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의 나라 - 성폭력 생존자와 가해자가 함께 써내려간 기적의 대화
토르디스 엘바.톰 스트레인저 지음, 권가비 옮김 / 책세상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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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들은 별것 아닌 일로도 공격을 당하고, 심지어 살해되기까지 하지 않던가. - p.31 7년 5개월 후 "

 

 더이상 미룰 수 없이 리뷰를 써야겠다고 결심한 날의 아침, 늘 틀어놓는 아침 뉴스에서 또 한 명의 여성이 여자화장실에서 괴한의 습격을 받아 둔기로 무차별 폭행을 당했다는 사건을 접했다. 사회를 뒤흔든 '강남역'의 사건이 절로 떠오르는 뉴스였다. 묻지마 폭행이 의심되는 이 사건은 한편으로는 피해자를 스토킹하던 남성이 있었을지 모른다는 여지도 함께 보도되었다. 이 뿐아니라 우리 사회에는 너무나 많은 사건들이 있었고, 그것은 피해자 개인을 넘어서 사회적인 충격을 안겨주었다. 쉽사리 벗어날 수 없는 아물지 못한 사건들 사이에서 '용서의 나라'는 우리 시대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아우르며 다가온다.

 

 독특하게도 '용서의 나라'에서 톰과 토르디스의 관계는 종종 희생자와 치료사의 모습을 띈다. 그것이 독특하다고 표현되는 이유는 강간 피해자인 토르디스가 그들 사이에서 치료사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p.247) 그녀 역시 분노하고 좌절하고 상처입은 영혼으로 표현되지만, 역설적이게도 톰 역시 자기 연민에 빠진 상처입고 후회 가득한 희생자의 모습으로 토르디스 앞에서 섰다. 그리고 그것을 두 사람이 정확히 인지하고 있다. 때문에 책의 표지에서 발견한 '성폭력 생존자'라는 표현이 가능했는지 모르겠다. 토르디스는 피해자의 위치에 머물지 않고 그 안에서 중의적인 의미로 생존해 낸 것이라 생각됐다.

 

 하지만 토르디스가 처음부터 용서를 시도하고, 상대방과 마주하길 결정하는 모습을 보였던 것은 아니다. 그녀도 자신이 평범하지 못한 선택을 하는 것에 대한 직접적인 후회를 하는 모습을 보였듯이, 수많은 '피해자들이 겪었던 갈등과 상처'를 가졌었음을 드러내는 부분들이 곳곳에 존재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피해자들이 겪었던 갈등과 상처'로 표현한 바로 이 감정과 고통들은 피해자로 지칭되는 사람들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었다. 문득 그녀가 털어놓은 자책과 상처가 '공감'되어 다가왔던 것이다. 또한 나는 어떤 기준으로 그들을 판단하였던가 되돌아보게 되었다.

 

 " 설상가상으로 나는 술 먹고 취했을 뿐만 아니라 '강간을 자초한' 여자이기도 했다. 이런 우스꽝스러운 생각을 뒷받침한 것은 당시 강간에 대한 사회적 담론에서 내가 습득한, 피해자를 비난하는 논조였다. 그리고 바로 그런 시각 때문에 나는 오랫동안 톰의 어깨에 책임을 지우는 일을 할 수 없었다. - p.104 "  우리는 옷가짐을 정숙하게 해야하며, 행동이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해야하고, 늦은 시간에 외진 곳에 있어선 안되고, 누군가 나를 성폭행하려 하면 무조건, 죽음의 위협에 맞서 강력히 저항해야만 한다. 어느 하나라도 그렇지 않았다면 피해자는 성녀가 아니라 창녀의 위치로 전락하여 비난과 의심을 받게 된다.

 

 넓은 범위로 확장되어 가는 문제의식들 뿐 아니라, 그녀가 느끼는 양가적 감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부분들이 날카로운 위트를 보인다는 점도 좋았다. 굉장히 솔직하고, 거침없는 태도로 자신 내부의 변화를 세밀하게 공개했다. 여자의 삶과 인종에 대한 시각, 더불어 그녀가 임신과 출산을 겪으며 얻게 된 몸의 변화까지도 들어있다. 미경험자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출산시 회음부절개와 관련된 이야기를 읽으며 (p.244) 토르디스의 솔직함에 조금 더 감화되었다. 처음 '용서의 나라' 를 읽으며 문체가 다소 장황하거나 극적인 느낌을 받았던 것에 비해, 뒤로 지날수록 지나치게 많은 부분에 꼽아둔 표시들이 생겨났다.

 

 또 하나의 특별한 점은 토르디스가 겪은 불행한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여성에 대해 말하길 멈추지 않고, 거기에 그녀 자신이 서있는 또다른 위치까지도 의식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 택시에 올라타니 가까스로 위험을 모면했다는 생각에 안도감이 몰려왔다. 그리고 이어서, 백인으로서 내가 누려온 부인할 수 없는 특권에 대한 죄의식과 혐오감이 찾아들었다. - p.113 " 이런 부분인 것이다. 인종적인 문제까지도 서슴없이 화두에 올리길 주저않는 점이 독특했다. 그것이 그녀를 단순히 피해자의 위치에 머물지 않게 할지도 모름에도. 그리고 인종적 기득권에 속하지 않는 입장에서 이점은 꽤 만족스러운 요소였다.

 

 "내가 막 침묵을 깨려는 순간 지저분한 스웨트셔츠 차림의 이 빠진 남자가 급히 다가오더니 동전을 구걸해다. 내가 아무리 그 사람을 돕고 싶어도 지금 여기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의식하자 마음이 아팠다. 톰이 고개를 저으며 거절하자 남자는 포기하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가만히 내 손을, 무릎 위에 보온 담요처럼 놓여 있는 내 기득권의 무게를 쳐다봤다. - p.77 "

 

 이 책이 누군가에게 깊은 감명과 위로가 될 수 있다고 여겨졌다. 개인적으로는 깊은 감명을 받았지만, 다만 다른 이들에게 어떤 강요나 섣부름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떤 사건에 대한 해결에 정답은 없고, 수많은 자아들이 있는 것처럼 그에 맞는 해결 방식이 존재할 것이다. 다만 '용서의 나라'를 통해 제기되는 문제들에 대해서 더 내밀한 어조로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라 생각된다. 읽는 내내 떠올랐던 짧은 시에 대해 함께 옮긴다. 출처는 ena ganguly라는 이름으로 업데이트 되는 한 SNS이고, 영어로 쓰여진 시를 한글로 옮긴 내용이다.

 

 " 여자아이들은 남자아이들보다 빨리 성숙해진다 / 왜냐하면 / 우리는 내내 가르침받기 때문이다 우리의 몸은 폭력을 부르는 미끼이며 / 우리의 입술은 유혹적이고 / 우리의 허벅지는 죄로 역하며 / 자라나는 우리의 굴곡은 아저씨들의 눈과 손을 낚는 덫이라고 / 우리는 이 한 가지 가르침을 받는다 / 남자들 앞에서 우리의 몸은 우리를 배신한다는 것 / 우리는 다섯 살, 여섯 살, 일곱 살의 어린 나이에 이를 배운다 / 몇 번이나 이 가르침들은 우리를 옭아매는데 / 남자아이들은 그저 아이로 남는다 - ena gangul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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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삶의 철학
엠리스 웨스타콧 지음, 노윤기 옮김 / 책세상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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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러니하게도 이 과잉과 풍요의 시대에 가장 강조되고 있는 요소 중 하나는 '다이어트'일 것이다. 이는 콩글리쉬의 의미 그대로 체중을 줄이려는 노력으로 통용되지만 사회 전반에 걸친 현상으로도 나타난다. 말하자면 우리는 과잉된 섭취로 인해 증가한 체중을 줄이려는 시도를 할 뿐만 아니라, 집안에 쌓여있는 가구와 옷가지 등의 살림을 줄이려는 '미니멀 라이프'에 대한 동경, 중독 수준이라 할 수 있는 핸드폰이나 컴퓨터 등의 전자 기기 사용을 줄이려는 '디지털 다이어트', 24시간 제한없이 엮어진 인간관계 또한 정리하려 하고, 심지어 내면에서 끊임없이 부유하는 수많은 상념들을 떨쳐내려는 노력도 한다. 때문에 '단순한 삶의 철학'을 통해 우리의 이런 노력이 어디에서 기인했으며 또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리고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맞을지 파헤쳐보고 싶어졌다.

 

 책을 읽으면서 눈에 띈 주제는 소박한 삶은 옳고 사치스러운 삶은 틀린 것인가에 대한 부분이었다. 왜 보편적으로 사치스러움을 천박히 여기며 경계하고, 소박함에 대해 도덕적으로 더 높은 가치를 두어 생각하는 것일까에 문제적 시각을 둔 점은 꽤 신선했다. 사실 책을 읽기 전에 개인적으로는 단순하고 검소한 삶에 대한 동경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실패로 돌아간 몇 번의 방정리를 떠올려보기도 하고, 사려다가 마음을 접은 몇몇 가전제품들로 위안을 삼아보기도 했다. 나 역시도 당연스레 소박함에 더욱 이상적인 가치를 두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문득 나에게 지금과 다른 엄청난 부유함이 주어진다면 과연 동일한 삶의 방식을 추구하며 살 것인가 자문해보니 답은 아니었다. 단순한 삶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했던 일이 과연 진짜 더 가치가 있기 때문에 그랬던 것인지, 결여로 인한 불만족함을 완화하기 위한 다른 수단은 아니었는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반발적인 생각으로, 많은 부유하고 성공한 사람들의 인터뷰를 떠올려본다. 그들은 나름의 진지한 어조로 이런 말을 하곤 한다. "만약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을 다 내어놓고 과거로 돌아가 젊음/선택하지 않은 소박하거나 평범한 삶과 바꾸겠냐고 하면 반드시 기꺼이 그러겠다"고. "많이 가진 것은 곧 행복이 아님"을 누구보다도 많이 가진 그들은 매우 강조한다. 하지만 가진 것이란 언제나 상대적인 것이라 부족한 것은 돈밖에 없는 입장에서 종종 접할 수 있는 그들의 말은 매우 허황되고 탐욕스럽게 느껴졌다. 그들이 진짜 덜 가졌더라면,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젊거나 소박하고 단란한 삶을 산다고 해서 분명 그 이상의 행복을 느끼게 될까? 마찬가지로 그들에게 다시 한 번 지금의 삶을 다시 버리고 더 가진 삶을 선택하라고 하나면 반드시 기꺼이 그러겠다고 할 사람은 아닐까 생각한다. 그들은 이미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더 갖고 싶은 것을 갈망하고 있는 것이니.

 

 특히 "4장 소박함의 철학은 왜 오늘날의 삶에 어려운 것인가" 의 "소박함의 비판적 측면"을 읽으며 어려웠던 시기 동안 핵심이 되었던 '가성비'라는 요소를 떠올려보았다. 이 가성비라는 것은 합리적인 소비 자세로 해석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의 -특히 젊은 세대들의- 빈곤함으로 인한 불가피한 선택의 면모도 보인다. 책에서는 소박함의 비판적 측면 중 첫번째로 "돈에 집착하게 된다 / 모든 것의 비용에 끊임없이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가격을 비교하고, 단위가격을 계산하고, 할인 여부를 살피고, 할인행사를 찾아다니고, 폭리를 취하는 곳을 적발하는 등 역설적으로 돈에 과도한 관심을 갖게 되는 것 -p.187 4 소박함의 철학은 왜 오늘날의 삶에 어려운 것인가" 을 꼽았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가성비와 매우 비슷한 결이다.

 

 매우 오랜 시기동안 근면과 절약, 성실이 전국민적인 삶의 지향점이었기 때문에 이는 매우 자연스럽게 우리 생활에 스며들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 가성비적인 삶이 무조건적인 긍정이 될 수 없음도 부각되고 있다. 흔한 예로 미국사회의 계층별 비만율을 들 수 있는데, "미국 연방정부의 통계자료는 소득수준과 비만율이 반비례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소수계층(minority)일수록 비만율이 높아짐을 보여주고 있다. 백인은 연봉이 5만달러(약 6500만원) 이상인 사람들 중 비만인 비율이 16%였고 1만5000달러인 집단의 비만율은 23%로 소득이 낮을수록 비만율이 높아졌다. 흑인은 연봉 5만달러와 1만5000달러 집단의 비만율이각각 22.5%와 34%로 백인들에 비해 전체적으로 비만율이 더 높았다. - 동아일보기사 이진영 020221" 는 내용이 가성비를 추구하고, 추구할 수 밖에 없는 생활 환경의 맹점을 꼬집었다.

 

 더불어 '미니멀 라이프'에 대한 이상도 삶이 팍팍하기 때문에 오는 취향에 대한 극단적 절제로도 해석된다. 이 밖에도 책에서는 "'매몰비용'의 오류에 빠질 수 있다, 너그럽지 못하게 된다, 사회가 침체될 수 있다" 는 것들을 꼽았는데 우리의 경우는 사회가 침체되었기 때문에 소박해졌다는 인과가 더 큰 듯하다. 이처럼 "단순한 삶의 철학"은 소비와 사치에 대해서도 중립적인 태도를 보이며 단순한 삶에 대한 여러 관점을 보여주는 만큼 책을 읽으며 기존에 품어왔던 생각과 많은 의문들이 서로 부딪히는 과정들을 겪었다. 읽으며 떠올렸던 것들에 비해 개인적인 결론은 너무나 단순하게도 검소함이든 사치든 모든 것이 지나치면 좋지 않다는 정도의 선에서 마무리 되었는데 "단순한 삶은 삶의 충만함에 이를 수 있는 여전히 가장 확실한 길 중 하나이며, 우리는 그것을 지혜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 p.363 맺는 글" 로 정리된 본문처럼 다소 아쉬움이 남는 맺음이었다.

 

 아쉽게도 삶을 관통하는 철학보다는 빈부에 대한 사회구조적 문제에 대해 더욱 집중하게 됐다. 검소한 삶의 자세가 철학을 통해 추구된 신조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 주어진 기술에 지나지 않는 시대이고 세대이기 때문에. 앞서 언급되었던 '다이어트'를 고려해 본 적이 있다면 한번쯤 읽어봐도 좋을 것 같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라 생각했던 것들이- 추구하는 삶의 방식이, 사실은 선택지 없이 주어진 것들은 아니었을까 생각해보게 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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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페퍼 - 아내의 시간을 걷는 남자
패드라 패트릭 지음, 이진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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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서 페퍼 아내의 시간을 걷는 남자"는 상실과 경직, 고착으로부터 시작된다. 어찌보면 당연한 이야기다. 무언가가 시작되려하는 시점은 늘 그렇듯 더 이상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포화된 고인물에서부터다. 우리의 아서 페퍼는, -이후로 페퍼는- 그의 삶에서 더는 시작이란 것은 없을 것이란 다소 우울한 조건에서 존재한다. 페퍼는 거진 일흔이 다 된 나이의 노인이다. 그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삶을 살아왔다. 40여년의 결혼 생활을 통해 삶의 한 톱니바퀴처럼 되어버린- 평생동안 좋은 동반자로 사랑해왔던 아내, 미리엄과 사별한 뒤 그 상실을 이기지 못하고 집 안을 동굴처럼 배회한다. 그에게는 미리엄 사이에서 낳은 아들과 딸이 있었지만 그들은 미리엄의 장례식에 조차 참석하지 않았다. 페퍼는 굳어가는 고목처럼 미리엄이 없는 집 안에 점점 자신을 가두었고 그런 그를 찾아오는 방문자는 이웃의 버나뎃 뿐이었다. 하지만 그는 가끔 찾아오는 버나뎃의 방문에도 마치 집에 없는 것처럼 숨을 죽이고, 응답하지 않았다.

 

 그를 바라보면 마치 아무 기대도 할 수 없는 사람처럼 보인다. 아들 댄과 딸 루시가 이제 그만 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하고 "앞으로 나아가라"며 종용하지만 페퍼는 그들의 무심함과, 예순 아홉의 나이에 이른 자신이 더 나아갈 무언가가 없음을 스스로 불평하듯 토로한다. 그러다 문득 아침의 균형을 뒤흔든 버나뎃의 방문에 페페의 일상에 아주 작은 균열이 생겼다. 사소한 물건들이 자신을 움직이게 만드는 신호처럼 읽혀졌다. 페퍼는 그동안 미뤄두었던 미리엄과의 작별 의식을 마음 먹는다. 그녀의 옷을 정리하여 구호단체에 기증하기로 한다. 그리고 그 날 미리엄이 남겨 둔 작은 기적과 마주하게 된다. 그의 슬픔은 놀랍도록 다른 빛깔로 빠르게 변화해나간다. 호기심에서 두려움 그리고 자신 안에 존재했는지도 몰랐을 큰 질투까지. 이 변화를 통해 굳어져있던 그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튀어나가기 시작한다. 오직 하나 그녀에 대해 알고 싶다는 의지만으로! 그리고 여기까지는 시작에 지나지 않는다. 페퍼의 진짜 걸음은 오직 읽는 이의 즐거움으로 남겨두었다.

 

 페퍼의 모습을 보면 최근에 보았던 "고잉 인 스타일"이라는 영화가 떠오른다. 우리에게 친숙한 모건 프리먼 배우가 나오는 영화로 페퍼와 마찬가지로 노년의 삶을 살고 있는 세 노인의 이야기다. 늘 가는 곳, 늘 먹는 음식, 항상 같은 친구들과 평범한 일상을 살던 그들의 삶에 변화가 생기면서 벌이는 활극을 다룬 영화다. 노쇠해진 그들의 움직임이 굼뜨고 불안한데도, 사실 일상에서 그토록 늙은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면 관심이 없었을 것인데도, 이들 노인들의 새로운 도전은 시선을 모으고 응원을 이끌어낸다. 비슷한 맥락으로 로버트 드니로가 나온 "인턴"이란 영화도 떠오른다. 성공한 젊은 CEO에게 일흔살의 인턴이라는 언발란스한 조합은 어떤 의미를 줄 수 있을까 가늠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 이야기가 페퍼와 세 노인들에 앞서 많은 사랑을 받은 이유가 분명히 존재한다. 그렇다면, 왜 이런 페퍼들의 이야기가 우리들의 마음에 감동을 주는 것일까.

 

 흔한 표현으로 젊음에는 시작과 도전이란 말이 자연스레 따라붙고, 늙음에는 황혼과 정리, 안정같은 표현을 연상시킨다. 아마 우리 내면에서 나이듦이란 것을 삶의 많은 요소들에 대한 가능성을 마감하고 굳어진 채 그저 안존하는 자세로 시간을 보내게 되는 결말로 정해두었는지 모른다. 우리의 관념에서부터 노년의 이미지를 제한해 둔 것이다. 그런데 매우 아이러니하게도 때로 우리는 어떤 젊은 영혼의 새로운 시작이 주는 자연스러움 보다 노년에 찾아온 의외의 여정에 더욱 공감하고 감명받는다. 사실 노화는 모두에게 주어진 자연스러운 숙명이다. 우리는 노년기에 대한 관념을 만들어놓았지만, 자신이 만든 그 관념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욕망 또한 가졌다. 흔하게 마음만은 청춘이라 하는 말이 가벼운 표현이 아니라 해가 갈수록 절감되는 것처럼. 때문에 그런 고정관념을 깨는 이야기를 만났을 때 우리가 제한해놓은 선을 보란듯이 넘어서는 주인공들을 향해 진심어린 응원을 보내게 되는 것은 아닐까. 새롭게 만나는 페퍼의 여정을 함께 한다면 진한 감동과 즐거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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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되지 않더라도
김동영 지음 / arte(아르테)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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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이 되지 않더라도'를 읽으며 낯선 느낌을 받았다. 갑자기 타인의 일기장 안으로 던져진 느낌이었다. 저자인 김동영 작가는 처음 보는데,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일까 알기 전에 그 사람의 세상에 갑작스럽게 들어서게 된 기분이었다. 그래서 나열된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거리감있게 받아들여졌다. 저자는 자신의 일상을 보여주면서 거리를 좁히려고 하는데, 막상 읽으면서 지나치게 가깝게 다가온 낯선 사람에게서 느끼는 부담을 떠올렸다. 혹시 저자의 다른 책을 먼저 만났다면 이런 느낌이 덜했을까. 에세이를 읽어본 적이 오래되었기 때문에 어색한 것일까. '무엇이 되지 않더라도'의 첫인상은 생각보다 가까워지지 않는 거리감에 당혹스러웠다는 것이다.

 

 에세이를 읽는다는 것은 저자의 조각을 모으는 일 같다. 산책하듯 페이지마다 이리저리 흐트려놓은 타인의 조각들을 살펴보다 때로 마음에 드는 조각을 발견하거나, 나와 닮은 조각이 있다며 반가워하는 정도의 시간을 보낸다. 이 에세이는 때로 개인적으로 쓰던 블로그에 올려놨던 나의 조각들을 떠올리게 했다. 아무 날의 어떤 순간에 대해서, 혹은 좋아하는 무엇이나 싫었던 것에 대해 이래저래 적어놓았었다. 장문의 글이 세줄로 요약되길 바라는 흐름에서 블로그가 SNS로 대체되는 변화에서 점차 사용을 줄였었다. 그리고 지금은 몇 달 째 아무것도 쓰지 않고 방치해두었다. 어쩌면 과거의 누군가는 그곳에 남겨놓은 나의 조각을 보았으리라. 그랬다면 어땠을까 책을 읽으며 문득 궁금해졌다.

 

 읽으면서 상실에 관한 내용이 나올 때면 좀 더 찬찬히 살폈다. 서열 1위였던 케루악에 대한 이야기는 해피엔딩은 아니어도 꽤 따뜻하게 다가왔다. 볼품없고 약한, 슬퍼보이는 모습에 못내 손길이 갔다는 점도, 줄줄이 맞이한 모리씨와 오로라 사이에서 카리스마적인 앞발 펀치로 서열 정리를 끝냈다던 이야기도 아기자기했다. 그리고 그래도 먹어야지 하며 냉장고 앞에서 꾸역꾸역 밥을 먹으며 지나보낸 어머니와의 이별 이야기는 충분히 마음이 아팠다. 상실을 경험한 이후로 상실 자체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는데, 저자의 에피소드가 공감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속에 가라앉혀둔 두려움이 일렁이는 느낌을 받았다. 상실이라는 것이 필연적이면서 어떻게든 지나보내야 하는 삶의 영속성 위에 있음을 새삼 의식하게 된다.

 

 아파서 절에 들어갔던 날들, 입원했던 병실에서 들었던 엄마를 찾는 치매 노인의 부름처럼 고통과 연민이 점철된 내용도 있고 여행을 떠나 만났던 사람들과의 인연에 대해 담아놓은 내용들도 있었다. 여행지에서 영어가 통하지 않는다고 불평해서는 안된단 의견에 잠깐 자신을 반성하는 시간도 가졌다. 생각해보니 그의 말대로 영어에 대한 과신이었고 오만이었다. 그러던 중 종현에 대한 부분이 나와서 잠깐 생각에 잠겼다. 전체적인 흐름에서 조금은 도드라지는 부분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라디오에서 인연이 닿았다는 그가, 얼마 전 세상을 떠난 그가 맞겠지. 시기적으로 공교로웠을지, 아니면 나름의 추모를 위한 내용이었을지 모르지만 개인적으로는 갑자기 맞닥뜨린 그의 등장에 약간의 의문과 애매함이 남았다.

 

 좀 더 감성적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지극히 일상적이고 건조한 것 같으면서도 감성적이다. 제목이나 분위기, 에세이라는 장르가 주는 인상이 감성적인 내용이 많을 것이라 예상하게 했는데 생각보다 그렇지 않았다. 여기서의 감성은 감성적이기 위한 감성을 드러내놓은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때로 감성적이다. 아, 뭔가 설명할수록 같은 단어만 반복되서 더 모를 것 같은 느낌이다. 어쨌든 개인적인 내용들이 많은데 또 이상하게도 내밀하진 않다. 자신을 드러냈지만 날 것을 드러내진 않은 느낌이다. 자신을 일정부분 가리고 포장하여 드러낸 것처럼 보여준다. 전체적으로 보여지기 위함을 의식한 내용이라 느껴졌다. 그것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그렇기 때문에 서로에게 적당한 위치에 설 수 있었던 책이라 생각된다. 무엇이 되고, 되지 않고 같은 것이 아니라 그저 당신과 자기 자신에 대한 내용을 담은 에세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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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니시 - 힘 빼고, 가볍게 해내는 끝내기의 기술
존 에이커프 지음, 임가영 옮김 / 다산북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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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내용의 책을 연말-연초를 거쳐 읽는다는 것은 좀 민망한 일이다. 시기를 많이 의식한 느낌이 든다.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가장 정력적인 성향을 가진 친구가 지나가듯이 다이어리와 새해 맞이 계획을 물어오기에, 그 모든 것들에 대한 부질없음을 표하며 넘겨버린 날이 있었다. 그는 이런저런 일도 많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스타일이어서 아마 사적인 얘기를 적거나 이래저래 꾸미지는 않더라도 다이어리로 자신의 스케줄을 관리할 것이고, 올해에는 무엇이라도 좀 해보자며 계획을 세운 것도 있으리라. 물론 나 역시도 그랬던 적이 있었다. 입버릇처럼 체중조절을 위해 식이조절과 운동을 할거라 하기도 했고, 다이어리는 최근까지도 꽤 꼼꼼한 업무용으로 썼었다. 하지만 이제 더이상 어떤 계획이나 결심을 하지 않는다. 왜냐면 그것이 지속된 적이 매우 드물었기 때문에. 모 커피 전문점에서 연말에 몇 잔 이상의 커피를 마셔 모은 쿠폰으로 받은 다이어리들은 기념품처럼 책장에 꼽힌 채 한번도 펼쳐지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스스로를 몰아세우듯 뭔가를 결심하고 또 어느새 실패해서 자책하게 되는 이 이상한 행위를 더는 반복하고 싶지 않아졌다. 문제는 '결심'인 것 같았다.

 

 다산북스에서 나온 존 에이커프의 '피니시'는 그런 내용이다. 끝내지 못한 목표들을 어떻게 해야 끝낼 수 있을까 방향을 제시하는. 자기계발서 특유의 정형화 된 어조가 강하게 느껴져서 초반부터 읽는데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긍정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나름의 밝은 에너지로 빠른 템포를 책장을 넘기게 만드는 면이 있었다. 거를 것은 거르며 공감할 것은 공감하고 가볍게 읽어나가면 금방 읽게 된다. 전체적으로 자신이 어떻게 '시작의 중요성'에서 '끝내기의 중요성'으로 관점을 옮겼는지에 대한 경험을 시작으로, 높은 목표와 완고한 완벽주의가 끼치는 영향을 설명하고 있다. 우리가 보통 목표를 세울 때 하루에 1시간씩 달리기, 팔굽혀펴기 100번, 일주일에 책 한 권 읽기 같은 구체성을 갖고 계획한다. 처음 3일 정도는 무리를 해서라도 의식적으로 이 목표를 지킨다. 그리고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지날 때 예상 외의 일이 생기거나 원래대로의 자신으로 돌아오려는 관성-게으름-으로 이 목표를 지키지 못하게 된다. 완벽하게 이루어졌던 일정에 구멍이 생기는 순간 애초에 세웠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가고 그 뒤로 망쳐진 목표에 더이상 노력을 기울이려 하지 않게 된다.

 

 "불완전함은 잽싸게 찾아온다. 그리고 그 불완전함이 찾아왔을 때 우리는 대개 그만두고 만다. 그래서 더 이상 완벽하지 않은 날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다. 그날을 어떻게 보내는지가 모든 목표의 달성 여부를 좌우한다. 조깅을 하루 건너뛴 다음 날, 일찍 일어나는 데 실패한 다음 날, 도넛을 하루에 딱 한 개만 먹겠다고 결심한 다음 날이 바로 그날이다. '더 이상 완벽하지 않은 날'은 시작만 하는 사람과 끝까지 완주하는 사람을 결정짓는 날이기도 하다. -p.30 피니시"

 

 그는 책에서 그런 순간을 이렇게 표현한다. 우리가 자신의 목표를 향해 끝까지 가기 위해서는 바로 그 구멍이 생기는 날이 중요하다고. 그리고 매순간 편함과 타협하려는 자신을 경계해야 함을 강조한다. 매사에 꼼꼼하고 자신의 성과에 예민한 친구가 있는데, 나보다는 그 친구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혹시 어쩌면 그에게는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책이 될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으면서 목표 달성에 추진력을 더하는 방법으로 수치를 측정하는 23개의 예시를 드는데, 그 중에 SNS팔로워의 수가 있다는 것은 좀 뜨악했다.'인적 네트워크 형성'이라는 말과 함께 새로운 인맥 등등을 꼽은 것은 개인적으로 추구하는 생각이랑 달라 아쉬웠다. 다만 그가 SNS에 사용한다는 독서 관련 해시태그는 좀 도움이 되었다. 어쩌면 곧 내용을 조금 바꿔서 사용할 예정이다. 개인적으로는 책의 유형을 크게 선호하는 편이 아니지만, 연말과 새해에 지키지 못해 아쉬웠던 목표가 있었거나, 앞으로 새롭게 세운 목표가 있다면 심기일전 용으로 한번쯤 읽어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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