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이름은
조남주 지음 / 다산책방 / 2018년 5월
평점 :
절판


 "그녀 이름은" 안의 내용들은 읽기에 좋다. 긴 호흡의 글에 점점 기력도 딸리고 집중력도 떨어지는 140자 시대에 - 아, 요즘은 280자라나? - 맞춰 한 다섯장 정도의 분량이면 하나의 꼭지가 끝난다. 군더더기 없이 짧은 대부분의 내용들이 뉴스에서 봤던 굵직한 사건들도 포함하고 있어 익숙한 배경지식도 제공한다. 소설집을 채운 거의 30개 가까이 되는 '그녀'들의 이야기는 마치 대형 기획사 아이돌 뽑아내듯 "이 중에 네 삶 비출만한 내용은 하나 있겠지" 하며 꾸려낸 보편다양(?!)한 여성의 삶을 보여준다. 그런데도 요즘은 여성의 ㅇ만 느껴져도 반사적인 거부감이 드는 사람들도 있고, 그냥 사는게 이런 건 줄 알았는데 '빨간약 먹고 진실을 봤다'는 사람들도 있어서 이 여성에 관한 책이 누구에게든 편하게 읽힐만한 내용은 아닐거란 생각이 든다.  

 

 아마 책을 읽었다고 하면 별 관심없이 그랬구나 할 사람도 있고, 나도 읽었다고 눈을 빛낼 사람도 있고, 표정이 굳어 얼버무릴 사람도 있고, 호기심과 경멸을 섞어 너도 ㅁㄱ이야 물을 사람도 있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댓글로 욕을 쏟아낼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염려스러워 밖에서는 굳이 이 책을 읽지 않았다. 책 안의 대부분 내용은 공감하면서도 그것을 이유로 난데없는 악의의 대상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마치 금서를 읽은 것 같다. 그렇게 좋아하던 여자 아이돌이 책표지를 찍어 SNS에 올렸다는 이유로 굳즈를 불태우는데, 아무 상관도 없던 나같은 사람이 어쩌다 눈에 걸리면 한마디 던지기는 얼마나 더 쉬울까 하고. 이런 '멀리 나간' 생각도 웃기지만 중년의 연예인들이 업소에서 자신의 평이 얼마나 좋은지 매너를 자랑하던 티비 프로그램의 한 장면을 떠올리면 그 말은 또 그렇게 쉬운지 그것도 우습다.  

 

 4만명이 넘는 여성이 여성 스스로를 위하여 거리로 나서게까지 된 지금, 되돌아보니 몰카가 이렇게까지 심각하게 문제제기되고 분노할만한 일이었던가 생경하다. 그동안 얼마나 많았는데. 포털에 길거리를 검색하면 길에서 몰래 촬영한 여성의 신체 이미지가 뜨고, 연관으로 미니스커트라는 말이 따라붙는데도 그동안 우리는 무엇을 했나. 더 말하자면 "그녀 이름은" 안에 담긴 내용 정도의 고단하고 모욕적이고 불안한 삶의 경험들은 날 것으로 말하자면 더 많고 더 더럽다. 몰래 찍힌 리벤지 포르노가 공개되어 기자회견을 열어 사죄하던 사람도 있었다. 그때 우리-대중-는 무엇에 대한 사과를 받았을까. 그 영상은 무슨 이름으로 불리며 퍼져나갔었나. 그럼에도 고작 이 책 한 권의 내용에 공감했다고 표하는 것만으로도 프레임이 씌워진다.

 

 저자 조남주의 이력을 훑으며, 새로 나왔다는 "그녀 이름은" 이라는 제목의 소설집을 읽으며 여러 생각이 오갔다. 거의 마지막 책장을 넘기면서 불쑥하고 '대체 왜 자꾸 이런 글들을 쓰는거야!' 라는 짜증스런 답답함이 올라왔다. 그간의 행보로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불편해하고, 불만을 표하고, 심지어 분노하고, 결국엔 뭐라더라 비슷한 제목의 책을 내려고 함으로 반박하기까지 했다. 시달리기도 시달렸을텐데 왜 멈추지 않는 것일까. 이 계속되는 행보에도 또 어디에 이렇게 마르지 않는 소재와 공감이 달려나올까. 누구는 비겁하기 때문에 카페나 지하철에서 책 한 권 읽는데도 별 생각을 다 하는데도. 시달리면서, 욕먹고, 조롱당하고, 지치면서도 목소리를 내기 주저하지 않는 이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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