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쟈와 함께 읽는 문학 속의 철학
이현우 지음 / 책세상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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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톨스토이는 예술 감염론이라는 걸 얘기합니다. 작가나 예술가가 가진 감정이나 사상이 작품이란 매체를 통해서 독자나 관객 같은 수용자에게 전달된다는 겁니다. 작가가 가진 감정이 독자에게 옮겨지는 것, 어떤 사상이 옮겨지는 것, 그래서 같이 감염되는 것. 같이 환자가 되는 거죠. 톨스토이즘이라는 어떤 아이디어가 있다고 한다면 독자를 톨스토이즘의 신봉자로 만드는 것이 예술 감염론입니다. - p.217 4강 인생의 의미란 무엇인가"

 

 이 책은, 굳이 장르를 분류해놓자면 해설서라는 느낌으로 받아들였다. 왜 우리 어린시절에 보던 전과나 참고서처럼, 문학과 철학을 아우르는 해설서. 이런 구성으로 되어 있는 책들을 좋아하면서도 읽기 꺼려하는 편이다. 보통 차마 다 소화하지 못한 부분이나 알아채지 못한 점들까지도 잡아낸 깊이 있는 내용이 많아, 읽다보면 재미있는데 한편으로는 주입식 독서법으로 '이건 이렇다'고 교육받는 느낌도 들기 때문이다. 텍스트로 한번 접한 해석의 결이 마치 옳고 유일한 해석인 것처럼 여겨져 나 자신의 감상으로는 나아가기 어렵게 되는 것이 아닐까 염려된다. 사실 혼자서는 그만큼도 확장될 여력이 없음에도 말이다. 그럼에도 문학을 철학과 함께 분석하여 엮어낸 저자 - 이현우, 로쟈- 분의 이 신간은 "철학"이란 키워드를 품음으로써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작품을 읽어내는 것은 가능하더라도 철학적 시각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개인적으로는 다소, 너무나, 사실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무조건 읽어보는 것이 좋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읽으면서 느낀 가장 큰 장점은 많은 부분을 세세하게 풀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여러 작품들을 묶어 나름의 가이드로 독자를 안내하는 형식의 글들은 많은 독자들의 환대를 받는 편일 것이다. 우리가 작품을 읽을 때 자칫 오독하게 되거나, 저자가 이스터에그처럼 숨겨놓은 글 안의 숨겨진 묘미를 발견하지 못한 채 지나쳐 버리거나, 불행하게도 끝까지 다 읽기 못하고 포기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때 이 해설서는 고전이라 이름 난 좋은 작품들을 우리 개개인이 마주하였을 때 본인의 힘 만으로는 다 채울 수 없는 작품과 해석의 여백을 친절히 메워주며 더 다채로운 감상의 길로 인도하여 주는 역할을 해준다. 어떤 의미로는 이 내용을 이렇게까지 깊이 있게 사유하고 학습한 타인의 결과물을 엿보고 마치 자신도 체화한듯한 착각, 지적 허영심을 충족시켜 주는 면이 있을지도 모른다. 지극히 개인적인 예이지만 이런 해설서를 통해 알게 된 책들이 큰 감명을 주었더라도 원문을 찾아 직접 완독해보려는 시도를 하게 되는 경우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어찌되었든 이 흥미롭고 친절한 안내서는 원문을 읽어보지 못한 독자들에게도 작품의 내용과 의미를 쉽게, 그야말로 떠먹여주듯이 전달해주고 있다. 때문에 목록들을 보고, 이 작품에 대해서 모르는데도 괜찮을까 염려됐더라도 읽기를 망설일 필요는 없다.  

 

 가장 인상깊었던 문구로 꼽은 맨 위의 인용구는, '문학 속의 철학'을 읽으며 만나게 되는 작품들을 새롭게 바라보게 되면서 만약 이들 작품들과 교감하고 그것이 "감염"되는 상태로 전달될수만 있다면 기꺼이 감염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만큼 즐겁게 읽었기 때문이다. 이는 유명한 영화 '일 포스티노'의 명대사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네루다 선생님 큰일났어요, 전 사랑에 빠졌어요. 너무 아파요."
"그것은 심각한 병이 아니야. 치료약이 있거든."
"치료약은 없어요, 선생님. 치료받고 싶지 않아요. 계속 아프고 싶어요. 전 사랑에 빠졌어요."

문학과 철학에 새롭게 빠지게 되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가능하면 그 감염의 상태에 머물고 싶은 여운이 남았다. 읽을수록 저자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이토록 조심스러운 접근방식으로 미숙하고 서툰 독자를 놀라지 않게 사로잡을 내용의 책을 발간해주다니. 두 분야에 관심이 있지만 어렵지는 않을까 부담되거나 어렵다는 이유로 좌절했던 경험을 가진 독자라면 기쁜 마음으로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사실 저자는 '로쟈'라는 이름으로 A인터넷 서점에서 매우 활발히 활동하는 분이고, 그 서점을 자주, 많이, 종종 이용하고 있기 때문에 평소에도 저자의 글과 소식을 접할 일이 많았다. 때문에 마치 사람들이 길에서 연예인을 보면 친숙한 마음에 자신도 모르게 이름을 부르며 알은 체를 하듯이, 저자의 신간을 보며 익숙한 느낌에 일방적인 알은척? 반가움이 들었다. 더불어 책을 읽고 섣불리 어떠한 평이나 의견을 올리는 일이 어색하게도 느껴진다. 혹시나 보실까봐. 혹시나지만, 좋은 독서가 되었다는 감사의 말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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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의 특이점이 온다 - 제4차 산업혁명, 경제의 모든 것이 바뀐다
케일럼 체이스 지음, 신동숙 옮김 / 비즈페이퍼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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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일럼 체이스의 '경제의 특이점이 온다'는 저자의 전작 '살아남은 인공지능'에 이은 신간이다. 여기서 자주 언급되는 "특이점"이라는 단어는 책의 서문 17페이지에 "본래 함숫값이 무한이 되는 변숫값을 의미하는 수학 및 물리학 용어였"음을 설명한다. 하지만 책의 내용과 연결되어 있는 의미로 생각해본다면 레이먼드 커즈와일의 2005년 베스트셀러 '특이점이 온다'에서 제시한 개념이 더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커즈와일은 특이점이란 단어를 기술이 인간을 뛰어넘어 새로운 문명을 생산해갈 시점을 지칭하는 의미로 사용했다. 인공지능의 능력이 인간을 앞서게 되면 이로 인해 만들어진 개념, 원리 등을 인간이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때문에 인간이 인공지능을 통제할 수 없는 지점이 올 수 도 있다는 전망이다.

 체스와 바둑 등에서 인간이 인공지능에 패했던 사건이 중 충격을 떠올려보자. 이를 사회 전반적 영역에 대입했을때 '터미네이터' 같은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그리게 되는 것이다. 쨌든, 최근 이 "특이점"이란 단어를 좀 더 캐주얼하게 접하게 되었는데, 어떤 분야에서 나올 수 있는 생산, 창조, 현상 등의 것들이 그 갈래가 최대치로 확장/통제불능 되었음을 의미하는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가끔 보이는 '특이점이 온 ***'같은 인터넷 상의 글들을 통해 특이점이란 용어를 약간 비틀린 채 먼저 만난 경우도 많을 것이다.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에 관한 내용을 중점으로 경제 전망을 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쉽게 떠올릴만한 노동해방에 대해서 먼저 짚고 있다. 그동안 '노동에서 인간의 역할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 먼저 떠올렸다면, 데이비드 오터는 "기계들이 정말 인간의 노동을 불필요한 것으로 만든다면, 창출된 부를 누가 소유하고 어떻게 나눌지를 정하는 진지한 문제 p81"에 대해 언급하였다. 우리가 4차 산업혁명에 대해 두려움을 느낀다면 그것은 노동을 잃을 것이라는 문제 때문이 아니라, 그로인해 돈을 벌지 못하게 되는 직업군이 생길 것이라는 이유이다. 4차 산업혁명이 저소득 직업군의 일자리를 위협하게 되는 것이 그 첫번째 변화라면 이에 대한 사회적 배리어가 우선적으로 필요함을 생각했다.

 3장 타임라인 4 2041년의 미래 부분에서는 "효과적인 경제 정책이 도입되고, 부패가 근절되고, 과학 기술이 가난한 나라들에게 상대적으로 더 좋은 영향을 끼쳤다 p 265"고 부의 분배에 있어 다소 유토피아적 미래를 표현하고 있다. 노동을 잃고 삶의 의미를 잃은 사람을 약 10퍼센트 정도의 비율로 보고 있으며 이를 "보편적 기본소득 - 캐나다 매니토바 주 남서부에 있는 도핀이라는 작은 도시의 주민들 1만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험 p276"을 통해 뒷받침하고 있으나 개인적으로는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인간의 삶에서 노동이 가지는 의미가 무엇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간의 삶에서 노동을 필요악으로 간주할 것이다. 막상, 일 안하고 산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행복한가. 4차 산업혁명의 긍정적인 면이 인간을 노동에서 해방시켜줄 열쇠가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식을 쌓는 일부터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한 모든 행동과 예술의 갈래에 속하는 모든 활동을 넓은 의미에서 노동으로 볼 때 노동은 정말 우리의 삶에서 불필요한 것일까 의문을 갖게 된다. 이 의문은 1장 자동화의 역사-3 자동화의 발자취 안의 말의 최고 전성기 부분과 맞닿는다. 인간의 노동력이 필요없어지게 된다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인류의 소용도 18세기의 말의 수요처럼 줄어들게 될 것인가?

 지나친 확대해석이겠지만, 시간이 지나고 난 뒤에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인구절벽의 원인도 이와 같은 흐름에 기민하게 반응한 류로 해석되지는 않을까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인구절벽의 문제를 4차 산업혁명과 맞물려 자연스러운 세태 변화로 바라본 점도 있기 때문이다. 또다른 재미있는 점은 책에서 블록체인과 관련하여 비트코인에 대한 언급을 한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요즘 국내에서도 한창 급격한 등락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는 이 가상화폐에 대한 신뢰를 언급하고 있는데, 현상황에서 보이는 양태를 떠올려보면 예상 기능대로 활용되기엔 시기상조인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책을 읽으며 계속해서 부의 분배와 저자의 낙관에 대해 생각했다. 부자들을 탐욕스럽기만 한 인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과 발전에 있어 후진은 없다는 말은 일반적으로 맞다. 특히 전자는 선입견에 대한 문제일수도 있고, 도의적인 사고에서 비롯된 마땅한 태도이기도 하다. 하지만 읽으면서 계속 찜찜함을 지울 수는 없었는데, 저 두 요소를 맞물려 떠올려보니 어느 정도 공감이 됐다. 발전은 더 나아가는 방향은 있어도 그 이전 단계로 되돌릴 수는 없는 것도 사실이니 기왕이면 낙관적으로 해석하여 미래를 발전시켜 나가도록 목소리를 내는 저자의 태도가 더 합리적일 수도 있겠다. 어려운 내용은 아니었으나 부분부분을 소화하며 읽기 쉽지 않은 내용이었다. 시간을 내어 읽어볼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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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빗 스태킹 - 쌓일수록 강해지는 습관 쌓기의 힘
스티브 스콧 지음, 강예진 옮김 / 다산4.0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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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상대하기 어려운 적이 무엇일까? 같은 목표를 가진 수많은 경쟁자? 재력, 능력, 권력 등 나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진 불공평한 상대? 모두 자신을 좌절시키기에 좋은 어려운 상대일 것이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이기기 어려운 것은 자기 자신이다. 남을 상대로는 이기겠다는 호승심으로 상대방보다 덜 자고, 더 노력해서 경쟁할 수 있다. 하지만 자기 자신의 게으름이나 편리함을 추구하는 욕구는 어지간해선 다스리기 어렵다. 우스갯소리로 담배를 끊은 사람과는 상종하지 말라는 말도 있으니.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담배보다 과자 끊은 사람이 배는 독하다고 생각한다.

 

 이것도 머피의 법칙인지는 모르겟지만, 이상하게도 나쁜 습관들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아주 익숙하게도 생활에 붙어 자리잡는다. 규칙적인 일과가 없는 때에는 낮밤이 바뀌는 패턴으로 살게 되고, 바쁘거나 간식을 먹었다는 핑계로 균형잡힌 세끼의 식사를 거르는 일이 생긴다. 곧게 편 자세가 건강에 좋지만 허리를 구부리고 앉거나 목을 굽혀 핸드폰을 보고 틈만나면 누워있는다. 왜 이런 나쁜 습관은 자연스럽게 몸에 배는데 억울하게도 이상의 습관은 일부러 노력해야만 실천할 수 있을까. 자기 자신을 좀 더 낫게 만드는 생활 습관들에 대한 조언이 여기 '해빗 스태킹'에 담겨 있다.

 

 습관 들이기와 비슷한 재미있는 조언을 하나 본 적 있는데, 마침 연말연시 시기를 맞았으니 짧게 옮겨본다. 새해가 되면 누구나 1년의 목표를 세울 것이다. 책 읽기, 살 빼기, 운동하기, 공부하기 등과 같은. 이와 더불어 작심삼일이라는 익숙한 친구도 금세 만나게 된다. 이때 자신의 목표를 너무 길게 잡기 때문에 실패하고 좌절하게 된다는 것이다. 아예 목표를 3일마다 새롭게 잡는다고 생각하고 실천하면 짧은 기간의 목표를 여러번 수행하면서 결국은 루틴이 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이 조언의 내용은 '해빗 스태킹'의 실천 방법을 잘 보조할 것이다. "습관 근육"을 만드는 장의 내용과 맞닿아 있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마음에 걸렸던 부분은 1부의 3장 비교적 초반에 나왔던 내용이었다. "의지력의 총량은 한정되어 있으므로 사용할수록 고갈된다." 는 "습관을 성공적으로 형성하기 위해 궁극적으로 필요한 두 가지 교훈" 중 하나였는데, 왜인지 이 문구를 보니 나중에 먼 훗날 의지력이 필요할 때를 위해 사소한 것에 의지력을 소비하지 말고 아껴둬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물론 이런 방식의 계산 덕분에 점점 이상향의 생활 습관에서 멀어지고 있는 것이겠지만. 마치 지구의 자원이 점점 고갈되고 있으니 위기의식을 느끼고 자원을 아껴써야한다는 범세계적 캠페인이 떠오르지 않는가.

 

 그래도 이 책의 좀 재미있는 부분은 아주 세밀한 127개의 체크리스트를 두고 이를 유형, 실행 시간, 실행 빈도 등의 구분으로 분류해뒀다는 것이다. 이 127개나 되는 목록들을 보고 있다보면 이 중의 몇개쯤은 우리 정서에 맞지 않은 것(사무실에서 맨손 체조를 한다/데이팅 앱에서 하루에 한 명에게만 연락한다)도 있고, 어떤 것들은 그냥 일상적으로 하고 있는 목록(재채기는 손에 하지 말고 팔 안쪽에 한다/일년 내내 자외선 차단제를 바른다/신발은 현관에 둔다)도 있기 때문에 그래도 내가 영 엉망으로 지내는 것은 아니구나 하는 위안을 하게 된다. 옆에 체크하면서 읽는 것도 재밌다.

 

 사실 이런 자기계발류의 도서를 즐겨읽지 않는 편이다. 이들이 짧게 요약해도 될만한 삶의 조언들을 중언부언 길게 늘려놓은 것 같은 내용이 많다고 느껴져서 이기도 하고, 이미 알고 있거나 어디서 본 듯한 내용을 다른 표현 방식으로 재구성해 놓은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해빗 스태킹'을 읽으면서도 그런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 해를 맞이하게 되는 시기에 자꾸만 나약해지는 자신을 다잡기 위한 계기로 '해빗 스태킹'을 한 번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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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철학자의 생각법 - 사유의 풍경으로 걸어 들어가다
로제 폴 드루아 지음, 백선희 옮김 / 책세상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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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가 어떻게 걷는지 보여주면 네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해주겠다 -프리드리히 니체"

 

 나에게는 걷는 친구가 있다. 그는 스스로를 걷고 쓰는 자로 칭한다. 책세상의 신간인 '걷기, 철학자의 생각법'을 손에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그였다. 비록 최근 그는 발달한 서울 시내의 따릉이 문화에 깊이 심취하게 되어 페달을 '굴리는' 일이 조금 더 잦아졌으나, 그래도 여전히 그만큼 걷기에 익숙한 사람을 주변에서 찾아본 적이 없다. 게다가 다행이도(?) 날이 추워진 관계로 다시 따릉이에서 내려와 걷는 자 본연의 자세로 돌아온 것 같다. 어쨌든, 이 책의 제목과 상통하게도, 옆에서 본 그는 성숙한 사고를 가진 작가이다. 그렇다면 정말, 걷는다는 행동에는 사유의 진척을 보조하는 어떤 기능이 숨겨져있는 것일까. 걷기와 사유의 사이에 존재하는 매커니즘이 무엇인지 이 책을 통해 발견하게 된다면, 절친한 친구인 그가 오래도록 걷고 걷는 길 위에서 바라보고, 발견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궁금해하며 책을 읽었다.

 

 "이 이중의 움직임이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그런데 이 움직임은 대단히 특이하다. 스스로를 거역하고, 자기 자신에 맞서서 끊임없이 자신을 파괴하는 움직임이다. 아니, 항상 스스로에 맞서 싸우는 동시에 자신을 연장하고 지탱하고 영속시키는 움직임이다. 우리는 줄곧 불균형을 향해 자신을 던지고 다시 균형을 잡는다. 불안정한 가운데 안정적이다. 우리는 불균형을 키우고 기획하고는 거기에 정착한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이동한다. 이처럼 걷는 방식이 우리의 특징이다.

 이제 이해했다. 반복할 필요 없다. 더는 그 생각을 말자. 아니다! 나는 오히려 그 생각을 하라고 제안하겠다. 그 명백한 사실을 파고들라고 말이다. 걷기는 촉발되다가 모면되고, 시작되다가 바로잡히는 작은 추락이라는 사실. 나는 이 사실을 더 명료하게 들여다보고 탐문해서, 늘 계속되고 늘 저지당하는 추락의 조짐으로 나아가는 이 방식이 무엇을 내포하는지 탐구하고 싶다.  p15-16 서서 나아가기"

 

 사실 다른 부분들보다는 도입부에 있는 '걷기'에 대한 관점이 크게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로봇산업이 발달하면서 종종 더 인간다워진 로봇의 모습을 뉴스를 통해서 접할 수 있었다. 이족보행 로봇으로 유명한 일본 혼다의 '아시모'나 국내 카이스트의 휴머노이드로봇연구센터의 '휴보' 같은 것들의 영상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다소 어색한 그들의 걸음을 떠올리며 이 아름다운 연속적 행위인 걷기를 인간처럼 구현해 낼 수는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불균형을 향해 자신을 던지는 자기파괴적 행동 안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행위를 로봇이 할 수 이을 것이라 생각치 않았다. 책을 읽고 난 뒤에 문득 이족보행 로봇을 찾아보았는데, 미국 보스턴 다이나믹스의 '아틀라스'의 영상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거의 인간과 흡사한 백덤블링까지도 구사하는 로봇의 영상을 보며 그 전까지 한계를 두었던 로봇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수정했다. 그리고 더불어 그만큼 인공지능의 발달이 이루어졌음을 연관지어 떠올렸다. 이 둘이 접목된다면 인공지능을 가진 이족보행 로봇은, 우리의 철학자들처럼 '걸으며 사유'할 수 있게 되는 것일까.

 

 걷기와 사유에 대해 깊은 땅굴을 파고 들어가 세세히 파헤쳐 낼 것 같았던 처음의 시작에 비해 본격적인 내용이 시작되자 이름난 철학자들과 걷기를 연결시켜 나열한 내용이 개인적으로는 다소 아쉬웠다. 걷기라는 큰 주제로 모을 수 있는 철학자들의 소재를 실 하나에 묶어 나란히 잘 꿰어낸 목걸이같은 구성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다소 가벼운 내용으로, 그보다는 걷기와 사유에 대해 좀 더 확장된 소재들을 가져왔더라면 훨씬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다만 "18 남몰래 절뚝인 디드로"와 같은 부분들은 굉장히 흥미로웠다. 때로 인상적이고 날카로운 문장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아쉽게 느껴졌던 가벼움도, 철학적 내용을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장점으로 생각할 수 있었다.

 

 사실 나는 걷는 자는 아니다. 길눈이 밝지 않아 목적한 곳을 찾아가려면 온통 그것에 집중해서 정신없이 걷는 편이다. 때로 익숙한 귀가길을 걸어가보곤 하지만, 길 위에서 걷는다는 행동을 하고 있는 자신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바람에 걷는 동안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는 편이다. 오히려 나는 이동수단 위에 얹혀져 옮겨지는 순간에야 여러 생각을 할 수 있는 타입인 것이다! 열심히 '걷기, 철학자의 생각법'을 읽어놓고 밝히기에는 적절치 않은 고백이다. 지하철은 바깥의 풍경이 단절된다는 점과 특유의 양보문화 때문에 자리에 앉아 어떤 생각을 이어나가기 편치 않은 편이고, 근래 들어서야 선호하게 된 것이 버스다. 그 전까지는 버스 노선의 복잡함과 목적지에 정시에 도착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로 버스를 잘 이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몇 년 사이에 가끔씩 버스를 이용하면서부터 그 안에서 '자리에 앉기만 한다면' 지나가는 풍경을 배경삼아 몇시간이고 멍하니 이런저런 생각을 하기 좋다는 것을 깨달았다. 때문에 저자 로제 폴 드루아가 강조하는 걷기적 인간이 현대문명과 만나 변화된 것이 태워진 인간형이지 않을까 혼자 생각해본다.

 

 한 공간 안에서 정체된 채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에서 걷기와 실려감/태워짐 사이에는 앞으로 나아가며 사유한다는 공통점이 존재할 것이다. 다만 그 안에는 목적지가 있고 없고의 차이가 있다. 안타깝게도 여기서 걷는 인간과 태워진 인간 사이의 간극이 발생한다. 걷기는 오직 걷기만을 위한 행위가 존재한다. 어디로 가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걷기 위한. 이는 걷는 시간을 통해 머리 속의 생각을 정리하기 위한 의미가 크다. 반면, 목적지가 없는 드라이브는 생각을 비워내기 위한 의미가 크다. 이 차이는 실제적인 "작은 추락"의 과정이 이루어지고, 이루어지지 않고에서 오게 된 것은 아닐까. 엉뚱하게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이런 생각들을 하며 나름 관심있게 책을 읽은 시간이었다. '걷기, 철학자의 생각법'을 읽고 파생된 사고들을 정리해놓았지만 실제 책의 내용은 '철학자'에 더욱 집중되어 있는 편이다. 이 점 유의해서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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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renown 2017-11-30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씨가 많이 추워졌지만 나가서 산책하고 싶네요.

테일 2017-12-01 23:00   좋아요 0 | URL
저는 오늘 올해 처음으로 눈이 오는 거리를 걸었습니다. 춥지만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
 
기적의 리미널 씽킹 - 변화를 원한다면 지금부터
데이브 그레이 지음, 양희경 옮김 / 비즈페이퍼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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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인 '리미널 씽킹'이라는 말이 매우 생소했다. "'리미널'이라는 단어는 '문턱'이라는 의미의 라틴어 '리멘'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저자는 이 문턱을 "경계, 한계, 또는 가장자리"의 의미로 보고 리미널 씽킹을 "경계에서 생각하기"로 정의한다. "경계는 바뀌고, 재고되며, 재구성되고, 재편성"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 것과 알 수 없는 것 사이이의 경계, 익숙한 것과 색다른 것 사이의 경계, 낡은 방식과 새로운 방식 사이의 경계, 과거와 미래 사이의 경계"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통해 "새로운 방식으로 생각하기를 통해 타인에게도 이와 비슷한 변화를 이끌어내 그들의 삶을 변화시킬 힘"을 꾀하는 것이다. 언뜻 복잡하게 느껴지지만, 쉽게 말하자면 다방향으로 시선을 옮겨 문제를 바라보고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혁신적 사고를 하자는 의미이다.

 

 비슷한 방식으로 책에서 여러번 강조하고 있는 점은 아집을 버리고 관용적 시선을 가지라는 내용이었다. 첫 예로 나왔던 맹인과 코끼리 우화부터 90년대 초의 저자의 이직 경험에 관한 내용들은 자신이 보는 것으로 전체를 이해하는 것과 자신이 이해하는 것으로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에 대해 말한다. 저자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경구 "문제는 무엇을 '보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이해하는가'이다"를 인용하며, 자신이 본 것, 경험한 것의 아집에 빠지면 스노글로브 속 세상에서 창조된 자기 폐쇄적 믿음 거품에 둘러싸인 것과 같으며 이는 맹인이 손으로 커다란 코끼리를 더듬어 전체를 이해하려는 시도와 다르지 않음을 역설한다. 처음 어색했던 것에 비해 전체적으로 이해하기 쉬운 문장으로 내용을 설명하고 있고, 읽어보면 보편적인 개념에 기반을 두고 있어 부담없이 내용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여러 제안들을 흥미롭게 읽었지만 그 중에 가족 치료와 관련된 예시가 있는 "실천 6 일상의 틀을 깨라" 단락은 다소 아쉬웠다. 부모와 자식 간의 문제가 생긴 예를 들고 있는데, 귀가가 늦고 자신의 방을 정리하지 않는 반항적인 아이와 게임을 지나치게 많이 하는 아이에 대한 이야기였다. 예시 안의 부모는 그들을 단속하고 언성을 높여 화를 내며 훈육하는 태도를 취했고, 이는 모든 상황 자체가 "일상의 틀"로 구조화 되어 문제가 악화될 뿐 해결될 수 없다고 진단한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취했던 태도에서 벗어나 다른 반응을 보이면 아이 역시 문제 행동을 멈추고 달라진 반응를 낼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이는 다소 이론적인 예시로 현실적이지 않다고 생각되었다. 특히 아이가 게임을 하고 있을 때 와이파이 장치를 꺼버린다는 해결법은 오히려 반항심을 더 키우는 행동 아닐까 싶었다.

 

 자기 계발이나 성공법이 담긴 내용의 책들을 읽을 때 크게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데, '기적의 리미널 씽킹'은 부담없이 가볍게 읽어나간 편이다. 책의 구성이 한가지 중요한 역할을 한 것 같은데, 폰트가 약간 크고 첨부된 표나 간단한 그림들이 중간중간 개념을 단순화 시켜주면서 가독성을 높여주었다. 강조하고 있는 내용들이 크게 새롭거나 획기적인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일상의 매너리즘에 빠진 것 같이 느껴질때 혹은 활력을 위한 약간의 자극이 필요하다고 생각될 때 가볍게 읽어보면 좋을 내용이다. 책의 관점을 조금 더 확장한다면 책에서 내세우는 9가지 실천을 통해 역지사지의 태도를 훈련해보고 싶다면 좋은 계기가 되어줄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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