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삶의 철학
엠리스 웨스타콧 지음, 노윤기 옮김 / 책세상 / 2017년 12월
평점 :
절판


 아이러니하게도 이 과잉과 풍요의 시대에 가장 강조되고 있는 요소 중 하나는 '다이어트'일 것이다. 이는 콩글리쉬의 의미 그대로 체중을 줄이려는 노력으로 통용되지만 사회 전반에 걸친 현상으로도 나타난다. 말하자면 우리는 과잉된 섭취로 인해 증가한 체중을 줄이려는 시도를 할 뿐만 아니라, 집안에 쌓여있는 가구와 옷가지 등의 살림을 줄이려는 '미니멀 라이프'에 대한 동경, 중독 수준이라 할 수 있는 핸드폰이나 컴퓨터 등의 전자 기기 사용을 줄이려는 '디지털 다이어트', 24시간 제한없이 엮어진 인간관계 또한 정리하려 하고, 심지어 내면에서 끊임없이 부유하는 수많은 상념들을 떨쳐내려는 노력도 한다. 때문에 '단순한 삶의 철학'을 통해 우리의 이런 노력이 어디에서 기인했으며 또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리고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맞을지 파헤쳐보고 싶어졌다.

 

 책을 읽으면서 눈에 띈 주제는 소박한 삶은 옳고 사치스러운 삶은 틀린 것인가에 대한 부분이었다. 왜 보편적으로 사치스러움을 천박히 여기며 경계하고, 소박함에 대해 도덕적으로 더 높은 가치를 두어 생각하는 것일까에 문제적 시각을 둔 점은 꽤 신선했다. 사실 책을 읽기 전에 개인적으로는 단순하고 검소한 삶에 대한 동경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실패로 돌아간 몇 번의 방정리를 떠올려보기도 하고, 사려다가 마음을 접은 몇몇 가전제품들로 위안을 삼아보기도 했다. 나 역시도 당연스레 소박함에 더욱 이상적인 가치를 두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문득 나에게 지금과 다른 엄청난 부유함이 주어진다면 과연 동일한 삶의 방식을 추구하며 살 것인가 자문해보니 답은 아니었다. 단순한 삶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했던 일이 과연 진짜 더 가치가 있기 때문에 그랬던 것인지, 결여로 인한 불만족함을 완화하기 위한 다른 수단은 아니었는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반발적인 생각으로, 많은 부유하고 성공한 사람들의 인터뷰를 떠올려본다. 그들은 나름의 진지한 어조로 이런 말을 하곤 한다. "만약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을 다 내어놓고 과거로 돌아가 젊음/선택하지 않은 소박하거나 평범한 삶과 바꾸겠냐고 하면 반드시 기꺼이 그러겠다"고. "많이 가진 것은 곧 행복이 아님"을 누구보다도 많이 가진 그들은 매우 강조한다. 하지만 가진 것이란 언제나 상대적인 것이라 부족한 것은 돈밖에 없는 입장에서 종종 접할 수 있는 그들의 말은 매우 허황되고 탐욕스럽게 느껴졌다. 그들이 진짜 덜 가졌더라면,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젊거나 소박하고 단란한 삶을 산다고 해서 분명 그 이상의 행복을 느끼게 될까? 마찬가지로 그들에게 다시 한 번 지금의 삶을 다시 버리고 더 가진 삶을 선택하라고 하나면 반드시 기꺼이 그러겠다고 할 사람은 아닐까 생각한다. 그들은 이미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더 갖고 싶은 것을 갈망하고 있는 것이니.

 

 특히 "4장 소박함의 철학은 왜 오늘날의 삶에 어려운 것인가" 의 "소박함의 비판적 측면"을 읽으며 어려웠던 시기 동안 핵심이 되었던 '가성비'라는 요소를 떠올려보았다. 이 가성비라는 것은 합리적인 소비 자세로 해석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의 -특히 젊은 세대들의- 빈곤함으로 인한 불가피한 선택의 면모도 보인다. 책에서는 소박함의 비판적 측면 중 첫번째로 "돈에 집착하게 된다 / 모든 것의 비용에 끊임없이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가격을 비교하고, 단위가격을 계산하고, 할인 여부를 살피고, 할인행사를 찾아다니고, 폭리를 취하는 곳을 적발하는 등 역설적으로 돈에 과도한 관심을 갖게 되는 것 -p.187 4 소박함의 철학은 왜 오늘날의 삶에 어려운 것인가" 을 꼽았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가성비와 매우 비슷한 결이다.

 

 매우 오랜 시기동안 근면과 절약, 성실이 전국민적인 삶의 지향점이었기 때문에 이는 매우 자연스럽게 우리 생활에 스며들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 가성비적인 삶이 무조건적인 긍정이 될 수 없음도 부각되고 있다. 흔한 예로 미국사회의 계층별 비만율을 들 수 있는데, "미국 연방정부의 통계자료는 소득수준과 비만율이 반비례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소수계층(minority)일수록 비만율이 높아짐을 보여주고 있다. 백인은 연봉이 5만달러(약 6500만원) 이상인 사람들 중 비만인 비율이 16%였고 1만5000달러인 집단의 비만율은 23%로 소득이 낮을수록 비만율이 높아졌다. 흑인은 연봉 5만달러와 1만5000달러 집단의 비만율이각각 22.5%와 34%로 백인들에 비해 전체적으로 비만율이 더 높았다. - 동아일보기사 이진영 020221" 는 내용이 가성비를 추구하고, 추구할 수 밖에 없는 생활 환경의 맹점을 꼬집었다.

 

 더불어 '미니멀 라이프'에 대한 이상도 삶이 팍팍하기 때문에 오는 취향에 대한 극단적 절제로도 해석된다. 이 밖에도 책에서는 "'매몰비용'의 오류에 빠질 수 있다, 너그럽지 못하게 된다, 사회가 침체될 수 있다" 는 것들을 꼽았는데 우리의 경우는 사회가 침체되었기 때문에 소박해졌다는 인과가 더 큰 듯하다. 이처럼 "단순한 삶의 철학"은 소비와 사치에 대해서도 중립적인 태도를 보이며 단순한 삶에 대한 여러 관점을 보여주는 만큼 책을 읽으며 기존에 품어왔던 생각과 많은 의문들이 서로 부딪히는 과정들을 겪었다. 읽으며 떠올렸던 것들에 비해 개인적인 결론은 너무나 단순하게도 검소함이든 사치든 모든 것이 지나치면 좋지 않다는 정도의 선에서 마무리 되었는데 "단순한 삶은 삶의 충만함에 이를 수 있는 여전히 가장 확실한 길 중 하나이며, 우리는 그것을 지혜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 p.363 맺는 글" 로 정리된 본문처럼 다소 아쉬움이 남는 맺음이었다.

 

 아쉽게도 삶을 관통하는 철학보다는 빈부에 대한 사회구조적 문제에 대해 더욱 집중하게 됐다. 검소한 삶의 자세가 철학을 통해 추구된 신조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 주어진 기술에 지나지 않는 시대이고 세대이기 때문에. 앞서 언급되었던 '다이어트'를 고려해 본 적이 있다면 한번쯤 읽어봐도 좋을 것 같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라 생각했던 것들이- 추구하는 삶의 방식이, 사실은 선택지 없이 주어진 것들은 아니었을까 생각해보게 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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