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오스 멍키 - 혼돈의 시대, 어떻게 기회를 낚아챌 것인가
안토니오 가르시아 마르티네즈 지음, 문수민 옮김 / 비즈페이퍼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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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기 때문에 월가는 싸구려 여인숙과 닮은 구석이 있다. 사람들이 들어오기는 하지만 나가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이다. 보너스를 두어 번 받고, 1월 중순경 통장에 찍히는 목돈을 보고 나면, 그런 돈이 없는 삶은 상상할 수조차 없게 된다. 월가에 자리 잡은 은행의 경영진은 그런 심리상태를 조장한다. 월가의 투자은행가가 개라고 가정한다면, 주인의 진짜 의도가 뭔지 깨닫지 못한 채 값비싼 목줄과 가죽끈을 '사회적 위치'라며 과시하는 셈이다. 내 목줄은 전반적으로 볼 때 가느다란 편이었지만, 그래도 목덜미가 쓸려 쓰라리게 하기엔 충분했다. -p.47 혼돈을 향한 행진"

 

 '카오스 멍키'는 다소 난해했다. 저자 안토니오 가르시아 마르티네즈는 그 자신 그대로 난잡한 사고를 일으키고 다니는 원숭이처럼 느껴졌고, 저자의 느낌 그대로 문체도 복잡하고 정신이 없었다. 어디서부터가 현실이고 소설적인 묘사가 들어가 있는 부분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저자는 모든 것이 저장된 대화를 그대로 발췌했으며 곡해된 부분이 없이 전달하도록 노력했다고 하지만, 누구도 모든 것을 날 것 그대로 옮겨놓을수는 없기 때문에, 또한 문체에서 느껴지는 과장됨이 계속해서 의심을 눈을 거두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배경이 되는 실리콘 밸리라는 무대가 낯설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마치 최첨단의 수트를 입고 재기를 뽐내는 아이언맨의 모습을 보는 듯한 저자의 글은 자신만만하고 공격적이다. '성공하면 모든 죄가 용서된다'는 생각이 근간에 깔려있는 성공한 사람을 봤을 때 느끼게 될 약간의 불쾌감이 부러움과 시기에 버무려져 느껴진다. 성공하는 소수의 사람들 중 비상한 머리와 감각으로 세상이 무엇으로 돌아가는지 깨닫고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저자를 보면 그는 분명히 그 구조와 헛점을 알고 있고, 가장 크고 탐스러운 송이를 움켜쥐진 못했어도 떨어진 바나나를 챙겨가질 정도의 능력을 가졌음이 느껴진다. 이런 모습이 매력적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보편적인 삶과 동떨어진 느낌에 어떤 감명을 받진 못했다.

 

 특히나 sns를 하지 않아 제대로 활용할 줄도 모르는 편이라 페이스북의 시스템이나 기능에 대해서도 생소했다. 간혹 시선을 끄는 부분들은 보일 것이라 생각지 못했던 지극히 인간적이고 평범한 일화들에 대한 짧은 언급이었다. 때로 누가 남긴 스파게티를 먹었는가를 두고 날선 모습을 보이거나 사내 연애에 대한 시도는 단 한 번의 기회로 제한, 여직원은 '동료직원에게 방해가 되는 옷을 입지 말 것'이라는 지침이 있다는 부분들은 사소한 것엔 신경쓰지 않으며 새로움과 돈이 되는 것들이라면 무엇이든 기민하게 시도할 것이라는 개인적인 예상을 훨씬 벗어나는 평범하고 완고한 규제였다. 하지만 이런 부분들은 매우 단편적이고 주된 내용은 전문적인 업계 내용이다.

 

 무엇보다 '카오스 멍키'를 읽으며 잠시 다른 사람이 몸담고 있는 사회생활이 어떤지 들어서 체험해 본 기분이 들었다. 때로 친구들과 술을 한 잔 마시며 오늘 내가 회사에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경쟁하듯 푸념을 하는 것에서 벗어나, 아예 차원이 다른 리그에서 벌어지는 싸움을 엿보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IT업계에 관심이 있거나 새롭고 빠른 유행에 민감하게 반응하거나, SNS를 즐겨하는 사람이라면 꽤 재미있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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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의 기원 - 예일대 최고의 과학 강의
데이비드 버코비치 지음, 박병철 옮김 / 책세상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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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깥에서부터 바람이 부는 소리가 들린다. 어느 틈새로 바람이 들어오는지 모르지만, 때로 속도를 높이 차 한대가 매섭게 지나가는 듯한 소리다. 지난 140억년의 역사동안 지구의 움직임, 계절의 변화, 자연에서부터 오는 날씨의 현상들은 계속되어 왔다. 그것이 무엇에 영향을 받고, 어떤 식으로 민감하게 이루어져 있는지 다 알지 못해도 이처럼 삶 속에서 그 존재를 끊임없이 의식하고 경험하고 있다. 책세상의 신간인 '예일대 최고의 과학 강의 모든 것의 기원'은 "별과 은하계의 탄생부터 지구의 대기와 바다, 생물과 인간 문명의 발상까지 '어떻게 세상과 만물이 생겨났는지'"를 재미있게 풀어낸 책이다. 이 책은 슬쩍 넘겨보면 큰 매력이 느껴지지 않는다. 난해하거나 고리타분해보인다. 언뜻 보이는 단어들에서 비일상적임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꽤 괜찮은 상대임이 느껴진다. 어쩔 수 없이 뉴트리노나 CNO 순환 반응, 중성자, 케플러 궤도, 카이퍼 벨트, 섭입대, 밀란코비치 주기 등의 단어들이 나오겠지만 그것이 당신을 곤란하게 만들려는 의도는 아니다. 읽다보면 자연스러운 흐름처럼 느껴진다.

 

 개인적으로 영화 장르 중에서 자연재해물을 좋아한다. 이것도 장르의 하나로 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한 재해가 일어나서 모든 것을 휩쓸어버리고 또 그 안에서 치열하게 사투를 벌여 극복해나가는 인류의 대응을 감상하는 것을 좋아한다. 예전의 자연재해물들이 회오리바람같은 것을 소재로 했다면, 최근은 인간으로인해 황폐화 된 지구에서 살아남기 위한 노력이나 인공적으로 자연을 되살리려는 시도에서 비롯된 사건을 다룬다. 최근에 본 '지오스톰'이란 영화도 그런 내용이었다. 자연의 균형이 깨진 가까운 미래에 최후의 수단으로 우주 정거장에서 날씨를 인공적으로 조정할 수 있게 만들었다. 영화에서는 아주 약간의 조작으로도 날씨가, 또 이를 넘어선 기후가 달라지게 되고 사람들과 그들이 이루어놓은 것들이 쉽게 파괴되었다. 헐리우드 특유의 미국 만능 주의가 범벅된 촌스러운 내용이지만 각지에서 일어나는 자연 재해를 묘사한 장면들이 꽤 흥미로웠다. 이런 개인적 관심과 더불어 '모든 것의 기원'에서도 '6장의 기후와 서식 가능성'부분을 관심있게 읽었다.

 

 "그러나 우리가 환경을 아무리 망쳐놓아도 지구는 적어도 앞으로 수백만 년 동안 멀쩡하게 유지될 것이다. 과거에도 그랬듯이 지질구조판은 인간이 내뿜은 이산화탄소를 흡수하여 정상적인 상태로 되돌려놓을 것이다. 인간의 입장에서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는 것이 문제지만, 지구는 인간의 생존 여부에 아무런 관심도 없다. - p.205  6장 기후와 서식 가능성"

 특히 이 부분에서 지구 스스로 환경을 유지할 것이며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바탕이 되어주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드러낸 점이 좋았다. 지구를 환경과 생물로 구성된 하나의 유기적 생명체로 보는 '가이아 가설'에 관심을 두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계속해서 영화 이야기와 묶어서 아쉽지만, '8장 인류와 문명'을 읽다보면 "가장 위협적인 기상 현상은 허리케인이나 토네이도가 아니라 "장기간에 걸친 폭염"이다."라는 부분에서 문득 인상적인 특징을 떠올렸다. 그동안 본 몇 편의 영화들을 다시금 되짚어보니 갑작스럽게 다가오는 단기적인 피해를 묘사할 때는 태풍과 회오리바람, 쓰나미, 변칙적으로 나타난 이상 한파 등의 현상을 이용했다. 그러나 먼 미래 인류의 절망적인 상황에 대해 묘사할 때는, 온도가 높아져 빙하가 녹아 세상이 물로 뒤덮이거나 긴 가뭄이 이어져 온통 사막화 된 황무지를 보여주었던 것 같다. 이에 대해 더 자세한 설명이 이어졌다면 좋았겠지만, '모든 것의 기원'에서는 이를 체온 조절과 땀, 질병과 연결하여 마무리지어 아쉬웠다. 애초에 이 책에서는  그런 관점을 두고 언급한 내용이 아니기도 하지만.  

 

 끝으로 최근 한 모임에서 가위눌림과 수맥, 존재하고 있는 것과 구분된 차원의 틈에 대한 주제가 나오면서 문득 떠오른 '홀로그램 우주 이론'에 대해 말을 꺼냈다가 설명할 길이 없어 아쉬웠는데, '1장의 우주와 은하'부분을 읽으면서 다소 이해에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 이론보다는 용어들을 좀 더 낮은 장벽으로 접할 수 있었다. 이 모든 것들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영화도 찾아보고, 책도 읽어보고, 또 이론들에 대해서도 찾아보시길 추천한다. 어디에 쓸데가 있을만한 내용은 아니지만, 잠깐은 흥미로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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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영화 한 편 씹어먹어 봤니? - 학력도 스펙도 나이도 필요없는 신왕국의 코어소리영어
신왕국 지음 / 다산4.0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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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어 공부를 성실히 하지는 않지만 종종 영화를 보거나 티비를 볼 때면 문장을 따라하곤 한다. 얼마나 들리는지, 혹은 얼마나 따라할 수 있는지 가늠해본다. 이렇게 따라하는 것을 두고 '섀도잉'이라고 한다는 것을 신왕국의 '근데, 영화 한 편 씹어먹어 봤니?'를 읽으면서 처음 알았다. 그리고 썩 추천하는 방법은 아니라는 것도 동시에 읽었다. 간단한 의사소통 정도만 가능한 수준이기 때문에 영어를 유창하게 잘 하고 싶다는 생각은 항상 하고 있었지만, 게으름을 이기고 영어 공부라는 실천으로 이끌만한 계기가 크게 없었다. 그래서 혹시, 이 책은 어떤 팁이 될 수 있을까 기대하는 마음으로 읽었다.

 

 "일단 '라푼젤'을 무자막 상태로 재생했습니다. 영화 대사를 정확히 듣는 데 집중했습니다. 물론 잘 안 들리는 대사가 태반이었습니다. 10개 중 하나는 고사하고 100개 중 하나도 안 들렸습니다. 안 들리는 대사는 다시 반복했습니다. 잘 들릴 때까지 반복해서 들었습니다. ...중략... 대사를 들은 다음에는 그 대사를 따라 말했습니다. 이때 대사가 나오는 것과 동시에 말했습니다. 단순히 문장을 익힌다기보다도 소리 자체를 스캔해 낸다는 느낌으로 최대한 정확히 말하려고 노력했습니다. - p.25 1장 시골 고교 자퇴생, 영어를 정복하다"

 

 저자가 추천하는 영화 한 편을 소화하는 방법의 영어 공부는 이미 익히 알려져 있었다. 언뜻 들으면 좋아하는 영화도 보고 영어도 공부할 수 있는 일석이조의 방법인 것 같지만, 이 또한 공부이기 때문에 말 그대로 집중과 몰입이 필요한 일이라 쉽지 않을 것이다. 실제적으로도 지금의 저자가 있기까지는 영화 한 편 만이 아니라 그를 바탕으로 이어져나간 CNN공부 필리핀 연수, 미국 유학 등의 과정도 함께하기 때문이다. 영어 공부 관련 도서를 읽으면 어느 정도 수준에서 이 내용을 적용해야 괜찮을까 가늠해보곤 하는데, 저자가 시도한 방법 자체가 어느 정도 영어 문장이 들리는 수준의 사람이 해야 좋을 것 같다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한다. 정말 전혀 들리지 않는다면 자막없는 영화 한 편 틀어놓고 숙면만 취하게 될테니.

 

 "반복해서 듣고, 반복해서 따라 말하는 것. 그것이 제가 휘두른 주먹이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영어는 강한 상대일 거예요. 이미 여러 차례 영어에게 지기도 하셨을 것입니다. 그렇더라도 영어를 피하지 마세요. 다시 맞서세요. 맞서다 보니 결국은 영어를 이기게 됩니다. 복싱만 하던 저도 해내지 않았습니까. - p.206 5장 방황하던 노답 인생, 영어로 구원받다"

 

 취향의 문제로 자기계발서 같은 류의 책을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지 않는 편이다. 특히나 이처럼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분야에서 나름 성공한 화자의 책은 더하다. 아마도 '생존 편향(survivorship bias)'의 뉘앙스가 강하게 풍겨나오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의 실패 예시가 수없이 많이 쌓여있음에도 불구하고, 한 명의 성공자가 나왔으니 이 길을 따라오면 모두가 성공할 것이라는 비전을 강조한다. 성공한 사람들의 글을 읽다보면 할 수 있을 것 같고, 어렵지 않아보인다. 하지만 이는 저자의 표현대로 수학책을 풀지않고 읽기만 하며 공부하는 것과 다름없다. 꿈과 희망을 갖는 것은 중요하지만, 저자처럼 자기만의 방식을 갖고 실천하기를. 해도 안된다면, 몇번이나 실패해서 자신이 싫을 정도라면 포기할 줄도 알기를. 혹시 수없이 많은 도전과 실패를 겪고도 또 새로운 마음으로 이 책을 집어들 사람이 있다면 공유하고 싶은 정보다. 

 

 그동안 만나온 수많은 영어 강사들이 때로는 흘리듯이, 때로는 답답하다는 듯이 강조하는 것이 있었다. 영어를 배우려 하는 사람들의 열정이다. 모든 준비는 다 해줄테니 당신은 열정만 가져오라고 하는 강사도 있었고, 당신들이 항상 그 많은 돈을 쓰고도 영어를 못하는 이유는 영어에 미쳐서 반드시 해보이겠다는 열정이 없어서라며 토로하는 강사도 있었다. 때문에 '근데, 영화 한 편 씹어먹어 봤니?'를 읽으면서 고교 중퇴에 영어를 거의 몰랐던 나도 성공했으니, 당신도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저자의 자신만만함 뒤에 숨겨진 열정을 느꼈다. 그리고 이 무기력한 나는 부럽긴 하지만 아마 이번에도 안될거야 싶은 게으름도 느꼈다. 영화는 즐겁게 보고, 기술의 발전이 빨리 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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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루스트 효과 - 프루스트를 사랑한 작가들의 글쓰기
유예진 지음 / 현암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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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달간의 사이로 프루스트에 관한 책을 연이어 만나게 되어 어리둥절했다. 고전의 힘은 이토록 사그라들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져오는 관심과 사랑으로 이루어져 있던 것인가. 저 악명높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로 대표되는 프루스트에 관한 현암사의 이 신간을 보고 반가우면서도 곤란했다. 과연 이 쉽지 않은 주제로도 얼마나 읽지 않고 버티기에 어려운 매력적인 깊이를 선사할 것인가. 고백하건데, 아직 다 읽지 못한 뒷 권들을 마저 읽어내기에도 벅찬데도.

 

 저자는 '프루스트 효과'를 통해 프루스트를 사랑한 여덟 명의 작가들의 글쓰기를 풀어내었다. 그 여덟 명의 목록에 버지니아 울프, 롤랑 바르트,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질 들뢰즈 등의 이름이 올라있다는 것만으로 프루스트에 대한 증명은 더 필요치 않다. 때문에 이를 이용하여 이들 작가에 대해서 이들이 얼마나 프루스트의 영향을 받았는지 또 어떻게 프루스트의 영향에서 벗어나려 했는지 분석하며 소개하고 있다. 오직 프루스트에 대해서만 집중되지 않기 때문에 여덟명 중 자신이 좋아하거나 관심있는 작가에 대해 관심있게 읽어볼 수 있어 더 좋다.

 

 "프루스트 소설에서는 한 부분이 스스로 말을 하고, 그 자체로 존재함으로써 기호들이 발생한다. '시간'은 작품의 소재이며 동시에 주제가 되는데, 그럼으로써 부분들이 생기게 되고 그러한 부분들은 "하나의 퍼즐에 끼워 맞출 수 없는 조각들"처럼 서로 이어질 수가 없게 되며 각자의 공간에서 존재를 유지한다. 그와 동시에 들뢰즈는 시간을 가리켜 "서로에게 수용되기를 거부하고, 동일한 리듬으로 발전하지 않으며, 문체의 흐름에 의해 같은 속도로 이끌리지도 않는 부분들의 궁극적인 존재"라고 정의한다. - p.150 제5장 통일성의 재발견"

 

 때로 전문적인 분석과 지식이 옅보이는 내용이라 간만에 자세를 잡고 주의깊게 읽어야 했다. 우리가 이런저런 사변적 글을 쓸 때 흔히 말하는 '의식의 흐름'적 글쓰기가, 이를 대표하는 프루스트를 통해 다시 보게 되니 앞으로는 정신 똑바로 차리고 짜임새있게 글을 쓰도록 노력해야겠구나 반성하게 되는 계기를 한번씩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는 개인적인 짧은 반성을 의식의 흐름으로 토로하였고, 최근 차원과 관련된 여러 차원의 우주와 시공간 개념들을 떠올리게 되는 부분이라 따로 옮겨보았다. 우리가 순차적으로 느끼는 시간의 흐름이란 것이 결국 다른 차원에서 동시간적으로 혹은 그와 상관없이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내용과 비슷하게 받아들여졌다. 이러한 개념을 이해하기 어려운 것처럼 프루스트의 글도 어렵다는 것도.

 

 이는 베게트가 "지난 몇 주 동안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두 번 완독하였으나 그에 관한 글을 쓸 수 있을지 확신이 없다며, "끝에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처음에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라고 고백"했다는 내용에서도 느껴진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우리는 프루스트의 작품이 시작과 끝이 존재하지 않음을 이중적으로 느낄 수 있게 된다. 이 모호한 흐름에서 순차적 시작과 끝을 구분하기 어려움과 동시에 읽기 시작하나 결코 다 읽지는 못하기 떄문에 끝이 존재하지 않으리라는. 이 완독에 대한 부채의식을 없애기 위해 이러저러한 방편으로 책들을 읽지만 부채감은 완독하기 전까지 계속되리라는 불길한 느낌을 받는다.

 

 '프루스트 효과'만이 아니라, 얼마 전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여덟개의 시선으로 살펴본 타 출판사의 신간을 읽었다. 연속된 신간들의 등장에 국내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작품이지만 완독한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는 이 문제적 작품에 대한 동시대적 재조명에 관심이 갔다. 개인적으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다가 좌절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더 읽어보고 싶고 궁금한 마음이 들었는데, 꽤 만족스러웠다. 다시 완독할 용기는 나지 않는데, 그래도 궁금하고 미련이 남기 때문에 이렇게라도 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 왜, 지금 프루스트일까! 이는 최근 디저트 문화가 급격히 성장하게 되면서 케익과 마카롱에 밀린 마들렌이 시장 우위를 선점하려는 큰그림을 그린 것은 아닐까 싶다. 는 개인적 분석을 덧붙이며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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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 시선 K-포엣 시리즈 1
고은 지음, 이상화.안선재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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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의 꽃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Flowers of a Moment

 

Going down I saw

the flower

I did not see going up." 

 

 많은 사람들이 한번쯤은 읽고, 들어 접해봤을 시를 꼽아보았다. 짧지만 어딘가 여운을 깊게 남기는 구절이 인상적인 고은 시인의 '순간의 꽃' 전문과 번역본을 함께 옮겨놓았다. 인생에 대해 말하는 것 같은 이 느낌이 영문으로도 전해질까 궁금해진다.

 

 시가 주류인 시대가 왔다. 언제부턴가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을 먹었다'는 시집의 리뷰가 눈에 띄기 시작했다. 개인적인 체감은 그 지점부터였다. 그 이전에는 내맘대로 꼽은 시인계의 아이돌 이병률의 여행에세이 등의 활약이 눈에 띄었었고. 요즘 서점에 가면 시집 코너가 메인 매대로 장식되어 있다. 문학 서가의 한 켠에 조용히 아우성치던 감성에의 외침이 드디어 닿았다는 듯이. 작년 말 정도부터 시집의 판매율이 엄청 올랐다는 뉴스도 본 적이 있다. 가을부터 시작한 시집 읽기 바람이 윤동주 시인의 초판본 재출간을 힘입어 엄청난 상승곡선을 넘어선 직선을 보여줬다고 한다. 도리어 올해 들어 간간히 읽던 시집 읽기도 뜸해진 탓에 괜히 멋쩍어지면서도 좋다. 내 시집도 아닌데, 내가 읽은 것도 아니면서.

 

 얼마 전 노벨 문학상 발표가 있었다. 노벨 문학상이라 하면 떠오르는, 몇번이나 우리나라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고 졸이게 만드는 문학가 고은의 시선이 아시아 출판의 K POET 시리즈로 출간되었다고 하여 읽어보았다. 약 90쪽의 얇고 작은 크기의 시선집은 휴대하기 좋은 가벼움과 조밀함이 특징이다. 많은 작품을 수록하지 않았지만 작품은 한글과 영문으로 동시에 수록해놓았다는 것이 매우 큰 장점이 된다. 마음에 드는 시를 영어로 읽어본다는 특별한 경험을 해볼 수 있다. 하지만 별다른 해석 실력이랄 것도 없지만, 한글로 읽은 시를 영문으로 다시 읽다보면 미묘한 어감이나 정서가 와닿지 않는듯해 아쉽다. 어쩌면 원어민이 읽었을 때는 좀 더 나은 뉘앙스로 받아들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덕분에 외국인 친구와 함께 시를 감상할 수 있다는 것도 또 하나의 장점이 되겠다.

 

 다른 작품으로는 '어떤 기쁨'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세계의 어디에선가/누가 생각했던 것/울지마라" 는 싯구가 "누가 생각하고 있는 것", "누가 막 생각하려는 것"으로 반복되고 있다. 짧게 옮겨놓은 부분만으로도 일부 위로가 됨을 느낄 수 있으리라. 길기 때문에 전문을 옮기진 않을 것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전에 읽었던 신용목 시인의 '타자의 시간' 이라는 시가 떠올랐다. 두 시 모두 좋으니 가을을 맞아 모두 읽어본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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