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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심플하게 말한다
이동우 지음 / 다산북스 / 2019년 8월
평점 :
시간을 정해놓고 방영하는 티비 프로그램을 잘 보지 않는다. 정해진 시간을 매번 챙기기가 귀찮아서 그런데 요즘 '유퀴즈'라는 프로그램은 비교적 챙겨보는 편이다. 프로그램은 진행자인 유재석과 조세호가 길을 가며 만나는 사람들에게 짧은 질문을 던지며 이야기를 나누다 100만원의 상금이 걸린 퀴즈를 푸는 형식이다. 나라면 상금이 욕심 나 퀴즈를 풀고 싶어도 인터뷰에 응하고 싶지 않을 것 같은데 매 회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흔쾌히 인터뷰를 하고 퀴즈를 푼다. 그리고 뜻밖에 진솔하고 인상적인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센스있는 답변으로 웃음을 주기도 한다. 수많은 카메라가 자신을 향해 있는 순간을 잘 이겨낸 사람들을 보며 자연스럽게 '만약에 나라면 어떨까' 생각해보게 된다. 말을 잘 못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어떤 상황에서든 잘 할 수 있을까.
'나는 심플하게 말한다'는 갑작스러운 방송 출연이라는 뜻밖의 상황까지는 아니더라도 생활 속에서 마주칠 수 있는 회의, 발표 같은 상황을 좀 더 수월하게 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웬만한 상황에서 할말은 하는 편이라 '입만 열면 개구리가 튀어나'온다는 것이 좀 어색한 표현이라 생각했는데 말하기에 부담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공감할만한 표현일까 짐작해보았다. 지금 이 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직장인들이라면 어린시절 웅변학원.. 스피치학원이란 표현이 더 나으려나.. 좀 다녔을만한 삼십대도 있지 않을까. 그 세대들이 자라 또 '말하기'가 필요하다니 '사는 기술'이 참 품이 많이 드는구나 싶었다. 더불어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뜻밖에 가장 필요한 기술이 글쓰기라고 나왔다니 말하고 듣고 쓰기라는 기본이 간단한 것 같아도 삶 전체를 아울러 중요한 조건임을 새삼 깨닫는다.
어떤 내용이 들어있을까 궁금했는데 첫 시작에 나온 조언이 '최대한 말하지 말 것'이어서 재밌었다. 말 잘하고 싶어서 책을 읽으려는데, 말하지 말라니. 그런데 문득 얼마 전 읽은 오프라 윈프리의 책이 떠올랐다. 썩 마음에 드는 내용은 아니었지만, 오프라의 인터뷰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그녀의 책 안에서 그녀는 대부분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상대방이 자신이 경험했던 일이나 생각을 전하면 오프라는 내용이 더 풍부히 이어지게 될만한 질문을 짧게 던지거나, '맞아요' 하고 수긍하고 '당신도 나와 같은 걸 느끼는 사람이라니 기쁘네요' 하는 공감을 표시한다. 줄곧 우리는 공감을 하고 있다는 표현을 많이 써서 그때 책을 읽을 때는 어색했는데, 이동우의 '나는 심플하게 말한다'를 읽으면서 오프라의 태도가 상당히 전략적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조언들이 나왔지만 가장 찔렸던 것이 '자존심을 버리'고 '언제든 틀릴 수 있다고'(p.174-175) 생각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나이를 먹을수록 나 자신이 강해진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터라 더욱 그랬다. 내 생각이 맞는 것 같고 남이 나와 다르면 '나랑 잘 안맞는다'거나 '뭘 잘 모르는 것' 같이 생각될 때가 많았다. 인간관계가 좁아지는 것 같고, 이러면 안될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고 나중에 후회될 때가 있었다. 독특하게도 잘 말하는 것보다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할지를 더 많이 의식하며 읽은 것 같다. 그저 먹은 나이를 두고 '우열의 계단'(p.187) 올라서려는 꼰대짓을 하지 말아야지 다짐한다. 나이를 먹을수록 입은 다물고 지갑은 열라는 말이 괜히 있는게 아니다.
개인적으로 말하는 스킬이나 연습도 중요하지만 요즘에는 좋은 태도에 더 마음이 쓰인다. 책 초반에 나왔듯이 달변에 마음이 움직이는 일은 별로 없다. 오히려 말을 잘하면 흘려듣거나 내 나름의 생각으로 말을 재보곤 한다. 그런데 말을 잘하지 않더라도 핵심을 분명하게 말하고 솔직한 모습을 보인다면 오히려 더 호감이 느껴진다. '워킹메모리'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쇼핑을 예로 든 부분(p.42)을 읽으며 왜 아무것도 사지 못할 것이라 단언하는가 쇼핑을 잘 안해본 것일까 의심하기도 했다. 뭔가를 사기 위해 두시간동안 매장 여덟군데를 돌아다녔다면 사려고 했던 물건과 함께 계획에 없었던 물건도 추가로 구매하고도 남을텐데. 그러니 내가 말을 잘 못해서 마음이 염려스러웠던 사람들은 책 내용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말 잘하는 저자도 쇼핑은 잘 못한다는 사실을 두고 조금 위안을 삼길 바란다. 당신도 당신이 잘하는 분야의 뭔가가 있을 것이다.