 엇나감으로 치부한다. 졸업하고 나면 이 어린시절의 치기는 묻어두고 정상적으로 여자와 관계를 맺고 결혼을 하는 어른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보편의 길이다. 곤트는 '남들처럼' 이 보편의 길을 가고 싶지만 스스로의 성향을 깨닫고 혼란스러워 한다. 자신에게만큼은 쉽게 닿지 않으려는 엘우드를 의식하는 순간순간, 엘우드를 향해 느끼는 감정과 욕구가 한때의 엇나감이나 어린시절의 치기로 치부될 수 없음을 느낀다.
엘우드와 곤트의 성향 때문인지 그들과 연결된 인물들 다수가 동성애적인 성향을 띄고 있어 보편인지 과장인지 읽으면서 가늠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 기숙학교의 분위기나 심리를 다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지금보다 더 동성애에 경직되어 있던 시대였음이 곤트가 자신의 성향에 대해 더 압박을 느끼고 엘우드에 대한 마음을 숨기려는 요인으로 다가왔다. 엘우드 역시 곤트를 의식하고 있었는데 동성과의 관계에 불편함을 보이는 곤트를 살피며 마음을 주지 않는 가벼운 관계들을 만들고, 곤트는 엘우드가 가볍게 맺는 관계들에 의미를 두지 않고 금새 저버리는 것을 보고 한순간 가까워졌다 그를 잃어버리게 될 것을 두려워 다가가길 멈춘다.
이들의 관계는 어느 한 순간 금방이라도 선을 넘을 듯 보이다가도 아슬아슬하게 멈춰선 긴장감을 유지하다 입대라는 큰 변화와 함께 변곡점을 맞이하게 된다. 옥스퍼드에 가서 고전학을 공부(38)하고 싶었던 소년은 겁쟁이로 남지 않기 위해, 졸업을 하면 엘우드도 곤트의 여동생 모드와 결혼을 하고 다른 이들은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가지만 자신을 그럴 수 없을 것이란 괴로움에, 독일인의 뿌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로 가해지는 압박에,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에 대한 파괴적인 충동으로 입대 신청을 하게 된다. 총탄이 오가는 전선에서 너무나 쉽게 사람이 죽고 다치는 것을 보고, 실수로 같은 편에게 총을 쏘게 된 곤트의 신경이 극에 몰렸음을 알게 된 엘우드도 그의 곁에 있어주기 위해 입대를 한다. 
" 곤트에게 뭔가 무서운 일이 일어나고 있다면, 엘우드도 함께 겪고 싶었다. 130"

[인 메모리엄]은 전쟁의 참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모래와 내장이 섞여들어가 썩어 터져나가는 모래주머니, 얼굴에 튀는 누군가의 피와 살점, 죽기 전에 경련하는 뇌의 움직임, 손실된 팔과 다리, 턱 같은 신체의 일부, 제대로 된 철모조차 없이 전선으로 밀려나는 병사들의 죽음. 내 옆의 누군가가 죽고, 자신도 죽을 것이라는 불안과 공포 앞에서 곤트와 엘우드는 멈췄던 발을 서로에게 내딛는다. "곤트는 겁쟁이였으니, 마음을 다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여겼을 것이다. 오직 자신이 죽으리라는 것을 알기에, 곤트는 그처럼 무모해질 수 있었다. 233" 전쟁이 아니었다면 서로에게 키스를 하지 않았을 두 사람이 숨기고 속이던 마음을 드러낼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의 큰 사건이 계기가 되어야 할만큼의 결심이 필요한 일이었을지 모른다.
처음 읽었을 때는 정신없이 흐름을 따라가느라 감정선을 다 챙기기 못해 겉돌고 숨기기만 하는 두 사람의 모습이 아쉬웠는데, 감상을 정리하며 다시 부분 부분을 살펴보며 읽으니 처음에 다 짐작하지 못했던 마음이 조금 더 세밀하게 보이는 듯 해 느낌이 달랐다. 600쪽에 가까운 분량의 책을 지루함 없이 두번쯤 반복하게 되는 몰입, 다시 볼수록 새롭게 눈에 걸리는 미묘한 분위기와 긴장감이 매력을 더하는 책이었다. 너무나 의식되어서 오히려 나다울 수 없었던 누군가가 있었다면,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에 가장 깊숙한 곳에 두고 혼자서만 아끼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다면, 손에 잡힐 듯한 마음이 닿으면 망가질까 바라만 봐야했던 때가 있었다면 [인 메모리엄]의 전쟁 속에서 일어나던 폭풍을 애틋한 마음으로 감상하게 될 것이다.  


*흰깃털단(the Order of the White Feather)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의 여성 단체가 남성의 자원입대를 촉구하기 위해 겁쟁이의 상징인 흰 깃털을 주며 조롱·수치심을 유발한 캠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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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묻는 사회 - 한국형 연령차별주의와 멸칭 문화
정회옥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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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존의 나이 멸칭이 지겨워지면 새로운 나이 멸칭을 만들어 특정 세대를 조롱하고 혐오하는 행태, 계속해서 낙인찍을 나이대를 찾는 행태, 이제 한국 사회의 거의 모든 나이대는 다 제각각의 멸칭을 갖게 되었다. 멸칭이 없는 나이대가 없을 지경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나이 멸칭으로 조롱하는 사회, 지독한 연령주의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다. 65" 

한동안 아무데나 다 붙여 쓰던 '00린이(79)'라는 표현이 있다. 처음엔 그 표현이 어떤 일을 시작한 초보나 아직 숙달되지 않아 부족함이 있는 사람을 뜻하는 새롭고 재밌는 표현이라 생각했는데, 자꾸 여기저기서 마주치다보니 불편하고 거부감이 들기 시작했다. 실생활에서는 어린이의 미숙함을 이유로 노키즈존이니하는 혐오와 배제를 앞세우면서, 본인의 서툼과 부족함은 어린이라는 이름을 가져다붙여가면서 이해와 포용을 바라고 있는 것이 보기 좋지 않았다. 공공장소에서 아이가 울거나 큰소리를 내는 걸 두고 갑론을박을 펼치면서 스스로를 두고 00린이라며 '응애' 농담처럼 우는 흉내를 내는 것이 폭력적으로 보였다. 요즘 아이들은 학교에서 운동회를 하려고 하면 먼저 인근 주민들에게 양해를 구하는 글과 그림부터 준비해둔다. 학군 좋은 거주지는 찾지만 그 학군에서 당연히 일어나야 하는 교육단계는 민원을 넣는다니, 대체 어느 쪽이 더 상대방을 배려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나이를 앞세워 더 큰 목소리를 낼 수 있을 때 나보다 늙었거나 어린 상대를 향한 혐오와 무시를 너무나 쉽게 일삼고 있는 건 아닐까? 최근 [어린이 탐구 생활]이란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 책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은 더욱 확고해졌다. [나이 묻는 사회] 역시 이런 의문과 불편함에 대해 더 생각해볼 수 있는 발판이 되어줄 것 같아 흥미를 품고 읽게 되었다. 

우리 사회에서 나이가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문제인가 하면 첫 만남에 상대방에게 가장 쉽게 던질 수 있는 질문 중 하나이기도 하고, 그 대답에 따라 서로의 행동양식이 자연스럽게 달라지기도 한다. 심지어 쌍둥이에게까지 손위아래를 묻는 일(301)이 예사로운 사회아닌가. 개인적으로도 고백하자면 누군가 쌍둥이라고 하면 누가 손위인지 물어보고 싶은 욕구를 참을 수 없을 것 같다. 나이, 그게 대체 왜 궁금할까?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성장하며 학습해 온 '위치 찾기'를 하고 싶은 자연스러운 본능이 아닐까. 하지만 세상은 달라지고 있고 나이로 대접받으려 하면 그저 도태된 꼰대일 뿐인 것이다. 오히려 나이 묻기와 위치 찾기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나이값을 조금이나마 하게 된다. 무엇을 물어도 좋을지 어떤 것을 궁금해하면 좋을지 제대로 판단할 수 없다면 침묵하는 것이 더 낫기 때문에, 요즘은 타인에게 아무것도 궁금해하지 않으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한다. 

" 연령주의 사회에서는 나이 듦과 늙음이 같은 말로 간주되는데, 나이 듦과 늙음의 관련성은 성별에 따라 다르게 작동한다. 나이 듦이 곧 늙음을 의미하는 경우는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 많이 해당된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도 '진정한 여성은 어리고 예쁜 여성이다'라는 왜곡된 통념이 반복된다. 여성 노인은 탈성화된 존재이자 할머니로만 간주된다. 250"
나이가 주는 멍에는 사소하면서도 광범위하다. 마흔이 넘으면 긴 생머리가 안 어울린다, 양갈래 머리는 몇 살까지 해도 되는가 같은 질문들에 인터넷에서 의견이 분분했던 것을 보았다. 겉으로는 나이랑 상관없이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도 된다고 했지만, 어떤 머리 모양을 하는지도 제 나이에 걸맞는 것이 있다며 저마다 의견을 내는 것을 보며 내심 그런가? 싶어 하는 자신이 있었다. 언젠가 친구를 만나 늙었더니 아무도 나를 쳐다보지 않아서 외출할 때 전과 다르다는 대화를 했던 적이 있다. 생각해보니 어릴 적에는 화장하고 옷을 차려입지 않으면 가까운 집 밖도 잘 나가지 않았는데 나이들고는 그냥 막 나가게 되었다. [나이 묻는 사회]를 읽다 나이 든 여성은 탈성화된 존재로 간주된다는 문장에서 스스로가 느끼고 서 있는 지점이 바로 이것이었구나 깨달았다. 

책은 '나이'라는 핵심어로 문제를 바라보고 있지만 혐오가 만연한 사회에서 나이는 혐오를 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로 쓰이고 있었다. 나와 다른이를 구분하여 혐오할 수 있는 이유를 만들고 거기에 '재미'라는 껍데기를 붙여 멸칭을 유행어처럼 소비하는 사회에 갇혀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특히 스스로에게 붙은 멸칭에서 벗어날 수 없는데, 타인을 향한 혐오는 0린이, 급식, 틀딱 같은 표현을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거부할 수 있다. 하지만 나이와 관련된 다양한 멸칭들 중에서 내 연령대와 성별에 대한 차별과 혐오적 표현에서는 벗어나기 어려워졌다. 스스로가 거부하려고 해도 이미 그 집단에 속해있고, 집단을 향해 타인이 씌우는 멍에에서 벗어나려는 개인의 시도는 오히려 더 추한 발악으로 치부되어 버린다. 이 흐름은 영포티가 초기 좋은 의미로 사용(62)되었다가 어느 순간 나이에 맞지 않는 겉모습과 태도를 가진 사람을 비하하는 의미로 변질된 것과 비슷하다. 

이 나이에 대한 공격은 주로 어리고 늙은 사람들, 생산성과 자기관리(115)를 주요 가치로 두고 이에 취약한 연령층에 대한 무시와 혐오를 담고 있다. 하지만 가장 생산성 높은 젊은 세대마저도 쉬었음 청년층,'노력이 부족한 세대(145)', MZ세대라는 밈으로 혐오적 표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이는 혐오가 어느 세대가 일방적으로 드러내는 특수성이 아니라,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처럼 전 세대를 아울러 나타나고 있음을 뜻한다. 인간 존엄성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고, 경쟁이 심화된 사회에서 서로를 한정된 파이를 나누어 가져야 하는 경쟁 상대로 여기는 탓에 심화된 갈등과 충돌이 혐오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 

[나이 묻는 사회]를 통해 우리 사회에 고착된 연령주의가 존중과 우대의 형식으로 기능하던 과거에서 비하, 혐오, 경멸로 전락해버린 연령차별주의의 현실을 파악할 수 있었다. 나아가 나이에 대한 굳은 생각이 아직도 자리잡기 어려워보이는 '만 나이' 사용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거부감을 느끼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한두살의 나이에도 서열을 구분짓고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연령주의가 완화된다면,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보편화된다면 이런 문제들도 유연히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책을 읽는 동안 나이에 연연하지 않고 상대방을 존중하고 나와 구분짓지 않는 연습이 필요함을 의식하면서, 이런 변화는 '어른'들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주는 틀에서 벗어나자는 주장을 하면서 나이를 기준으로 삼아 변화를 시작하자고 하니 모양이 재밌어졌지만, 차별하기 위해서 나이를 이용하지 않고 배려하고 존중하기 위해서 나이를 파악하는 사회가 되기 위한 받침으로 사용되는 '나이'라면 괜찮지 않을까. 한동안 나이/늙어감을 의식하면서도 잊고 지내는 것에 익숙해졌는데 [나이 묻는 사회]를 통해 왜 이런 생각을 했는지, 자신의 태도에는 어떤 영향을 줬는지, 타인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여러 방면으로 함께 생각해 볼 수 있어 의미있었다. 

*토머스 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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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업(生業) - 그 징하고도 찡한 노동의 표정들
은유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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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이란 뭘까, 아니 그 전에 나에게 노동이란 뭘까 먼저 생각해야 한다. 그나마 어린 시절에는 소원이 뭐냐하면 통일과 세계평화를 주입받은 대로 출력해냈지만, 로또라는 일확천금의 꿈이 세상에 퍼진 이후로는 로또 당첨을 통한 노동해방을 떠올렸다. 나만 이렇게 세속적인가, 하면 요즘은 덕담도 적게 일하고 많이 벌라는 말로 하듯이 노동, 일한다, '생업'이란 것이 전과는 확실히 다른 세태이긴 하다. 이 변화가 굳이 요즘만을 뜻하냐 하면, 우리 아버지 세대조차 자의는 아니었겠지만 '평생직장'이란 말을 실현하기엔 너무 험난한 시대를 살아오지 않았던가. 어찌되었든 생에서 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갈수록 적어지고 있다. 사람들의 인식에서도 좀 덜 벌더라도 원하는 삶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선택이 유연히 받아들여 지기도 하고, AI와 로봇 기술의 발전과 함께 노동하지 않는 삶이 보편화 될 것을 기대하게도 되었다. 실제로 AI를 통해 벌어들인 수익을 국민에게 환원해야 한다는 취지로 '국민배당금제'가 논의되기도 했다. 노동의 현장에서 인력이 배제되어 가는 이 변화의 흐름이 과연 축복이 될까. 일한다는 것에서 돈벌이 외에 또 어떤 의미를 찾아낼 수 있을지 '생업'의 눈을 빌려보고 싶었다. 

일에 대한 원망과 배척을 쉽게 말하지만 속으로는 신성성을 담고 있었나보다. '생업'을 읽으며 만나게 되는 직업들을 통해 나도 모르게 마음을 열고 또 어떨 땐 닫으며 평가를 하고 있었다. 모든 생각을 전부 다 동의하게 된 것은 아니더라도 읽다보니 '잘 알지도 못하면서' 선입견이 있었던 경우가 많았다. 특히 문신을 업으로 하는 타투이스트 황도(147)의 인터뷰에서는 순간적으로 가장 먼저 문신은 의료인이 하는 게 아니면 불법이 아니었던가 떠올렸다. 지난 25년 9월 문신사법이 통과(154)되었다는 것을 보고는 평소에 관심있게 알아보지 않았던 것을 타인을 판단하는데 끌어다쓰려고 했구나 싶었다. 드러내놓고 타인을 돕는 일, 힘든 일인데도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 일, 보통 의지로는 계속 해나가기 어려운 일로 보이는 업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는 대책없이 열린 마음으로 읽고는 젊어보이는 사람들, 술과 문신이 잦은 빈도로 언급되는 내용들은 일 외의 다른 잣대로 꼬아보았다. 요양보호사 일을 하는 강석경(177)의 인터뷰에서 '사람은 노력하면 변한다며 도저히 안 바뀔 듯한 어르신도 달라진다던(185)' 내용이 나오는데 안의 굳은 마음도 이런 깨달음을 통해 달라지겠지, 달라져야지 싶었다.  

'생업'에서 노동의 현장을 만나게 될 것이란 기대는 했지만 거기에 자연스럽게 '먹고 사는 일'이 겹쳐지게 될 것은 예상치 못했다. 직업 자체가 사람들을 먹이는 농부, 급식 노동자, 요리사, 배달 노동자 같이 먹는 일에 관련된 것들도 있었지만 다른 일을 하는 인터뷰이들의 이야기 안에도 요즘은 뭘 먹고, 어떤 음식을 좋아하고, 무슨 음식이 자신을 살렸는지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었다. 김치김밥, 치킨, 황도, 요아정, 돼지갈비, 김치찌개, 소주, 막걸리 같은 음식들이 각자의 삶과 얽혀 자연스럽게 먹고 사는 일 이야기가 되고 사람이 사는 일 이야기로 번진다. 처음엔 '먹고 사는 일'이 생과 업에서 각각 겹쳐지는 것이 재밌었는데, 읽다보니 가장 편하고 가까운 방식으로 각자의 삶이 가진 무거움은 줄이고 거리는 좁혀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구나 싶어 기민하고 탁월하다 여겨졌다. 말을 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질문하는 사람이 차린 식탁 위에서 한솥밥 먹는 것처럼 마음 열고 정붙이게 되는 과정이 은근하다. 신간들을 보면 '은유 추천'이라는 문구가 붙어 있는 책들이 종종 있었는데 이래서 그렇구나 싶었다.  

" 강석경은 아들에게 고맙다. 엄마로 살았던 20년 세월은 동준이가 준 가장 큰 선물이었다고. 그렇게 가면서 던져놓고 간 이별의 상처가 크기도 했지만 일반인들이 결코 다가가지 못하는 삶의 또 다른 영역을 사랑으로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동준이가 만들어주었다. 고통 없이는 이해하기 힘든 삶의 진리. 그건 그가 요양 보호사로 일하면서 살아가는 든든한 밑천이 되어주었다. 193"
가장 인상깊게 읽은 것은 요양보호사 강석경(177)의 인터뷰였다. 네이버에서 기부 캠페인을 하는데 기부를 할 수 있는 콩이 모이면 항상 '노인' 기부처를 찾아 기부를 한다. 환경, 동물, 아이들 같은 분류로 나눠져 있는 기부처들 중에 사람의 마음이 닿기 가장 어려운 것이 내 딴에는 노인이었다. 모두가 도움이 필요하다면 누구의 곁에서 도움을 주는 것이 가장 어려울까 생각해보니 노인이란 생각이 들어 꼽았는데, 책에서도 노인을 돌보는 일 중 대소변 처리는 가장 쉬운 일 중 하나라며 잘 대해 드려도 느닷없이 니까짓 것들이, 하고 고약한 말들, 어이없는 무례(181)를 분출하는 사례들이 나온다. 그렇지만 가장 징하면서도 찡한 마음을 갖게 한 것도 그의 이야기였다. 단순히 일이 힘들겠다고 여겨서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연민과 이해, 삶의 굴곡이 품은 진리를 포용한 사람들이 서로 웃으며 하이파이브를 나누는 순간이 따뜻하고 빛나게 보였다. 

배우, 싱어송라이터, 유튜버처럼 잘 알려진 사람들도 '생업'안에서 만날 수 있다. 유명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알게 모르게 더 관심이 가고 익숙하게 여겨질 법도 한데 반가운 마음도 잠시, 신기하게도 지금도 시청과 광화문 같은 거리에 나가면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평범한 이웃의 얼굴을 한 사람들에게 더 집중하게 되는 책이었다. 어떤 직업을 가진, 정체성과 사연을 가진 사람이라도 '생업' 안에서는 다양한 직업 중 하나를 가진 인터뷰이로 자연스럽게 묶인다. '생업'의 의미가 먹고 사는 일에서 삶으로, 삶에서 다른 사람 마저도 먹이고 살리는 생의 업으로 확장되는 이야기를 읽다보면 유명하고 힘들고 돈을 많이 벌고 같은 잣대가 사라지고 그저 존중과 배움만 남게 된다. 그저 돈과 노동으로만 '생업'을 바라보았던 처음의 독자도 함께 사라지고 함께 살아가는 이웃이자 동지가 된다. 어딘가에서 열심히 자신의 일을 하고 있을 것만 같은 사람들 사이에서 삶을 긍정하는 법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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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건대 소설, 잇다 7
강경애.한유주 지음 / 작가정신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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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강경애와 한유주의 조합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가장 많이 떠올리며 '바라건대'를 읽었다. 사실 이름만 들었을 때에는 전에 읽어보았던가 기억도 잘 나지 않았던 '소금'과 '원고료 이백 원', '지하촌' 같은 단편들이 이 내용이 어떻게 기억에서 떠오르지 않았었지 싶게 어느 샌가 생생히 되살아났다. 그 전에도 그랬지만 강경애 작품 속에서 그저 살아나가는 것이 괴로움과 얽혀 고통과 매한가지나 다름없는 군상은 자잘한 충격과 짙은 불쾌감을 주었다. 보고있기에 괴로운 가난, 빈대와 파리가 들끓고 헐벗은 아이들이 고름과 오줌을 입에 넣는 집, 좌절과 압박을 못이겨 분풀이로 일삼는 폭력 그리고 태어나느니 죽는 것이 낫다며 너무나 쉬운 죽음들이 도처에 널린 삶은 세상에 대한 연민을 얼마나 더 쌓아야 거부감을 밀어내고 박애의 시선으로 공감할 수 있을 것인지 돌아보게 한다. 

몰래 애를 낳고도 미역국을 좀 먹어봤으면 하고 그도 아니면 끓인 물이라도 마셔봤으면 하는 본능적인 욕구, 생 파뿌리를 캐다 씹어내는 삶의 끈질김. 모든 것을 탁 놓고 죽고 싶을 생각이 들다가도 밥을 먹어야겠다, 밥을 먹고 나니 전과는 또 다른 기운이 돎을 깨닫는 모습은 욕구에 이끌려 살아가는 사람이자 그 욕구로 인해 살아내는 삶의 양면성을 보여준다. 남편도 두 아이도 잃고 젖을 먹여돌보던 남의 자식이 그리워 울면서 죽지 못하고 살아가는 나약함이면서 동시에 죽지 않고 살아가는 강인함이 된다. 이 극복은 모든 것을 놓으려 할 때, 잃었다고 여겼을 때 매번 제 곤궁함을 알면서도 밥을 챙겨주고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며 일자리를 챙겨 보살펴주는 이웃(용애 어머니)이 함께 돕는다. 

이웃의 극복을 위해 도와나서는 박애를 두고 강경애는 '원고료 이백 원'에서 좀 더 분명한 어조로 강조한다. 다만 부인이 벌어 온 원고료 이백원을 두고 뺨을 때리고 한밤에 부인을 쫓아내던 남편과 이 사람이 아니고서야 자신을 받아줄 데가 없을 것만 같아 마음을 고쳐먹고 잘못을 비는 부인의 모습, 물질의 쓰임을 가장 필요한 사람을 돕는데 쓰겠다는 그 숭고한 정신에 가장 가까운 이에 대한 배려와 사랑이 없다는 것이 현재와의 단차가 느껴지는 점이 있다. 지금보니 그 불같은 화는 스스로의 무능력함에 대한 분풀이에서 비롯된 것이었고, 버려질까봐 두려워 떨면서 돈 벌더니 남편을 우습게 안다며 손을 들었던 남편을 이해해주던 모습에선 전에 몰랐던 아쉬움도 있지만 과거의 사정을 현재의 기준으로 바라보았을 때 느껴지는 '피로함을 그에게 토할 것이 아니었다.(27)'* 

장애를 가진 탓에 동네 아이들에게 해코지를 당하고 동냥을 하러 다닐 밖에 달리 제 구실을 못하면서도 누군가와 가정을 꾸려보고자 노력하는 칠성 역시 수없이 꺾였어도 미래를 그리는 희망을 품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칠성의 희망은 때로 열망이 숨겨지지 않을만큼 강렬해서 보고있기 애처로와 불쌍한 마음과 앞날이 캄캄한(154) 생각이 들어 아무말 하지 않고 그저 두고 보는 것으로 호위(224)를 대신한다. 아무것도 묻지 않고 봉염네를 집에 들여주었던 호위(64)처럼. 강경애의 글이 삶에 지나치게 밀착되어 적나라하고 수치스러운 밑바닥을 몸에 들러붙은 것처럼 고스란히 드러내놓았다면 한유주의 글은 삶에 거리를 두고 관찰하듯 바라봄으로써 숨김없이 보여주고 있다. 누군가의 안위를 살피게 되는 마음, 마치 잠든 듯한 저 편의 여자를 지켜보고, 인천을 가야 하는데 수원행을 탄 아이를 신경쓰고, 가방을 든 채 휘청이는 여자에게 다가가 괜찮은지 묻는다. 

강경애의 인물들의 삶과 한유주의 인물들의 시선에는 시공간이 불러오는 단차가 어지러울 정도로 크게 가르고 있지만 사람과 삶에 대한 연민과 긍휼이 가진 온도가 비슷하게 느껴졌다. 우리의 삶이 차고 각박한 냉소 위에 올려졌을때 어딘가에 있을, 있다고 믿으며 버티게 해줄 박애의 온도를 가리킬 이정표가 '바라건대'안에 담겨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강경애와 한유주의 세계가 만나게 된 것이 아닐까 답을 내리며 책을 덮었다.


* " 그 순간 봉염의 머리에는 선생님이 하던 말이 번개같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의 가슴이 터질 듯이 끓어오르는 불평을 어머니에게 토할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러나 아무것도 모르고 딸만 그르게 생각하고 덤비는 그의 어머니가 너무도 가엾었다. 그의 어머니는 하도 어이가 없어서 멍하니 봉염이를 바라보았다. 동시에 '없으면 딴 남은 그만 두고라도 제 속으로 낳은 자식들한테까지라도 저런 모욕을 받누나'하는 노여운 생각이 들며 이때까지 가난에 들볶이던 불평이 눈등이 뜨겁도록 치밀어 올라온다.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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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펄로 키드 미래그림책 200
라스칼 지음, 루이 조스 그림, 밀루 옮김 / 미래아이(미래M&B,미래엠앤비)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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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은 앞만 보며 달려갔고, 지나간 것은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어요. 누구도 무엇도, 그 힘을 막을 수 없을 것 같았지요. " 

'버펄로 키드'를 앞에두고 이미 세상에 없는 새 카우아이오오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하와이 카우아이 섬의 토착새인 카우아이오오는 오오과 종 중 가장 마지막까지 생존했던 작은 새로 1987년 마지막으로 발견된 수컷 오오의 짝을 찾는 울음소리 녹음을 마지막으로 다시는 발견되지 않았다. 2000년 카우아이오오는 공식적으로 멸종 선포 된다. 이 마지막 오오가 남긴 울음소리 녹음은 '다시는 오지 않을 암컷을 부르는 소리' 코멘트와 함께 인간으로 인한 환경 파괴와 생태계 위기를 참담한 마음으로 되새기게 한다. 한때 박제사였던, 그리고 '버펄로 키드'로 남은 잭 본햄의 이야기는 남획되어 멸종 위기에 처했던 북아메리카의 커다란 들소 버펄로를 두고 몸길이 약 20센치 남짓의 카우아이오오와의 닮은 점을 찾게 만들었다. 

버펄로가 멸종되기 전에 잡아 박제를 만들어 보관하려고 길을 떠나온 박제사가 버펄로와 함께 계절이 세 번이나 바뀌는 동안의 긴 여정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가 목격한 수많은 뼈의 무덤과 가죽이 벗겨진 채 버려진 버펄로의 몸을 통해 박제사는 새로운 박제 대상에 대한 흥분과 기대의 마음 대신 생명에 대한 의미와 소명을 품게 되었다. 그리고 그가 늙고 커다란 야생 버펄로와 마주하게 된 순간 그 눈에서 확신을 얻게 된다. 동물의 그 눈, 그 안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떠올리다보니 아프리카에 갔을 때 숨을 몰아쉬며 마지막을 맞이하던 얼룩말을 본 기억이 났다. 볼 때마다 시선을 사로잡던 몸을 가르는 독특한 털 무늬보다 더 기억에 강하게 남은 건, 파리가 날고 축축한 눈물이 고여 핏발이 선 얼룩말의 눈이었다. 한 생명과 강렬한 조우를 한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자연이 그 앞에 선 인간을 어떻게 압도하는지 경험하는 강렬한 순간이었다. 그 순간을 지나보내지 않고 그 안에 온전히 자신의 삶을 던지고서야 박제사는 버펄로 키드가 되었으리라. 

'버펄로 키드'는 마지막 버펄로가 울음소리를 남기기 전에 그 심각함과 중요성을 깨달은 사람들의 '특별한 순간'을 담아낸 아름답고 강렬한 생명력을 품은 그림책이다. 우리가 세상과 어떻게 균형을 맞추며 살아가야 할지 아이는 물론 어른 독자에게도 짧지만 깊은 울림을 전해준다. '버펄로 키드'를 읽는 동안 '나무를 심은 사람'*이라는 그림책이 생각났는데 함께 읽어보고 사라진, 사라지는 것들을 다시 되살리기 위해서 노력하는 삶의 숭고함과 가치를 깨닫고 자연과 생명의 끈질긴 회복력이 주는 놀라움과 감동을 더불어 느껴본다면 좋겠다. 

" 마지막 나무가 쓰러지고 
마지막 강이 오염되고 
마지막 물고기가 잡히면 
사람들은 그제야 알게 될 거야, 
돈은 먹을 수 없다는 것을. 
- 시팅 불" 

*나무를 심은 사람 - 장 지오노 글 / 프레데릭 백 그림


>>> 이 서평은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게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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