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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단호하게 살기로 했다 - 일, 관계, 인생 앞에 당당해지는 심리 기술
옌스 바이드너 지음, 장혜경 옮김 / 다산북스 / 2019년 7월
평점 :
'매운 고추 전략'이나 '잠자는 숲속의 공주 증후군' '다이아몬드 분석' '희생양' 같은 말들은 누가 만들어내는 걸까. 매운 고추 전략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p.81~83)을 읽다보면 세상에 그렇게 완벽한 직업인은 없는 것 같이 보인다. 인간관계를 실리에 견주어 쉽게 끊어버리는 성향마저도 시간이 없어서 라는 말로 변명해준다. 이런 말들에 휘둘릴 정도로 정말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조언을 이 책이 해줄 것인가, 시험지에 오답을 체크하는 마음으로 책을 읽었다. 몇 점을 줄 수 있는 시험지일까 생각하면서.
두가지 생각이 머리속을 오갔다. 인생은 실전이기 때문에 '호의가 계속되면 호구잡힌다, 100번 잘해주다 1번 못하면 욕을 먹고 100번 못하다 1번 잘해주면 칭찬을 듣는다, 참을인 세번이면 바보가 된다, 가는 말이 고우면 얕본다' 같은 말들이 생활명언으로 현실 공감을 얻는다. 살아보니 솔직히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마 '나는 단호하게 살기로 했다'도 저런 말들과 같은 결을 갈 것이다. 착한사람일 필요 없어, 갈등을 피하려고 손해보는 짓을 하지마 같은 내용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우리에게 저런 조언이 필요할까 의문을 가진다.
너무나도 공격적인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덜 단호하고 더 많이 이해해야 하는 것 아닐까. 내가 남에게 받고 싶은 태도대로 남을 대할 수 있었던 것이 얼마나 되었던가. 혐오와 이기가 만연한 사회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진짜 숨겨진 공격성을 밖으로 끌어내는 것인지 생각해본다. 오히려 공격성을 숨기는 쪽이 더 필요해보인다. " 이 책은 남을 생각하지 않고 본인만 앞서 나가려는 이기적인 출세욕을 장려하려는 것이 아니다. 당신을 포함하여 당신의 기업과 직원 모두에게도 이익이 되는 선한 목표의 관철을 지지한다.(p.42) " 고 되어 있지만 낱낱은 좀 애매하다.
여성 경영인을 향한 조언이 있는 부분도 상대를 제대로 보고 있는건지 의문스러운 면이 있었다. 능력있는 여성의 성장을 지지하는 것 같으면서 한편으로는 여성에 대해 평가절하하고 있는 것 같은 태도다. " 일자리 다툼에 성별대결까지 곁들여졌다/ 여성의 경계 대상은 잘난 남성 경영인이 아니라 별 볼 일 없는 평범한 남성들이다. 높은 자리의 남자들은 그만큼 뛰어난 자질을 갖추었으므로 경쟁에서 져도 수긍할 수 있다/ 싸움에서 이기려면 먼저 그 남성들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해야 한다 ...중략... 위치를 파악한 뒤에는 기품 있고 정중하게, 또 이런저런 뜻밖의 칭찬으로 그들을 안심시켜라. 남자들은 대부분 칭찬에 약해서... 후략.(p.105) "
매운 고추 전략이 여성에게 주는 조언이 높은 자리의 남자들에게 패배하면 '그만큼 뛰어난 자질을 갖'춘 사람이니까 하고 인정하고, 나보다 못한 별 볼 일 없는 남자를 경계할 때 그들을 칭찬해주는 일이라면 어느 부분이 매운지도 모르겠다. 책에 나와있는 스코빌 지수를 확인해봤을때 그리 높은 지수가 나온 것이 아닌 나도 저 이상의 투지와 단호한 태도를 보일 준비와 의지가 있는데 " 여성은 직장의 꽃도 아니고 분위기 메이커도 아니다.(p.112) " 라고 하면서 여성을 꽃처럼 생각하고 내민 조언이 아닌가.
읽으면서 이보다 더 눈을 의심했던 것은 '희생양(p.162)'에 대한 내용이었다. 휴가중에 자신의 업무가 아닌 부분에서 문제가 생겼는데도 다른 동료들이 회의에서 그를 지적한다. 이에 대해 항의하자 동료들이 회사에 큰일이났는데 속편히 휴가갔던 네가 문제라고 되받는다. 여기서는 이런 상황에 처한 사람을 희생양이라 명명했다. 팀 전체가 그를 통해 어려움을 넘겼으니 희생양이 도망가서 내가 타깃이 되지 않도록 그를 잘 보살펴주라!는 조언을 한다. 한국에서는 이를 두고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을 만드는 등 방지하려고 노력하는데 저런 조언을 한다니 독일인이여, 당신의 인성은 지금 어떠한가요.
세상 부정적인 직장 내 사회생활 팁을 알려주다가 마지막에는 갑자기 '너무 걱정하지마, 사실 세상은 그렇게 나쁜 곳이 아니야, 하지만 만만하지 않으니 내 조언을 잘 새겨뒀다 필요할 때 쓰렴.' 하고 나름 훈훈한 마무리를 하고 급하게 끝을 맺는다. 이 책이 진짜로 필요한 마음 여린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직장 생활 1년만 혹 알바라도 좀 해본 경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기 내면에 존재하는 인류에 대한 혐오와 넘치는 공격성을 발견했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들은 함부로 나에게 꼭 필요했던 책이라고 단정짓지 말고 '아, 저 사람은 진짜 안되겠다' 싶은 순두부 멘탈에게만 이 책을 추천해주면 좋겠다.
사람 마음은 다 똑같아서 내가 아닌 척 어떤 행동을 해도 분명 그 속내를 느끼는 누군가는 존재한다. 그러니 누가 대놓고 싸움을 걸어오는게 아니라면 웬만하면 내가 대접받길 원하는대로 남을 대접해주는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를 따르도록 노력하는 것이 끝내 나에게 좋을 것이다. 매운 고추가 되는 것은 쉽지만 남에게 선의를 보이는 것이 훨씬 더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나는 좀 피해보고 있는 것 같은데 싶은 마음이 든다면 매운 고추 테스트(p.117)를 솔직한 마음대로 해보자. 매운맛에 미친 민족답게 난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높은 지수를 얻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