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 예찬 - 숨 가쁜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품격 있는 휴식법
로버트 디세이 지음, 오숙은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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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여러 사정과 관계상 그리고 고질적인 게으름 탓으로 한동안 일을 하지 않는 시기를 거쳤다. 낯선 자리에서 자신을 소개할 때 어느새 필수가 되어버린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하는 항목이 거추장스러웠다. 자신보다는 상대방의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보면서 어쩐지 민망했다. 나올 수 있는 최대한의 반응이 '아, 그러시구나' 였다. 일을 해야 한다고 보여지는 나이에 일하지 않는 사람들,이 사회적 문제가 될만큼 많다고 한다. 일하지 않는다기 보다는 못한다고 봐야 더 정확하겠지만 밖에 나가 사람을 만나보면 대부분 일을 하고 있다. 그 많은 일하지 않는 자는 어디에 있는걸까. 일하지 않는 자가 문제가 되는 사회와 일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갑자기 분위기를 싸하게 만들게 되는 상황에 대한 불만을 조금 품고 '게으름 예찬'을 읽는다.

 

 " 일하지 않는 시간에 관한 불안감이 빠른 속도로 전 세계에 퍼지고 있다.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과거 그리스인과 로마인 모두 그런 시간에 대해 예민하게 구는 경향이 있었고, 게으른 사람을 죽음으로써 벌했다. p.11 "

 

 한 세줄 읽자마자 사망하게 되었다. 조금 게으를 뿐인데 왜 죽음으로써 벌을 받아야 하는가. '게으름 예찬' 이라더니 멕이고 시작하는가, 나의 게으름을 변명이라도 해줄 줄 알았는데 내가 당했구나 싶었다. 그러고보니 예로부터 게으른 자를 가혹하게 벌하는 계몽작들이 많이 있었던 것 같다. 게으름뱅이는 소가 된다는 동화나 중세 유럽의 동화를 보면 아이들에게 게으르면 안된다는 계몽적 내용을 잔인하다시피 담은 내용도 있다. 게으르다는 것이 왜 이렇게까지 금기시 되어 있을까. 근본적으로는 게으르지 않아야 제 먹고사는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리라. 책에서도 게으를 수 있는 것은 귀족들 뿐이라 했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어야만 진정으로 게으를 수 있는 것이다. 거기서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들은 게으르면 생존의 위협을 받게 되고 게으르지 말 것을 요구받는다. 입성을 충족시킬 뭔가를 하고 있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은 상태로 느끼고, 이를 게으르다고 여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지만 더욱 더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하고 싶다'는 말이 유행했듯이 이 책이 제대로 게으를 수 있는 게으름의 기술을 보여줄 것이라 기대했는데, 오히려 부지런히 게으를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하는 것을 보고 조금 실망했다. 진짜 게으르려면 한강에서 열리는 '멍때리기 대회'라도 나가는 편이 나으려나. '게으름 예찬'이 너무나도 치열하게 게으름에 대해 탐구하고 있기 때문에 이 사람은 전혀, 절대 게으르지 않았구나 싶어진다. 세상에 어떤 게으름뱅이가 머리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며 산단 말인가. 저자가 게으름을 표방한 성실하고 치열하게 시간을 보내기가 아닌 진짜 게으름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했다면 아마 이 책의 표지 안에는 '게으른게 제일 좋아 늘 새로워, 짜릿해' 같은 말 몇 줄 말고는 아무것도 없어야 했을 것이다. 우리는 게으름에 대한 해석이 달랐을지도 모른다.

 

 문득 인류가 생존을 위한 노동에서 해방 되고 난 이후의 시간보내기는 어떤 형태일지 생각해본다. 생산적이라 여겨지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때의 게으름은 더이상 죄책감이나 비난의 대상이 되지 않을까. 개나 고양이가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게으름을 비난하지 않는 것처럼? 그건 인간의 존엄이 사육하는 개나 고양이처럼 여겨지도록 만들까? 우리가 결코 알 수 없을 머리속에서 이어지는 생각을 냉소적으로 부정한 피터의 시선(p.50)처럼? 또 하나 눈길을 끌었던 부분은 흡연이 부정적 시선을 얻게 되면서 흡연을 통한 사유의 시간이 사라지게 됨을 강조하는 내용(p.81)이었다. 이에 대에서는 전혀 공감할 수가 없었는데, 흡연 금지 구역이 늘어나면서 설자리를 잃었다며 불평을 쏟아내는 흡연자들의 불만토로 중 하나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갑자기 등장한 흡연에 대한 절절한 고백에 읽으며 모난 듯이 걸렸던 부분이다.

 

 책을 읽으며 게으름은 여러 모습으로 다가왔다. 나태한 상태,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 혹은 먹고 사는 생산적 활동에서 벗어난 것, 여러가지 방향으로 시간을 보내는 활동. 개인적으로는 게으름의 범주에 속하는 것이 맞을까 싶은 것들도 있었는데 전체적으로 생각보다 어려웠던 것 같다. 특히나 놀이와 스포츠마저 분석의 대상으로 흘러들어가는 식의 책의 내용이 다소 딱딱하게 읽혔다. 애초에 저자가 " 자유 시간을 보내기에 더 비옥하고 덜 타락한 방식이 분명 있지 않을까? p.292 " 를 모색하면서 게으름을 예찬했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시간을 보내는 다양한 방식과 해석에 대해서는 흥미로웠다. 다만 우리 게으름뱅이들은 자신의 게으름에 대한 정당성을 찾기 위해서 이 책을 읽으려해선 안될 것 이다. 본투비 앞에서는 아쉽게도 좀 결이 다른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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