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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0월
평점 :
이전에 이 책을 읽었던가 기억이 나지는 않는데 이 책이 어떤 내용인지는 또 잘 알고 있다. 이 책이라기 보다는 표제작이 되는 단편 '첫사랑'의
내용을. 문득 그 내용을 떠올리다가 도서관에 들린 김에 빌려왔다. 한동안 다른 책도 좀 읽고, 딴 짓도 하고, 게으름도 피워보고 하다 반납기한이
다 되어서야 가방에 책을 넣고 광화문으로 나왔다. 서울 시내의 카페는 어디든 붐비는 법이라 눈치 안보고 책 읽기 쉽지 않다. 하지만 최근 눈에
띈 카페 한 곳은 때로 시끄럽고 연령층이 다소 높아도 다른 곳에 비해 한산한 편이라 그리로 들어가 베이글을 뜯어먹으며, 낄낄대며 책을
읽었다.
비록 '첫사랑'을 보며 읽기 시작했지만, 맨 마지막에 최종 보스로 등장하는 그것까지 가기 전에 만나게 되는 다른 단편들도 재밌다.
읽다보니 '조동관 약전'이 가장 완벽한 단편이 아니었나 싶다. 똥깐이의 전설적 패악은 유쾌하고 쓸쓸한 결말은 아련하다. 꼭 읽어보길. 소설집
첫사랑 속의 단편들은 하나같이 독특한 인물들을 내세우고 있다. 그 인물들은 무식하거나, 본 데 없는 깡패고, 좀스럽거나 심약한 소시민이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미숙한 소년이기도 했다. 이 인물들이 유머러스한 작가의 어조와 버무려져 각각의 매력과 재미를 뽐낸다.
"마찬가지로 서울의 수산 시장에서 펄펄 뛰는 생선을 회로 쳐서 먹는다고 해도 그건 부산 바닷가의 회에 비할 때 회라고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부산까지 갈 수가 없는 경우 먹기는 먹되 "이건 회도 아이다"라는 말을 꼭 붙여야 한다는 게 장택근의 주장이다." p132 _
2인실
거기에 '강알리 등킨 도나쓰'로 이어지는 붓싼 싸나이 드립의 문학적 버젼까지 포함되어 있으니, 정성스럽게 싸놓기도 싸놓은 인터넷 똥글을
읽으며 자괴감을 느끼는 대신 '여가시간엔 책을 읽어요'라며 표지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릴 만한 허영도 채울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성석제의 이름을 드높인 전설의 단편, 표제작이자 모든 부녀자들의 바이블. '첫사랑'을 수록하고 있으니 과연 주목해볼만 한 소설집이다. 그리고
알만한 사람은 알테니 책 표지 사진을 찍어 올리지 않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고.
"나는 빈 빵 상자를 앞에 두고 멍하니 서 있었다. "빵 도로 놔, 새끼들아." 언제 네가 다가왔는지 아이들에게 나직한 목소리로
명령했다. 아이들은 순식간에 반쯤 뜯어먹은 빵까지 전부 다 상자에 내려놓았다. 나는 그냥 가려고 했다. 그런데 네가 나를 불렀다. "너, 거기서
다섯 개 집어." 나는 무시했다. 나는 네가 싫었다. 네가 자꾸 나한테 접근해오는 게 싫었다. "나는 빵 안 먹어." " p223 _
첫사랑
이 첫사랑 물은 묘하게도 남*남의 구도다. 이 장면을 이성애로 옮겨온다면 "느 집엔 이거 없지?"하고 감자를- 요즘은 값이 너무 올라서
금자라고 불리우는 그것을 들이미는 소설을 연상시킨다. 이루어질 수도 있겠지만, 금기시되는 감정이라는 기본 바탕 때문에 이 첫사랑 물은 좀 더
흥미로운 요소가 추가된다. 뒷세계?가 아닌 곳에서 다루어졌다는 점에서도. 그렇더래도 첫사랑 물의 핵심인 미묘한 기류와 다가가고 싶은 마음,
서툴음을 낯간지럽게 담아냈기 때문에 재미도 충분하다. 이런 어설픈 풋사랑을 해본 적도 없는데 - 그럴만한 인기가 없었기 때문에.. 쨌든, 왜
이런 코드들로 하여금 체험해본 적도 없는 가상의 향수마저 불러온다.
웃기고 쉽게 읽히면서도 전체적으로 '남성적인 서술'이라는 부분들에 눈길이 머무는 것은 어찌할 수가 없다. 남*남 구도의 연애물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둘 사이의 도구로 끼인 혹은 도피/부정을 위한 여자의 존재이다. 최근 개봉했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보면서 느꼈던 수단으로서의
여자의 역할이 '첫사랑' 안에서도 빵집 처녀의 역할로 등장한다. 게다가 대부분의 단편들 안에서 '유랑'의 벙어리 여자 외에는 비중을 차지하는
여성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와중에 김치녀와 스시녀에 대한 비교까지 빠지지 않고 담아낸 것 또한 절묘하다. 어쩌면 이런 것들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재미있으니 꼭 읽어보라고 추천해주지는 못할 만한 이유가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