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쓸모 - 자유롭고 떳떳한 삶을 위한 22가지 통찰
최태성 지음 / 다산초당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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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저자를 알게 된 것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다. 사실 큰 관심도 없었고 좋은 일을 하는 유명하고 대단한 사람인가보다, 하는 생각뿐이었다. 큰별쌤이라는 별명도 이름에서 따왔나 의미가 무겁지않을까 싶었다. '역사의 쓸모'를 읽으려고 할 때도 재미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안했다. 역사에 대한 내용일테니 학교 다닐 적에 배워 외웠다가 지금은 대부분 잊어버린 왕조에 대해 나오겠거니 했다. 사람들이 흥미로워 할 만한 내용들은 드라마나 영화 같은 것으로 몇번이고 만들어져서 다시 본다면 좀 지루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처음 찬찬히 왜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는가 설명할 때 까지만 해도 어조가 매우 친절해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책인건가 흐름이 좀 느린가 싶었다. 그런데 그렇게 천천히 읽다가 문득 '아, 이 책 정말 괜찮구나' 싶은 마음이 든다.

 

 어쩌면 뻔한 구성이다. 역사의 일화를 가져와 현재의 삶에 빗대어 도움이 될만한 조언으로 풀어낸다. 그런데 이 과정이 자연스럽다. 역사 지식을 심각하게 뽐내면서 머리속으로 집어넣도록 압박하지 않는다. 선택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쇠뇌'라는 무기를 만든 신라시대의 기술자 구진천을 설명한다. 그리고 그를 통해 " 한 사람의 선택이 사회의 문화를 형성하고, 그 사회에서 살아가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다시 영향을 미칩니다. (65)" 는 뜻을 전달한다. 사실 이전까지 책을 읽으며 내심 역사의 인물들하고 나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은 다르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치 그 사실을 눈치채기라도 하듯 눈 앞에 던져진 문장을 받아들고 깜짝 놀랐다. 거리감이 줄어드는 느낌이었다. 다만 인생을 야구경기와 비유한(91-92) 부분은 생각이 좀 달랐다. 한 이닝이 끝나면 다음회가 시작할지는 몰라도 안 될 팀은 안된다.  

 

 전체적으로 긍정적인 시선으로 배우면서 공감하면서 읽었지만 정작 공감이라는 키워드를 달고 있는 "왜 할머니, 할아버지는 태극기를 들고 광장으로 나왔을까(134)"의 내용은 조금 아쉬웠다. 자신들의 삶이 부정당하는 기분이 들어서라는 등의 이유로 태극기부대가 되었다니, 사람이 판단하는 기본적인 옳고 그름에 대한 고려는 어찌된 것일까. 리모컨 작동법을 어려워하시거나, 여유와 돈 쓰는 일에 인색한 습관 등 초반의 나이 든 삶에 대한 내용을 읽으며 공감했던 것도 너무 감성적인 접근이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들었다. 나와 다른 입장을 이해하기란 이렇게 어려운 일일까. 이 머나먼 간극에서 최근 나온 난민 관련 책을 떠올렸다. '내가 본 것을 당신도 볼 수 있다면'이라고 하지만 내가 사는 삶을 당신도 살아야 한다면 싶었다. 보는 것과 사는 것. 이해와 공감은 어느 쪽에 서 있어야 하는지, 차이에서 그것들이 정말 필요한 것인지.

 

 익숙하게 들어온 대동법(180) 이야기가 나왔을 무렵엔 나도 모르게 '왜 이렇게 대단한 인물들이 많아서 외울것도 많았던가'하고 학교 다닐 적 불평했던 마음이 불쑥 솟아올랐다. 재밌긴한데 확실히 많은 인물과 역사적 사건들이 나와서 좀 피로했던 탓이다. 그런데 그가 그의 삶을 대동법 확산을 위해 쏟아부었다는 것을 알고나니 그럼 대동법 조금 외우는 것쯤은 충분히 해도 될만한 일처럼 여겨졌다. 삶을 던졌다는데, 이름을 기억하고 외울만하다. 이해는 이런 부분에서 뜻하지 않게 찾아왔다. 그리고 " 누군가와 처음 만나서 이야깃거리가 없을 때 역사를 화제에 올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요.(164) " 라는 부분을 읽고서 이건 외국에 나가서 일본인을 만났을 때 이용한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역사와 이해 그리고 공감이 필요한 것은 또 이런 순간이 아닐까. 

 

 다양한 주제들에 대해 다루고 있기 때문에 너무 깊이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은 장점도 되고 한편으로는 아쉽기도 하다. 어우동과 나혜석을 빌어 여성에 대한 내용도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솔직히 있을거라고 생각지 못했던 내용이었고, 조금 더 깊이 다뤄도 좋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처음 '역사의 쓸모'를 읽기 시작하며 별 기대가 없었던 것이 민망하게도 읽으면서 왜 수많은 사람들이 저자를 존경하고 좋게 평하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모든 연령을 아울러 읽어볼만한 어렵지 않고 재미있는 인문서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문장을 옮긴다. 단지 꿈이 아니라, 삶에 대한 태도를 생각해보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 스스로 생각하지 않으면 주변에 휘둘리게 돼요. 우리는 주위 사람들과 끊임없이 관계를 맺으며 살아갑니다. 원하지 않아도 그럴 수밖에 없어요. 그러면서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도 모른 채 그저 좋아 보이는 것만 따라가지요. 자기 길을 모르니까요. ...중략... 꿈은 더 행복해지기 위해 꾸는 것입니다. 불행하고 싶은 사람은 없잖아요. 저는 사람들이 명사가 아닌 동사의 꿈을 꾸면 좋겠습니다. 이왕이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좋겠지요. 그 꿈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데 기여하는 자신만의 자리를 발견하길 바랍니다. 그 힘이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거든요.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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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즈덤 - 오프라 윈프리, 세기의 지성에게 삶의 길을 묻다
오프라 윈프리 지음, 노혜숙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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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성? 가장 먼저 접하는 말이 어쩐지 툭하니 눈끝에 걸렸다. "세기의 지성에게 삶의 길을 묻는" 일이 영성에 대한 이야기라고? 책 안으로 발을 한걸음 내딛기도 전에 돌아나왔다. 그리고 컴퓨터의 검색창을 켜서 영성을 검색했다. 정확한 의미로 구분하지 않으면 이 책을 읽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인간의 삶의 가장 높고 본질적인 부분이며 진정한 자기초월을 향하는 본질적으로 인간의 역동성을 통합하려는 고귀하고 높고 선한 것을 추구하는 삶의 실제. _네이버] 종교적 의미를 조금 걷어내고 그러나 여전히 영성과 영혼, 영적 본질 같은 말들에는 의심을 품으며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은 덥고 눅눅한 장마의 시작에서 벗어나 갖가지 색의 자연으로 물들어 있었다. '위스덤'을 읽으며 가장 좋았던 점은 사진이었다. 독특한 판형에 담아낸 자연의 풍경들은 안정적인 기분과 함께 현실에서 벗어나 그 안으로 마음을 집중하도록 만드는 역할을 한다. 때로는 글보다 배경이되기도 하고 한 페이지가 되기도 하는 사진들을 바라보며 잠시나마 어디 먼 곳의 한 찰나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 '네가 원래 갖고 있는 온전함, 선함, 아름다움을 잊지 말고 선을 향해 가라.' 용서와 자비와 마음챙김을 수련하는 것으로 당신의 마음이 선을 향해 가게 하십시오. 넬슨 만델라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가진 선함을 보면 절대 손해보는 일이 없습니다. 그렇게 하면 그들이 알아서 더 잘하게 됩니다." (p.22) "

 " "선해지려는 노력으로는 선해질 수 없다. 이미 우리 안에 있는 선을 발견하고 그 선이 모습을 드러내게 해야 한다." (p.110) "

 

 최근에 읽은 책에서 링컨의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라는 말과 마주쳤는데, 이 책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나와서 인상적이었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내면에는 악이 들어있고 매 순간 그것을 교화하고 경계하여 더불어 사는 사회를 유지해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조금 더 비틀자면 사람들이 가진 선함을 보던 만델라도 이해를 포기하고 혹은 이해를 했기 때문에 이혼한 것이 아닌가. 계속되는 사랑과 신, 내면의 무언가에 대한 형이상학적 대화를 읽다가  " 우리가 사는 세상이 영화이고 신이 우리가 출연하는 영화의 감독이라면 우리는 감독을 믿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하셨죠. (p.60) " 하는 부분에서 문득 나와 정말 길이 다르구나 싶었다. 세상의 부조리를 안배해놓은 신이 정말 있다는 것일까. 있다면 신이 맞을까. 거기에 희생자에게 현지를 썼다는 샤카 상고르와의 인터뷰 내용을 보며 '살인을 저지른 나 자신을 용서(135)'하는 것에 대해 말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지 한참을 생각했다. 암담한 부분이었다. 줄줄이 등장하는 세기의 지성들과 나누는 대화에 공감할 수 없다니, 오프라가 "우리는 같은 부류의 사람이군요(62)" 하고 '하이파이브(29)'를 청하지 않을거라 생각하니 씁쓸했다.

 

 하지만 모든 내용이 다 별로라는 건 아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천애 고아가 된 것 같았(94)"다는 셰릴 스트레이트의 인터뷰는 언젠가부터 품고 있던 불안, 나이를 먹을수록 더 커지는 인생의 한 우울을 정확히 짚어냈다. 연로해지시는 부모님의 모습, 때로 들려오는 주변의 부음으로 문득 언제가 다가올 부모님과의 이별을 의식하게 되는 것이다. 평소에도 생각하고 있던 문제여서 꽤 공감하며 읽었다. 거기에 " 달리는 기차를 멈추고 싶지 않다고 "예"라고 말하지 마세요 (100) " 의 길지 않은 내용도 한참을 그 안에 몰입할 수 있었다. 읽으면서 가장 재밌었던 부분을 "부라는 말의 어원은 웰빙입니다.(193)"는 내용인데 책의 의도와는 달리 우리 사회 현실을 떠올리면 아주 풍자적으로 해석되는 부분이었다. 가볍게는 화는 90초면 사라진다(83)는 내용을 오래도록 간직해볼 생각이다. 사라지지 않더라도 90초 정도는 더 참을만한 가치가 있을 것 같다.

 

 오프라 윈프리라고 하면 어쩐지 한김 식은 느낌이다. 미국에 살지 않아서 현지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우리도 오프라 윈프리가 한참 화제가 될 때가 있었다. 오바마 때였을까. 그래서 지금 오프라 윈프리의 새 책이 나왔다고 해서 아직 그녀의 영향력이 크게 미치고 있을까 잠깐 궁금해했었다. 한때는 초등학생들의 롤모델 포트폴리오 단골 손님이었지만 지금은 엘렌 드제너러스가 아닐까. 레즈비언이라는 점도 문화다양성을 추구하는 현재 분위기와 맞고. 오프라 윈프리의 화제성에 대해서를 떠나 또 하나 아쉬운 점은 책의 제목과 전체적인 분위기다. 위즈덤이라는 흔한 제목 -이미 10년쯤 전에 비슷한 컨셉으로 나온 고가의 인터뷰집이 이미 있는- 도 자기계발 분야에서 과거에 인기를 끌었던 시크릿이란 책을 연상하게 만드는 면이 있다. 차라리 좀 더 감성적인 제목을, 아니면 '위스덤'보다는 영어 원제를 직역하는 편이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표지의 독특한 질감 홀로그램처럼 보이는 빛의 반사같은 것은 다 좋은데 전체적인 분위기가 2019년 같은 느낌은 없다. 어찌되었든 위즈덤은 오프라 윈프리의 이름을 걸고 나온 신간이고 그녀의 영향력과 명성이 아직 건재하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내용을 이해하기에는 거리감이 느껴졌지만 조용한 밤에 차분하게 읽어볼만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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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지구 - 다가오는 인구 감소의 충격
대럴 브리커.존 이빗슨 지음, 김병순 옮김 / 을유문화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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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앞으로 30년 안에 한국은 지구상에서 가장 고령화된 나라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의 추세대로라면, 대략 2750년에 한국인은 이 세상에서 사라질 것이다. (p.126) "

 

 아이언맨이 3000만큼의 사랑을 남기고 간 마블의 어벤져스 시리즈 중 인피니티 워와 엔드게임에 나온 빌런 타노스를 생각해보자. 타노스는 전 우주의 생명체를 반으로 줄이기 위해 인피니티 스톤을 모은다. 일일이 행성들을 공격해 절반을 학살할 수도 있지만, 스톤을 모으면 그 힘으로 손가락을 한 번 튕기기만 하면 순식간에 랜덤으로 절반의 생명을 공정하게 없앨 수 있다. 청소와 정리를 위한 무차별 삭제는 지나치게 극단적인 해결책이지만 그가 내세운 조절의 필요성에는 공감했다. 영화처럼 우주까지 나아가지는 않더라도 인구의 감소가 지구의 환경과 자원 확보 등의 측면에서는 긍정적인 작용을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류가 아닌 지구가 겪고 있는 대부분의 문제 원인이 인류에서 비롯되는 와중에, 인류가 겪는/겪을 인구 감소의 문제는 꼭 부정적인 것일까. 타노스의 선택이 잔혹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더 옳지 않았을까.

 

 '텅 빈 지구'에서 다루는 인구 감소의 문제에서 우리나라는 꽤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다른 나라들보다도 독보적인 걸음으로 고령화시대/인구절벽에 접근하고 있다는 씁쓸함이 책에서 한국을 발견했다는 반가움과 한데 버무려진다. 우스운 일이었다. 사실 인구 감소의 문제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편이기 때문에 2750년에 한국이 사라지는 일은 무감하게 받아들이면서 책 한 권 안에서 한국을 발견하면 비록 그것이 좋지 않은 케이스에 대한 내용일지라도 반가운 것이다. 공감할 사람이 있을까 궁금한 이런 이중적인 심리도 책을 읽으면서 발견하게 되는 인구 감소의 원인들과 얽혀있다. 외국인 저자가 썼지만 한국인 독자를 공감토록 만들만큼 '텅 빈 지구'는 한국의 현 상황을 매우 예리한 시선으로 객관적으로 분석했다. 페미니즘과 유교문화에 관련된 내용도 나오기 때문에 ㅍ만 들어가도 거부감드는 사람은 불만스러울수도 있겠다.

 

 " 적어도 한국 사람들은 자신들의 외국인 혐오증에 대해서 당혹해 한다. ...중략... 그러나 그것은 일종의 연막이다. 한국인들은 오로지 한국 사람만이 한국인이라고 믿는다. 그게 전부다. (p.123) "

 

 현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문제인만큼 책에서 언급한 원인들은 우리사회의 민감한 문제를 모두 건드린다. 한국은 지난 2018년 책에서 강조하는 인구대체율(2.1)의 반도 못 미치는 0.98의 초저출생률을 기록했다. 이 출생률 감소라는 결과값의 원인들 중 하나는 밀레니얼 세대로 불리는 젊은세대가 건국이래 부모세대보다 가난한 첫 세대라는 현실에 연애, 결혼, 취업, 출산, 주택마련 거기에 +a 의 포기라는 N포세대가 되면서 출생률 감소의 큰원인이 된다. 더불어 여성의 교육과 의식 수준이 향상됨에 따라 페미니즘 이론과 운동이 부각되고 전통적인 여성관에서 벗어나 주체적인 삶을 추구하게 된 여성들이 많아진 것도 한 영향을 준다. 거기에 난민/이민 등에 대한 개방적 정책이 마련되지 않았고 이에 대한 여론 역시 좋지 않기도 하다. 앞에서 언급한 한국의 소멸에 무감한 반응을 하는 이유가 위의 N포세대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고, 한국에 대한 분석이 반가운 이유는 민족주의에 영향을 받지 않았나 생각된다.

 

 이 모든 원인들이 어떻든, 인구감소 전망은 확실시되어 있다. 인구 감소가 불러오는 변화가 언론에서 말하는 것처럼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까. 문화의 다양성이 줄어들고, 소비가 줄고, 고령화로 인해 젊은세대가 부담할 세금이 늘어나는 등의 문제를 빼면 자연환경이 좋아지고, 일자리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앞의 문제들은 2050년 즈음을 기점으로 예시되어 있고 뒤의 요인들은 현재 체감하고 있으니 현상황에서는 더욱 인구 감소가 문제라고 느껴지지 않는다. 어쩌면 미래엔 지금 인구감소를 걱정할 필요없이 영화에서 봐왔던 것처럼 인공자궁안에 인공수정된 아이들을 키워내 인구수를 조절할지도 모르겠다. 각 나라별로 올해의 인공출생 목표량을 정해 국민을 생산하고 공공으로 양육해내어 필요한 인구를 충당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심각한 인구감소 문제는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거기에 존엄사의 허용이 있다면 인구과잉으로 인한 피크오일/피크밀에 대한 우려마저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관심가는 내용이었던만큼 흥미롭게 읽었다. 다만 심도있는 문제제기와 다양한 현실접근에 비해 미래 전망에 대한 예측 비중은 적은듯해 아쉬웠다. 인구 감소가 불러일으킬 변화를 좀 더 깊이있고 세세하게 다뤘다면 인류에겐 디스토피아, 환경에겐 유토피아적 미래소설이 되었겠지만 읽기에는 좀 더 재밌었을 것이다. 어찌되었든 미래에 대한 우리의 예측은 언제나 확언할 수 없고, 미래에 대비하며 살기에 현생이 너무나 현망진창인 시대에 서있으니 내일 일은 내일의 나에게 맡기는 오늘의 나처럼 - 미래의 일은 미래의 우리에게 맡기고 현실을 살 수 밖에 없다. 인구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트렌디한 사회문제를 아우르고 있기도 해서 비혼 비출산, 다문화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읽어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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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귀엽게 보이는 높이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김민정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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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읽다 졸리면 그냥 주무세요. " 라니, 그 말은 믿은 자신의 순진함을 반성했다. 아! 아직 나에게도 이렇게 순진한 면이 많이 남아있었구나 재발견하게 되는 순간이다. 졸리면 자라니, 아저씨 너무 시끄럽다구요! 모리미 도미히코의 스타일을 몰랐던 내 탓일까 세상에 이렇게 뭐든지 할 말이 많고 수다스러운 사람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말이 많다. 글에서도 수다스러운게 느껴질 정도면 어떤 느낌인지 알려나. 다만 읽다 졸리다는 건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다. 너무 말이 많은 사람 옆에서 그 수다스러움을 참아내고 있자면 자기도 모르게 졸음이 쏟아지는 그런 느낌적인 느낌이랄까. 아,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말이 많다.

 

 어쩌면 이렇게 하고픈 말이 많고, 떠오르는 생각이 많을까 싶을 정도로 다양한 글들이 담겨있다. 에세이에 익숙하지 않은 편이라 이 사람의 이 수다스러움은 감탄할 정도다. 남성작가라는 걸 의식하며 읽는데도 때때로 여성작가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섬세함이 느껴진다. 무엇보다 어린시절 동생들에게 책을 읽어줬다는 얘기는 순간 장녀가 아닌가 하고 생각하게 만들 정도로 헷갈렸다. 책을 읽어주는 오빠라니, 형사님 저는 그런 오빠를 본 적이 없습니다. 하고 증언하고 싶어지게 만든다. 진짜일까 자기 자신을 포장하기 위한 문학적 허용같은 거짓말이 아닐까. 작가가 될 떡잎의 오빠는 그럴 수도 있는건가 의심스럽다.

 

 아주 일본스러운 문체라고 생각하면서 읽었는데, 흥미로웠던 건 일본에도 '청춘18티켓 (p.148)'이란 상품이 있다는 것이었다. 이제 곧 대학생들의 여름방학 기간동안 '내일로'라는 열차 상품을 팔텐데, 일본에도 이런 상품이 있다니! 일본의 철도문화도 잘 발달해있으니 당연하겠지만 몰랐던 사실을 알게돼서, 새삼 '내일로'를 이용했었던 과거의 기억이 함께 떠올라서 반가웠다. 내일로 말고도 성인을 위한 짧은 열차 상품을 팔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입석 여행을 즐길 수 없는 몸이 되어 버려서 내일로와 같은 상품은 과거 혈기왕성하던 때가 있었다는 추억으로 묻혀버렸다. 대학생분들 나이와 시간, 체력이 되는 한 여행을 떠나세요. 특히 나이와 체력.

 

 읽으면서 2-3페이지 정도 되는 짧은 글이라도 이렇게 많은 글을 써냈다는 것이 무엇보다 대단하게 여겨졌다. 유명한 작가들의 작법 중 하나가 매일 같은 때에 정해진 시간만큼 글을 쓰는 것이라고 한다. '사람이 귀엽게 보이는 높이'를 읽으면서 이 많은 글을 쓰려면 아무래도 자신만의 글쓰기 규칙이 있겠지, 하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런 엉뚱맹랑한 글을 쓰는 사람에게 엄격함이 존재하는걸까 의심스럽기도 했다. 새벽까지 밤새는 일을 밥먹듯이 하고 내키는대로 살면서 자유롭게 이리저리 글을 쓰는 러프한 타입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일을 시작하는 법에 대하여 (p.342)'를 보면 글쓰는데에 있어서는 확실히 프로다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언제 어느 순간에나 손을 뻗어 읽어도 부담없을만큼의 무게를 가진 책이다. 실제 책의 두께나 무게는 그렇지 않지만서도. 다소 내용이 가볍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마냥 가볍지만은 않은, 비유하자면 소금간이 절묘하게 짭짤한 비스켓같은 느낌이다. 언제 먹어도 무난하지만 가끔 느껴지는 짠맛이 포인트가 되고 자꾸만 당기는 느낌! 이미 유명한 작가이지만, 작가 특유의 색이 더욱 진하게 드러나는 이 에세이집은 아마 팬들의 얼굴에 시종일관 웃음이 떠나지 않을만한 신간이 되어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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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링 미 백
B. A. 패리스 지음, 황금진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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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확실히 계속 그 다음장을 향해 손이 넘어가게 만드는 흡입력이 있는 소설이었다. 처음에는 무슨 비밀이 있었는지 궁금해서, 나중에는 어떤 식으로 끝날지 궁금해서 계속 읽게된다. 사건이 12년 전 여자친구의 실종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해결되지 않은 과거와 현재를 바쁘게 오가며 주인공인 핀의 숨을 조여오는 전개는 꽤 흥미롭다. 핀이 숨기고 있는 12년 전 실종사건의 비밀, 여전히 발견되지 않은 실종된 여자친구 레일라, 레일라의 언니이자 핀의 새 여자친구 엘런의 복잡한 관계도 모두를 의심하게 만드는데에 한몫을 한다. 간단한 소개글에 "네가 망가져버렸으면 좋겠어. 내가 원하는 대로 다시 조립할 수 있게." 라는 문구를 본 뒤로 '브링 미 백'이 눈에 띌 때마다, 책을 읽을 때마다 에프엑스의 피노키오를 흥얼거리게 되었다. '따라따라따따따 짜릿짜릿 할꺼다 궁금투성이의 너 딱 꼼짝마라너 조각조각 따따따 부셔보고 따따따 맘에 들게 널 다시 조립할거야' 갑자기 왜 이 노래가 튀어나오나 싶겠지만 여기서 이걸 본 사람들도 아마 흥얼거리게 될거다. 

 

 기대가 컸던 탓인지 넉넉한 시간대를 잡아 흥미롭게 읽기 시작했지만 중간부터는 아쉬운 점이 좀 생겨났다. 핀과 엘런에게 레일라의 실마리를 가지고 협박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너무 많은 부분을 드러내놓은건 아닌지 싶었다. 특히 자매의 어린시절에 대한 부분에서는 거의 대놓고 숨겨진 비밀이 뭔지 알려주는 부분이라 읽는 입장에서는 더이상 혹시나 하고 망설이는 일이 없어졌다. 거기에 마트료시카의 역할은 상징적이기도 하지만 어쩐지 섬찟한 느낌을 주는 소재로 이용한 것 같아 진부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러시아의 전통인형이긴한데 생김새나 특징이 때에 따라서는 괜히 사람을 오싹하게 만드는 면이 있는 점이 '엄마가 섬그늘에-'하는 동요가 공포스러운 상황에서 나올때 괜히 무섭게 들리는 것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 섬집아기가 거의 클리셰처럼 쓰이듯이 안에 여러 크기의 인형들이 잔뜩 채워져있는 마트료시카도 전형적인 상징성을 보여준다.

 

 사랑을 말하고 있지만 사실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고 있었던 것 같지 않은 느낌을 받았다. 레일라와 엘런의 과거를 보면 폭력적인 아버지에 대한 상처가 너무나 크게 자리잡고 있어서 그녀들이 비슷한 성향을 가지고 있는 핀을 사랑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핀 역시도 큰 틀에서 보면 과연 레일라를 " 진심으로 사랑했 "던 것이 맞나 싶은 의문을 갖게 만든다. 엘런을 레일라 대신 만난 것은 분명하지만 핀이 사랑했다고 하는 레일라의 육감적인 몸매, 빨간 머리카락, 녹색이 섞인 갈색 눈동자 같은 것들 말고 그녀의 본질을 바라보았던 건지 궁금하다. 시종일관 핀과 레일라, 엘런이 서로를 너무나 사랑하고 사랑했기 때문에 생겨난 일들이라고 표현되었지만 사랑보다는 굴절된 상처, 고통, 욕망 같은 것들에 더 가깝게 보인다. 여기서부터는 가을방학의 가끔 미치도록 네가 안고 싶어질 때가 있어를 떠올린다. '너같은 사람은 너 밖에 없었어' 하는 가사를.

 

 재밌는 점은 지나고보면 다들 분명하게 레일라 혹은 레일라의 납치범을 두고 미친사람이라고 단언한다는 것이다. 핀과 엘런은 왜 그러는지 알 수 없어하고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특히 루비가 바로 제정신 아닌 사람이라고 하는 부분이 뜻밖에 일반적 반응이라 소설 안에서 갑자기 현실로 확 돌아오게 된다. 핀의 시점에서 누가 무슨 의도로 레일라의 흔적을 남겨두며 접근하는 건지 한참 궁금해하다가 왜 핀은 주변에 알려서 도움받을 생각을 안하고 혼자 나서는 것인가 하고 거리를 두고 읽게 된다. 알고보니 핀의 마음에 걸리는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었지만.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 알고보면 가장 평범하고 정상적인 인물이었던 루비를 사건과 엮는 내용이 많은데 오히려 루비보다 문제 많은 세명의 주요 인물들을 제외하고서 핀의 친한 형 래리가 더 이상해보였다. 핀이 가진 이상 행동들을 " 무슨 일이야, 인마? " 같은 말로 발벗고 나서서 해결해줄 수 있는걸까. 레일라는 탐탁치 않아하고 엘런은 받아들였다는 것도 찜찜한데 루비와 여행을 떠났다는 것도 의아한 조합이었다.

 

 자연스러운 흐름이 아니라 조금 끼워맞추려고 노력한 흔적이 남은 듯해서 아쉬웠다. 소재도 파격적이라기 보다는 이정도면 흔하지 않은가 싶고. 다만 계속 궁금하게 남는 것이, 만나는 사람이 갑자기 실종되어 버렸다면 혹은 더이상 만날 수 없게 되었다면 그 사람과 닮은 형제자매와 사랑에 빠지거나 대신해서 만나고 싶을 것인가 하는 질문이다. 개인적으로는 굳이 비슷한 타입을 또 찾을 필요가 있을까, 찾더라도 같은 사람이 아니면 무슨 가치가 있을까 싶은데 '너 말고 니 언니' 처럼 비슷하지만 다르다는 데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궁금하다. 한사람의 취향이 소나무라 같이 자라고 비슷한 분위기를 가진 형제자매에게 관심이 생기는 것과 같은 성장배경으로 취향도 비슷해서 둘이 한 사람을 똑같이 좋아하게 되는 일 역시 삼각관계의 전통적 공식 중 하나긴 하지만, 실종된 상대 대신 이라는 설정이 쉽게 이해가능한 범위인지 역시나 핀도 제정신 아닌 면이 있어서였는지 모르겠다.

 

 이쯤되면 '조각조각 따따따' 하는 노래를 따라 흥얼거리게 되지 않았을까 싶다. 사실 조각나는건 네가 아니라 나의 입장이었고, '너같은 사람은 너 밖에 없었'던 것도 아니었지만. 이게 과연 사랑 때문이란 말인가, 이게 사랑이냐 하고 묻고싶은 내용이었다. 뒤로 갈수록 아쉽지만 초반에 놓아둔 여러 설정들이 중반까지는 재밌게 이어지므로 여름을 맞아 읽어볼만한 스릴러 물이다. 브링 미 백을 읽고나니 어쩐지 여름엔 러시아로 휴가를 떠나고 싶어진다. 마트료시카를 기념품으로 사오고도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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