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건대 소설, 잇다 7
강경애.한유주 지음 / 작가정신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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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강경애와 한유주의 조합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가장 많이 떠올리며 '바라건대'를 읽었다. 사실 이름만 들었을 때에는 전에 읽어보았던가 기억도 잘 나지 않았던 '소금'과 '원고료 이백 원', '지하촌' 같은 단편들이 이 내용이 어떻게 기억에서 떠오르지 않았었지 싶게 어느 샌가 생생히 되살아났다. 그 전에도 그랬지만 강경애 작품 속에서 그저 살아나가는 것이 괴로움과 얽혀 고통과 매한가지나 다름없는 군상은 자잘한 충격과 짙은 불쾌감을 주었다. 보고있기에 괴로운 가난, 빈대와 파리가 들끓고 헐벗은 아이들이 고름과 오줌을 입에 넣는 집, 좌절과 압박을 못이겨 분풀이로 일삼는 폭력 그리고 태어나느니 죽는 것이 낫다며 너무나 쉬운 죽음들이 도처에 널린 삶은 세상에 대한 연민을 얼마나 더 쌓아야 거부감을 밀어내고 박애의 시선으로 공감할 수 있을 것인지 돌아보게 한다. 

몰래 애를 낳고도 미역국을 좀 먹어봤으면 하고 그도 아니면 끓인 물이라도 마셔봤으면 하는 본능적인 욕구, 생 파뿌리를 캐다 씹어내는 삶의 끈질김. 모든 것을 탁 놓고 죽고 싶을 생각이 들다가도 밥을 먹어야겠다, 밥을 먹고 나니 전과는 또 다른 기운이 돎을 깨닫는 모습은 욕구에 이끌려 살아가는 사람이자 그 욕구로 인해 살아내는 삶의 양면성을 보여준다. 남편도 두 아이도 잃고 젖을 먹여돌보던 남의 자식이 그리워 울면서 죽지 못하고 살아가는 나약함이면서 동시에 죽지 않고 살아가는 강인함이 된다. 이 극복은 모든 것을 놓으려 할 때, 잃었다고 여겼을 때 매번 제 곤궁함을 알면서도 밥을 챙겨주고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며 일자리를 챙겨 보살펴주는 이웃(용애 어머니)이 함께 돕는다. 

이웃의 극복을 위해 도와나서는 박애를 두고 강경애는 '원고료 이백 원'에서 좀 더 분명한 어조로 강조한다. 다만 부인이 벌어 온 원고료 이백원을 두고 뺨을 때리고 한밤에 부인을 쫓아내던 남편과 이 사람이 아니고서야 자신을 받아줄 데가 없을 것만 같아 마음을 고쳐먹고 잘못을 비는 부인의 모습, 물질의 쓰임을 가장 필요한 사람을 돕는데 쓰겠다는 그 숭고한 정신에 가장 가까운 이에 대한 배려와 사랑이 없다는 것이 현재와의 단차가 느껴지는 점이 있다. 지금보니 그 불같은 화는 스스로의 무능력함에 대한 분풀이에서 비롯된 것이었고, 버려질까봐 두려워 떨면서 돈 벌더니 남편을 우습게 안다며 손을 들었던 남편을 이해해주던 모습에선 전에 몰랐던 아쉬움도 있지만 과거의 사정을 현재의 기준으로 바라보았을 때 느껴지는 '피로함을 그에게 토할 것이 아니었다.(27)'* 

장애를 가진 탓에 동네 아이들에게 해코지를 당하고 동냥을 하러 다닐 밖에 달리 제 구실을 못하면서도 누군가와 가정을 꾸려보고자 노력하는 칠성 역시 수없이 꺾였어도 미래를 그리는 희망을 품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칠성의 희망은 때로 열망이 숨겨지지 않을만큼 강렬해서 보고있기 애처로와 불쌍한 마음과 앞날이 캄캄한(154) 생각이 들어 아무말 하지 않고 그저 두고 보는 것으로 호위(224)를 대신한다. 아무것도 묻지 않고 봉염네를 집에 들여주었던 호위(64)처럼. 강경애의 글이 삶에 지나치게 밀착되어 적나라하고 수치스러운 밑바닥을 몸에 들러붙은 것처럼 고스란히 드러내놓았다면 한유주의 글은 삶에 거리를 두고 관찰하듯 바라봄으로써 숨김없이 보여주고 있다. 누군가의 안위를 살피게 되는 마음, 마치 잠든 듯한 저 편의 여자를 지켜보고, 인천을 가야 하는데 수원행을 탄 아이를 신경쓰고, 가방을 든 채 휘청이는 여자에게 다가가 괜찮은지 묻는다. 

강경애의 인물들의 삶과 한유주의 인물들의 시선에는 시공간이 불러오는 단차가 어지러울 정도로 크게 가르고 있지만 사람과 삶에 대한 연민과 긍휼이 가진 온도가 비슷하게 느껴졌다. 우리의 삶이 차고 각박한 냉소 위에 올려졌을때 어딘가에 있을, 있다고 믿으며 버티게 해줄 박애의 온도를 가리킬 이정표가 '바라건대'안에 담겨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강경애와 한유주의 세계가 만나게 된 것이 아닐까 답을 내리며 책을 덮었다.


* " 그 순간 봉염의 머리에는 선생님이 하던 말이 번개같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의 가슴이 터질 듯이 끓어오르는 불평을 어머니에게 토할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러나 아무것도 모르고 딸만 그르게 생각하고 덤비는 그의 어머니가 너무도 가엾었다. 그의 어머니는 하도 어이가 없어서 멍하니 봉염이를 바라보았다. 동시에 '없으면 딴 남은 그만 두고라도 제 속으로 낳은 자식들한테까지라도 저런 모욕을 받누나'하는 노여운 생각이 들며 이때까지 가난에 들볶이던 불평이 눈등이 뜨겁도록 치밀어 올라온다.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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