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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묻는 사회 - 한국형 연령차별주의와 멸칭 문화
정회옥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5월
평점 :
" 기존의 나이 멸칭이 지겨워지면 새로운 나이 멸칭을 만들어 특정 세대를 조롱하고 혐오하는 행태, 계속해서 낙인찍을 나이대를 찾는 행태, 이제 한국 사회의 거의 모든 나이대는 다 제각각의 멸칭을 갖게 되었다. 멸칭이 없는 나이대가 없을 지경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나이 멸칭으로 조롱하는 사회, 지독한 연령주의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다. 65"
한동안 아무데나 다 붙여 쓰던 '00린이(79)'라는 표현이 있다. 처음엔 그 표현이 어떤 일을 시작한 초보나 아직 숙달되지 않아 부족함이 있는 사람을 뜻하는 새롭고 재밌는 표현이라 생각했는데, 자꾸 여기저기서 마주치다보니 불편하고 거부감이 들기 시작했다. 실생활에서는 어린이의 미숙함을 이유로 노키즈존이니하는 혐오와 배제를 앞세우면서, 본인의 서툼과 부족함은 어린이라는 이름을 가져다붙여가면서 이해와 포용을 바라고 있는 것이 보기 좋지 않았다. 공공장소에서 아이가 울거나 큰소리를 내는 걸 두고 갑론을박을 펼치면서 스스로를 두고 00린이라며 '응애' 농담처럼 우는 흉내를 내는 것이 폭력적으로 보였다. 요즘 아이들은 학교에서 운동회를 하려고 하면 먼저 인근 주민들에게 양해를 구하는 글과 그림부터 준비해둔다. 학군 좋은 거주지는 찾지만 그 학군에서 당연히 일어나야 하는 교육단계는 민원을 넣는다니, 대체 어느 쪽이 더 상대방을 배려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나이를 앞세워 더 큰 목소리를 낼 수 있을 때 나보다 늙었거나 어린 상대를 향한 혐오와 무시를 너무나 쉽게 일삼고 있는 건 아닐까? 최근 [어린이 탐구 생활]이란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 책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은 더욱 확고해졌다. [나이 묻는 사회] 역시 이런 의문과 불편함에 대해 더 생각해볼 수 있는 발판이 되어줄 것 같아 흥미를 품고 읽게 되었다.
우리 사회에서 나이가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문제인가 하면 첫 만남에 상대방에게 가장 쉽게 던질 수 있는 질문 중 하나이기도 하고, 그 대답에 따라 서로의 행동양식이 자연스럽게 달라지기도 한다. 심지어 쌍둥이에게까지 손위아래를 묻는 일(301)이 예사로운 사회아닌가. 개인적으로도 고백하자면 누군가 쌍둥이라고 하면 누가 손위인지 물어보고 싶은 욕구를 참을 수 없을 것 같다. 나이, 그게 대체 왜 궁금할까?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성장하며 학습해 온 '위치 찾기'를 하고 싶은 자연스러운 본능이 아닐까. 하지만 세상은 달라지고 있고 나이로 대접받으려 하면 그저 도태된 꼰대일 뿐인 것이다. 오히려 나이 묻기와 위치 찾기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나이값을 조금이나마 하게 된다. 무엇을 물어도 좋을지 어떤 것을 궁금해하면 좋을지 제대로 판단할 수 없다면 침묵하는 것이 더 낫기 때문에, 요즘은 타인에게 아무것도 궁금해하지 않으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한다.
" 연령주의 사회에서는 나이 듦과 늙음이 같은 말로 간주되는데, 나이 듦과 늙음의 관련성은 성별에 따라 다르게 작동한다. 나이 듦이 곧 늙음을 의미하는 경우는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 많이 해당된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도 '진정한 여성은 어리고 예쁜 여성이다'라는 왜곡된 통념이 반복된다. 여성 노인은 탈성화된 존재이자 할머니로만 간주된다. 250"
나이가 주는 멍에는 사소하면서도 광범위하다. 마흔이 넘으면 긴 생머리가 안 어울린다, 양갈래 머리는 몇 살까지 해도 되는가 같은 질문들에 인터넷에서 의견이 분분했던 것을 보았다. 겉으로는 나이랑 상관없이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도 된다고 했지만, 어떤 머리 모양을 하는지도 제 나이에 걸맞는 것이 있다며 저마다 의견을 내는 것을 보며 내심 그런가? 싶어 하는 자신이 있었다. 언젠가 친구를 만나 늙었더니 아무도 나를 쳐다보지 않아서 외출할 때 전과 다르다는 대화를 했던 적이 있다. 생각해보니 어릴 적에는 화장하고 옷을 차려입지 않으면 가까운 집 밖도 잘 나가지 않았는데 나이들고는 그냥 막 나가게 되었다. [나이 묻는 사회]를 읽다 나이 든 여성은 탈성화된 존재로 간주된다는 문장에서 스스로가 느끼고 서 있는 지점이 바로 이것이었구나 깨달았다.
책은 '나이'라는 핵심어로 문제를 바라보고 있지만 혐오가 만연한 사회에서 나이는 혐오를 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로 쓰이고 있었다. 나와 다른이를 구분하여 혐오할 수 있는 이유를 만들고 거기에 '재미'라는 껍데기를 붙여 멸칭을 유행어처럼 소비하는 사회에 갇혀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특히 스스로에게 붙은 멸칭에서 벗어날 수 없는데, 타인을 향한 혐오는 0린이, 급식, 틀딱 같은 표현을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거부할 수 있다. 하지만 나이와 관련된 다양한 멸칭들 중에서 내 연령대와 성별에 대한 차별과 혐오적 표현에서는 벗어나기 어려워졌다. 스스로가 거부하려고 해도 이미 그 집단에 속해있고, 집단을 향해 타인이 씌우는 멍에에서 벗어나려는 개인의 시도는 오히려 더 추한 발악으로 치부되어 버린다. 이 흐름은 영포티가 초기 좋은 의미로 사용(62)되었다가 어느 순간 나이에 맞지 않는 겉모습과 태도를 가진 사람을 비하하는 의미로 변질된 것과 비슷하다.
이 나이에 대한 공격은 주로 어리고 늙은 사람들, 생산성과 자기관리(115)를 주요 가치로 두고 이에 취약한 연령층에 대한 무시와 혐오를 담고 있다. 하지만 가장 생산성 높은 젊은 세대마저도 쉬었음 청년층,'노력이 부족한 세대(145)', MZ세대라는 밈으로 혐오적 표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이는 혐오가 어느 세대가 일방적으로 드러내는 특수성이 아니라,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처럼 전 세대를 아울러 나타나고 있음을 뜻한다. 인간 존엄성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고, 경쟁이 심화된 사회에서 서로를 한정된 파이를 나누어 가져야 하는 경쟁 상대로 여기는 탓에 심화된 갈등과 충돌이 혐오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
[나이 묻는 사회]를 통해 우리 사회에 고착된 연령주의가 존중과 우대의 형식으로 기능하던 과거에서 비하, 혐오, 경멸로 전락해버린 연령차별주의의 현실을 파악할 수 있었다. 나아가 나이에 대한 굳은 생각이 아직도 자리잡기 어려워보이는 '만 나이' 사용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거부감을 느끼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한두살의 나이에도 서열을 구분짓고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연령주의가 완화된다면,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보편화된다면 이런 문제들도 유연히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책을 읽는 동안 나이에 연연하지 않고 상대방을 존중하고 나와 구분짓지 않는 연습이 필요함을 의식하면서, 이런 변화는 '어른'들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주는 틀에서 벗어나자는 주장을 하면서 나이를 기준으로 삼아 변화를 시작하자고 하니 모양이 재밌어졌지만, 차별하기 위해서 나이를 이용하지 않고 배려하고 존중하기 위해서 나이를 파악하는 사회가 되기 위한 받침으로 사용되는 '나이'라면 괜찮지 않을까. 한동안 나이/늙어감을 의식하면서도 잊고 지내는 것에 익숙해졌는데 [나이 묻는 사회]를 통해 왜 이런 생각을 했는지, 자신의 태도에는 어떤 영향을 줬는지, 타인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여러 방면으로 함께 생각해 볼 수 있어 의미있었다.
*토머스 홉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