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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메모리엄 - 2024 올해의 영국 도서상 데뷔 소설 부문 수상
앨리스 윈 지음, 이나경 옮김 / 다산책방 / 2026년 5월
평점 :
처음 [인 메모리엄]을 두고, '잔혹한 참호 속에서 "피어나는 사랑"의 서사시' 중 사랑에만 관심을 가졌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이 주고받는 대화가 너무 간질간질했다. "전쟁이 아니었어도 네가 나에게 키스했을까?" 둘 사이에 어떤 서사가 있길래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어도 키스를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품고도 전쟁이 났기 때문에 키스를 했을 것이란 자학적인 질문을 했을까. 하지만 1914년 영국의 한 기숙학교를 배경으로 시작되는 이 이야기의 첫 장을 펼치며 마주하게 된 학교 교지 '더 프레슈티언'의 부고와 추모란을 시작으로 시선은 사랑에서 '잔혹한 참호'로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있는 세상으로 조금씩 옮겨졌다. 적게는 16살에서 대부분 스무살 안팎인 청년들의 이름과 나이가 소속연대나 전투지와 함께 적혀있었다. 젊다기보다는 어린 나이와 어울리지 않았다.
전쟁에 참전하지 않는 청년을 향한 압박이 얼마나 컸던지 군복을 입지 않고 길을 나가면 낯선 사람이 하얀 깃털*을 건네며 "왜 당신들은 전선에 있지 않죠?(40)"하며 압박을 주고 조롱을 하고 그를 지켜보는 사람들 역시 경멸의 시선을 보내는 것으로 동조한다. 가족들마저 아버지의 직장, 여동생의 결혼 등 사회적 평판을 위해 열아홉도 채 되지 않은 아들에게 참전을 강요한다. 부고를 알리는 신문에는 "부모님과 친구들로부터 전달받은 내용을 기쁜 마음으로 전달합니다.(471)"는 문구가 덧붙여지기도 했다. 죽거나 운이 좋으면 어딘가 부상을 당해 돌아오게 될지도 모르는 전쟁터에 생면부지의 타인을, 아끼는 가족을 몰아내려는 사회의 분위기가 이해되지 않아 이상하고 무서웠다. 전쟁이라는 극단적 상황에서 두려움과 불안을 피하기 위해 집단 내에 비이성적인 광기를 이용해 혼란을 막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세상이 전쟁의 그늘 아래에서 시달리는 동안 사랑을 하는 두 소년의 마음 속에도 늘 폭풍이 있었다. 엘우드와 곤트가 어린시절 기숙학교에 입학한 이후로 서로 가까워지는 시간들을 보여주며 기숙학교의 묘한 분위기를 함께 드러낸다. 기숙학교 내에서 암묵적으로 이루어지는 동성과의 관계를 두고, 서로 짐작하면서도 이를 드러내지 않고 재학중에 잠시 빠질 수 있는 한때의 엇나감으로 치부한다. 졸업하고 나면 이 어린시절의 치기는 묻어두고 정상적으로 여자와 관계를 맺고 결혼을 하는 어른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보편의 길이다. 곤트는 '남들처럼' 이 보편의 길을 가고 싶지만 스스로의 성향을 깨닫고 혼란스러워 한다. 자신에게만큼은 쉽게 닿지 않으려는 엘우드를 의식하는 순간순간, 엘우드를 향해 느끼는 감정과 욕구가 한때의 엇나감이나 어린시절의 치기로 치부될 수 없음을 느낀다.
엘우드와 곤트의 성향 때문인지 그들과 연결된 인물들 다수가 동성애적인 성향을 띄고 있어 보편인지 과장인지 읽으면서 가늠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 기숙학교의 분위기나 심리를 다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지금보다 더 동성애에 경직되어 있던 시대였음이 곤트가 자신의 성향에 대해 더 압박을 느끼고 엘우드에 대한 마음을 숨기려는 요인으로 다가왔다. 엘우드 역시 곤트를 의식하고 있었는데 동성과의 관계에 불편함을 보이는 곤트를 살피며 마음을 주지 않는 가벼운 관계들을 만들고, 곤트는 엘우드가 가볍게 맺는 관계들에 의미를 두지 않고 금새 저버리는 것을 보고 한순간 가까워졌다 그를 잃어버리게 될 것을 두려워 다가가길 멈춘다.
이들의 관계는 어느 한 순간 금방이라도 선을 넘을 듯 보이다가도 아슬아슬하게 멈춰선 긴장감을 유지하다 입대라는 큰 변화와 함께 변곡점을 맞이하게 된다. 옥스퍼드에 가서 고전학을 공부(38)하고 싶었던 소년은 겁쟁이로 남지 않기 위해, 졸업을 하면 엘우드도 곤트의 여동생 모드와 결혼을 하고 다른 이들은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가지만 자신을 그럴 수 없을 것이란 괴로움에, 독일인의 뿌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로 가해지는 압박에,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에 대한 파괴적인 충동으로 입대 신청을 하게 된다. 총탄이 오가는 전선에서 너무나 쉽게 사람이 죽고 다치는 것을 보고, 실수로 같은 편에게 총을 쏘게 된 곤트의 신경이 극에 몰렸음을 알게 된 엘우드도 그의 곁에 있어주기 위해 입대를 한다.
" 곤트에게 뭔가 무서운 일이 일어나고 있다면, 엘우드도 함께 겪고 싶었다. 130"
[인 메모리엄]은 전쟁의 참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모래와 내장이 섞여들어가 썩어 터져나가는 모래주머니, 얼굴에 튀는 누군가의 피와 살점, 죽기 전에 경련하는 뇌의 움직임, 손실된 팔과 다리, 턱 같은 신체의 일부, 제대로 된 철모조차 없이 전선으로 밀려나는 병사들의 죽음. 내 옆의 누군가가 죽고, 자신도 죽을 것이라는 불안과 공포 앞에서 곤트와 엘우드는 멈췄던 발을 서로에게 내딛는다. "곤트는 겁쟁이였으니, 마음을 다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여겼을 것이다. 오직 자신이 죽으리라는 것을 알기에, 곤트는 그처럼 무모해질 수 있었다. 233" 전쟁이 아니었다면 서로에게 키스를 하지 않았을 두 사람이 숨기고 속이던 마음을 드러낼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의 큰 사건이 계기가 되어야 할만큼의 결심이 필요한 일이었을지 모른다.
처음 읽었을 때는 정신없이 흐름을 따라가느라 감정선을 다 챙기기 못해 겉돌고 숨기기만 하는 두 사람의 모습이 아쉬웠는데, 감상을 정리하며 다시 부분 부분을 살펴보며 읽으니 처음에 다 짐작하지 못했던 마음이 조금 더 세밀하게 보이는 듯 해 느낌이 달랐다. 600쪽에 가까운 분량의 책을 지루함 없이 두번쯤 반복하게 되는 몰입, 다시 볼수록 새롭게 눈에 걸리는 미묘한 분위기와 긴장감이 매력을 더하는 책이었다. 너무나 의식되어서 오히려 나다울 수 없었던 누군가가 있었다면,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에 가장 깊숙한 곳에 두고 혼자서만 아끼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다면, 손에 잡힐 듯한 마음이 닿으면 망가질까 바라만 봐야했던 때가 있었다면 [인 메모리엄]의 전쟁 속에서 일어나던 폭풍을 애틋한 마음으로 감상하게 될 것이다.
*흰깃털단(the Order of the White Feather)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의 여성 단체가 남성의 자원입대를 촉구하기 위해 겁쟁이의 상징인 흰 깃털을 주며 조롱·수치심을 유발한 캠페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